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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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王國

  작가 - 나카무라 후미노리




  한 편의 범죄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정부를 비밀리에 움직이며 반복하는 두 집단,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는 미모의 여주인공. 거기에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이 조직에서 점찍은 관료나 명사들을 유혹해 이상한 사진을 찍거나 정보를 캐내오는 것이니, 그야말로 첩보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창녀라고 나오지만, 외모와 지략을 갖춘 요원이라고 볼 수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표현을 빌면 얼굴과 두뇌가 일치하는 드문 예이다.


  거기에 아픈 과거를 지닌 유일한 친구 에리와 그녀의 아들 쇼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면서 공허함도 마음 한구석에 품고 있다. 그녀가 그 세계에 발을 디딘 것은 친구 아들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죽자, 그녀에게는 지킬 것이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야다라는 남자가 시키는 대로 일을 하고 돈을 받을 뿐이다.


  그러다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하세가와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다. 그의 소개로 보육원장 곤도를 만나고 오는 날, 누군가 그녀에게 경고를 한다. 그가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야다가 시킨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 정체불명의 집단에서 저지른 것으로 판명되고, 급기야 살인 혐의까지 쓸 위험에 처한다. 야다는 곤도, 다른 이름으로는 긴자키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오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곤도측에서는 그녀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야다의 정보를 빼오겠는지 아니면 죽겠는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이제 그녀는 목숨을 건 위험한 줄타기를 시작한다. 그녀에게 지킬 것이 생겼다. 죽은 에리와 쇼타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야한다.


  이 책에는 두 명의 여성이 나온다. 에리와 주인공이다. 에리는 나쁜 남자에게 걸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짓밟힌다. 그녀에게는 사랑이었지만, 그에게는 단지 유흥거리에 불과했다. 사람을 극한의 상황에 몰아넣고 절망에 빠진 광경을 즐기기 위한 도구였다.


  주인공 역시 나쁜 남자에게 걸렸다. 긴자키와 야다 둘 다 좋은 남자는 아니다. 그들에게 그녀는 자신들의 일에 효과적으로 이용해먹을 수 있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말은 달랐다. 그녀는 절망에 빠지기보다는 역습을 가하려고 했다.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기보다는 살아남고자 했다.


  후자의 방식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길 수가 없다고 해도, 그냥 패배를 인정하고 자포자기하는 건 별로다. 물론 내가 그런 일을 당한다면, 음. 에리처럼 행동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되었건, 그래서 주인공의 행동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고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글은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느껴지면서 속도감도 있었다. 동시에 그러면서 몇몇 문장은 서정적이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인간들이 벌이는 행태는 역겹고 추악하지만, 그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 대한 묘사는 시적이었다. 이런 묘한 모순이 이야기에 특이함과 개성을 부여했다. 또한 중간 중간 사람들의 내적 감정을 외적인 달에 대입해서 표현하는 부분도 있는데, 마음에 들었다.


  일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녀는 하늘을 본다. 인간이 사는 지상은 천박하고 외설스러운 네온 불 속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곳이다. 하지만 거기를 벗어난 하늘은 네온 불빛까지 비춰주는 달이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픈 그녀의 속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녀가 기자키, 그러니까 곤도에게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에도 달은 하늘에 떠 있었다. 하지만 그 때의 달은 조금 달랐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면서 빨간 빛을 내뿜는다. 어쩌면 그때의 달은 곤도의 광기나 그녀의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달도 빛을 잃는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녀는 절대로 어둠과 달에서 벗어날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득 그녀는 달의 아이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둠을 비추는 달의 보호를 받는, 달과 교감을 하는 달의 아이. 아, 낭만적이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글자 위에 점이 붙어있는 경우가 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어린 십대 소녀들이 열광하던 로맨스 소설에서 글자 하나하나에 점을 찍어서 강조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그. 입.다.무.시.죠?’ 이런 거. 이 책은 옆이 아니라 위에 점이 있어서 읽기에 불편했다. 글자 사이 간격이 팍 줄어들면서 좀 거부감이 들었다. 강조를 하기 위함이라는 건 알겠는데, 음 내 취향의 표기법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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