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가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오히려 오리지날 시나리오가 더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훌륭한 소설이나 희곡, 자서전, 기타 출판물 등은 제작사나 감독 등에게 보험과도 같은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는 원작의 위대함에 전혀 누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는 제작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혹평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현상은 원작이 우수할 수록 더 그렇다.
그런데, 이런 흔한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를 (약간은 촌스럽게) 포스터에서 꼭 티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영화 홍보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실제로 영화 흥행에 유의미한 영향을 주었는지 밝혀진 바는 없으나 열한번째 포스터 이야기의 좋은 소재가 될 것 같다. 자, 어떤 영화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오늘의 주제는 베스트셀러 스타일(bestseller style) 이다.

<[다락방에 핀 꽃, 1987]의 포스터>
1979년에 발표된 V.C. 앤드류스의 소설 [다락방의 꽃들(Flowers in the Attic)]을 제프리 블룸 감독이 1987년에 영화로 만들었다. V.C. 앤드류스는 이 소설을 시작으로 '돌런갱어 가문 시리즈(일명 다락방 시리즈)를 연이어 출간했다. 이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4천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대단한 베스트셀러임엔 틀림 없다. 최근에 이 시리즈의 국내 첫 완역본이 출시되었다고 하는데 영화와 소설을 번갈아 보면서 비교해도 좋을 듯. 아래 출판사가 제공하는 책 소개를 참고하시면 되겠다.


늘 새롭게 화제에 오르는, 소녀들의 영원한 고전
1979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되자마자 2주 만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 곧 1위를 차지하면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다락방의 꽃들』은 이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1980), 『가시가 있다면』(1981)으로 이어지며 출간될 때마다 새로운 기록을 갱신했다. 금단의 사랑으로 시작된 한 가문의 이야기가 고딕소설 특유의 공포적 전율과 낭만적 분위기 속에 펼쳐지는 돌런갱어 시리즈는 1984년 주인공인 두 남매 캐시와 크리스토퍼의 마지막이 담긴 『어제 뿌린 씨앗들』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뉴욕타임스> 집계에 따르면 『어제 뿌린 씨앗들』은 그해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들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V. C. 앤드루스가 사망한 이듬해인 1987년 11월, 미발표되었던 외전인 『그늘진 화원』이 한 유령작가(훗날 유령작가의 정체는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의 원작자이기도 한 공포소설가 앤드루 니드먼으로 밝혀졌다)에 의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서 돌런갱어 시리즈는 전 5부작으로 완결된다.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돌런갱어 시리즈는 독일어.폴란드어.체코어.포르투갈어.스페인어.네덜란드어 등으로 번역, 전 세계 4천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으며, 이런 인기에 힘입어 1987년에는 1권 『다락방의 꽃들』이 크리스티 스완스 주연으로 영화화가 되었다.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읽어도 여전히 매력적이며 생생한 자극을 주는 이 이야기는, 지난해 미국 라이프타임 채널에서 원작의 2권까지가 텔레비전 영화로 제작.방영되었고, 올해 2015년 외전을 제외한 남은 두 편이 소개될 예정이다. 이번 텔레비전 영화에서 어린 네 남매를 다락방에 가두는 외할머니 역을 맡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배우 엘렌 버스틴은 이 작품으로 지난해 에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길티 플레저의 대명사가 된 모던 고딕 로맨스
이 책이 처음 소개되었던 1990년대 초반, 당시 국내에는 청소년 취향의 할리퀸 로맨스물이 많은 소녀들 사이에서 탐독되고 있었다. 로맨스에 대한 갈망과 성에 대한 궁금증을 가득 품은 사춘기 소녀들에게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콘텐츠가 드물었던 시절,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풍기는 잘생긴 남자와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는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비슷비슷한 소재들과 진부한 서사, 무엇보다 문학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작품들이 난무하던 가운데 등장한 『다락방의 꽃들』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의 독자를 아우르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근친상간으로 인해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빠진 열두 살 소녀 캐시가 어른이 되고 싶은 갈망과 어른이 된다는 것의 두려움 사이에서 겪는 내면의 갈등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매혹시켰다. 근친상간과 불륜, 살인과 같은 충격적인 소재와 다소 야한 성적 묘사는 때로 일부 독자들을 이 책을 읽는 게 죄악인 것만 같은 감정에 빠뜨리기도 했다. 뒷이야기들에 대한 궁금증과 죄책감 사이에서 번뇌하던 청소년 독자들 가운데는 실제로 이 작품을 손에 놓을 수 없는데 계속 읽어도 될지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일들도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작가 V. C. 앤드루스는 속칭 막장의 원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문학성과 문학적으로 얻게 되는 감흥과 매력은 돌런갱어 시리즈를 통속적이거나 자극적이라고만 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망과 그에 따른 죄책감, 그리고 어린아이가 환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른의 현실세계로 들어설 때 필연적으로 갖게 되는 공포감을 다루는 앤드루스의 돌런갱어 시리즈는 길티 플레저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 같은 영문 제목이 국내에서 영화 따로 소설 따로인 것은 영화의 국내 개봉(또는 출시) 시 '다락방에 핀 꽃'이라는 제목을 달았기 때문이다. 원제에 더 가까운 '다락방의 꽃들'이 더 맞다.

<[크리스틴, 1983]의 포스터>
여전히 현역인 최고의 공포, 오컬트, 스릴러 작가 스티븐 킹의 소설 [크리스틴]을 원작으로 공포 장르 영화의 거장 존 카펜터가 영화화했다. 아마도 단일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진 작가가 스티븐 킹이 아닐까. 포스터 하단에 조그맣게 드러난 책이 앙증맞기까지 하다. 그의 작품중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대략 35개에 이른다고 한다. TV영화나 자잘한 것은 뺀 것이다.
<스티븐 킹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목록>
| 년도 | 제목 | 감독 |
1 | 1976 | Carrie | 캐리 | 브라이언 드 팔마 |
2 | 1980 | The Shining | 샤이닝 | 스탠리 큐브릭 |
3 | 1982 | Creepshow | 크립쇼 | 조지 A. 로메로 |
4 | 1983 | Cujo | 쿠조 | 루이스 티그 |
5 | 1983 | The Dead Zone | 데드 존 | 데이빗 크로넨버그 |
6 | 1983 | Christine | 크리스틴 | 존 카펜터 |
7 | 1984 | Children of the Corn | 옥수수밭의 아이들 | 프리츠 키어쉬 |
8 | 1984 | Firestarter | 초능력 소녀의 분노 | 마크 L. 레스터 |
9 | 1985 | Cat's Eye | 캐츠 아이 | 루이스 티그 |
10 | 1985 | Silver Bullet | 악마의 분신 | 다니엘 아티아스 |
11 | 1986 | Maximum Overdrive | 맥시멈 오버드라이브 | 스티븐 킹 |
12 | 1986 | Stand By Me | 스탠 바이 미 | 롭 라이너 |
13 | 1987 | The Running Man | 런닝 맨 | 폴 마이클 글레이저 |
14 | 1989 | Pet Sematary | 공포의 묘지 | 메리 램버트 |
15 | 1990 | Tales From The Darkside: Cat From Hell | 어둠 속의 외침 | 존 해리슨 |
16 | 1990 | Graveyard Shift | 괴물 | 랄프 S. 싱글턴 |
17 | 1990 | Misery | 미저리 | 롭 라이너 |
18 | 1992 | Sleepwalkers | 슬립워커스 | 믹 개리스 |
19 | 1993 | The Dark Half | 다크 하프 | 조지 A. 로메로 |
20 | 1993 | Needful Things | 욕망을 파는 집 | 프레이저 클라크 헤스톤 |
21 | 1994 | The Shawshank Redemption | 쇼생크 탈출 | 프랭크 다라본트 |
22 | 1995 | The Mangler | 맹글러 | 토브 후퍼 |
23 | 1995 | Dolores Claiborne | 돌로레스 클레이본 | 테일러 핵포드 |
24 | 1996 | Thinner | 시너 | 톰 홀란드 |
25 | 1997 | The Night Flier | 나이트 플라이어 | Mark Pavia |
26 | 1998 | Apt Pupil |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 | 브라이언 싱어 |
27 | 1999 | The Green Mile | 그린 마일 | 프랭크 다라본트 |
28 | 2001 | Hearts in Atlantis | 하트 인 아틀란티스 | 스콧 힉스 |
29 | 2003 | Dreamcatcher | 드림캐쳐 | 로렌스 캐스단 |
30 | 2004 | Secret Window | 시크릿 윈도우 | 데이빗 코엡 |
31 | 2004 | Riding the Bullet | 라이딩 더 불렛 | 믹 개리스 |
32 | 2007 | 1408 | 1408 | 미카엘 하프스트롬 |
33 | 2007 | The Mist | 미스트 | 프랭크 다라본트 |
34 | 2009 | Dolan's Cadillac | 돌란스 캐딜락(캐딜락) | 제프 비슬리 |
35 | 2014 | A Good Marriage | 굿 메리지 | 피터 아스킨 |
* 다음 Q&A를 참고했습니다.

<[빠삐용, 1973]의 포스터>
1990년에 다시 [빠삐용]이 우리나라 영화관에 걸렸을 때 나는 대전의 신도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그 전에도 TV에서 몇 번 봤었지만 너무 어렸을 때였으므로 몇몇 장면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어서 대형 스크린에서의 감동은 오로지 그대로였다. 가슴에 있는 '나비'문신 때문에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가진 죄수 앙리와 위조지폐범으로 수감된 드가의 탈옥 이야기인 이 영화는 스티브 맥퀸이라는 배우를 가슴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었다.
독방에 갖혀 바닥을 기어다니는 벌레를 잡아먹는 모습(이 장면은 어느 제약회사의 바퀴벌레약 TV용 광고로도 쓰였다), 탈출해서 나병 환자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장면, 사경을 헤매던 꿈 속에서 말쑥하게 차려입은 앙리가 사막을 걸어오던 모습, 그 꿈속에서 소리지르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빠삐용에게 지옥의 심판관이 '너의 죄는 살인죄가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소중한 삶을 낭비한 죄'라고 말해주는 장면,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마지막 코코넛 뗏목을 타고 조류를 이용해 '악마도'라는 천연의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장면과 수평선 너머로 멀어지는 '빠삐용'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발길을 돌리는 '드가(더스틴 호프만 분)'의 모습은 요즘에도 가끔씩 떠오른다.
위 포스터는 포스터 아티스트 '톰 융'의 작품이다. 포스터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앙리 샤리에르'라는 무기징역수의 생생한 실록 자서전 [빠삐용]을 각색한 것이다. 아래 그의 간단한 바이오그래피는 '알라딘'에서 빌려왔음을 밝힌다.
앙리 샤리에르(Henri A. Charrere)
1906년 11월 16일, 프랑스 아르데슈에서 태어났다. 1931년, 파리 몽마르트르의 포주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프랑스령 기아나의 도형지로 보내졌다. 1934년, 생 로랑의 병원에서 맨 처음 탈출을 시도한 이후 11년 간 무려 여덟 차례에 걸쳐 탈출을 계획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마침내 수용자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디아블(악마의 섬)에서 코코넛 자루 두 개를 연결한 뗏목을 안고 바다로 뛰어들어 탈출에 성공한다.
1944년, 베네수엘라의 '주민'이 되어 그곳에 정착했다. 1968년, 자신의 체험을 풀어낸 소설 <빠삐용> 을 출간했다. 이 책은 곧바로 조국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각국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73년, 그의 저서를 원작으로 한 영화 '빠삐용'이 개봉되면서 다시 한 번 전세계적인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해 7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서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칼의 날, 1973]의 포스터>
책으로든 영화로든 내가 경험한 최고의 스릴러는 바로 [자칼의 날]이다. 로이터 기자 출신의 작가 프레데릭 포사이드가 1970년에 발표한 이 소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호할 정도로 사실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들으며 단박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야기에 목마른 영화사들이 이런 훌륭한 스토리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 유니버셜 스튜디오는 [하이눈], [지상에서 영원으로], [사계절의 사나이] 등에서 역량을 보여준 프레드 진네만 감독을 기용해서 원작소설의 긴박감을 뛰어넘는(?) 걸작 스릴러를 탄생시켰다. 드골 대통령의 암살을 둘러싼 숨막히는 서스펜스, 아직도 못 본 분이 계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꼭 보시기를...
포스터는 암호명 자칼로 분한 에드워드 폭스가 드골에게 라이플을 겨누고 있는 장면이다. 한참 보고 있자면 눈이 빙글빙글 돌 지경이다. 어김 없이 상단에 원작 소설이 보인다.
* 브루스 윌리스, 리처드 기어의 [자칼, 1997]도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글쎄'다.
그 밖에 베스트셀러 스타일의 포스터들.

<[본 어게인, 1978]의 포스터>

<[리빙 프리, 1972]의 포스터>
21세기의 영화들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포스터를 아직 보지 못했다. 이런 포스터 유형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진 걸까? 그러나 사라지지 않을 훌륭한 관습 중에 분명한 하나는 영화는 책(베스트셀러)의 영향권을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과 훌륭한 오리지날 시나리오를 가진 영화 또한 책으로 독자들을 만나 또다른 감동과 흥분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