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평점 :


 

가끔, 아니 자주 느낀다. 눈은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것이 정말 많다. 나는 내 의식을 점령하고 있는 무엇이 허용하는 것만 본다. 너무나 자주 눈 뜬 장님이 되고 마는 것이다. 내 앞에서 동료가 나름 엄청 심각한 표정으로 무엇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지만 나는 고개는 끄덕거릴지언정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럴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적당한 순간에 대꾸를 하는 것인데, 멍청하게도 엉뚱한 말을 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곤 한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할 때면 누가 내 귀를 막지 않아도 그 사람의 말을 잡지 못한다. 소리를 듣지만 귀머거리다.

 

큰 이모는 글을 읽지 못했었다. 용혁이가 태어나고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큰 이모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글을 배운 아이가 자신의 엄마는 읽고 쓰지 못한다고 알게 되었을 때 벌어질 일을 상상한 것이다. 큰 이모는 글을 배우고 싶어했다. 우리 집과 큰 이모집은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였고 난 학교 끝나고 특별히 할 일도 없는 꼬마였으므로 큰 이모의 한글 공부를 도와주기로 했다. 그때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나 5학년 쯤 되었을 것이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때 알았다.

 

나의 학생은 곧잘 따라 왔다. 아이들이 말과 글을 배울때 사용하는 낱말 카드를 이용해 보기도 해보고 쉬운 동화책을 같이 읽기도 하면서 처음 며칠은 나도 큰이모도 재미 있었다. 그런데 큰 이모는 외래어를 말하고 읽는 것을 아주 어려워했다. 예컨대 '포크레인', '텔레비젼' 따위의 이제 거의 우리말이나 다름없게 된 외래어를, 큰 이모는 '뽀크리', '떼레비'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나를 더 화나게 했던 것은 그렇게 대충 말해놓고 끝에는 웃어버리는 것이었다.  쓰기를 할 때는 정말 절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부끄럽다.

 

지금 큰 이모는 한글을 읽고 쓸 줄 안다. 운전면허증도 취득했으며 글자를 해독해야만 하는 왠만한 일은  다 직접 하신다. 한글공부를 시작하고 몇개월이 지났을 때 시내를 걸으며 거리의 간판을 하나씩 읽어가면서 큰 이모가 하신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눈 뜬 장님 신세 면하려나 보다."

 

36세의 한나 슈미츠와 15세의 미하엘 베르크의 특별한 관계를 다룬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를 읽었다. 소녀의 심성을 가진 성숙한 여인 한나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는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을 동경한다.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와 노래가 바로 글 속에 같혀 있다는 걸 안다.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통에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녀는 타인의 음성을 통해서 글 속에 같혀 있는 아름답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문맹이라는 것을 감춘다.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한나는 수치로 여겼다. 역사 앞에서 큰 죄인이 되는 것보다 문맹이 드러나는 것을 더 두려워했고, 교도소에서 글을 익히고 났을 때는 미하엘로부터 편지를 받을 수 있기를 학수고대했다. 더 이상 녹음테이프는 필요치 않았는데도 계속되는 미하엘의 녹음테이프는 여전히 자신을 '문맹인'으로 취급하는 것과 매한가지 였으므로 그녀는 절망했다. 수치심이 절망과 만나자 그녀가 선택한 극단은 죽음이었다.

 

그런 면에서 미하엘은 '눈 뜬 장님'이 아니었을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진짜 '문맹'이 아니었을까? 상대방이 정말 원하는 것은 모르면서 자기 의무는 충분히 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기는...이기적 존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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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아트'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앤디 워홀. 이 사람 고 백남준과도 친분이 있는 것 같고 가끔 영화 제작에 출연까지도 했으며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에 괴짜처럼 돌출행동을 한다는 것 정도 외에는, 사실 잘 모른다. 이 사람 작품 중에 울긋불긋한 '마릴린 몬로', '마이클 잭슨', '마오쩌뚱' 등이 있다는 정도는 안다. 그런데 지금(2015.6.6~9.27)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 DDP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대형 기획전  '앤디 워홀 라이브'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이 참에 앤디 워홀 뿐만 아니라 '팝 아트' 공부좀 해볼까.

 

 '팝 아트'에 대하여 Daum 백과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950년대 초 영국에서 그 전조를 보였으나 1950년대 중후반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매스 미디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미술평론가 L.앨러웨이가 1954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팝 아트가 비평용어로 채택되기 이전에 팝 아트적 징후를 상기시키는 작품이 영국에서 나타났다. 즉 1949년부터 F.베이컨이 작품에 사진을 활용함으로써 팝 아트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나 베이컨은 팝 아트와 실질적인 관련이 없으며, 1954~1955년 겨울에 영국의 젊은 작가들의 공동작품 및 그것과 관련된 토론 가운데 팝 아트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 대중소비문화에 대한 관심 아래 조직된 전시가 1956년에 열린 ‘이것이 내일이다’이며, 이 전시에 R.해밀턴이 출품한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작품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팝 아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팝 아트는 사회비판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다다이즘과의 근친성을 보여준다. 영국 작가로 해밀턴을 비롯 P.블레이크, D.호크니, R.B.키타이, E.파올로치 등이 있으며, 특히 해밀턴이 바람직한 예술의 성질로 열거하고 있는 것들, 예컨대 순간적, 대중적, 대량생산적, 청년문화적, 성적(性的), 매혹적, 거대기업적인 것 등은 현대 대중문화의 속성을 그대로 압축해놓은 것이다.

 

그러나 팝 아트의 성격은 미국적 사회환경 속에서 형성된 미술에서 더 구체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미국 팝 아트의 선배세대인 R.라우션버그와 J.존스는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각종 대중문화적 이미지를 활용하였는데, 이들의 작업이 다다이즘과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고 해서 네오 다다(Neo dada)로 불려졌고, 그 외에 신사실주의, 신통속주의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미국 팝 아트의 대표적 작가는 A.워홀, R.리히텐슈타인, T.웨셀만, C.올덴버그, J.로젠퀴스트 등과 서부지역의 R.인디애너, M.라모스, E.에드워드 키엔홀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가장 많은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가가 워홀이다. 그는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 등 대중문화의 스타나 저명인사들을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묘사하거나 임의적인 색채를 가미함으로써 순수고급예술의 엘리티시즘을 공격하고 예술의 의미를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다.

 

팝 아트는 텔레비전이나 매스 미디어, 상품광고, 쇼윈도, 고속도로변의 빌보드와 거리의 교통표지판 등의 다중적이고 일상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코카 콜라, 만화 속의 주인공 등 범상하고 흔한 소재들을 미술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이라는 이분법적, 위계적 구조를 불식시키고, 산업사회의 현실을 미술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다이즘에서 발원하는 반(反)예술의 정신을 미학화시키고 상품미학에 대한 진정한 비판적 대안의 제시보다 소비문화에 굴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 대중 예술(Popular Art)하면 영화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고, 은막의 배우들만큼 영향력 있는 대중스타도 흔치 않은데, 그러면 영화 포스터는 모두가 '팝 아트'로 볼 수 있는것 아닌가?  또 뒤져보니 팝 아트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 것이 발견된다. 

 

팝 아트의 3가지 특징

 

1. 대중스타 얼굴, 대중 생산품을 실크스크린이라는 판화기법을 이용해 찍어서 표현한다.

2. 사람들이 많이 보는 만화의 한 장면, 또는 한 면을 크게 확대해서 그린다.

3. 공산품 등을 크게 확대하여 공원이나 거리에 설치한다.

 

그래서 팝 아트의 특징을 기준으로 '팝 아트 스타일(pop-art style)'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 포스터를 찾아 보았다. 20세기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미술사조가 영화 포스터에도 영향을 많이 미쳤음을 알 수 있었다. 앤디 워홀로 시작했으니 그의 실크스크린 스타일의 포스터부터 보자.

 

 

 

<앤디 워홀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퍼스타]의 포스터>

 

 

앤디 워홀의 전형적인 작품 스타일이다. 눈치챗겠지만 앤디 워홀의 뒷 모습을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했다.

 

 

<[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 1996]의 포스터>

 

 

이 영화는 1968년 6월 3일에 있었던 앤디 워홀 실제 저격사건을 다뤘다. 범인은 워홀의 팩토리 스튜디오 직원 발레리 솔라나스였다. 그녀는 스튜디오에 들어와 워홀을 총으로 세 발이나 쏘았는데 두 발은 빗나갔지만 세 번째 총알이 앤디 워홀에게 치명상을 입혔다의사들의 부정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총격에서 살아남았으나 죽을 때까지 완전히 회복되지는 못했다.

(앤디 워홀은 1987년에 담낭 수술을 받은 다음 날, 페니실린 알레르기 반응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8세였다.)

 

솔라나스는 후에 "그는 내 삶의 너무 많은 부분을 통제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녀는 레즈비언이었고 작가였지만 변변한 수입원도 없이 남의 집 옥상이나 싸구려 호텔에 살았다. 그러던 중 앤디 워홀 공장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Up Your ass'라는 자신의 희곡을 그들에게 보여주게 되면서 앤디 워홀과 인연을 맺게 된다. 도대체 앤디 워홀과 솔라니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를 찾아 봐야 겠다.

 

 

 

<[자유를 찾아서, 1985]의 포스터>

 

 

 

글렌다 잭슨, 벤 킹슬리가 공연하고 존 어빙이 연출한 이 영화의 거북이 그림 포스터는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판화 작품이다. 포스터 중앙에 앤디 워홀의 서명이 뚜렷하다.

 

 

 

 

 

이제 '팝 아트'의 또다른 특징인 만화를 활용한 포스터를 보자.

 

 

 

 

<[겟 카터, 1971]의 포스터>

 

 

전에 '표적 스타일' 편에서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 [겟 카터] 포스터의 다른 버전이다. 누구의 작품인지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한참 했는데 못 찾았다. 헤매다가 '정답은 문제에 있다'는 격언을 상기하고 포스터를 꼼꼼히 살피자 중앙 왼쪽에서 John Van Hamersveld라는 서명이 눈에 들어온다.

 

 

 

 

 

John Van Hamersveld 는 1941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났다. 그래픽 아티스트로 1960년대부터 '키스', '비틀스', '롤링 스톤즈' 등 여러 장의 팝가수 및 사이키 밴드의 앨범 자켓을 디자인 하였다. 그가 작업한 유명한 영화 포스터로는 1964년작 [엔들리스 썸머]가 있다.

 

 

 

 

 

 

<[모던 걸스, 1986]의 포스터>

 

 

 

R.리히텐슈타인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모던 걸스]의 포스턴데, 그의 작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누구 아시는 분 있으시면 댓글 부탁드린다.

 

 

 

<[브렌다 스타, 1992]의 포스터>

 

 

만화의 컷들로 꾸민 브룩 쉴즈의 [브렌다 스타] 영화 포스터도 이 범주에 들 수 있겠다.

 

 

 

<[로미오 이즈 블리딩, 1993]의 포스터>

 

 

실크스크린 기법과 만화의 말풍선을 뒤섞은 이 포스터도 멋지다. 며칠전에 이 영화를 봤는데 정말 괴기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좀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하바나]의 레나 올린이 최강 싸이코 킬러로 등장하는데 꿈에 나올까봐 무서운 캐릭터다. 잔인성 못지 않은 섹시함으로 게리 올드만이 분한 무능한 부패 경찰을 난처하게 만든다.

 

 

대중 문화, 대중 가요, 팝 아트...  대중 문화가 아닌 것은 도대체 뭘까? 클래식 음악? 판소리? 건축? 오페라? 아니 대중의 범주에 들지 않는 사람은 누굴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같은 정치인? 대기업 총수 같은 경제인? 머리 아픈 글을 많이 쓰는 작가? 그 시대에 더 맞는 문화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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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오히려 오리지날 시나리오가 더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훌륭한 소설이나 희곡, 자서전, 기타 출판물 등은 제작사나 감독 등에게 보험과도 같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는 원작의 위대함에 전혀 누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는 제작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혹평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현상은 원작이 우수할 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이런 흔한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를 (약간은 촌스럽게) 포스터에서 꼭 티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영화 홍보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실제로 영화 흥행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었는지 밝혀진 바는 없으나 열한번째 포스터 이야기의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자, 어떤 영화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오늘의 주제는 베스트셀러 스타일(bestseller style) 이다.

 

 

 

 <[다락방에 핀 꽃, 1987]의 포스터>

 

 

1979년에 발표된 V.C. 앤드류스의 소설 [다락방의 꽃들(Flowers in the Attic)]을 제프리 블룸 감독이 1987년에 영화로 만들었다. V.C. 앤드류스는 이 소설을 시작으로 '돌런갱어 가문 시리즈(일명 다락방 시리즈)를 연이어 출간했다. 이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4천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대단한 베스트셀러임엔 틀림 없다. 최근에 이 시리즈의 국내 첫 완역본이 출시되었다고 하는데 영화와 소설을 번갈아 보면서 비교해도 좋을 듯. 아래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를 참고하시면 되겠다.

 

   

 

늘 새롭게 화제에 오르는, 소녀들의 영원한 고전
1979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자마자 2주 만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 곧 1위를 차지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다락방의 꽃들』은 이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1980), 『가시가 있다면』(1981)으로 이어지며 출간될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했다. 금단의 사랑으로 시작된 한 가문의 이야기가 고딕소설 특유의 공포적 전율과 낭만적 분위기 속에 펼쳐지는 돌런갱어 시리즈는 1984년 주인공인 두 남매 캐시와 크리스토퍼의 마지막이 담긴 『어제 뿌린 씨앗들』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뉴욕타임스> 집계에 따르면 『어제 뿌린 씨앗들』은 그해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들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V. C. 앤드루스가 사망한 이듬해인 1987년 11월, 미발표되었던 외전인 『그늘진 화원』이 한 유령작가(훗날 유령작가의 정체는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의 원작자이기도 한 공포소설가 앤드루 니드먼으로 밝혀졌다)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서 돌런갱어 시리즈는 전 5부작으로 완결된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돌런갱어 시리즈는 독일어.폴란드어.체코어.포르투갈어.스페인어.네덜란드어 등으로 번역, 전 세계 4천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이런 인기에 힘입어 1987년에는 1권 『다락방의 꽃들』이 크리스티 스완스 주연으로 영화화가 되었다.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읽어도 여전히 매력적이며 생생한 자극을 주는 이 이야기는, 지난해 미국 라이프타임 채널에서 원작의 2권까지가 텔레비전 영화로 제작.방영되었고, 올해 2015년 외전을 제외한 남은 두 편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번 텔레비전 영화에서 어린 네 남매를 다락방에 가두는 외할머니 역을 맡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배우 엘렌 버스틴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에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길티 플레저의 대명사가 된 모던 고딕 로맨스
이 책이 처음 소개되었던 1990년대 초반, 당시 국내에는 청소년 취향의 할리퀸 로맨스물이 많은 소녀들 사이에서 탐독되고 있었다. 로맨스에 대한 갈망과 성에 대한 궁금증을 가득 품은 사춘기 소녀들에게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콘텐츠가 드물었던 시절,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잘생긴 남자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소재들과 진부한 서사, 무엇보다 문학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들이 난무하던 가운데 등장한 『다락방의 꽃들』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의 독자를 아우르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근친상간으로 인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빠진 열두 살 소녀 캐시가 어른이 되고 싶은 갈망과 어른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 사이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매혹시켰다. 근친상간과 불륜, 살인과 같은 충격적인 소재와 다소 야한 성적 묘사는 때로 일부 독자들을 이 책을 읽는 게 죄악인 것만 같은 감정에 빠뜨리기도 했다. 뒷이야기들에 대한 궁금증과 죄책감 사이에서 번뇌하던 청소년 독자들 가운데는 실제로 이 작품을 손에 놓을 수 없는데 계속 읽어도 될지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일들도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작가 V. C. 앤드루스는 속칭 막장의 원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문학성과 문학적으로 얻게 되는 감흥과 매력은 돌런갱어 시리즈를 통속적이거나 자극적이라고만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망과 그에 따른 죄책감, 그리고 어린아이가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른의 현실세계로 들어설 때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공포감을 다루는 앤드루스의 돌런갱어 시리즈는 길티 플레저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같은 영문 제목이 국내에서 영화 따로 소설 따로인 것은 영화의 국내 개봉(또는 출시) 시 '다락방에 핀 꽃'이라는 제목을 달았기 때문이다. 원제에 더 가까운 '다락방의 꽃들'이 더 맞다.

 

 

 

 <[크리스틴, 1983]의 포스터>

 

 

 

여전히 현역인 최고의 공포, 오컬트, 스릴러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 [크리스틴]을 원작으로 공포 장르 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가 영화화했다. 아마도 단일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작가가 스티븐 킹이 아닐까. 포스터 하단에 조그맣게 드러난 책이 앙증맞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중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대략 35개에 이른다고 한다. TV영화나 자잘한 것은 뺀 것이다.

 

 

<스티븐 킹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목록>

 

 

년도

제목

감독

1

1976

Carrie

캐리

브라이언 드 팔마

2

1980

The Shining

샤이닝

스탠리 큐브릭

3

1982

Creepshow

크립쇼

조지 A. 로메로

4

1983

Cujo

쿠조

루이스 티그

5

1983

The Dead Zone

데드 존

데이빗 크로넨버그

6

1983

Christine

크리스틴

존 카펜터

7

1984

Children of the Corn

옥수수밭의 아이들

프리츠 키어쉬

8

1984

Firestarter

초능력 소녀의 분노

마크 L. 레스터

9

1985

Cat's Eye

캐츠 아이

루이스 티그

10

1985

Silver Bullet

악마의 분신

다니엘 아티아스

11

1986

Maximum Overdrive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스티븐 킹

12

1986

Stand By Me

스탠 바이 미

롭 라이너

13

1987

The Running Man

런닝 맨

폴 마이클 글레이저

14

1989

Pet Sematary

공포의 묘지

메리 램버트

15

1990

Tales From The Darkside: Cat From Hell

어둠 속의 외침

존 해리슨

16

1990

Graveyard Shift

괴물

랄프 S. 싱글턴

17

1990

Misery

미저리

롭 라이너

18

1992

Sleepwalkers

슬립워커스

믹 개리스

19

1993

The Dark Half

다크 하프

조지 A. 로메로

20

1993

Needful Things

욕망을 파는 집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톤

21

1994

The Shawshank Redemption

쇼생크 탈출

프랭크 다라본트

22

1995

The Mangler

맹글러

토브 후퍼

23

1995

Dolores Claiborne

돌로레스 클레이본

테일러 핵포드

24

1996

Thinner

시너

톰 홀란드

25

1997

The Night Flier

나이트 플라이어

Mark Pavia

26

1998

Apt Pupil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브라이언 싱어

27

1999

The Green Mile

그린 마일

프랭크 다라본트

28

2001

Hearts in Atlantis

하트 인 아틀란티스

스콧 힉스

29

2003

Dreamcatcher

드림캐쳐

로렌스 캐스단

30

2004

Secret Window

시크릿 윈도우

데이빗 코엡

31

2004

Riding the Bullet

라이딩 더 불렛

믹 개리스

32

2007

1408

1408

미카엘 하프스트롬

33

2007

The Mist

미스트

프랭크 다라본트

34

2009

Dolan's Cadillac

돌란스 캐딜락(캐딜락)

제프 비슬리

35

2014

A Good Marriage

굿 메리지

피터 아스킨

* 다음 Q&A를 참고했습니다.

 

 

 

<[빠삐용, 1973]의 포스터>

 

 

 

1990년에 다시 [빠삐용]이 우리나라 영화관에 걸렸을 때 나는 대전의 신도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그 전에도 TV에서 몇 번 봤었지만 너무 어렸을 때였으므로 몇몇 장면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서 대형 스크린에서의 감동은 오로지 그대로였다. 가슴에 있는 '나비'문신 때문에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가진 죄수 앙리와 위조지폐범으로 수감된 드가의 탈옥 이야기인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이라는 배우를 가슴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었다.

 

독방에 갖혀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이 장면은 어느 제약회사의 바퀴벌레약 TV용 광고로도 쓰였다), 탈출해서 나병 환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장면, 사경을 헤매던 꿈 속에서 말쑥하게 차려입은 앙리가 사막을 걸어오던 모습, 그 꿈속에서 소리지르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빠삐용에게 지옥의 심판관이 '너의 죄는 살인죄가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소중한 삶을 낭비한 죄'라고 말해주는 장면,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코코넛 뗏목을 타고 조류를 이용해 '악마도'라는 천연의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장면과 수평선 너머로 멀어지는 '빠삐용'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발길을 돌리는 '드가(더스틴 호프만 분)'의 모습은 요즘에도 가끔씩 떠오른다.

 

위 포스터는 포스터 아티스트 '톰 융'의 작품이다. 포스터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앙리 샤리에르'라는 무기징역수의 생생한 실록 자서전 [빠삐용]을 각색한 것이다. 아래 그의 간단한 바이오그래피는 '알라딘'에서 빌려왔음을 밝힌다.

                 

앙리 샤리에르(Henri A. Charrere)

1906년 11월 16일, 프랑스 아르데슈에서 태어났다. 1931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포주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도형지로 보내졌다. 1934년, 생 로랑의 병원에서 맨 처음 탈출을 시도한 이후 11년 간 무려 여덟 차례에 걸쳐 탈출을 계획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마침내 수용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디아블(악마의 섬)에서 코코넛 자루 두 개를 연결한 뗏목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어 탈출에 성공한다.

1944년, 베네수엘라의 '주민'이 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1968년, 자신의 체험을 풀어낸 소설 <빠삐용> 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곧바로 조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각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73년, 그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영화 '빠삐용'이 개봉되면서 다시 한 번 전세계적인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해 7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칼의 날, 1973]의 포스터>

 

 

 

책으로든 영화로든 내가 경험한 최고의 스릴러는 바로 [자칼의 날]이다. 로이터 기자 출신의 작가 프레데릭 포사이드가 1970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호할 정도로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야기에 목마른 영화사들이 이런 훌륭한 스토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하이눈], [지상에서 영원으로], [사계절의 사나이] 등에서 역량을 보여준 프레드 진네만 감독을 기용해서 원작소설의 긴박감을 뛰어넘는(?) 걸작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드골 대통령의 암살을 둘러싼 숨막히는 서스펜스, 아직도 못 본 분이 계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꼭 보시기를...

 

포스터는 암호명 자칼로 분한 에드워드 폭스가 드골에게 라이플을 겨누고 있는 장면이다. 한참 보고 있자면 눈이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어김 없이 상단에 원작 소설이 보인다.

 

* 브루스 윌리스, 리처드 기어의 [자칼, 1997]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글쎄'다.

 

그 밖에 베스트셀러 스타일의 포스터들.

 

 

<[본 어게인, 1978]의 포스터>

 

 

 

 

<[리빙 프리, 1972]의 포스터>

 

 

 

 

21세기의 영화들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포스터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포스터 유형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진 걸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을 훌륭한 관습 중에 분명한 하나는 영화는 책(베스트셀러)의 영향권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과 훌륭한 오리지날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 또한 책으로 독자들을 만나 또다른 감동과 흥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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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서기 2015-09-0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국 첩보소설 대가 프레데릭 포사이스 `스파이`로 활동 고백 [2015-08-30 23:30:01]

[서울=뉴시스]이재준 기자 = `자칼의 날’, ‘오데사 파일` , `코마로프 파일` 등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첩보소설의 대부`로 불린 영국 작가 프레데릭 포사이스(77)가 20년 넘게 실제로 스파이로 활동했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했다.

일요신문 선데이 타임스는 30일 조만간 발간할 포사이스의 자서전을 발췌해 소개하면서 그가 영국 대외첩보를 담당하는 비밀정보부(MI6)의 요원이었다고 전했다.

자서전에 따르면 포사이스는 프리랜서 기자이던 1968년 나이지리아 동부주(州) 독립을 둘러싸고 일어난 내전을 취재하던 중 처음 MI6에 포섭됐다.

1973년 포사이스는 당시 동독에 파견돼 MI6의 정보원이던 러시아군 대령과 접촉했다. 드레스덴 박물관의 화장실에서 모종의 물건을 받아 귀환하다가 국경 부근에서 정차를 당하면서 위험천만한 순간을 맞았다.

포사이스는 1980년대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가 데클라크 백인정권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종식 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정권을 이양할 때 보유하던 핵탄두 6발을 어떻게 할지를 탐지하는 극비임무를 수행했다.

그의 소설은 스파이 세계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저 간접 경험이나 상상으로 쓴 게 아니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포사이스는 자신의 작품이 스파이 전력 때문에 출판 전에 반드시 MI6의 사전 검열을 거친 사실도 공개했다.

yjjs@newsis.com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뽀뽀 스타일(kiss style)이다. 즐감하시길~~~

 

 

 

 

[끝없는 사랑, 1981]

 

 

 

[슬러거의 아내, 1985]

 

 

 

[나인 하프 위크, 1986]

 

 

 

[육체의 증거, 1993]

 

 

 

[스타 탄생, 1976]

 

 

 

[렉클리스, 1984]

 

 

 

[남과 여, 1966]

 

 

 

[상하이 유혹, 1986]

 

 

 

 [사관과 신사, 1982]

 

 

 

그리고....

 

 

 

 

[시네마 천국,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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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돼지 2015-08-26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서기 님의 영화 포스터 잘 보고 있습니다...
저도 예전엔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 모으고 했었는데..지금은 어디 갔는지 남은 게 거의 없습니다. 요즘도 영화보러 가면 영화전단지를 거두어 옵니다. 뭐 오리지날포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손 쉽게 구할 수 있고,,,,나름 자료 가치도 있는 것 같아서요^^

아!!! 15살의 브룩쉴즈.....

호서기 2015-08-26 11:02   좋아요 0 | URL
그 당시 브룩쉴즈는 No.1 이었죠. 좀전에 안드레 아가시가 어떤 테니스 이벤트에 참가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그래서 그런지 브룩쉴즈가 더 생각나네요.
 

거울을 보면 나를 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모습이 말쑥해 진다. 거울 속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움직이면 나를 따라 거울 속의 내가 움직이는 게 당연한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움직이지 않거나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럽다.

 

열번째 포스터 이야기 주제는 거울 스타일(mirror style)로 잡았다.

 

거울 하면 우선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1937]다. 보통 거울이 아니다. 마법의 거울이 나온다. '거울아, 거울아, 벽에 달린 거울아'하고 부르면 말도 한다. 거울을 전면에 등장시킨 아래 포스터는 주변의 어두운 배경이 흑마술의 세계를 암시하는 듯하고,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준비가 되있다는 듯이 당당한 모습이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1937]의 재개봉 포스터> 

 

 

다른 포스터를 보기 전에 백설공주 속 거울에 대해 분석한 글을 소개하고 싶다. 기사는 ZDNet Korea에 저작권이 있다.

~~~

전래동화 '백설공주'의 모티브는 거울이다. 더 정확하게는 거울 속에 비친 나. 조금 더 정확하게는 거울 속에 비친,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 "당신이 제일 예쁘다"는 대답에 만족하던 왕비는 어느 날 거울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대답을 듣는다. 당신보다 백설공주가 더 예쁘다." 왕비에겐 견고한 성처럼 유지돼 있는 자기 만의 세계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얘기. 그 대답으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잘 아는 것처럼 백설공주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다. 새로 들어온 왕비는 아름답긴 했지만 허영심이 많았다. 특히 이 왕비는 마법의 물건을 하나 갖고 있었다. 바로 거울이었다. 왕비는 늘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었다. 그 때마다 거울은 늘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대답한다. 왕비로선 일종의 자기 존재 확인이었던 셈. 라캉식 표현으로 하자면, 왕비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란 대답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지만 백설공주가 일곱살이 되던 해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거울이 왕비 대신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다는 대답을 내놓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일곱 난장이와 키스 한 번으로 공주를 깨우는 왕자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참고로 백설공주 이야기는 북유럽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설화는 계모가 아니라 친모가 딸을 학대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 아버지와의 근친상간 얘기를 비롯해 난장이들과의 성관계, 시체를 좋아하는 왕자 같은 잔혹한 모티브가 들어있다. 동화로 개작되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들은 상당 부분 순화됐다고 한다.)

백설공주 속 거울은 왕비의 자기 확인 욕구를 표출하는 곳이었다. 바깥 세상에 비교적 단절된 삶을 살았음직한 왕비에게 거울은 세상의 모든 것이자, 자기 존재의 전부였다.

사실 거울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여성이 조금 심하긴 하지만, 남성이라고 해서 그다지 덜할 것도 없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픈 욕구는 끊을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저작권자 © ZDNet Korea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거울'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거울을 모티브로 한 포스터부터 몇 개 더 감상하자.

 

 

 

 <[욕망의 모호한 대상, 1977]의 포스터>

 

 

 

스페인의 천재 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마지막 영화다. 한 여인이 손거울을 들고 있고 거울 속으로는 그녀의 모습 이외 한 남자가 여인의 몸을 탐하고 있다. 앞서 살폈듯이 '거울'이 자기애에 대한 욕구를 실현하고 확인하기 위한 도구라고 볼 때, 이 포스터는 영화의 제목과 잘 어울린다. '부르주아의 성적 강박감을 탐구한 영화'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EBS 영화'에서 소개한 줄거리를 첨부한다.

 

영화는 부유한 홀아비 마티유(페르난도 레이 분)가 세빌에서 파리행 급행열차를 타면서 시작된다. 기차가 출발하려 할 즈음, 콘치다(캐롤 부케, 안젤라 몰리나 2인 1역)가 급히 마티유를 쫓아오고, 마티유는 그녀의 머리에 물을 퍼붓는다. 그와 같이 타고 있던 탑승객들이 당황해하자 마티유는 그녀를 살해하는 것보다는 물을 끼얹는 것이 더 낫다고 해명을 하고, 영화는 마티유의 슬픈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그려나간다.
호화식당에서 식사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업무를 가지지 않은 중년의 부르주아 마티유는 자신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는 아름다운 콘치타를 발견하고는 늘 하던 대로 그녀를 침대로 이끌려고 한다. 그러나 콘치타는 이를 거부하고 마을을 떠나가 버리고, 단 한번도 거부당해 본 적이 없는 마티유는 더욱 몸이 닳아 그녀의 엄마를 돈으로 구워 삶아 기어이 콘치타를 애인으로 만든다. 그러나 콘치타는 마티유의 관대함을 수용하고, 사랑을 약속하지만 자신이 마티유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다며 성적인 관계만큼은 끝내 거절한다.
마티유와의 성적 관계를 거절하면서도 콘치타는 자신의 방에 젊은 남자친구를 재우는가 하면, 카바레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나체로 춤을 추고, 마티유가 금방 구입한 집안에서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주도권을 잃고 싶지 않다며 성적 관계를 거부하는 콘치타와 같은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마티유 사이의 길고 긴 주도권 다툼이 시작되는데,....

EBS 2003. 8. 25

 

 

 

<[리오의 연정, 1984]의 포스터>

 

 

 

청순한 데미 무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리오의 연정]도 [욕망의 모호한 대상]처럼 '욕망'의 중요한 상징인 '손거울'과 '입술'이 등장한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낸다. 같은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줄거리를 보면 두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 빅터(조셉 보로그나 분)가 이혼 문제로 고민에 빠지자 매튜(마이클 케인 분)는 위로삼아 여행을 떠나는데, 매튜의 딸 니콜(데미 무어 분)과 빅터의 딸 제니퍼(미쉘 존슨 분)도 함께 브라질의 리오로 떠난다. 해변에 널려있는 반나체의 여인들에게 눈이 팔린 빅터는 여자 사냥에 전력을 투구하고, 매튜는 매혹적인 제니퍼의 뜨거운 유혹을 받기에 이른다. 당황한 딸 니콜은 엄마에게 급히 전화를 걸고, 급히 달려온 엄마 역시 빅터와의 불륜 관계가 밝혀져 리오의 바닷가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지고 마는데...

Daum 영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1972]의 포스터>

 

 

 

거울 밖에서 한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여성이다. 이 남자,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음이 틀림 없다. "남은 인생을 남자로 살지 않는 것"이 바로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포스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도 '거울'은 자신의 욕망을 상상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낳은 '욕망'의 철학자, 자크 라캉이 1936년에 발표한 '거울 단계'라는 논문에서 거울 단계는 '상상계'라고 말한 바가 있다. 비록 이 논문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어린 아기들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했지만 생물학적 나이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안별로 일반화의 법칙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까.

 

포스터 속 거울에 비친 여성은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상상의 산물이다. 그의 상상은 거듭될수록 반드시 실현되고야 말 욕망으로 굳어질 것이다. 그 욕망이 현실화 되었을 경우에만 그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므로 과정에서 부딪히게 될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거울의 다른 관점도 있다.

 

다음으로 소개할 영화 포스터들에는 자동차의 룸미러(rearview mirror)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룸미러의 거울은 더 이상 욕구 또는 욕망의 표출 통로나 확인 도구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룸미러를 보고 있지 않아도 룸미러는 항상 자동차 내부와 외부 상황을 담고 있다. 즉, 룸미러는 공간과 관계된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1989] 포스터>

 

 

까탈스런 노부인과 성실한 운전기사와의 우정을 다룬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포스터는 심플하면서도 따뜻한 느낌때문에 마음마저 훈훈해 진다. 자동차 룸미러를 통해 데이지 여사(제시카 탠디 분)를 바라보는 호크(모건 프리맨 분)의 시선에 넉넉함이 묻어나고, 차밖의 풍경을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자동차라는 공간이 실제보다 넓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난다. 

 

 

 

<[히쳐, 1986]의 포스터>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같은 구도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포스터다. 얼마전에 마이클 베이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했던 [히쳐]다. 앞서 본 포스터와 달리 룸미러 이외 자동차 밖의 풍경을 드러냄으로써 섬뜩한 느낌을 준다. 룸미러는 겁먹은 운전자의 눈을 비치고 있고 낯선 자의 어둡고 긴 그림자가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알려주는 듯하다. 혼자 타고 있지만 낯선 자가 동승하면서 자동차는 더 좁고 위험한 공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블리트, 1968]의 2014년 포스터>

 

 

 

영화사상 최고의 자동차 추격신으로 기억되는 스티브 맥퀸의 [불리트]다. 이 포스터는 2014년에 제작되었다. 이 포스터는 역시 카체이싱 장면 중에서 응용한 것 같다. 룸미러로는 수상한 차가 보이고 운전대를 잡은 형사는 도심의 울퉁불퉁하고도 좁은 길을 응시하고 있다. 룸미러로 뒤에서 미행하고 있는 차를 발견한 불리트 형사, 어떻게 '최고의 자동차 추격전'이라는 명성을 듣게 되었는지 아직 못보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실크우드, 1983]의 포스터>

 

 

 

메릴 스트립과 셰어가 공연한 [실크우드]의 포스터는 주인공이 룸미러를 바라보는 모습을 택했다. 어두운 밤에 뒷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반사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놀라 동그랗게 뜬 눈이 그녀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 같다. 

 

 

 

오늘로 포스터 이야기 연재가 10회를 맞이했다. 그 동안 필자의 서재를 방문해 주시고 솜씨 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모두들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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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5-08-24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와, 벌써 10회군요. 그동안 정성을 다한 포스터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호서기 2015-08-25 07:1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