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면 나를 보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모습이 말쑥해 진다. 거울 속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움직이면 나를 따라 거울 속의 내가 움직이는 게 당연한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움직이지 않거나 제멋대로 움직인다면?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럽다.
열번째 포스터 이야기 주제는 거울 스타일(mirror style)로 잡았다.
거울 하면 우선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1937]다. 보통 거울이 아니다. 마법의 거울이 나온다. '거울아, 거울아, 벽에 달린 거울아'하고 부르면 말도 한다. 거울을 전면에 등장시킨 아래 포스터는 주변의 어두운 배경이 흑마술의 세계를 암시하는 듯하고, 아무것도 비추지 않고 있는 모습이 오히려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할 준비가 되있다는 듯이 당당한 모습이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1937]의 재개봉 포스터>
다른 포스터를 보기 전에 백설공주 속 거울에 대해 분석한 글을 소개하고 싶다. 기사는 ZDNet Korea에 저작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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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 '백설공주'의 모티브는 거울이다. 더 정확하게는 거울 속에 비친 나. 조금 더 정확하게는 거울 속에 비친, 세상에서 가장 예쁜 나. "당신이 제일 예쁘다"는 대답에 만족하던 왕비는 어느 날 거울로부터 청천벽력같은 대답을 듣는다. “당신보다 백설공주가 더 예쁘다." 왕비에겐 견고한 성처럼 유지돼 있는 자기 만의 세계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얘기. 그 대답으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잘 아는 것처럼 백설공주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된다. 새로 들어온 왕비는 아름답긴 했지만 허영심이 많았다. 특히 이 왕비는 마법의 물건을 하나 갖고 있었다. 바로 거울이었다. 왕비는 늘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물었다. 그 때마다 거울은 늘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대답한다. 왕비로선 일종의 자기 존재 확인이었던 셈. 라캉식 표현으로 하자면, 왕비는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환호했다. 또 “왕비님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란 대답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
하지만 백설공주가 일곱살이 되던 해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거울이 왕비 대신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다는 대답을 내놓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 이후부터 일곱 난장이와 키스 한 번으로 공주를 깨우는 왕자 같은 존재들이 등장한다.
(참고로 백설공주 이야기는 북유럽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설화는 계모가 아니라 친모가 딸을 학대하는 것으로 나온다. 또 아버지와의 근친상간 얘기를 비롯해 난장이들과의 성관계, 시체를 좋아하는 왕자 같은 잔혹한 모티브가 들어있다. 동화로 개작되는 과정에서 이런 내용들은 상당 부분 순화됐다고 한다.)
백설공주 속 ‘거울’은 왕비의 자기 확인 욕구를 표출하는 곳이었다. 바깥 세상에 비교적 단절된 삶을 살았음직한 왕비에게 거울은 세상의 모든 것이자, 자기 존재의 전부였다.
사실 거울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통상적으로 여성이 조금 심하긴 하지만, 남성이라고 해서 그다지 덜할 것도 없다.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픈 욕구는 끊을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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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대한 워밍업을 마쳤으니 거울을 모티브로 한 포스터부터 몇 개 더 감상하자.

<[욕망의 모호한 대상, 1977]의 포스터>
스페인의 천재 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마지막 영화다. 한 여인이 손거울을 들고 있고 거울 속으로는 그녀의 모습 이외 한 남자가 여인의 몸을 탐하고 있다. 앞서 살폈듯이 '거울'이 자기애에 대한 욕구를 실현하고 확인하기 위한 도구라고 볼 때, 이 포스터는 영화의 제목과 잘 어울린다. '부르주아의 성적 강박감을 탐구한 영화'라는 평을 듣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EBS 영화'에서 소개한 줄거리를 첨부한다.
영화는 부유한 홀아비 마티유(페르난도 레이 분)가 세빌에서 파리행 급행열차를 타면서 시작된다. 기차가 출발하려 할 즈음, 콘치다(캐롤 부케, 안젤라 몰리나 2인 1역)가 급히 마티유를 쫓아오고, 마티유는 그녀의 머리에 물을 퍼붓는다. 그와 같이 타고 있던 탑승객들이 당황해하자 마티유는 그녀를 살해하는 것보다는 물을 끼얹는 것이 더 낫다고 해명을 하고, 영화는 마티유의 슬픈 이야기를 플래시백으로 그려나간다.
호화식당에서 식사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업무를 가지지 않은 중년의 부르주아 마티유는 자신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는 아름다운 콘치타를 발견하고는 늘 하던 대로 그녀를 침대로 이끌려고 한다. 그러나 콘치타는 이를 거부하고 마을을 떠나가 버리고, 단 한번도 거부당해 본 적이 없는 마티유는 더욱 몸이 닳아 그녀의 엄마를 돈으로 구워 삶아 기어이 콘치타를 애인으로 만든다. 그러나 콘치타는 마티유의 관대함을 수용하고, 사랑을 약속하지만 자신이 마티유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다며 성적인 관계만큼은 끝내 거절한다.
마티유와의 성적 관계를 거절하면서도 콘치타는 자신의 방에 젊은 남자친구를 재우는가 하면, 카바레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나체로 춤을 추고, 마티유가 금방 구입한 집안에서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주도권을 잃고 싶지 않다며 성적 관계를 거부하는 콘치타와 같은 이유로 결혼을 미루는 마티유 사이의 길고 긴 주도권 다툼이 시작되는데,....
EBS 2003. 8. 25

<[리오의 연정, 1984]의 포스터>
청순한 데미 무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리오의 연정]도 [욕망의 모호한 대상]처럼 '욕망'의 중요한 상징인 '손거울'과 '입술'이 등장한다. 그러나 심각하지 않고 오히려 로맨틱 코미디의 분위기를 낸다. 같은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줄거리를 보면 두 영화가 얼마나 다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친구 빅터(조셉 보로그나 분)가 이혼 문제로 고민에 빠지자 매튜(마이클 케인 분)는 위로삼아 여행을 떠나는데, 매튜의 딸 니콜(데미 무어 분)과 빅터의 딸 제니퍼(미쉘 존슨 분)도 함께 브라질의 리오로 떠난다. 해변에 널려있는
반나체의 여인들에게 눈이 팔린 빅터는 여자 사냥에 전력을 투구하고, 매튜는 매혹적인 제니퍼의 뜨거운 유혹을 받기에 이른다. 당황한 딸 니콜은
엄마에게 급히 전화를 걸고, 급히 달려온 엄마 역시 빅터와의 불륜 관계가 밝혀져 리오의 바닷가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지고 마는데...
Daum 영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 1972]의 포스터>
거울 밖에서 한 남자가 거울을 보고 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여성이다. 이 남자, 성 정체성에 문제가 있음이 틀림 없다. "남은 인생을 남자로 살지 않는 것"이 바로 주인공이 원하는 것이라는 것을 포스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기서도 '거울'은 자신의 욕망을 상상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가 낳은 '욕망'의 철학자, 자크 라캉이 1936년에 발표한 '거울 단계'라는 논문에서 거울 단계는 '상상계'라고 말한 바가 있다. 비록 이 논문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 어린 아기들을 관찰한 결과를 바탕으로 했지만 생물학적 나이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사안별로 일반화의 법칙을 적용할 수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으니까.
포스터 속 거울에 비친 여성은 여성이 되고 싶어하는 주인공의 상상의 산물이다. 그의 상상은 거듭될수록 반드시 실현되고야 말 욕망으로 굳어질 것이다. 그 욕망이 현실화 되었을 경우에만 그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므로 과정에서 부딪히게 될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거울의 다른 관점도 있다.
다음으로 소개할 영화 포스터들에는 자동차의 룸미러(rearview mirror)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룸미러의 거울은 더 이상 욕구 또는 욕망의 표출 통로나 확인 도구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동차 안에서 룸미러를 보고 있지 않아도 룸미러는 항상 자동차 내부와 외부 상황을 담고 있다. 즉, 룸미러는 공간과 관계된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1989] 포스터>
까탈스런 노부인과 성실한 운전기사와의 우정을 다룬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포스터는 심플하면서도 따뜻한 느낌때문에 마음마저 훈훈해 진다. 자동차 룸미러를 통해 데이지 여사(제시카 탠디 분)를 바라보는 호크(모건 프리맨 분)의 시선에 넉넉함이 묻어나고, 차밖의 풍경을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자동차라는 공간이 실제보다 넓게 보이게 하는 효과가 난다.

<[히쳐, 1986]의 포스터>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와 같은 구도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포스터다. 얼마전에 마이클 베이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했던 [히쳐]다. 앞서 본 포스터와 달리 룸미러 이외 자동차 밖의 풍경을 드러냄으로써 섬뜩한 느낌을 준다. 룸미러는 겁먹은 운전자의 눈을 비치고 있고 낯선 자의 어둡고 긴 그림자가 앞으로 닥칠 위험을 알려주는 듯하다. 혼자 타고 있지만 낯선 자가 동승하면서 자동차는 더 좁고 위험한 공간이 될 것이 분명하다.

<[블리트, 1968]의 2014년 포스터>
영화사상 최고의 자동차 추격신으로 기억되는 스티브 맥퀸의 [불리트]다. 이 포스터는 2014년에 제작되었다. 이 포스터는 역시 카체이싱 장면 중에서 응용한 것 같다. 룸미러로는 수상한 차가 보이고 운전대를 잡은 형사는 도심의 울퉁불퉁하고도 좁은 길을 응시하고 있다. 룸미러로 뒤에서 미행하고 있는 차를 발견한 불리트 형사, 어떻게 '최고의 자동차 추격전'이라는 명성을 듣게 되었는지 아직 못보신 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실크우드, 1983]의 포스터>
메릴 스트립과 셰어가 공연한 [실크우드]의 포스터는 주인공이 룸미러를 바라보는 모습을 택했다. 어두운 밤에 뒷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이 반사되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놀라 동그랗게 뜬 눈이 그녀에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것 같다.
오늘로 포스터 이야기 연재가 10회를 맞이했다. 그 동안 필자의 서재를 방문해 주시고 솜씨 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모두들 행복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