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 제 1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 스웨덴판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 감독, 미카엘 뉘크비스트 외 출연 / 버즈픽쳐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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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Man Som Hatar Kvinnor, 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2009

  감독 - 닐스 아르덴 오플레브

  출연 - 미카엘 뉘크비스트, 누미 라파스, 스벤-버틸 타웁, 피터 하버




  몇 년 전에 서점이나 극장가에서 심심찮게 제목을 들었던 작품이 하나 있다. 제목이 특이해서 눈길을 준 적이 있다. 그리고 애인님이 보고 와서는 충격적이었다면서 얘기해주었다. 그래서 검색을 해보니, 꽤나 복잡한 길을 걸어온 작품이 보였다. 애인님이 보고 온 영화는 미국판 리메이크였고, 서점에 있는 책이 원작이었고, 그 소설이 처음 출간된 스웨덴에서 만든 영화가 또 따로 있다는 사실이 주르륵 나왔다. 제목도 어디서는 ‘용 문신을 한 소녀’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이기도 했다. '이건 뭐람?'하고 잊고 있었다. 애인님이 스웨덴 버전의 영화를 보자고 말하기 전까지…….


  영화를 보면서 150분에 달하는 상영시간에 놀랐고,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휘몰아침에 놀랐다. 중후반의 그 폭풍 같은 사건사고들의 등장은 진짜, 하아……. 처음에는 어떻게 이것들이 다 연관이 될까 싶었는데, 결국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엄청난 완성품을 보여주었다.


  감독이 퍼즐 맞추는 재미를 아는 사람 같다. 처음에 하나둘 맞아갈 때는 언제 이 넓은 면을 다 채우나 지루한데, 어느 정도 눈에 익으면 휙휙 금방 제자리를 찾는다. 영화는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왜 상영시간이 그렇게 길까 했는데, 다 보고 나니 그럴 법했다. 더 짧은 시간에 내용을 담았다면, 분명히 엄청나게 비난을 했을 것이다. 이게 뭐냐고, 내용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고 뚝뚝 끊어진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식으로 편집을 했냐고 말이다.


  물론 영화를 다 본 지금에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은 있다. 그들은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왜 그들이 살해당해야했을까? 단지 이름 때문에? 으음, 이해할 수 없다. 물론 미친놈의 속마음이나 뇌구조는 일반인들에게는 이해불가의 영역이기에 내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 그룹 일가와 미카엘의 나이 차가 꽤 난다고 나오는데, 외견상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미카엘이 노안인건지 아니면 그룹 사람들이 동안인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나이 들면 다 비슷비슷해지는 걸지도.


  게다가 그런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데,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과연 하나도 몰랐을까? 설마 알면서도 묵인해줬던 건 아닐까? 이런 의심도 들었다. 희생자가 불쌍했지만, 집안의 명예를 위해서 모른 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로 집안의 부와 권력을 놓치기 싫었던, 사악한 인간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영화의 줄거리는 음,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두 명의 주요인물이 있다. 한 명은 기자인 미카엘. 비리 기업가를 고발하려다가 역공을 당해서 기자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그런데 한 그룹 총수가 40년 전 사라진 조카 해리어트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한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해커인 리스벳. 그녀는 어릴 적 어떤 사건으로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하지만 해킹 실력은 대단하여, 기자를 도와 사라진 소녀를 찾는 일을 돕기로 한다.


  세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미카엘을 위기 상황으로 몰았던 비리 기업가에 대한 거짓 정보. 또 하나는 리스벳을 괴롭히는 법적 후견인, 마지막 하나는 사라진 해리어트를 찾는 일이다.


  조사를 해가면서, 둘은 대 기업의 숨겨진 비밀에 조금씩 다가간다. 어째서 스웨덴에 나치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나치 당원이었던 가족의 존재와 과거에 있었던 연쇄 살인사건까지 얽히면서, 한 집안의 수치스러운 과거가 낱낱이 밝혀진다. 미끼는 하나인데, 물고기들이 물고 물리면서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낚은 격이다. 더불어 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둘을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말이다.


  영화는 무척이나 건조했다. 몇몇 눈살을 찌푸릴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냥 담담하게 진행할 뿐이었다. 감정이나 눈물을 강요하지도 않았고, 일부러 분노를 유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담담한 화면을 보면서 분노를 느꼈고, 안타까움에 고개를 저었으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저런 미친 XX라면서 욕도 나왔다.


  어떻게 보면 나름 해피엔딩이었다. 리스벳은 조금이나마 과거를 극복했고, 미카엘 역시 명예를 회복했다. 범인은 죗값을 치렀고 말이다.


  하지만 희생자들은 누가 달래줄까? 그 가족들의 40여년에 달하는 잃어버린 시간과 상실감은 누가 치유해줄지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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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숨겨진 이야기 - 피타고라스에서 아인슈타인까지 과학자들의 실수와 위대한 발견
장 피에르 랑탱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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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Je pense, donc je me trompe : les erreurs de la science de Pythagore au big-bang

  부제 - 피타고라스에서 아인슈타인까지 과학자들의 실수와 위대한 발견

  저자 - 장 피에르 랑탱




  모든 일에는 뒷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과 180도 다를 수도 있고, 제3자가 보기엔 웃음만 나는 상황인 것도 있다. 역사서라면, 야사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가 훨씬 더 재미있다.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분야에서도 특히 과학에 관련된, 우리가 잘 모르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과학은 실험을 통해서 가설을 입증해야하는 분야이다. 그래야 정설로 인정받을 수 있다. 또한 가설 단계에서는 이럴 것이라 추측만 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다루기 때문에, 무척이나 어려운 학문이다. 그래서 가설 단계에서 무척이나 황당한 말들이 많을 것이라 추측을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니, 이건 황당해도 너무 황당했다. ‘아니, 이 유명한 과학자가 왜 이런 짓을!’이라며 놀라는 건 기본으로, ‘그런 상황에서 여기까지 발전한 건 대단한 거구나…….’라는 감탄까지 나올 정도였다. 익히 알고 있는 천동설에 관한 것이나 갈릴레오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얘기나, 화석 위조 사건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읽으면서 제일 황당한 것 중의 하나는, 수정에 관한 논쟁 부분이었다. ‘난쟁이’ 하나가 남자의 정충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여자 몸속에 들어가서 서서히 자란다는 말은 진짜……. 그것뿐이면 그냥 애교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다. 더 황당한 건, 여자 몸속에 알이 있어서 그게 자란다는 것이다. 난자도 알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기서 과학자들이 주장한 알은 난포 내지는 낭종을 보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아, 이게 19세기 초까지의 상황이었다.


  ‘골상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것을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 떠올랐다. 거기서 고고학자 부친을 둔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데, 머리 골격의 특징으로 용의자를 찾아내겠다는 발상을 한다. ‘골상학’은 뇌의 형태와 불규칙한 모양, 돌출 등을 보고 인간의 능력을 밝혀낼 수 있다는 학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건 우스갯소리로 ‘머리가 큰 건 들은 게 많아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머리가 크면 똑똑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건 음, 결정론적이나 운명론적 사람들에게 잘 먹혔을 것 같다. 인간의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이니, 괜히 삽질하지 말고 주어진 대로 만족하고 살아라. 19세기 식민지 운영을 하는 나라의 지도층이 좋아했을 것 같다.


  모든 일이 우연히 생긴다는 말은 믿지 않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말도 떠올랐다.


  작정하고 사기를 쳤는지, 아니면 어쩌다가 맞아떨어져서 일어난 결과일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것으로 위대한 발견을 했다고 죽을 때까지 존경을 받으면서 그 이론을 밀고나간 폴 카머러 같은 과학자도 있고, 지금 보면 옳은 발견이지만 그 당시 엄청난 비판을 받고 소심하게 죽어간 티코 브라헤같은 천문학자도 있었다. 그 뿐인가? 우연한 실험의 오작동이나 실수로 엄청난 발견을 한 플레밍이나 켈로그 형제 같은 경우도 있다.


  하여간 그런 수많은 오류와 논쟁과 착각과 실수를 통해서 여기까지 발전해온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바보 같은 조상님들이라고 웃고 넘길 일은 아니었다. 나중에 미래의 후손들이 보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그들에게는 웃긴 일이 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문득 오류를 바로잡지 않고 그 방향으로 쭉 나갔으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아, 그래서 SF소설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건가보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과학자들 얼굴이나 그들의 논문 사진 내지는 그 당시 그림이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부분이 좀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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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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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王國

  작가 - 나카무라 후미노리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정부를 비밀리에 움직이며 반복하는 두 집단,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미모의 여주인공. 거기에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이 조직에서 점찍은 관료나 명사들을 유혹해 이상한 사진을 찍거나 정보를 캐내오는 것이니, 그야말로 첩보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창녀라고 나오지만, 외모와 지략을 갖춘 요원이라고 볼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표현을 빌면 얼굴과 두뇌가 일치하는 드문 예이다.


  거기에 아픈 과거를 지닌 유일한 친구 에리와 그녀의 아들 쇼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면서 공허함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다. 그녀가 그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은 친구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죽자, 그녀에게는 지킬 것이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야다라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돈을 받을 뿐이다.


  그러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하세가와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그의 소개로 보육원장 곤도를 만나고 오는 날, 누군가 그녀에게 경고를 한다. 그가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야다가 시킨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정체불명의 집단에서 저지른 것으로 판명되고, 급기야 살인 혐의까지 쓸 위험에 처한다. 야다는 곤도, 다른 이름으로는 긴자키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오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곤도측에서는 그녀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야다의 정보를 빼오겠는지 아니면 죽겠는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이제 그녀는 목숨을 건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한다. 그녀에게 지킬 것이 생겼다. 죽은 에리와 쇼타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한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에리와 주인공이다. 에리는 나쁜 남자에게 걸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짓밟힌다. 그녀에게는 사랑이었지만, 그에게는 단지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사람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절망에 빠진 광경을 즐기기 위한 도구였다.


  주인공 역시 나쁜 남자에게 걸렸다. 긴자키와 야다 둘 다 좋은 남자는 아니다. 그들에게 그녀는 자신들의 일에 효과적으로 이용해먹을 수 있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말은 달랐다. 그녀는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역습을 가하려고 했다.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기보다는 살아남고자 했다.


  후자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길 수가 없다고 해도, 그냥 패배를 인정하고 자포자기하는 건 별로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음. 에리처럼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그래서 주인공의 행동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고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글은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느껴지면서 속도감도 있었다. 동시에 그러면서 몇몇 문장은 서정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인간들이 벌이는 행태는 역겹고 추악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대한 묘사는 시적이었다. 이런 묘한 모순이 이야기에 특이함과 개성을 부여했다. 또한 중간 중간 사람들의 내적 감정을 외적인 달에 대입해서 표현하는 부분도 있는데, 마음에 들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녀는 하늘을 본다. 인간이 사는 지상은 천박하고 외설스러운 네온 불 속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곳이다. 하지만 거기를 벗어난 하늘은 네온 불빛까지 비춰주는 달이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픈 그녀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녀가 기자키, 그러니까 곤도에게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에도 달은 하늘에 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달은 조금 달랐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면서 빨간 빛을 내뿜는다. 어쩌면 그때의 달은 곤도의 광기나 그녀의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달도 빛을 잃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녀는 절대로 어둠과 달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그녀는 달의 아이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둠을 비추는 달의 보호를 받는, 달과 교감을 하는 달의 아이. 아, 낭만적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글자 위에 점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린 십대 소녀들이 열광하던 로맨스 소설에서 글자 하나하나에 점을 찍어서 강조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 입.다.무.시.죠?’ 이런 거. 이 책은 옆이 아니라 위에 점이 있어서 읽기에 불편했다. 글자 사이 간격이 팍 줄어들면서 좀 거부감이 들었다. 강조를 하기 위함이라는 건 알겠는데, 음 내 취향의 표기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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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확인, 차별이 내게로 왔다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11
인권운동사랑방 엮음 / 오월의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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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소수자들의 이야기

  저자 - 인권운동사랑방




  이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중에는 나와 비슷한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십인십색이라는 말이 있듯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방법으로 사는 사람은 없다. 있으면 그게 더 무섭다. 우리가 무슨 오버마인드의 지배를 받는 저그도 아니고.


  그래서 세상은 살아가기 힘들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도 해야 하고 때로는 무시하는 동시에, 남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받아들여지도록 설득도 해야 하고 가끔은 무시도 당한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러니까 의사소통이 실패하면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는 법이다.


  이미 예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계셨던 걸까?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라고 조상님들은 말씀하셨다. 음,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의 조상님이 아니라 중국의 조상님이다. 그 분들은 내가 하기 싫은 건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고 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경우를 본보기로 삼아 자신을 갈고 닦으라고도 하셨다. 또한 서양의 조상님도 원수를 사랑하고 심지어 자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며 세상 사람들이 평등함을 가르치셨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기는커녕, 배척하고 멸시한다. 오죽했으면 차별을 금지하자고 법안을 만들 정도이다. 불행히도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은 통과가 되지 못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특히 심하게 반대를 한 단체가 믿는 서양의 조상님은 약하고 힘없이 소외된 자들을 우선시하셨는데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차별을 받는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 모음집이다. 미혼모,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장애우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때로는 편지 형태로, 어떨 때는 대화형식으로, 또는 이야기체나 극화 형식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이런 유의 책을 접할 때 간혹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혹시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의 순탄치 않은 삶의 여정을 구구절절 풀어내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동정심을 유발하는 건 아닐까하는 것이다. 그런 예를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조폭이 나오는 코미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를 넣은 것이 이 나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첫 번째 이야기만 읽어도 그런 선입견은 깨져버린다. 이 책은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열심히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주위의 외면과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혼모로 아기를 키우면서 학업에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얼마 전에 친권과 양육권까지 가져온 소녀의 이야기. 성전환수술비용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청년의 이야기. 베트남 전쟁 때 파병 온 군인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한국에 와 한국 남자와 결혼했지만 결국 이혼하고 딸을 키우는 여인의 이야기. 동성을 사랑하는 방황하는 소년의 이야기 등등. 그들은 체념이나 회피가 아니라, 현실과 자신의 상황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삶을 사랑하며 자기가 선택한 길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왜 그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지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왜 ‘평범함’과 ‘보통’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을 정의하고 분류하려는지 추측은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별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아무리 다수가 평범함과 보통의 기준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단순한 수식으로 보자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차별을 하자는 말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즉, 이 나라는 차별을 허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종교로, 성별로, 학력으로, 인종으로, 언어로, 출신지역으로, 가족 형태나 상황으로, 성적지향으로, 장애로, 병력으로 다른 사람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할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게 과연 동서양의 조상님들이 가르침을 받아들인 결과일까? 사랑, 평등, 자유, 박애 같은 것을 배운 결과가 이런 것일까? 아니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평등이나 박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런 가치는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빛을 발하지 못하는, 불필요한 것이 되어버린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인간을 믿고 싶다. 성악설이 아닌, 성선설이 말하는 인간을 믿고 싶다. 서로 대화를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어떤 것이 서로에게 좋은지 결론을 낼 수 있기를, 아직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남을 배려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어쩐지 존 레논의 노래 ‘imagine’이 듣고 싶어진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차별금지법》은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출신 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출신지역,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범죄전력, 보호처분, 성적지향, 학력,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자 제정중인 대한민국의 법이다. - 출처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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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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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배수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에 내용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 다른 책들은 읽다보면 머릿속에서 장면들이 영상화가 되어 재생되기도 하고, 내용이 차근차근 정리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요리조리 뜯어보고 맞춰도, 어느 한 부분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아, 나 퍼즐 못 맞추지 참. 그제야 다른 집에 가면 꼭 하나씩은 있는, 오백 조각이나 천 조각 맞춘 퍼즐이 우리 집에는 왜 없는지 기억이 났다. 퍼즐을 맞추다가 하나라도 안 맞으면 짜증을 내면서 치워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뜨개질이나 수를 못 놓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고백하건대, 지금까지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르면서 앞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추리 소설이나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명확히 설명하는 인문학 책을 주로 읽어왔다. 이런 스타일의 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척이나 낯설었다.


  한 번을 읽었다.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건 뭐지? 두 번을 읽었다. 여전히 어딘지 연결이 잘 되지 않는다. 이 사람이 그 사람이 아닌가? 세 번을 읽는다. 헷갈린다. 어, 잠깐만 이거 앞에서 나왔던 거 같은데. 아니다, 저번에 읽어서 기억하는 건가? 결국 이 책은 이해 불가의 영역으로 분류했다. 아직 독서 수준이 미흡해서…….


  이 소설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소제목도 없고, 그냥 1,2,3,4로 되어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중복되고 배경 설정도 비슷하다.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부분마다 조금씩, 미묘하게 배경이나 상황들이 달랐다.


  1에서 여자가 당한 일과 2에서 남자가 한 일이 배경적으로는 일치하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1에서 나온 상황과 3의 설정이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혼란을 주고 있다. 1을 읽으면서 인물에 대해 내렸던 정의가 2,3을 지나면서 흔들리더니, 나중에는 내가 판단한 인물이 그 사람이 맞는지 의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흰 버스, 동네 약사에 대한 소문, 맹인 소녀, 전화 상담 등등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하고도 많은 요소들이 겹쳤다. 하지만 그것들은 살짝 위치를 바꾼다거나 비틀리면서, 비슷하지만 앞과는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인물들도 조금씩 달라지고 말이다.


  어쩌면 인물에 대해서 특정한 어떤 인상을 받도록 작가가 판을 짠 다음, 조금씩 그것을 해체하는 느낌이 들었다. 혼란스러워하는 독자들을 보며 작가는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넌 내 함정 카드에 걸려들었어.’라면서 미소를 짓고 있을 지도 모른다.


  또는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흔들리기 쉬운지, 얼마나 주관적이며 자의적인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언제나 인간은 타인에 대해 끝없이 평가를 하는데, 그것이 사소한 작은 것 하나로도 수시로 바뀐다는 걸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남에 대해 그러하듯이 남도 나에 대해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는 걸 넌지시 일깨워주려는 걸까?


  아니면 등장인물들은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우연히 상황과 이름이 비슷할 뿐, 같지가 않은 것이다. 평행 차원 이론을 따르면 가능하다. 작가는 같지만 다르다는 다른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도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SF가 아니니까, 이건 내 헛된 망상이다.


  나 참, 소설에 대한 감상을 하라니까 망상을 하고 앉아있다. 불성실한 독자다. 하지만 이건 불친절한 작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슬쩍 투덜거려본다. 작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공감대 형성 실패다. 독자도 불성실하고 작가도 불친절하다. 하지만 이게 이 작가의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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