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하고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한 적이 있다. 마음도 울적하던 차에 과 선배와 합이 맞아 즉흥적으로 결정한 출가였다. 90학번이었던 선배는 당시 내게는 다소 생소한 '재즈' 마니아였는데 음주가무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유머도 풍부해서 재미있는 기억이 많다. 문제는 그의 생활습관. 낮과 밤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고 강의실이나 도서관보다는 '재즈빠'에서 그를 찾는 것이 빨랐을 정도로 괴짜였다.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휴대폰도 나오기 전인 때였다. 당시 모토롤라 제품의 '삐삐'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정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메세지가 떴다. 대게는 무슨 무슨 빠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는데 걸어보면 선배가 술에 취한 듯 음악에 취한 듯 헷갈리는 말투로 응답한다. '00빠야, 형 심심하다.', '여기 바텐더 죽여준다. 로데오 거리 00빠로 와라', 'DJ랑 2:2 미팅 하기로 했다. 빨리와' 등등. 가보면 선배는 벌겋게 달아오른 낯빛으로 미모의 바텐더와 수다를 떠는데 주로 '재즈'음악에 대한 토론 내지 잡담이다.

 

처음 몇 주 동안은 호기심반 재미반으로 부르는 족족, 선배와 '빠'의 영업이 끝날때까지 낯선 밤의 문화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밤에 눈떠있는 것이 익숙치 않았던 나에게는 그런 생활이 오래 갈 수 없었다. 제대하고 부족한 학점도 채워야 했던 나로서는 선배처럼 자체 휴강도 언감생심이었던 것이다. 결국 선배의 부름에 거역하기 시작했고 자취 생활도 4개월로 마감하게 되었으며 '재즈'의 추억은 '발담금질' 정도로 그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난 9월 19일 가족과 함께 대부도 유리섬미술관에서 열린 재즈보컬리스트 [윤희정과 함께하는 글래스 &재즈‘Glass &Jazz) 음악회]를 다녀 왔다안산시와 유리섬미술관이 민·관 합동으로 개최하는 음악회였는데 대부도를 국내외 재즈 음악 애호가와 관광객들에게 관광코스로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고 한다.

 

 

 

처음엔 '윤희정'이 누군가 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까 이 가수 인지도가 대단하다. 아내도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므로 대부도 칼국수도 먹을겸 이 낯선 '재즈'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는 도중 재즈에 미쳐 있던 대학시절 00선배가 계속해서 불쑥불쑥 등장하는 것을 느꼈다. '그 양반, 지금 뭐하고 있을까?'

 

차려진 야외무대는 소박했지만 공연은 화려하고 묵직했다. 유리조형 작가들의 유리공예 시연으로 시작한 공연은 자연스럽게 재즈 무대와 어우러졌다. CEOJ 밴드의 오프닝 연주가 흐르는 사이 육중한 체격의 윤희정씨가 무대에 등장하자 하늘엔 어둠이 내리고 조명기구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박수가 있었고 첫곡 'It don't mean a thing'의 반주와 함께 윤희정씨의 거칠면서도 매력적인 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다섯살 아들놈은 적응하기 힘든가 보다. 하긴 머릿속에 '터닝 메카드'만 있는 아이에게 강요하기에는 '재즈'가 그리 쉬움 음악은 아니니까. 이어서 흐르는 'Over the rainbow', '세노야', 'It's only papermoon'을 비롯한 여러 곡들은 아들과의 작은 전투로 인해 집중하기 어려웠다. 결국 백기를 든 건 나였다. 공연장에서 잠시 벗어나 아들 요구대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면서 아들의 체력을 방전시킨 다음 다시 좌석에 앉았을 때는 특별손님 개그우먼 김미화씨의 무대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재치있는 입담과 함께 두 곡이나 직접 부르기도 했다. 윤희정씨로부터 사사받은 노래 솜씨는 관객들의 호응을 받기에 부족하지 않은 것 같았다.)

 

'I'm a fool to want you', 'Tennessee Walts', 'I live the lord'까지.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무대는 어느덧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밤하늘을 혼자 지키고 있던 초승달이 더욱 밝고 선명한 자태를 뽐낼 쯤 마지막 앵콜곡으로 공연은 끝났다. 마지막 곡의 제목은 모르겠다. 들썩거렸던 객석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만큼 나지막하면서도 슬픈 느낌의 곡, 긴 여운을 주는 곡이었다. 

 

여전히 난 '재즈'를 잘 모른다. 즐겨 듣지도 않을 뿐더러 공연장에 와보는 것도 내생애에 처음이었다. 대학 때 잠시 맛본거 이외에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우상,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재즈 선율이 가끔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전부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윤희정과 친구들'의 공연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 되었다. 이번 경험은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 분명하다. 좋은 음악, 무엇보다도 가족과 함께 만든 시간이어서 더욱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