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목적
고윤희 지음 / 경향신문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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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애에 목적이 있을까.

이 제목을 처음 발견했을 땐 참 발칙하다고 생각했다. 도발적이면서도 선정적인 대사를 날리는 영화를 직접 목격하고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는데, 그 제목만큼이나 내용도 발칙했다. 그래서 마음에 들어 버렸다고 하면 너무 정직한 것일까. 

모든 사람들의 연애는 감추어져 있다. 적당한 선에서. 새벽에 밥통을 끌어안고 밥을 퍼먹다가도 애인의 전화에는 책을 읽고 있다는 말로 살짝 거짓말을 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우리는 봐온바 있다. 살짝 가리워져 있기에 더 궁금한 연애의 미묘한 감정선들. 이 선들을 확 다 깨 버린 것이 바로 [연애의 목적]이었다. 

깜짝 놀랄만 했던 이 영화 속엔 뻔뻔한 유림과 유림에게 끌려다니는 홍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작부터 들이대는 유림과 시니컬하면서도 멍한 듯한 표정으로 초탈자의 모습이 된 홍. 학교와 선생이라는 직업이 윤리와 인간사이의 극명한 대조를 이루어내었다. 아직도 사회에선 선생이라는 직업군에 "도덕"을 제1잣대로 들이대는데, 그런 의미에서 유림은 절대 선생이 되면 안될 작자처럼 보여지고 있었다. 작가의 철저한 계산하에.

"연애"라는 세계에 대한 도전적인 이해라고 설명되어진 [연애의 목적]은 "상식적으로 그걸 어떻게 얘기해요?"라던 유림과 "이런 감정 그냥 단순한 열정이에요."라고 대답하는 홍의 대사 속에서도 우리는 각각 연애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들의 관점을 알 수 있었다. 두 여자 사이에서 한 여자를 향한 열정을 감추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아이같은 스물 여섯의 유림과 이미 상처를 받아 그 누구도 사랑하고 싶지 않아진 스물 일곱의 홍. 

홍과의 잠자리에만 열을 올리던 유림의 연애목적이 그녀의 상처를 감싸안는 것으로 변해갔을 무렵 그들 사이엔 이미 사랑이 시작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 홍은 사실 미지근한 여자였다. 그 어떤 맛도, 향도, 반응도 없던 여자. 시작부분의 홍은 그런 여자로 비춰졌는데, 소설의 홍은 도입부터 살아 있는 여자였다. 타인에게 반응하진 않았지만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을 해대는 여자. 싫어하는 것이 잔뜩인 여자. 까다로우면서도, 때론 열정적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여자,홍-.

드디어 그들의 연애사가 밝혀지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다. 홍의 과거사까지 파헤져치면서 그들이 도마 위에 오르고, 유림의 노력으로 사건이 잘 무마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홍의 폭로로 유림은 모든 것을 다 잃었다.  찝적남에 저질스럽기까지 했던 자극적이다 못해 성희롱적이었던 유림은 그러나 홍을 감싸 안았다. 과거의 남자처럼 모든 것을 홍의 잘못으로 돌리지도 않았다. 피 흘리는 홍을 보고 싶지 않았던 유림의 마음.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잃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당당해졌다. 

유림이 변했다. 홍으로 인해. 그리고 홍도 변한다. 유림으로 인해. 

영화에선 시간이 지난 뒤 학원 선생이 되어 있는 유림을 홍이 갑자기 찾아오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그 시간 동안 홍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는 보여지지 않는다. 그것이 궁금했는데, 소설에서 그 뒷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용고시에 한 번에 붙은 홍. 애인 연호와 헤어지고, 유림을 찾아온 홍. 함께 술을 마시는 가운데 점점 더 흥분해서 막말을 해대는 유림을 편안하게 바라보는 홍의 마음. 

그러니까 내가 책임지면 되잖아.내 눈에 남자로 보이는 건 너뿐이야.

결국 홍은 이 말을 하러 유림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동안 단 한번도 유림에 대한 마음을 말로 표현한 적이 없던 홍의 마음. 왠지 알 것도 같은 그녀의 마음에 왠지 웃음이 났다. 

사랑을 느낀 다음에 하는 연애는 이번이 처음이라는 유림의 마지막 대사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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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의 왕자 - 오르페우스호의 비밀 안개 3부작 2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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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데베 문학상 수상작이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가 데뷔작인 [안개의 왕자]는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유령인듯 귀신인듯 한 수염있는 남자가 인화가 잘못된 사진 속에 머물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어떤 두려움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 대체 안개의 왕자는 어떤 사람일까. 

연작시리즈 중 하나라고 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작가의 3작품이 안개와 관련있는 내용이다보니 안개시리즈로 묶여진 듯 했다. 아이를 담보로 한 악마와의 거래 라는 소갯글을 보면서 다른 소설 속 악마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악마와 거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소재인 듯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거래를 통해서 인간과 접촉했고, 거래는 반드시 악마가 이기는 걸로 귀결되어지곤 했다. 이상하게도 악마라고 하면 반칙의 제왕들처럼 보이는데, 그런 그들이 인간과의 거래라는 공식을 철썩같이 지키는 면은 마치 우등생이 교칙을 지키는 것과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전혀 지킬 것 같지 않은 그들이 지키는 한 가지 원칙이라...

책 속의 악마는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왜 동화책의 제목처럼 안개의 왕자라고 달콤하게 불리는지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라가에 힘을 주어 가속도를 붙여댔다. 

안개의 왕자. 그는 늘 자신이 이기는 거래의 주인공이었다. 영혼의 사채업을 시행하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래에 걸게 만들면서 원하는 것을 취해갔다. 어쩌면 꽤 매력적일 이 캐릭터는 하지만 중심에 서지 못했다. 안개의 왕자는 전면에 나오지 않은 채 소설은 시종일관 한 가족을 향해 앵글을 고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버 가족은 이사왔다. 새 동네는 시골 동네였지만 가족이 평화롭게 살기 좋아 보였고, 시계수리공인 아버지의 직업도 꾸준히 이어 갈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1943년 6월 그렇게 가족은 이사를 결정했고 조그만 바닷가 마을로 왔다. 막스가 열세 살이 되던 해였다. 부모님 외에 위로는 알리시아 누나가 아래로는 이리나라는 여동생이 있는 막스는 마을에서 롤랑이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롤랑은 등대지기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막스가 이사온 집은 할아버지의 친구 부부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식구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저 너머 안개에 휩싸인 어떤 묘지 같은 것을 발견한 막스는 어느날 아버지가 집에서 찾아낸 전주인의 기록영화를 보고 그 묘지가 찍힌 것임을 알아챈다. 묘하게도 막스가 본 모습과는 조금씩 다른 영상을 보며 막스는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한편 롤랑과 알리시아 사이에 로맨스의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롤랑 할아버지를 통해 침몰된 오르페우스호의 전설과 안개왕자 그리고 전주인인 플레이슈만 부부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세사람. 그러나 그들의 아들 제이콥이 죽은 것이 아니라 롤랑이 바로 부부의 아들 제이콥임이 밝혀지면서 진정한 공포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래의 끝과 정해진 운명의 잔인함. 그리고 남겨진 그들이 기억하는 진실은 어느 것 하나 반길만한 것이 없다. 만약 영화화된다면 안개의 왕자인 닥터 케인 역은 누가 맡으면 좋을까 하고 헐리웃 배우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음습하게 그려지기 보다는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영상화된다면 어울릴 것 같은 [안개의 왕자]는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참 재미난 작품이었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것~!! 희생을 담보로 하긴 했지만 정해진 운명이라는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 힘빠지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


작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스물 셋이 되어서도, 마흔 셋이 되어서도, 심지어 여든 셋이 되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을 써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작가의 그 마음에 공감을 하면서 작가의 책들을 그런 마음을 실어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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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부
로렌스 골드스톤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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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홀스테드.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평판처럼 그는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인류 최초로 마취제를 발명해서 인류를 구원한 착한 얼굴과 약물중독자에 살인자라는 나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밝혀낸 인물은 의욕이 넘치는 젋은 의사 에프라임 캐롤이었다. 그는 셜록 홈즈처럼 젊은 여성의 시신 한 구를 보면서 이 사건 속으로 빠져든다. 조지 터크와 젊은 여성의 죽음을 서로 결부시키면서 그의 수사는 활발해진다. 

레베카 라흐트만은 명문가의 딸이다. 아름답고 어린 레베카는 결국 홀스테드의 손에 의해 도륙된 것이 밝혀지는데, 캐롤은 그 사실을 밝혀내면서도 충격으로 치를 떨어야 했다. 
홀스테드는 레베카의 임신중절 수술을 하는 도중 마약에 취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내장에 구멍을 내어버렸고, 홀스테드와 그의 공범 터크는 레베카의 시체를 유기했다. 그 다음 터크는 홀스테드에 의해 제거되었다. 하지만 의학계에서는 홀스테드를 감싸안기에 급급했다. 
"그가 과거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라는 논리 하나로. 다수를 위해 한 사람의 희생따위는 아주 약소한 것이라는 그들의 이기적인 논리는 살인자를 명망있는 의사로 남게 만들었다. 

드라마 속에서 언제나 들어왔던 명원 존스홉킨스 병원이 등장하고, 빅4로 불리는 의학계의 대부격인 의사들이 소개된다. 사실 죽음의 해부는 가벼운 소설이 아니다. 소설의 형식을 띄지만 구석구석이 논쟁의 여지가 있다. 낙태와 약물중독, 시체 해부 등등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실존인물, 실존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의 것이다. 그럼으로 그들에게 단죄를 내리거나 그들을 미워해야할 이유가 우리에겐 없다. 다만 세상 어딘가엔 있을 그들을 닮은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림은 생각해봐야할 문제일 것이다. 시대적 배경은 과거를 향해 있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결코 오늘날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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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억 백만 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
나스다 준 지음, 양윤옥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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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가 내 별을 닦아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

그런 토끼가 있다면 대한민국 점술가들은 다 밥그릇을 빼앗기게 되지 않을까. 소원성취율 100%를 자랑하는 토끼가 정말 존재한다면 말이다. 이 특이한 발상은 동화같은 소설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에 관한 이야기다. 

정말 일억백만광년 너머에 사는 토끼는 방아를 휘두르는 대신 수건으로 별을 닦고 있는 것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예뻐서 절로 웃음이 난다. 하지만 소설 처음부터 이런 아기자기함을 기대했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소설에서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쌩뚱맞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노교수 아다치 선생은 토끼 정령에 대해 이야기하고, 쇼타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처음 시작은 토끼가 아니라 정령의 나무에 편지를 넣어둔 어느 아가씨와 그 아가씨가 반해 있던 청년이 그 편지를 발견하면서 서로 편지 왕래를 하게 된 이야기로 시작되기에 "아, 언제 토끼가 나오는 거야?"라고 투덜댔지만 읽다보니 빠른 속도로 빠져들게 되는 동화같은 소설이 바로 이 이야기다. 독일의 "사랑나무"전설에서 빌려온 일본식 "사랑나무"이야기라는데, 어느 나라에서 쓰여졌건 이 모티브는 상당히 매력적임에 틀림이 없다.

중3쯤 되면 이런 이야기는 믿지 않을 것 같았는데, 특히나 남자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 같았던 쇼타의 바램이 얼마나 강했으면 어린아이나 믿을법한 이야기를 믿게 된 것일까. 여학생 케이가 쇼타를 알게 된 것부터가 행운은 아니었을까. 


이 소설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우며 착하다. 게다가 해피엔딩을 향해가고 있기에 더더욱 맘에 든다. 마음아플까 가슴졸이며 읽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긴 제목만큼이나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소설. 아이들에게 토끼 이야기만 살짝 들려주어도 많은 상상들을 하지 않을까. 꼬물거리면서.


이제껏 가장 좋아했던 토끼 캐릭터는 마시마로였지만, 마시마로만큼이나 일억광년 너머에 산다는 그 토끼도 좋아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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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수 2 - 고구려 정벌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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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 양광. 뛰어난 왕제감이지만 아비와 형에 의해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그였다. 게다가 자신의 배필까지 아버지의 권력욕에 희생당하고 나서 그는 피에 굶주린 인간백정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 그가 을지문덕의 적수로 나섰다. 이 대목만 하더라도 2권은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양광은 인맥진도 훌륭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뛰어난 지략을 구사하는 참모 유사룡과 목숨을 바칠 그의 군대가 입증하고 있다. 특히 유사룡은 문제와 달리 고구려를 끌어안을 방책을 모사해 놓고 있었다. 바로 동제와의 화해였다. 순임금 시절, 자신을 서제, 단군을 동제라 칭하며 예를 올렸던 사실을 기틀로 하여 동제의 능에 제를 지내 왕이 되게 허락을 구하는 일을 양광에게 행하게 함으로써 정통성을 세우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늘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니 제를 지내러 간 대선사가 여인을 강제로 취하고 죽이는 일로 동제의 노여움을 사면서 이일은 수포로 돌아갔다. 

하늘이 허락하진 않지만 황제가 될 사내 양광. 그는 이제 고구려를 너머 을지문덕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복수심과 울분으로 고구려 정벌에 나섰다. 을지문덕 역시 알고 있었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수나라를 몰살시키거나 고구려가 몰살되어야지만 끝날 수 있다는 사실을. 거대한 중원은 30만 군사가 무너지면 다음 30만을, 또 다음 30만을 보내올 나라였기 때문이다. 이미 몇몇 전투에서 이기고 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문덕은 6개월이나 몰래 둑을 쌓기 시작했다. 아군도 모르는 사이 6개월간이나 물이 모이고 있었다. 그것이 겨우5백군사로 삼백만 대군에 맞선 전수대장군 을지문덕의 지략이었다. 
살수대첩의 승리뿐만 아니라 문서의 글자 한자(떨어질 낙)로 적왕의 마음을 되돌려 놓은 뛰어난 설득술을 가진 사람이기도 했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하지만 진정 영웅이란 다가올 난세를 대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을지문덕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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