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A Classic Horror Story, Una classica storia dell'orrore, 2021
감독 - 로베르토 데 페오, 파올로 스트리폴리
출연 - 마틸다 안나 잉그리드 러츠, 프란체스코 루소, 펩피노 마조타, 윌 메릭
다섯 명의 사람이 공유 차를 타고 장거리 길을 떠난다. 대화도 하고 게임도 하고 밥도 먹으면서 길을 가던 중, 도로 위의 죽은 동물을 피하려다 사고가 난다.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사고가 난 지점이 아닌, 다른 곳에 와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이 영화는 글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던 작품이다. 변명하자면, 요즘 내 취침 시간은 12시 전후이다. 11시 반부터 졸리기 시작하다가 12시가 넘어가면 그냥 잠들어버린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본 날은 애인님의 퇴근 시간이 늦어져 11시가 되어서야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초반 20분 정도 보다가 눈을 잠깐, 아주 아주 잠깐 감았다가 떴는데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 가버린 영화였다.
언젠가도 적었지만, 애인님과 영화를 같이 본다는 게 같은 공간에서 본다는 건 아니다. 그냥 시간만 공유한다는 것 뿐, 각자 집에서 같은 시간에 ‘준비 시작!’하고 작품을 보는 것이다.
영화는 리뷰를 적기 위해 일요일 오후에 다시 봐도 지루했다. 왜지? 아침에 볼 걸 그랬나? 아니면 운동을 하러 가기 전에 봤어야 했나? 밥을 너무 많이 먹어서 식곤증 때문일까?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봤다.
아무래도 이미 몇 번씩 아니 수십 번씩 재탕하다 못해 사골국물이 더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우려낸 설정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떤 설정이냐고? 그건 바로 낯선 곳, 예를 들면 사막이나 숲을 지나가던 주인공 일행이 사고를 당한 뒤, 인간들 또는 돌연변이 인간들에게 공격받는 그런 설정이다. 윗줄을 읽으면서 아마도 머릿속에 몇몇 작품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렇다. ‘레더페이스’가 나오는 ‘텍사스 전기톱 학살 The Texas Chain Saw Massacre, 1974’이라든지 포스터가 인상적인 ‘데드 캠프 Wrong Turn, 2003’ 또는 그리고 리메이크작도 재미있는 ‘공포의 휴가길 The Hills Have Eyes, 1977’이 대표작이다.
저 작품들을 떠올리면,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 어떻다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의식해서인지 제작진은 여기에 몇 가지 새로운 설정을 첨가했다. 음, 그게 뭔지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서 패스! 하지만 그 설정들이 영화의 지루함을 달래주진 못했다. ‘오, 새로운 설정이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는데, 딱 거기까지였다.
뭐랄까, 위의 작품들은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 관계라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굳이 풀어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카풀을 한 거라서 그들이 서로를 알아갈 기회를 줘야 했다. 아마 그래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그 때문에 공격자와 싸움이 너무 허무하게 흘러갔다. 밀당도 없었고, 조여오는 뭔가도 없었고,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오늘 엄마랑 자야지’라는 생각도 하나도 들지 않았다. 반전이라는 것도 별로 놀랍지 않았고, 도리어 ‘이게 뭐야 X발’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의외로 영화는 상당히 잔혹한 장면이 많았다. 특히 사람을 묶어놓고 산 채로 마취도 안 하고 눈동자를 뽑아내는 부분은……. 음, 누군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인간의 눈동자에 집착하던 감독이 있었는데 누구였더라? 막 눈동자에 바늘이나 못 같은 거 갖다 대는 장면을 클로즈업해서 보는 이의 눈을 질끈 감게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몇몇 장면은 잔혹한데, 그게 극의 분위기를 좌우하지는 못했다. 초반엔 잔잔하더라도 극이 진행되면서 분위기를 쌓아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차근차근 쌓아가긴커녕, 쌓았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했다. 그래서 밀당이나 조마조마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상당히 잔혹하고 끔찍하다. 있어서도 안 되고, 해보겠다 시도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물론, 이 영화처럼 대규모가 아니라 소규모로는 지금 어디에선가 벌어지고 있을 일이지만 말이다.
누군가의 죽음이 다른 이의 눈요깃거리도 안 된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