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데베 문학상 수상작이자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가 데뷔작인 [안개의 왕자]는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다. 유령인듯 귀신인듯 한 수염있는 남자가 인화가 잘못된 사진 속에 머물고 있는 모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음산한 분위기 때문에 책을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다. 과연 어떤 두려움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 하려는 것일까. 대체 안개의 왕자는 어떤 사람일까. 연작시리즈 중 하나라고 해서 이어지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작가의 3작품이 안개와 관련있는 내용이다보니 안개시리즈로 묶여진 듯 했다. 아이를 담보로 한 악마와의 거래 라는 소갯글을 보면서 다른 소설 속 악마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악마와 거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소재인 듯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거래를 통해서 인간과 접촉했고, 거래는 반드시 악마가 이기는 걸로 귀결되어지곤 했다. 이상하게도 악마라고 하면 반칙의 제왕들처럼 보이는데, 그런 그들이 인간과의 거래라는 공식을 철썩같이 지키는 면은 마치 우등생이 교칙을 지키는 것과 비슷해서 웃음이 났다. 전혀 지킬 것 같지 않은 그들이 지키는 한 가지 원칙이라... 책 속의 악마는 어떤 인물인지, 그리고 왜 동화책의 제목처럼 안개의 왕자라고 달콤하게 불리는지 궁금해져서 책장을 넘기는 손가라가에 힘을 주어 가속도를 붙여댔다. 안개의 왕자. 그는 늘 자신이 이기는 거래의 주인공이었다. 영혼의 사채업을 시행하듯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래에 걸게 만들면서 원하는 것을 취해갔다. 어쩌면 꽤 매력적일 이 캐릭터는 하지만 중심에 서지 못했다. 안개의 왕자는 전면에 나오지 않은 채 소설은 시종일관 한 가족을 향해 앵글을 고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버 가족은 이사왔다. 새 동네는 시골 동네였지만 가족이 평화롭게 살기 좋아 보였고, 시계수리공인 아버지의 직업도 꾸준히 이어 갈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 1943년 6월 그렇게 가족은 이사를 결정했고 조그만 바닷가 마을로 왔다. 막스가 열세 살이 되던 해였다. 부모님 외에 위로는 알리시아 누나가 아래로는 이리나라는 여동생이 있는 막스는 마을에서 롤랑이라는 친구를 사귀게 된다. 롤랑은 등대지기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막스가 이사온 집은 할아버지의 친구 부부가 살던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식구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저 너머 안개에 휩싸인 어떤 묘지 같은 것을 발견한 막스는 어느날 아버지가 집에서 찾아낸 전주인의 기록영화를 보고 그 묘지가 찍힌 것임을 알아챈다. 묘하게도 막스가 본 모습과는 조금씩 다른 영상을 보며 막스는 두려움이 일기 시작했다. 한편 롤랑과 알리시아 사이에 로맨스의 기운이 흐르는 가운데 롤랑 할아버지를 통해 침몰된 오르페우스호의 전설과 안개왕자 그리고 전주인인 플레이슈만 부부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세사람. 그러나 그들의 아들 제이콥이 죽은 것이 아니라 롤랑이 바로 부부의 아들 제이콥임이 밝혀지면서 진정한 공포가 시작되고 있었다. 거래의 끝과 정해진 운명의 잔인함. 그리고 남겨진 그들이 기억하는 진실은 어느 것 하나 반길만한 것이 없다. 만약 영화화된다면 안개의 왕자인 닥터 케인 역은 누가 맡으면 좋을까 하고 헐리웃 배우들의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본다. 음습하게 그려지기 보다는 [캐러비안의 해적]처럼 영상화된다면 어울릴 것 같은 [안개의 왕자]는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참 재미난 작품이었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것~!! 희생을 담보로 하긴 했지만 정해진 운명이라는 사실은 사람으로 하여금 참 힘빠지게 만드는 일이 아닐 수 없겠다 . 작가가 이런 말을 남겼다. 스물 셋이 되어서도, 마흔 셋이 되어서도, 심지어 여든 셋이 되어서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을 써봐야겠다는 마음이었다고-. 작가의 그 마음에 공감을 하면서 작가의 책들을 그런 마음을 실어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