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시디어스
제임스 완 감독, 바바라 허쉬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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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nsidious, 2010

  감독 - 제임스 완

  출연 - 패트릭 윌슨, 로즈 번, 바바라 허쉬, 리 워넬



  감독에 대해 얘기하자면, '쏘우 시리즈'를 만든 사람 중의 하나이다. 1편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어떤 편에서는 기획을 하기도 하고 또 어떤 편은 각본을 쓰기도 하고, 또 다른 편에서는 감독을 맡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영화도 광고가 '쏘우의 감독이 만든'이 꼭 들어갔다.


  내 마음 속에서 쏘우의 감독은 어떤 면에서는 샤말란 감독과 비슷한 존재이다. 언젠가는 전작을 훨씬 뛰어넘는 멋진 영화를 만들 거라고 기대하지만, 최근작들은 다 그냥 그렇고, 하지만 그렇다고 신작을 내놓으면 안 볼 수도 없는…….


  이 영화도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감독의 작품이니까 보기로 했다. 포스터를 보니 귀신들린 아이 내지는 악령이 깃든 집에 관한 내용 같았다. 영화 '오멘 The Omen, 1976'이나 '엑소시스트 The Exorcist, 1973' 내지는 '폴터가이스트 Poltergeist, 1982'가 떠올랐다.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하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시작부터 오싹했다. 내가 제일 약한 부분이 소리이다. 피와 살이 튀기고 잘리는 장면은 그냥 '그래서 뭐?' 이러면서 보는데, 음향이 끼익 거리면서 음산하게 울리면 무서워진다. 이 영화, 소리가 아주 큰 역할을 담당했다. 거기에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하다가, 서서히 실체가 드러나는 어둠속의 그 존재가 긴장감을 주었다.


  새 집으로 이사 온 조쉬와 르네. 그런데 다락에 올라갔던 큰아들 달튼이 뭔가를 보고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 뿐 아니라 집에서 이상한 일이 자꾸 벌어진다. 아이가 누워있는 시트에 피 묻은 손자국이 찍히고, 으스스하게 생긴 남자가 집안을 배회한다. 결국 가족은 이사를 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사 오던 날, 그들은 절망적인 현실을 깨닫는다. 그 존재들이 새 집까지 따라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조쉬의 엄마 말에 의하면, 그것들은 그가 어렸을 때부터 존재했다고 한다. 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고, 조사단과 영능력자가 집으로 찾아오는데…….


  어릴 적 괴담 중에, 잠자는 사람 얼굴에 낙서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있다. 그러면 몸을 떠났던 영혼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해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결국 그냥 죽어버린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괴담이 떠올랐다. 얼굴에 낙서를 하진 않았지만, 꿈에서 유체이탈을 겪은 아이가 몸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설정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악령들이 아이를 먼 곳으로 보내고 자기들이 그 몸을 차지하려고 한다니, 소름끼치고 놀랄 일이다. 집에서 벌어졌던 모든 일들의 원인은 바로 그 악령들이었다.


  이후 영화는 '폴터가이스트'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아들의 영혼을 찾으러 아버지가 나선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상한 경험을 한다. 그가 만난 악령이라고 할까 혼령들이 너무도 기괴하고 오싹했다. 평범한 사람의 모습인데, 웃는 미소가 영 마음에 안 든다. 꿈에 볼까 두려운 미소였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은근히 무섭다. 잊고 있다가 어느 순간 비슷한 것을 볼 때,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다. 이제 눈 크고 입 큰 사람이 미소 짓는 모습을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날 거 같다.


  반전을 주고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런데 마지막 반전 부분을 보자 그냥 멍한 기분이었다. 아니, 그럼? 머리가 막 빨리 돌면서 영화의 앞부분부터 재구성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놔 진짜! 그런 거였어? 헐!' 이런 감탄사가 나왔다. 다 보고나니 제목이 스포일러였다, 이건.


  중간에 좀 심심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알차게 만들어진 영화라는 느낌이었다. 2편도 나온다는데, 한편으론 기대되고 또 한편으로는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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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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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저자 - 이덕일



  지금까지는 대개 왕에 관한 책이 많았다. 왕들이 갖춰야할 덕목이나 그들이 공부하던 제왕학같은 것을 정치 경제 교육에 연관시킨 내용들이었다. 그런 책을 보면서, ‘왜 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다 왕이 되어야 하는 걸까, 아! 그래서 손님은 왕이라는 말이 나왔구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모두가 다 왕을 외칠 때, 난 대세를 따르지 않겠다고 혼자 속으로 생각하며 그런 책은 멀리했다. 추리 소설이 아니라서 안 읽은 게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왕이 아닌, 왕을 만든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흔히 ‘킹메이커’라 불리는 자들에 대한 얘기다. 가능하면 외래어를 안 쓰고 싶지만, 이게 더 단어가 짧다. 그들이 어떤 사람을 왕으로 점찍고, 어떤 방법으로 그를 즉위시키는 데 노력했는지, 그리고 이후 어떻게 보필했는지 설명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킹메이커들이 가져야할 덕목과 피해야 할 행위를 열한 개 골라서, 그에 맞는 역사적 인물을 예로 들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왕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했기에 그가 왕이 되었다는 말에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왕위에 오를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몇 명 보였다. 김춘추라든지 주몽이 그런 예이다.


  저자가 선택한 열한가지 코드는 다음과 같다. 1번 어젠다부터 9번 실력까지는 덕목이고, 10번과 맹목과 11번 역린은 피해야 할 것들이다.


  1 어젠다_비주류, 주류사회를 바꾸다: 김유신

  2 헌신_충심으로 고려를 세우다: 신숭겸·배현경·복지겸·홍유

  3 시야_내부의 지분 대신 더 넓은 곳을 바라보다: 소서노

  4 사상_생각의 힘으로 세상을 뒤집다: 정도전

  5 시운_평생 할 말 다 하면서 고종명하다: 황희

  6 정책_보통의 군주 아래 삶의 변화를 이끌다: 김육

  7 기상_전통을 지키려다 쿠데타를 맞다: 천추태후

  8 악역_나라를 위해 희생할 운명을 받아들이다: 강홍립

  9 실력_성실과 기술로 한양도성을 쌓다: 박자청

  10 맹목_목적 잃은 권력을 탐하다: 인수대비

  11 역린_참모는 참모일 뿐, 선을 넘지 않는다: 홍국영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없었다. 한두 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생각이 나는데, 덕목 아홉 가지를 다 갖췄다거나 피해야할 두 가지를 극복한 사람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영위계구 물위우후(寧爲鷄口 勿爲牛後)’라는 말이 있다. 닭의 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는 되지 말라는 뜻이다. 이렇듯이 모두가 다 남보다 자기를 내세우려고 하고 무조건 자기가 윗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면, 과연 그 사회는 어떻게 될까?


  누군가 앞에 서면, 누군가는 중간에 서야하고 또 누군가는 뒤에 서야 한다. 이제는 앞에 나서서 큰소리치는 사람보다는 뒤에서 현명하게 조언하고 계획을 짜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건 경제건 사회 어느 한 구석 그런 사람들이 불필요한 분야는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다들 앞에 서기 바빴었다. 저자가 이 책을 적은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한다.


  가족을 팔아 권력을 쥐어봤자, 좋을 건 없다. 그런 권력이 천년만년 지속될 리가 없으니까. 그건 인수대비의 예에서도 잘 알 수 있다. 결국 그녀의 아버지와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홍국영도 마찬가지이다.


  초심을 잃지 말아야겠다.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목표를 확실히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그것을 이룬 다음에도 흐트러지면 안 될 것이다.


  물론 비딱하고 나쁘게 보자면, 분수를 알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머물러있으라는 건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기가 일인자가 될 능력이 없다면, 괜히 욕심 부리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자리를 찾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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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Clinic, 2009

  감독 - 제임스 라비츠

  출연 - 타브렛 베델, 앤디 윗필드, 프레야 스태포드, 클레어 보웬



  이 영화 광고에는 꼭 따라붙는 문구가 있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이다. 그렇지만 영화에서와 똑같은 일이 진짜로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고, 모티브만 따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임산부 배를 갈라 아이를 빼앗아 간 사건이 외국에서 있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은 나니까.


  그래서 한동안 그런 류의 사건을 다룬 범죄 수사 드라마가 만들어졌었다. ‘크리미널 마인드 Criminal Minds’도 그렇고 ‘로 앤 오더 CILaw & Order: Criminal Intent’에서도 그랬고. 생각해보니 프랑스 영화 ‘인사이드 A l'interieur, Inside, 2007’도 비슷한 설정이었다.


  위에서 대충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는 임산부를 잡아다가 아이를 강제 출산시키는 집단과 그들에게서 아이를 되찾아 탈출하려는 여자의 사투가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남편은 행방불명된 부인을 찾으려고 밖에서 애쓰다가, 일당에게 험한 꼴을 당한다. 그런데 이런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하나도 도움이 안 되었다.


  영화는 그런 기본적인 줄거리에 몇 가지를 더 첨부했다. 배틀 로얄식으로 자기 아이를 찾고 싶으면 다른 임산부들을 죽이라든지, 그 조직이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어서 지역 유지와 경찰까지 연결되어있다는 등등.


  이건 순전히 인간의 욕심 때문에 빚어진 비극이다. 아이를 가질 수 없으면 포기하고 부부끼리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이 있다. 그게 싫으면 고아원에서 아이를 데려다가 입양을 할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친척 아이를 입양하는 길도 있다. 방법이야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멀쩡한 부부를 골라서, 부인을 납치하고, 강제로 수술을 해서 아이를 빼앗아 가냔 말이다. 그리고 왜 몸조리도 못한 산모들에게 ‘아이를 되찾고 싶으면 우리말을 들어라!’라며, 배틀 로얄식의 결투를 시키냔 말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이유가 있긴 하다. 가장 강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생존력이나 기타 여러 가지 면에서 우월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이건 뭐, 히틀러가 주장했던 ‘아리아인 우월주의’와 별로 다를 게 없는 개똥만도 못한 이론이다. 그럼 부모가 천재면 자식도 천재인가? 반대로 생각해서 부모가 개자식이면, 자식도 개자식인가? 이건 개천에서 용난다는 일말의 희망마저 빼앗는 것이다. 게다가 엄마만 보고 아이를 고른다니, 그러면 엄마가 천재인데 아빠가 살인마면 어떡할까?


  그런데 영화는 말미에 그 이론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헐, 이게 뭐람?

물론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는 말과 사자는 고양이를 낳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알고 보니 위대한 호카게였다던가 사신 내지는 훌륭한 왕 또는  뛰어난 전사였기에, 처음엔 개차반에 능력도 없어보이던 아들이 성장하며 그 뒤를 따른다는 내용의 작품들이 꽤 있다.


  그러면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은 대를 이어 비슷한 운명을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핏줄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초반, 중반 그리고 후반까지 다 좋았는데 막판 반전에 확 열이 받는 영화였다.


  그런데 강제로 예정일도 안 되어 수술을 했는데, 영화에서처럼 막 뛰어다닐 수 있나? 올케들보니까 며칠은 꼼짝도 못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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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이디 Q.E.D 4 - 증명종료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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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Q.E.D.證明終了

  작가 - 카토우 모토히로 (加藤元浩)



  이번에도 두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1화는 '1st, April,1999'이고, 2화는 '야곱의 사다리'이다. 보면서 '토마 이 녀석 노는 물이 다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꼬맹이가 외국 장관과 맞대결을 벌이고, CIA는 강아지와 놀아주듯이 갖고 논다.


  1화는 은근히 일본의 정치가들을 비꼬고 있다. 아니,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원조기구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을 착취하는 경제구조를 비난하고 있다. 크라비우스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 이 나라는 일본에서 기술 지원을 받아 양식장을 설치했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일본은 자기들은 기술만 알려줬을 뿐 관리 못한 너희 책임이라고 발뺌하는데, 사실 그게 일본의 담합과 부실 기술 때문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한편 '에이프릴 풀 클럽'이라는 단체가 있다. 전 세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매년 만우절 장난을 치고, 그것을 심사해서 상을 주는 곳이다. 토마는 전년도 우승자로 이번에 방어 장난을 쳐야하는데,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우연히 크라비우스 왕국의 차관을 만난 토마와 가나는, 그를 도와 일본과의 교역을 성사시키기로 하는데…….


  뭐랄까, 겉으로 보기에는 가나가 막무가내로 윽박지르면서 토마를 사건에 개입시킨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편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토마가 은근히 가나를 이용해먹고 있었다. 자기는 뒤로 빠져서 편안하게 앉아 있고, 가나는 여기저기 땀 빼면서 뛰어다니게 시키는 것이다. 가나가 체력 하나는 끝내준다.


  약소국을 이용해먹는 강대국들의 치졸한 수법을 유쾌하게 깨부수는 전략이 기발했다. 아,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당한 사람들이 뭐라고 반박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깔끔한 마무리. 탐욕을 부리는 인간들의 습성을 교묘하게 이용한 방법이 마음에 들었다.


  모노폴이라니, 새로운 개념을 알았다. 그런 게 있었구나. 진짜로 존재한다면 꽤나 재미있을 거 같다. 문득 미국 51구역에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았어, 이걸로 새로운 음모론을!


  2화는 에바와 로키가 다시 나오는 에피소드이다. 에바가 MIT에서 연구하고 있던 인공 생명들이 연구팀 컴퓨터에서 빠져나와 일본으로 넘어온다. 그리고 무차별 활동을 벌이면서, 교통 대란을 일으킨다. 사건에 책임을 지고 CIA에 체포된 그녀를 대신해, 로키가 일본으로 와 토마와 함께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는 내용이다.


  로키가 자신을 추적하는 CIA 요원을 따돌리기 위해 책에 꽂아둔 말린 잎을 이용한 방법은 그냥 웃음만 나왔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자 설명을 요구하는 가나와 꿀밤을 맞아가면서도 전자 사전을 내밀던 토마의 개그도 재미있었다.


  인공 생명의 개념과 그것을 이용한 방법에 대해 막연히 알고는 있었는데, 이번 편에서 자세히 설명이 나왔다.


  아, 그러니까 이 책은 그냥 만화가 아니라 학습만화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 수 있는 학습 만화. 거기에 각종 종교적인 개념들까지 교묘하게 스며들어서, 꽤나 독특한 만화가 완성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야곱의 사다리를 이런 식으로 응용하다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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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이디 Q.E.D 3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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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Q.E.D.證明終了

  작가 - 카토우 모토히로 (加藤元浩)



  역시 두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1화 '브레이크 스루'와 2화 '빛바랜 성도'이다.


  1화에서는 토마를 만나러 미국 MIT 대학 시절의 친구인 로키와 에바가 찾아온다. 토마가 왜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다 일본으로 왔는지 엿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그의 과거를 조금씩 풀어나가는 전개, 마음에 든다.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로키와 그의 말이 통했던 유일한 친구였던 또 다른 천재 토마. 두 천재가 한자리에 모인 것은 행운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도대체 누가 토마의 논문을 찢어버린 걸까? 그리고 왜?


  토마가 나이에 비해 조숙하고 사려 깊음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 특히 그러했다. 나 같으면 당장에 귀싸대기를 날리고, 망쳐버린 내 앞길 되돌려놓으라고 난리쳤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누군가가 방해를 했기에 내 논문이 사라졌다고 선처를 바란다고 난리를 피웠고.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자랐기에 그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거니, 토마야?


  내 나름대로 그 이유를 상상해보았다. 아마 그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천재성 때문에 또래 아이들보다는 어른들과 더 많이 교류를 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이면 어리다고 얕잡아 보일 수 있기에, 토마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성장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래서 누구보다 냉정하고 성숙한 정신을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상처받고 숨겨야했던 그의 마음이 또래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면서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


  2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울컥했다.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고 너무 어렸다. 그리고 주위에는 그 사람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가 한 말이 진실일거라 믿고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그게 다 거짓이었다니!


  아마 자신의 삶 전부가 부정당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거짓된 삶을 살게 한 원흉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수밖에…….


  그리고 그녀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모든 것을 다 바쳐 소원을 들어줬던, 그래서 모든 것을 잃어야했던 그에게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마음에 안 들었다. 둘이야 서로 사랑한다고 해도, 자식은 어쩌라고 방치를 했던 건지. 그럴 거면 아예 낳지를 말고, 둘이서만 알콩달콩하게 살던가. 그래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이번 편에 가나가 질투를 한다. 토마가 다른 여자아이와 나란히 앉아서 별을 보는데 심술을 부린다. 귀엽기도 하지. 그러면서 친구들이 너희 둘이 사귀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대답한다. 아직 자기 마음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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