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제프 페럴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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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mpire of Scrounge

  부제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저자 - 제프 페럴



  간혹 미국 드라마를 본다거나 뉴스 사진을 보면, 커다란 카트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개 쇼핑 몰에서 온갖 생필품에서 식재료 내지는 다양한 상품들을 담는 카트이지만, 거기서 본 카트에는 다른 것들이 담겨있다. 불룩한 비닐봉지가 여러 개 옆에 주렁주렁 달려있고, 카트 안에는 상자나 캔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것을 미는 사람들은 쓰레기에서 쓸 만한 것을 주워 자기들이 사용하거나 돈이 될 만한 것을 팔고 있었다. 대개 쓰레기를 주웠는데 그 안에 시체가 들어있다거나, 술이나 약에 취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다가 사건의 목격자가 되는 전개가 흔하다.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서 빈 병이나 캔 내지는 종이와 신문 종이 상자들을 모으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골목에도 그런 일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그래서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버릴 종이 박스나 신문이 생기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할머니 댁 앞에 놓아둔다. 막내 조카도 자기 집이나 우리 집에 택배 상자나 선물 상자가 생기면, 주섬주섬 모아서 그 집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간혹 골목 입구에 장롱이나 상, 책상 컴퓨터 같은 것이 버려져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쓸 만한 걸 가져가곤 한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주의 깊게 보면서, ‘이거 잘 씻으면 괜찮겠지?’라든지 ‘우리 집 상다리하고 맞으려나?’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귀신 붙었다고 오래 된 물건을 꺼려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사실 최근에는 사람들이 귀신이 붙을 정도로 물건을 오래 사용하지도 않는다. 귀신의 귀자를 꺼내는 순간, 한심하다는 듯이 볼 것이다. 내 경험담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어디서 바구니를 주워 오시기에 ‘엄마 귀신…….’이라고 했다가 이상한 소리 한다고 등짝 스매싱을 당했었다.


  전에 우리도 밥그릇이 한두 개 깨져서 새로 세트를 맞춘다고 남은 것을 버린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어느 집에 가서 괜찮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두 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가봤더니 이미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갑자기 왜 미국 드라마와 동네 얘기를 하느냐면, 이 책이 그런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8개월 동안 동네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가져다가 파는 사람들과 나눈 교류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부의 반응과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왜 아직 쓸 만한 것을 버릴까? 필요가 없기 때문에 버릴지도 모른다. 또는 유행이 지나갔거나 거 좋은 게 나와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왜 필요 없는 것을 샀을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거듭하다보면, 자연스레 과소비라든지 과잉 생산, 자원 고갈과 자원의 재활용 그리고 분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물론 책에서는 단순히 필요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예도 나온다. 기억하기 싫고 간직하기 싫은 과거 추억의 잔재들이기에 버리기도 한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빼고, 저자는 얼마나 많은 쓸 만한 것들이 버려지고, 그것이 수집되고 어떻게 재활용되거나 돈과 바뀌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 겪은 경험담이나 대화를 곁들인다.


  또한 미국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이고 현실 반영이 되지 않았는지 일침을 가하고 있다. 보기에 좋지 않다고 쓰레기를 주로 모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없애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얘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확실히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저자는 쓰레기 탐색자들이 생존을 위한 수집을 하는 것은, 사회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존재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라면, 굳이 없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활용을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다면, 그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둘째조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아나바다 운동’이 아주 활발했었다. 또한 학교별로 알뜰 매장이라는 것을 분기마다 개최했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졌다. 그냥 애들이 싼값에 떡볶이 같은 간식과 장난감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만을 주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환경이나 의식이 바뀐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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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밤에 생긴 일 - [초특가판]
에이치디디브이디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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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It Happened One Night, 1934

  감독 - 프랭크 카프라

  출연 - 클라크 게이블, 클로데트 콜베르, 월터 코놀리, 로스코 칸스



  아카데미 주요 5개 부분(작품, 감독, 남녀주연, 각본)을 휩쓴 최초의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이라는 한글 제목에 혹해서 본 영화이다. 제작년도를 감안해서, 우연히 사건에 휘말린 남녀의 얘기를 그렸을 것이라 지레짐작을 했다. 하지만 전혀 그런 내용은 없고, 요즘 흔히 보는 로맨틱 코미디의 원형을 보게 되었다. 내가 바라던 추리 호러 스릴러는 안 나오지만, 유쾌하게 볼 수 있었다. 그래, 가끔 이런 영화도 괜찮다.


  부유한 은행가의 딸인 엘리는 가출을 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엄청난 보상금을 걸고 그녀를 찾기 시작한다. 그런 줄 모르는 엘리는 난생처음 타보는 버스에 좋아하고, 신문기자인 피터는 버스에서 그녀와 마주친다. 처음엔 말괄량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가 마치 물가의 아이처럼 느껴져 돌봐주게 된다. 물론 그녀의 가출 동기를 알아내서 특종을 잡아보자는 속셈도 있었다.


  여기까지는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 Roman Holiday, 1953’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다음이 좀 다르다.


  휴게실에서 버스를 놓친 엘리를 따라다니면서 돌봐주기도 하고,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는 피터. 그 와중에 둘은 서로에게 반하고 만다. 결국 피터는 그녀와의 결혼 자금을 마련하고자, 엘리의 아버지에게 보상금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 장면을 본 엘리는 그를 오해하고, 아버지가 정해준 약혼자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나중에야 그의 진심을 알게 된 엘리. 결혼식장을 뛰쳐나오는데…….


  결혼식장을 뛰쳐나오는 영화라고 하면, ‘졸업 The Graduate, 1967’이 떠오른다. 분위기는 좀 많이 다르지만.


  내용을 보면, 요즘 로맨틱 코미디물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특히 몇몇 장면들은 등장인물만 바뀌었지, 설정이나 장면 구도는 지금도 사용된다.


  한 방에서 자게 되었을 때 이불을 가운데 걸쳐놓고, 넘어오지 말라는 장면이나 처음엔 가난하다고 반대하던 신부의 아버지가 남자의 배짱에 반하는 것, 그리고 밤중에 길에서 다투고 혼자 가던 여자가 나중에 나타난 남자의 품에 안겨 우는 것 등등.


  게다가 그 유명한, 여자가 치마 걷어 올리며 지나가는 차 세우는 장면까지! 또한 툴툴거리면서 여자를 번쩍 안아들고 개울가를 건너는 장면은, ‘음, 피터는 츤데레’라는 말이 나오기 충분했다.


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결국 우리는 1930년대의 원형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은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있는 셈이다. 변화라고 해봤자, 남녀의 부유함이 바뀐다는 것 정도? ‘이 영화만 보면, 로맨틱 코미디 100% 완전 정복!’이라고 광고해도 될 것 같다.


  아, 어디선가 얼핏 보기에는 여배우들이 클라크 게이블과 연기하기 싫다고 다 거부하는 바람에 별로 안 유명한 클로데트 콜베르가 주연을 맡았다고 한다. 구취 때문이라고 하는 글도 보았는데, 하긴 예전에는 치과가 요즘처럼 좋지 않았겠지. 클라크 케이블 정도면 단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수십 가지는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신은 공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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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하구나?
와타야 리사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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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かわいそうだね?, 2011년

  작가 - 와타야 리사




  두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불쌍하구나?’와 ‘아미는 미인’


  두 작품 다 20대 미혼 여성의 미묘한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꼭 20대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각각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타인을 대해야하는 사람들에게 다 해당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각각 사랑하는 남자 친구나 고등학교 절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냥 속마음을 감추고 이해심 많고 배려 잘하는, 착하고 좋은 여자로 남길 원했다. 그와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속병도 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표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그들은 착한 여자라는 가면을 벗고 싶지 않았다. 그걸 벗어던지면, 자신의 존재 의의가 사라진다고 믿었으니까.


  ‘불쌍하구나?’의 주인공 쥬리에는 남자친구 류다이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걸핏하면 서양 스타일을 외치는 그. 아무리 외국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그녀가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 여자 친구 아키요와의 문제이다. 아무리 집세를 못 내서 쫓겨났다고 해도, 전 여자 친구를 자기 집에서 머무르라고 하다니! 그는 방귀 낀 놈이 성낸다고, 그걸 용납하지 못하는 쥬리에를 이해심도 없고 쿨하지 못하다고 나무란다. 살 곳이 없는 아키요가 불쌍하지도 않냐며, 자기를 말리려면 차라리 헤어지자고 말한다. 그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울며 겨자 먹기로 두 사람의 동거를 받아들이기로 한 쥬리에. 하지만 모든 것은 그녀의 생각대로 되질 않는다.


  책을 몇 장 읽자마자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류다이, 너 이XX 좀 맞자.’ 딱 보니까 아키요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어떻게 다시 해보려고 기회를 노리는 것 같은데, 이 남자는 그런 걸 전혀 모른다. 그리고 결국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이 남자, 겉으로는 불쌍하니까 도와야한다는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그러면서 여자가 자신에게 의존하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겉으로는 강한 여자가 좋다고 하지만, 약해보이는 여자에게 보호 본능을 느끼는 걸지도 모르겠다. 동화 속의 공주님들이 하릴없이 창가에서 왕자님 오기만을 기다린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쥬리에가 내 동생이라면 당장에 헤어지라고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설득했을 것이다. 저 놈은 이미 글렀어, 같이 사는 걸 용납 못하면 헤어지자고 하잖아. 양 손에 여자 하나씩 들고 간 보겠다는 거야. 너 그렇게 이해심 많은 여자 친구 역할만 하다가, 뺏긴다니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잖아. 그거 거꾸로 하면 자주 보면 정든다는 말이야. 아아, 나라면 SNS에 류다이의 무신경함과 아키요의 후안무치한 뻔뻔스러움을 공개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쥬리에, 이 착해빠진 것. 아무리 착해도 네 밥그릇은 뺏기지 말아야지.


  이 이야기를 읽고 애인님에게 ‘자기 만약에 혹시라도 불쌍하다고 다른 여자 거둬주면 우린 끝이야! 친구라도 같이 사는 건 난 싫어!’라고 했다가 혼났다. 자기는 생각하지도 않은 일을 혼자 상상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이상한 책 좀 그만 읽으라고 잔소리를 들었다. 이상한 책 아닌데, 흑흑. 이건 다 재수 없는 류다이 때문이다. 나쁜 XX!



  ‘아미는 미인’의 주인공 사카키는 너무도 예쁜 친구 아미가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다. 언제나 자신은 그녀의 뒤에 머물러있는 존재감 없는 시녀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미의 결혼 상대자를 보는 순간 그녀는 복잡한 감정에 휩싸인다. 그는 어딜 봐도 아미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왜 하필이면 공주님인 아미가 저딴 남자와? 우연히 만난 대학 동창 고이케의 심리 분석을 들으면서, 사카키는 자기도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알게 되는데…….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뜨끔했다. 혹시 내 과거를 작가가 엿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카키의 과거가 어쩐지 남 얘기 같지 않았다. 그래서 고이케가 그녀의 심리를 나름 해석하고 설명하는 부분에서 조금 마음이 아팠다. 나도 예전에 그런 심정이었을까?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래서 내가 그 아이와 멀어지게 된 거구나. 만약에 그 때 주변에 고이케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 책에서 읽고 느꼈던 것을 그 당시에 알았더라면, 내가 조금 더 신중하고 내 자신과 주변에 대해 냉철하게 파악을 했더라면, 지금도 그 아이와 연락을 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을까? 아니면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더 속으로 파고 들어갔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뭐라고 딱 꼬집어 정의할 수 없는, 후회 같기도 하고 어쩌면 미련일지도 모르는 감정을 느꼈다. 첫 번째 이야기를 읽으며 느꼈던 황당함과 분노는 사라지고, 내 어린 시절의 철없음에 대한 반성만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참으로 어리석은 아이였던 것 같다.


  불쌍하구나? 내 어린 시절아. 하지만 내 미래는 불쌍한 삶이 되지 않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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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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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저자 - 박수현



  이런저런 생각이 든 책이었다. 저자는 열 두 개의 소설 속에서 열한가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로 사랑을 읽고, 사랑으로 소설을 읽다’라는 띠지에 적힌 문장이 딱이라는 느낌이었다.


  소설을 얘기하기 위해 사랑 위주로 서술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대해 말하기 위해 소설을 선택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저자가 모 인터넷 신문에 ‘연애 상담소’라는 칼럼을 연재한다고 하니, 어쩌면 후자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소개한 열 두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사실 있는지조차 몰랐던 소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접하지 않은 소설과 관련되어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면,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잠깐 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단지 책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사례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괜찮았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유형은 다양하고, 읽기에도 참으로 힘들어 보였다. 인간이라면 누군가 또는 무엇엔가 애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데, 한번쯤은 겪어보는 그런 보편적인 감정일 텐데, 왜 그리도 힘든 것인지…….


  소설 속의 어떤 이는 상대를 사랑하지만 제대로 응답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고독에 빠지게 된다. 또 누군가는 상대를 끝없이 의심하고 자기가 만들어놓은 환상 속에 상대를 맞추려고 하다가 결국 파국을 맞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불안하고 또 불안해하다가 결국 서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책에 나온 사랑에 대해 읽다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수학 문제보다 풀기 어려운 것이 연애라고. 확실히 그렇다. 어쩌면 수학 문제는 답이 정해져있고, 내가 혼자 풀면 되는 것이라서가 아닐까? 연애라는 것은 내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호감을 표현하고 사랑을 갈구해도, 상대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도, 내가 싫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책에서 나온 대로 우연에 우연이 자꾸 겹쳐서 사랑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바로 운명 내지는 붉은 실의 인연일 수도 있겠다.


  아, 그래서 사랑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도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까지 알려고 하니까, 똑같은 것을 두고 난 A라고 말하지만 상대는 B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나와 상대의 표현법이나 생각하는 것이 같지 않으니까.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의심하고 불안하고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 사람이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길, 내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길,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바디 스내처’처럼 획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이 넓은 세상에서 온전히 날 이해해주고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양한 연인들의 얘기를 따라가면서,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음, 나도 그랬지. 맞아, 비슷해. 아, 이 사람도 그랬구나. 39쪽에 나온 사랑이 깊은 커플일수록 지독하게 잘 싸운다는 문장을 보고는 뜨끔했다. 생각해보니 연애 초기에는 많이 다퉜다. 걸핏하면 애인님은 한숨을 쉬고, 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환상 속의 틀을 만들어서 서로를 끼워 맞추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예상대로 안 되면 실망하고 왜 내 뜻대로 안 해주냐고 서운해 했다. 난 대놓고 말하는 편이고, 애인님은 속으로 삭히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말하는 스타일이고…….


  열 두 권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읽은 기분이 들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서로를 파멸로 이끄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직 확신을 갖고 있는지 차분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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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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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저자 - 정강현



  노래를 자주 듣는 편이지만, 인디 음악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아무래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잘 나오지 않아, 접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홍대 클럽을 가는 것도 아니고.


  저자는 몇 번 예능 프로그램이나 심야 시간에 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은 봤을지도 모르는, 또는 아예 생소할 수 있는 인디 밴드들에 대해 적고 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 적혀있는 밴드 소개 글이나 위키피디아같은 백과 사전류의 기록과는 다르다. 그들이 데뷔한 해나 멤버 수, 앨범 판매, 공연 횟수 같은 숫자나 기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과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 있었다. 특히 밴드들의 노랫말에 집중하였다. 저자가 소개한 몇몇 노래 가사들은 아름다웠고, 애절했으며, 동시에 처절했고 자유분방했다.


  ‘1부 생활 저항의 록 스피릿’에서는 록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들에 대해 얘기한다. 자유분방하면서 저항적인 노래를 하는 그들의 노랫말에서 젊음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2부 두근거리는 무한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스카라든지 재즈, 국악 그리고 바로크 메탈처럼 낯선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고집스러우면서 순수한 열정을 가진 마음이 소개된다.


  ‘3부 소박한 소리들의 풍경’은 소규모 밴드라고 하여, 보컬과 기타 하나로 노래하는 그룹이 등장한다. 단출하지만 감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멜로디와 노랫말을 보여준다. 쓸쓸하기도 하고 애달프기도 하며 때로는 청춘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을 드러낸다.


  ‘4부 당신이라는 유일한 음악’은 혼자서 노래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싱어 송 라이터라 불리는 자들이다. 자신의 감성을 고스란히 멜로디와 노랫말 그리고 음색에 담아내는 그들만의 독특한 철학을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부럽기만 하다. 비록 사람들이 기준을 세워놓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들 나름의 만족과 성취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인디하면 떠올리는 경제적인 문제 같은 것들이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것들은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 책은 사회 비판물이 아니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책은 부드럽고 온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저자가 그들을 보는 시선이 따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응원하고 격려하는, 엄마 미소로 그들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그래서 의미를 가진다. 주류가 아니면 기록에 남겨지기도 힘든 세계에서, 어쩌면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는 인디 밴드들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이고,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서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그룹들의 사진이 다 들어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누구는 사진이 있고, 누구는 없고. 그 부분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어쩌면 사진은 올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욕심 같아서는 공연하는 사진이라도 있길 하고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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