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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제너레이션 - 좀비로부터 당신이 살아남는 법
정명섭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5월
평점 :
부제 - 좀비로부터 당신이 살아남는 법
작가 - 정명섭
이 작가는 분명히 미국 드라마 '워킹 데드'나 영화 '28일 후' 시리즈를 즐겨봤던 게 틀림없다는 확신을 했다. 또한 다른 좀비 관련 서적이나
영화를 챙겨봤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으니까. 하긴 작가도 대놓고 말하고
있긴 하다. 어떤 영화에서는 이렇게 행동을 했지만, 한국은 환경이 다르니 똑같은 방법을 취하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은 총 4단계로 나뉘어, 좀비가 나타났을 때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나 알려주고 있다.
1장 … 발생 : 징후부터 경고 단계까지
2장 … 대비 : 경고부터 확산 단계까지
3장 … 이동 : 확산부터 봉쇄 단계까지
4장 … 탈출 : 봉쇄부터 진압 단계까지
왜 좀비가 한국에까지 나타났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그건 대다수의 좀비 관련 작품들도 그러하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이나 영화 '데블스
플레이그라운드'같은 작품만 신약 개발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언급될 뿐이다.
주인공은 상수동에서 카페를 하는데, 좀비와 세계 종말 같은 음모론을 연구하는 프리덤 워치라는 모임의 기록을 줍게 된다. 카페에 왔던 모임 회원이
놓고 간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이유는 모르지만 한국에도 좀비가 나타나면서, 하룻밤사이에 서울이 황폐화된다. 주운 기록을 바탕으로 그는 용케
좀비들에게서 몸을 숨긴다. 그리고 이후 자신이 경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합정동에 있는 대피 장소로 향한다. (참고로 소설에 나오는
상수동과 합정동은 버스로 두세 정거장 거리이다. 천천히 걸어도 삼십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서울이라니! 상수동이라니! 합정동이라니! 소설의 배경이 우리 집과 멀지 않은 곳이라, '헐'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좀비로부터 살아남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지만,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야말로 행운의
사나이였다. 대피 장소로 지목된 합정동 건물과 가까운 상수동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고, 때마침 좀비에 대해 연구하고 경계하던 프리덤 워치의 기록을
운 좋게 주워서 읽을 기회가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에 군인에게 구출이 된다. 옆에는 아이돌로 데뷔를 하려던 예쁜 아가씨도 있고…….
나처럼 주택가에 살고, 대피 장소와는 조금 거리가 있고, 운동 신경도 많이 부족하고, 총기류는 다루지도 못하는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 전에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 감상글에 달았다시피, 그냥 대세를 따라서 좀비가 되는 게 편하지 않을까?
소설은 아쉬웠다. 좀비라는 소재가 독특했고, 요즘 유행이라서 시기적절하긴 했다. 그런데 그냥 그 소재에 의존한 책 같았다.
본문에서도 나왔지만 한국은 총기를 개인이 보유할 수 없다. 그래서 외국 작품들처럼 좀비들에게 헤드샷을 날리거나, 폭탄을 터트리며 날고뛰는 액션
장면을 기대할 수 없긴 하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미 외국의 좀비 작품을 접한 독자의 눈에 이 소설은 빈약하다.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과정도 밋밋했고,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도 그렇게 긴장감을 주지 못했다. 너무 쉽고, 톡 쏘는 탄산 맛이 사라진 사이다를 마시는 느낌이었다. 4장은 진압단계라고
소제목이 있긴 하지만, 확실히 진압이 된 것도 아니었다.
또한 본문에는 좀비 이외에도 약탈자라는 무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런데 책에서는 주인공이 그 무리와 접점이 없었다. 그냥 이런 무리가 있는데
위험하다고만 언급하고 끝이다.
그런데 그 집단까지 다루려면 주인공이 군인에게 구출되면 안 된다. 그러려면 내용이 좀 더 길어져야하고, 사람들도 더 많이 나와야한다.
약탈자들이란 집단을 이룬 상태에서 등장해야하는 존재들이니까.
그래서 아쉬웠다. 그들을 등장시켜서 인간끼리의 갈등까지 다루었다면? 이건 내 욕심이려나? 어쩌면 작가는 그냥 좀비가 등장했을 때 지켜야할
매뉴얼만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2부가 나와서 약탈자와 다른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라든지 정체기에서의 삶에 대해서 다룰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 식의 글이라면 책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진지하고 암울하며 비참할 것이다. 책장도 지금처럼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이 책만의 장점이 사라질 테니 그건 패스.
이런저런 부분을 생각하면서 다른 좀비 소재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그냥 좀비 사태 발생 시 초기 생존 지침서라고 해도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진짜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느 정도 도움은 될지도 모르겠다.
문득 몇 달 전에 들었던 외신이 기억난다. 미국에서 들려온 살아있는 사람을 뜯어먹고 있던 사람에 대한 뉴스였다. 신종 마약의 영향이라고 발표는
났지만, 설마 좀비가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모든 음모론의 중심이라는 평을 듣는 나라니까. 51구역부터 시작해서……. 음,
이 책에 나온 준비물이라든지 대비책을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그보다 운동을 시작해야겠다. 잘 뛰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