찍히기는 많이 찍히는 것 같은데 사진첩에 꽂을 사진은 없다. 스마트폰과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면서 원통 모양의 필름 통을 본지도 오래다. 이제 인화된 사진은 컴퓨터 화일로 대체되었다. 나야 뭐 사진보다 실물이 괜찮다는 소리를 더 듣는 편이니 사진이 어떤 형태로 보관되건 개의치 않지만 아무래도 약간의 메모와 함께 사진첩에 꽂혀 있는 사진이 더 정감이 간다는 게 주변 친구들 얘기다. 사실 그렇다. 사진이라는 것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빛도 바래고 테두리가 헤지기도 해야 매력 아닌가? 추억은 세월과 친구이니까.

 

영화 포스터 속 사진도 추억과 연관되어 있다. 그 기억이 행복이라면 되찾고자 희망하므로 미래 지향적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현실이 부정적이라고 가정해 보자. 좋았던 과거로 되돌아가거나 지금의 어색한 관계를 예전의 좋았던 관계로 회복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사진 스타일(picture style)의 포스터를 통해서 사진 그리고 관계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크레이머 집안의 가족사진 한장으로 심플하게 표현한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1979]의 포스터다. '가족 드라마'이자 '법정 드라마'인 이 영화는 그 해 많은 토론 거리를 양산하면서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단란한 가정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제목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아내이자 엄마가 가출한 이후 둘만 남은 부자간에 전개되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갈등과 화해를 중심으로 보자면 '아버지 대 아들' 즉, '테드 크레이머 대 빌리 크레이머'라는 가족 드라마가 된다. 그러나 양육권을 두고 법정에서 격돌하는 소송을 중심으로 보자면 '남편 대 아내' 즉, '테드 크레이머 대 조안나 크레이머' 구도의 법정 드라마가 된다.(미국의 소송에서는 원고와 피고가 곧바로 그 소송명이 된다.)  

 

한 가정이 해체되는 위기에 처하지만 어느 누구도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는(그렇지만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구성원들의 성숙함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릭 로젠탈 감독의 [러스키스, 1987] 포스터에도 활짝 웃는 아이들의 사진이 보인다. 근데 이 사진, 바닷물 아래로 잠기려는 찰나인데 멀리 잠수함과 여러 척의 배가 보이는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한 러시아 해군이 미국 바닷가에서 난파되었는데, 3명의 미국 아이들과 일생의 모험을 한다는 내용이란다. "때로는 최악의 적이 최고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카피가 대충 스토리를 짐작케 한다. 근데 이 친구들, 사진처럼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

 

 

 

 

 

[존경하는 어머니, 1981]의 포스터를 보고 있다. 어떤 느낌이 드시는지. 부유할 것 같은 우아한 중년의 여인이 도도하게 무엇을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 세 조각으로 찢겨 있다. '사랑을 담아 내 딸 크리스티나에게'라는 친전이 있는 것으로 봐서 엄마가 딸에게 주었던 엄마의 사진인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찢겨져 있는 것이다. 포스터에서 처럼 사진을 찢는다는 것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이제 그 사람과의 과거는 더이상 추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딸과 엄마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영화는 1977년 향년 73세로 사망한 미국의 여배우 조앤 크로퍼드(Joan Crawford, 1905. 3. 23 ~ 1977. 3. 10)의 전기 영화이다. 그녀는 [밀드레드 피어스, 1945]의 연기로 아카데미상을 받을 만큼 성공한 여배우였고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2세, 프랑수아 톤 등의 배우와 펩시콜라의 전 회장인 앨프레드 스틸과 결혼 했었다. 그녀의 양녀 크리스티나가 자신과 동생(양자)이 어머니 밑에서 엄하게 자란 어린시절을 기록한 동명의 책(1978년 발간)을 '페이 더너웨이'를 내세워 영화화한 것이 바로 이 영화이다.

 

그때까지 스타의 사생활이 그토록 자세히 드러난 적은 없었고 어린 아이의 관점에서 가정 폭력을 고발한 것도 처음이었으며, 가정 폭력이 가난한 집안에서만 일어난다는 통념도 깨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영향으로 스타들의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졌고, 빈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아동복지의 관심이 높아졌으며 조앤 크로포드는 무섭고 괴팍한 엄마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분위기 좀 바꿔보자.

 

폴라로이드 사진은 일반 사진에 비해서 촬영 형태나, 피사체의 행동이 경쾌하고 자유롭다. 찍는데 별다른 기술도 필요 없고, 찍자 마자 즉석에서 사진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호기심 많고 생기발랄한 청춘들의 아이템 중에 하나다. 로드 무비나 탐정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포스터 속 아이템이기도 하다.

 

자유에 대한 외침으로 기억되는 [델마와 루이스, 1991] 포스터 속 사진을 보면 두 여자가 셀카를 찍으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무엇이 저토록 좋을까. 사진 아래로 펼쳐진 황무지를 가로질러 쭉 뻗은 도로는 무엇을 말하는 걸까?

 

 

 

 

 

기억과 망각에 관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놀라운 영화 [메멘토, 2000]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반복적으로 펼쳐진다. 기록은 기억의 보조 수단이다. 그때 흔히 사용하는 것이 메모와 사진이다. 포스터만 봐도 이 영화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마지막으로 볼 포스터는 한국과 중국의 합작 영화 [폴라로이드, 2013]다. 이건 뭐 영화 제목부터 '폴라로이드'다. 배우 장나라의 아버지로도 더 알려진 배우 주호성 씨가 메가폰을 잡았다. 2013년에 제작되었지만 지금 상영중이니 좀 늦게 왔다. 포스터에서 폴라로이드를 '가장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으로 정의한다. 포스터의 색조만큼이나 따뜻한 가족 영화일 것 같다.

 

 

 

 

 

나 지금 영화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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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8-26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 정말 멋지죠.....
오랜만에 보니 마음이 다 설레입니다. ㅎㅎㅎㅎㅎ

호서기 2015-08-26 15:24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데요. 다른 대작들도 좋았지만 [델마와 루이스] 만큼 깊은 여운을 남긴 영화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포스터도 멋지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