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6 : 말하다 나는 오늘도 6
미쉘 퓌에슈 지음, 브루노 샤젤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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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Parler, 2012년

  저자 - 미셸 퓌에슈



  ‘나는 오늘도’라는 총 아홉 권짜리 철학 에세이의 하나이다. 각권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저자가 그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사랑하다’, ‘설명하다’, ‘먹다’ 등등이 있다. 내가 고른 책은 ‘말하다’이다.


  책은 무척이나 얇고 그림까지 들어있어서, 다른 철학에세이에 비하면 그리 많은 글이 들어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의 범위는 다른 책 못지않게 폭이 넓고 깊었다. 아, 이런 식으로 생각이 뻗어갈 수도 있구나하는 감탄도 들었다. 시작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평범하고 사소한 것이지만, 이후 진행은 그 이상이었다.


  저자는 말하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얘기한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동물들이나 기계가 인간과 똑같이 말을 한다면, 그것들이 끔찍할 정도로 사람처럼 보일 것이라 말한다.


  하긴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돼지나 소를 잡아먹는데 상당한 문제가 생길 것이다. 살려달라고 비는 돼지나 소의 목을 어떻게 칠 수 있단 말인가? 반대로 그런 돼지나 소의 고기를 먹을 수 있다면, 같은 인간끼리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말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한다.


  초반 20페이지까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저자의 페이스에 휘말린 것 같았다. 저자가 의도한 대로 생각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게 바로 논리의 힘인가?


  이후 저자는 말이라는 것이 인류 문명의 발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풀어놓는다. 말이 있어서 후세에 기술을 전달하기 쉬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을 배우는 것은 바로 세상을 배우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또한 사람에게 이름을 붙여야 누군지 알고 그 사람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논한다.


  이 부분에서 문득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떠올랐다. 아, 그런 거구나. 그래서 시인은 내가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고 했던 것이구나. 그래서 빛깔과 향기에 어울리는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길 원했던 것이구나. 예전에 단지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시의 내용이 다시금 떠오르면서, 그 때보다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시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 그건 망상이지만, 적어도 예전보다는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저자는 말과 감정의 관계에 대해 얘기한다. 그리고 사람사이에 말이 끼치는 영향도 언급한다. 하고 싶은 말, 하기 싫은 말, 감추고 싶은 말에 대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읽으면서 무척이나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대화는 합의에 이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는 문장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렇지’라고 중얼거렸다. 지금 사회를 보면 그 대화가 부족해서 벌어진 많은 불행한 일들이 많다. 작게는 내 주변도 그렇고, 넓게는 나라 전반을 봐도 그렇다. 대화가 없으니 이해도 없고 배려도 없고 합의도 없다. ‘말’이라는 아주 좋은 수단이 있는데, 그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침묵도 얘기하고 있다. 사람들이 왜 침묵을 못 견디는지 원인을 파악하며, 그것이 심리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침묵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음, 내가 생각하기에 침묵이 필요하긴 하다.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여유는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것도 단기간의 침묵이어야지, 끝없는 침묵은 절대 좋지 않다고 본다.


  앞에서 느꼈던 것처럼,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저자의 논리에 휘말려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기분이 나쁘지 않은 휘말림이었다. 어쩐지 내 생각이 깊어지고 폭이 넓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지만, 괜찮았다. 다른 시리즈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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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P.D.: 알.아이.피.디.
로베르트 슈벤트케 감독, 제프 브리지스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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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원제 - R.I.P.D., 2013

  감독 - 로베르트 슈벤트케

  출연 - 라이언 레이놀즈, 제프 브리지스, 케빈 베이컨, 데빈 래트레이




  성격이 완전 딴판인 두 남자가 짝을 이루어 사건을 해결하는 형사물은 꽤 많다. 특히 한 명은 고참이고 다른 한 명이 신참인 경우, 고참의 노련함과 신참의 패기가 어우러지면서 묘한 재미를 이끌어내곤 한다. 그 중 재미있게 본 것에 ‘리썰 웨폰 Lethal Weapon , 1987’시리즈가 있고, ‘맨 인 블랙 Men in Black , 1997’ 시리즈가 있다.


  이 영화도 어떻게 보면 위에 예로 든 시리즈물과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성격이 다른 두 남자. 노련한 고참과 패기의 신참, 그리고 배후에 숨겨진 엄청난 음모. 특이한 것이 있다면, 두 남자는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계인을 통제 관리하는 기관이 있으니, 유령을 감시하는 조직이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미국에는 없는 게 없는 모양이다. 이 정도 설정이면, 거기에 출연진의 이름을 보면, 재미있을 거라 예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당연히 재미있어야 하고 말이다. 경찰이 아닌 과학자 세 명이 나오는 ‘고스트 버스터즈 Ghostbusters , 1984 ’도 얼마나 재미있었는데!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요새 나온 영화답게 CG 멋지고 액션씬 폼 나긴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엉성했다.


  우선 주인공인 닉의 캐릭터가 이상하다. 영화 광고에 보면 그가 마치 정의감에 넘치는 사람인 것처럼 나오지만, 글쎄? 파트너에게 배신당해 죽기는 하지만, 사실 그도 압수품을 빼돌리는 데 가담하긴 했다. 거기서 발을 빼려다가 파트너에게 살해당하긴 하지만 말이다. 머리가 나쁜 건가? 파트너가 하는 짓을 보면서 그가 물건 빼돌리는 일을 한두 번 했는지 아닌지 파악을 못한 걸까? 공범에게 일에서 빠지겠다고 하면 다들 어떻게 하는지 영화나 소설도 안 본 건가?


  하여간 그가 그렇게 죽자, 저승에 있는 R.I.P.D.로 스카웃 되가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재능을 갖고 있다고 담당자가 말하는데,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딱히 유령을 잘 잡는 것 같지도 않고, 정의감이나 사명감 같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영화 내내 그가 보여준 것은 어떻게 하면 자기를 죽인 파트너에게 복수를 하고, 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어떤 식으로 알릴 것인가 노력하는 모습뿐이었다. 자기 장례식장에 떡하니 나타나서 부인 이름 부르면, 그녀가 자기를 알아보고 눈물의 재회를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도대체 뇌는 어따 쓰려고 갖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조금만 생각이라는 걸 하면,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거나 예전과 달라졌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느 조직이 죽은 사람을 떡하니 예전 그 모습 그대로 내보낼 거라고 생각한 거지?


  게다가 만약에 그의 파트너가 그냥 일반적인 부패경찰이었으면 그의 행동에는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령 잡는 경찰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인간의 일에 끼어들려는 거니까 말이다. 다만 그가 유령과 관계된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었기에 그가 끼어들어 간섭을 해도 허용이 된 것이다.


  주인공도 마음에 안 들었고, 악역을 맡은 인간 파트너도 별로였다. 어떻게 그런 멋진 아이템을 갖고 고작 하는 짓이 그런 건지……. 그리고 주인공을 협박한답시고 하는 일 역시 쪼잔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남자가 말이지, 응? 스케일이 크게 놀아야지, 응? 겨우 그딴 걸로 만족하다니! 실망이야! 보이스 비 앰비셔스 Boys be ambitious 몰라? 응? 이젠 보이가 아니라 맨이라 그런 거야? 응? 케빈 베이컨 실망이야!


  거기다 사건이 너무 쉽게 해결된 기분이었다. 막판에 싸우는 장면도 엉성하고. 마치 쿠르릉 쾅쾅 뱃속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너무 아파서 식은땀을 흘리며 화장실에 갔는데, 변은 손톱만큼 나오고 만 그런 느낌?


  그냥 CG만 멋졌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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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갯벌의 비밀을 들려줄게 쉿! 시리즈 1
노경수.남현우 글.사진, 이효실 그림, 최재천 감수 / 청어람주니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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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노경수

  사진 - 남현우

  그림 - 이효실

  감수 - 최재천



  아이들에게 읽힐만한, 갯벌에 관한 간단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갯벌에 사는 동물 약간 나오고, 식물 좀 등장하고, 갯벌이 뭔지 설명하는 게 다일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그 예상은 완벽하게 어긋났다.


  이 책은 단순한 어린이용이 아닌, 한국 갯벌에 대한 생태 조사서였다. 풍부한 사진과 그림,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 어른들이 보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왜 내가 어릴 적에는 이런 멋진 책이 나오지 않았을까? 요즘 애들은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 좋은 세상이 된 만큼 공부해야할 양은 늘어났지만 말이다.




  책은 우선 갯벌이 무엇인지 얘기한다.


  어떻게 왜 갯벌이 형성되는지 다루면서, 밀물과 썰물 현상까지 나온다. 그리고 자연스레 퇴적 작용이라든지 달과 지구의 관계에까지 범위는 다다른다. 어릴 적에 과학 시간에 어려운 용어라고 생각했던 것들인데, 이 책에서는 그것들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


  세계 5대 갯벌 지역에 우리나라의 서해 갯벌이 들어간다는 사실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단다.




  갯벌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그곳에 누가 살고 있는지 알아볼 차례이다. 두 번째 장에서는 갯벌에 살고 있는 생명체에 대해 배운다.


  그렇게 다양하고 많은 종류가 살고 있는 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조개랑 게랑 지렁이만 산다고 생각했는데, 조개도 종류가 많았고, 게도 지렁이도 바다 식물도 다양했다. 그 뿐이 아니라, 그것들을 먹고 사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새도 많았다. 아, 난 진짜 과학을 싫어했거나 주위 생명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나보다. 어떻게 된 게 다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그건 책을 본 조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게 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단 말이야?”라면서 놀라워했다. 왜 자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냐고, 여름에 꼭 책에 나온 갯벌에 가야한다고 난리를 피웠다.


  갯벌에 대해 알고 거기에 사는 생물에 대해 배웠으면, 이제 갯벌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배울 순서이다. 세 번째 장에서는 인간과 갯벌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어떻게 갯벌을 이용하고 거기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등등. 중요한 것은 갯벌을 인간의 편의에 맞춰서 개조해서 이용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두면서 필요한 것을 얻는 점이었다. 자연을 인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에 맞추는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네 번째 장에서는 한국에 있는 갯벌의 지역별 소개와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각각의 위치와 체험관의 전화번호까지 적어주어, 여름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각 지역 갯벌의 특징도 곁들여있어, 미리 알고 가면 좋을 것 같았다.


  다섯 번째 장은 갯벌이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갯벌이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몇 년 전에 있었던 기름 유출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때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갯벌의 입을 통해 들어보니, 생각보다 심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카도 자기 입에 기름이 덕지덕지 묻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 뒤를 이은 여섯 번째 장은 갯벌을 살리자는 말을 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맞는 말이다. 갯벌은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를 위한 삶의 공간이니 말이다. 남의 주거지를 침범하면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예고도 없이 부순다고 하면 얼마나 황당할까? 내 집이 소중하면, 다른 존재의 집도 소중한 법이다. 지구엔 우리만 사는 게 아니니까.


  일곱 번째 장은 모래 언덕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막에만 있는 줄 알았던 모래 언덕이 한국에도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냥 머드팩축제나 열리고 조개 몇 개, 게 몇 마리만 사는 곳이라 여겼던 갯벌이 보기보다 많은 생명체들의 거주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풍부한 사진과 그림으로 다양한 생물들의 모습을 보여주어, 글자로만 읽는 것보다 더 와 닿은 느낌이었다. 단순히 여름에 놀러가기 전에 읽으면 괜찮겠다던 안일한 생각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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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주인자리 네오픽션 로맨스클럽 2
신아인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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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신아인



  나만 그럴지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을 때 기본 설정이나 글의 구성이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면 진도 나가기가 힘들어진다. 뭔가 거슬리는 것이 마치 거스러미가 생긴 것 같다. 의식하건 안하건 나도 모르게 손이 가고 신경이 가는 그런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느껴졌다.


  신우는 그의 두 동생인 이엘과 승윤과 같이 1918년 무오년에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의 영향으로 뱀파이어가 되었다. 그의 조카인 유민 역시 뱀파이어인데, 그녀는 아버지 준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그녀가 죽을병에 걸려 사경을 헤맬 때, 준수는 딸을 살리기 위해 뱀파이어인 형 신우의 피를 주입했다. 그 때문에 유민은 뱀파이어가 되었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아버지를 증오했다.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 형제와 한 명의 소녀는 서로를 증오하는 마음과 죄책감 그리고 인간의 피를 먹자는 의견과 그러지 말자는 의견으로 나뉘어 반목하고 동시에 걱정하며 살아왔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한편 어릴 적 기억 없이 고아원에서 정체모를 사람의 후원으로 자란 수안. 그녀는 준수가 운영하는 거대 향수 회사 헤라에서 근무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산타라 이름붙인 자신의 후원자에게서 맡았던 향기를 향수로 만들기로 한다. 희미하게 남아있지만 잊을 수 없는 그의 향. 그런데 우연히 신우와 스치듯 지나간 그녀는, 그에게서 산타의 향을 맡는다.


  신우 역시 수안의 피가 죽어가던 식물에게 생기를 주는 것을 보고, 혹시 그녀가 자신들을 인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닐까 의심한다. 그녀의 능력을 알고 있는 진짜 산타였던 이엘은 신우가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하지만, 수안의 마음은 이미 그에게 향해있는데……. 게다가 준수마저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리면서 사태는 급박하게 변해간다.


  읽다가 ‘응?’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것은 준수에 대한 설명 부분이었다.


  그는 뱀파이어가 아니라고 나온다. 그러면 그 당시 유민이라는 열 살 먹은 어린 딸이 있었으니, 아무리 어리게 잡아도 스물다섯 살은 넘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적어도 백 스물다섯 살. 그런데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을 한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신우와 이엘을 외부에는 아들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아무리 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고 자기 관리에 철저했다고 해도, ‘그렇구나.’라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승윤이 후반에 실험의 부작용으로 순식간에 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상황을 보면, 의문은 계속된다. 승윤이 자기 관리를 안했다고 여기면 그럭저럭 넘어가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상하다.


  게다가 준수를 설명하면서 작가는 이런 표현을 한다. 똑같이 백년을 살았는데, 왜 그에게만?


  준수는 세월과 함께 연륜을 먹은 노인이었다. 같은 세월을 살았지만 그에게 농익은 해안이 있었다. 젊은이의 몸에 여물지 않은 치기를 담아 살던 형들과 다른 대목이었다. -p.165

  한 세기를 묵은 노인의 처세라는 것은 악마의 술수에 비할 만한 것이었다. -p.202


  그 다음으로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주인공의 감정선이었다.


  로맨스를 읽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주인공에 자신을 대입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세상에 없을 멋진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상황에 빠져서, 같이 웃고 울고 마음 아파하고 설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수안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뭐야, 왜 이래?’라는 생각만 들 뿐, ‘큰일이야, 어떡해…….’하는 마음이 들진 않았다.


  수안의 감정이 들쑥날쑥, 제멋대로 널뛰는 느낌이었다. 산타라는 존재에 집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감정을 갖고 있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그러다 향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신우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그에 위기감을 느낀 이엘이 자신이 산타라고 밝히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너무 젊어요. 황당하다. 그렇게 따지면 신우도 별로 차이가 안 나는 나이인데? 둘은 쌍둥이라고 나오는데, 누구는 너무 젊어서 산타가 아니고 누구는 산타다?


  그리고 신우가 자신을 이용하려 접근했다는 것을 안 이후에도, 그녀는 징징대면서 그에게 매달린다. 이건 좋아한다는 자신의 감정을 앞세워 남에게 무작정 들이대는 스타일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아기적인 사고방식이이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소유욕이다. 막말로 상대방이 좋아한다고 해서 받아들여야한다는 법은 없다. 그렇게 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첫사랑에 실패하는 사람이나 스토커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한다고 다가오면 다 받아줘야 할 테니까 말이다.


  수완은 자신의 감정을 방패로, 사랑한다는 말을 칼로 쥐고 극단의 행동까지 취한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며 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상대를 압박한다. 마치 네가 만나주지 않으면 다리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걸 보고 날 진짜 사랑하는 구나라고 느낄까 아니면 진상이라고 생각할까? 난 진상이라고 여길 것 같다. 


  거기다 그녀의 이 대사는 읽으면서 이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멍해졌다.


  “내가 당신을 사랑한 건 당신이 인간이어서가 아니에요. 그냥 당신이어서예요.” -p.360


  아가씨, 댁이 사랑에 빠진 남자는 인간이 아니라니까요. 그 전에 이미 말했잖아요. 그런데 뱀파이어라는 거 알면서 저렇게 말하면, 상대가 기분 나빠해요. 다른 남자와 헷갈리는 줄 안다고요.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에서처럼, ‘너 낯설다. 다른 남자들에게 그런 말 많이 해보셨나 봐요?’라는 대답이 나올 수 있다고요.


  덕분에 어떻게 보면 신우의 감정은 앙탈부리는 어린 꼬마에게 휘둘리는 것 같지, 사랑하는 남자로 보이지 않았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는 대사를 적었다고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냥 어린애 달래느라 다 들어주겠노라 하는 것 같다. 게다가 그 어린이가 사실 성인이어서 아청법에 상관없이 붕가붕가까지 할 수 있다면…….


   사건의 설정은 괜찮은데, 인물 설정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덕분에 사건까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소설이 즐거움보다는 황당함과 짜증으로 다가왔다. 자음과 모음 리뷰단 2013년 마지막 도서인데,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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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믿지 마세요 - 만화로 찾아가는 영화 속 과학의 명쾌한 진실
박무직 지음 / 거북이북스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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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박무직



  애인님이 좋아하는 만화가 중의 한 분이시다. 하도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럼 읽어보게 한 권만 빌려달라고 해서 우연히 접한 책이다. 전에 리뷰를 올린 ‘대한민국 헌법 제1조’도 이 분의 책이다. 박무직 씨는 현재 한국에서는 활동하지 않는 만화가이다. 일본에서 활동한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그림체가 독특하면서 예쁜데 아쉽다.


  만화는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상당히 사회 현실 비판적이면서 모든 면에 시니컬한, 염세주의 끼가 다분한 창덕. 그가 과학 학원을 다니는데, 그곳의 학원장은 진짜 박사이자 발명가였다. 그는 영화를 틀어주고, 거기에 나오는 과학적인 오류를 창덕이에게 실험과 실습을 통해 깨우쳐 준다. 이른바 1대 1 맞춤 수업!


  거기에 박사님이 밥통을 고치다가 만들어버린 변신 로봇인 안드로이드 아다리까지 등장한다. 이 로봇은 여자인데, 혼자 나올 때는 아주 예쁘게 나온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같이 있으면 평범한 로봇의 모습이다. 아마 변신 로봇인가보다. 착한 사람에게만 예쁘게 보이는.




  어떤 과학 수업인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영화 ‘브롬스토커의 드라큘라 Bram Stoker's Dracula, 1992’에 나오는 흡혈귀들은 영화에서처럼 한 달에 한 사람의 피만 먹으면서 살 수 있을까? 영화 ‘스파이더 맨 Spider-Man, 2002’의 주인공이 사용하는 거미줄을 만들려면 얼마만큼의 음식을 섭취해야 할까? 영화 ‘플라이 The Fly, 1986’에서처럼 우연히 파리가 끼어들어가서 인간과 파리의 합성 생명체가 진짜 나올 수 있을까? 등등.


  영화를 보면서 의아해하고 궁금했지만, 그냥 넘어갔던 다양한 질문들이 그림과 함께 설명이 되어 있었다. 물론 책 제목이 ‘영화를 믿지 마세요.’니까 주로 오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건 거의 다 뻥이야! 그런 과학기술 따위는 없어!




  하긴 미국 드라마 CSI를 보면, 화면을 크게 할수록 자동차 번호판이나 사람 얼굴이 선명하게 나오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화면을 크게 늘릴수록, 영상이 흐려진다고 한다.


  제일 놀라웠던 것은 화장품에 대한 비밀이었다. 가장 나와 밀접한 일이니까. 그걸 보면서 헉! 했다. 책에서 나온 내용대로라면, 내가 매일 바르는 에센스나 아이 크림은 다 효과가 없는 삽질이었다는 뜻일까? 으악! 그렇다면 색조 화장품도 장난이 아닐 텐데……. ‘역시 이 세상은 너무 비정해! 무식하고 힘없으면 당하고 말아!’ 라고 비명을 질렀다.


  음, 언젠가 일본에서 나온, 일본 만화에 나오는 로봇이나 우주 전함 등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했던 책이 떠올랐다. 어릴 적에 보기도 했고 내가 잘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무슨 말인지 하여간 모든 것을 생각하고 비판해보고 뒤집어보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아는 것이 힘이라니까. 모르는 게 약이라고 댓글 달리면 슬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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