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시드 - 순수한 연쇄살인범의 탄생
윌리엄 마치 지음, 정탄 옮김 / 책세상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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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원제 - The Bad Seed (1954)

  작가 - 윌리엄 마치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사는 크리스틴. 그녀는 일 때문에 멀리 가있는 남편을 그리워하며 어린 딸 로다와 친절한 이웃 주민들과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학교 소풍이 있던 날, 한 소년이 물에 빠져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공교롭게도 그는 로다가 노리던 펜맨십 메달의 수상자였다. 그런데 그의 사체에서는 메달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그가 사고를 당하기 전에 로다와 말다툼을 했다는 목격자도 등장한다. 우연히 딸의 책상에서 사라진 메달을 발견한 크리스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를 보고 나서, 책이 너무도 읽고 싶었다. 책에서는 로다와 크리스틴이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알고 싶었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심리 묘사가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영화가 더 잘 표현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 같은 경우에는 역시 책을 읽어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크리스틴의 심리를 더 알고 싶기도 했고, 혹여 로다의 마음도 책에는 나타나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로다의 마음은 별로 드러나 있지 않았다. 엄마 크리스틴의 생각과 감정이 더 잘 보였다. 그녀의 눈과 귀를 통해 보이고 들리는 로다의 표정과 말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알 수 있었다. 하긴 사이코패스의 마음을 일반 사람이 제대로 알 수 있을 리가……. 그리고 어쩌면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크리스틴의 좌절과 불안감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이 책은 크리스틴의 감정과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사랑하는 어린 딸을 불현듯 낯설게 보는 자신을 자책하고, 딸을 의심하는 자신을 책망하면서 다시 딸에게 애정을 보이고, 하지만 그 불안이 확신으로 변하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방황하고, 그러면서 누가 알까 두려워하고 동시에 딸을 무서워하고.


  이런 복잡미묘하고 위태로운 엄마의 마음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태연하기만 한 어린 딸의 행동과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귀여운 미소로 ‘사랑해요, 엄마’와 ‘죄송해요, 엄마.’를 말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것이라 믿었던, 자신을 귀여워해주는 사람에게는 미소를 보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무표정하거나 화난 얼굴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야 마는 두 얼굴의 소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고, 자신을 위협하는 상대는 반드시 해를 끼치는 무한한 욕망을 가진 소녀. ‘내가 달라는데 안 준 애가 나쁜 거야.’라고 말하는 소녀.


  책 뒤표지에 이렇게 적혀있다. ‘여덟 살, 세 번째 살인.’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달라고 했을 때 주지 않기에 그걸 빼앗은 것이고, 상대가 울면서 어른들에게 이른다고 해서 그걸 말하지 못하게 만든 것뿐인데, 왜 그게 잘못인지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만 주위에서 그건 나쁜 짓이라고 얘기하는 걸 들었기에,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가 말하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왜 하면 안 되는 것인지 그녀는 모른다.


  요즘 애들을 보면 로다와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나만 좋으면 되는 것이고, 남은 어떻게 되건 상관하지 않는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갖지 못한 아이도 있다. 그런데 로다는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이지만, 요즘 몇몇 애들은 후천적으로 그렇게 된 경우도 있다.


  떼쓰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무조건 원하는 대로 다 충족시켜주는 부모. 자기 애 기죽는 게 싫다고 공중도덕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부모. 친구보다는 성적을 우선시하는 부모. 무조건 우리 애는 잘못이 없다며 다른 사람들 탓을 하는 부모. 어른 공경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참을성이 있고, 남과 어울릴 수 있으며, 남을 배려하고, 동네 노인을 공경하며, 책임감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삐지고, 어른 보기를 뭐같이 볼 것이고, 자신이 잘못해도 남 탓을 하며 책임지지 않으려 할 것이고, 기본 예의는 찾아볼 수도 없고 멋대로 할 것이다. 불행히도 그런 애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소설 속의 로다를 보면서 애가 어쩜 이럴 수가 있냐고 놀랄 때가 아니다. 현대 사회는 멀쩡하게 태어난 아이들을 사이코패스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윌리엄 마치가 요즘 한국 사회를 봤으면, 뭐라고 할 지 궁금하다. 온통 로다 천지라고 절망에 빠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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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변하기로 했다 - 사회 생활에 지친 당신을 위한 선배의 코칭
허은아 지음 / 이지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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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사회생활에 지친 당신을 위한 선배의 코칭

  저자 - 허은아



  예전과 달리 여성의 사회진출 비율이나 학력은 높아졌지만, 그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는 회사나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기본적으로 여성은 결혼임신육아가 쓰리 콤보로 이어지기에 회사 업무에 지장을 준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거나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 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런 기본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지 힌트를 주는 거라고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이 책은 신입사원부터 CEO까지 각 단계별로 발생할 수 있는 매너리즘이나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한 힌트와 각 직위에 걸맞은 기본적인 행동 지침서였다. 예측이 빗나가긴 했지만, 꽤나 유익했다.


  저자가 여자인지라, 특별히 여성을 중점적인 대상으로 보았다. 그런데 굳이 여자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고 본다. 모든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정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선 ‘개념 찬 신입사원의 행동 강령’에서는 여자라는 이유로 눈물을 보이거나 애교를 부린다고 세상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여자라는 이유로 포기하지 말고, 여자라는 이유로 배려를 바라지 말고, 자신의 업무를 충분히 숙지하고 회사의 분위기를 익혀 적절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또한 인사의 중요성, 시간 관리 그리고 건강관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은 어릴 적부터 배우는 것이다.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하기는 유치원 때부터 배운다. 시간 관리는 중학생이 되면서 시험에 대비하여 시간표 관리를 하는 것으로 익힌다. 건강이야 당연히 관리해야하는 것이고 말이다. 하긴 요즘은 그 당연한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 다시 익혀야할 것이다.


  신입딱지를 뗀 다음 단계, ‘열심히 일한 대리, 변해야 할 때다.’에서는 상사의 유형에 따라 어떤 점에 주목을 해야 하는지, 대외적으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의사 표현에 대해서 언급한다. 그 예로는 ‘no'대신 ’how'를 제시하라고 한다.


  그리고 중간 단계에 접어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과장에게 필요한 것’부분이 나온다. 이 정도 직책이면 어느 정도 나이가 되었다는 가정 하에 저자는 이야기를 진행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마’가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시시콜콜 챙기지 말라는 것이고, 너무 집안일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기도 했다.


  뭐든지 적절한 게 중요하다. 회사에 너무 매달리면 가정에서, 가정에 매달리면 회사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여기서 저자는 여자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감정적으로 문제에 대처하지 말길 충고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 인맥을 쌓아 유지하는 법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그리고 ‘이직, 자충수와 터닝포인트 사이’가 나온다. 요즘은 한 회사에서 뼈를 묻는 일이 별로 없다. 저자는 효과적인 이직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좋을 지 얘기한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것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알아야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꾸준히 자신을 닦고 연마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덧붙인다.


  다섯 번째로는 ‘팀장의 품격’을 말한다. 현대 사회는 팀제로 운용하는 회사가 많기에, 다양한 부처에서 뽑은 팀원들을 어떻게 통솔해야하는지 설명한다. 사이가 안 좋은 팀원끼리는 어떻게 중재를 하고, 칭찬과 비난을 적절하게 하는 방법과 회의를 주재하는 요령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또한 어떠한 유머가 사람들의 사이를 완화시키고 냉각시키는지도 첨가한다.


  칭찬하는 법, 패션, 비판을 수용하는 법에서 유머까지……. 팀장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은 ‘보스의 특별한 포스’이다. 이 부분은 다른 곳에 비해 그리 분량이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국에는 여자 CEO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책을 다 읽고 생각하니, 결국 어릴 적부터 배운 기본을 제대로 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한 여자라는 것을 너무 내세우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  회사는 여자가 다니는 곳이 아니라, 목표를 가진 한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곳이다. 그 점을 잊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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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phin Readers Starter Level: Moving House (Paperback) Dolphin Readers starter
Di Taylor 지음 / Oxford(옥스포드)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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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Di Taylor



  표지를 보면 박스가 잔뜩 쌓여있고, 여자애 표정이 좋지않다. 조카에게 '쟤는 애 저럴까?' 했더니 '이사가는 게 싫은가?' 이런다. 그러더니 낄낄대면서 '저 아저씨가 도둑이야 그런데 여자애는 말도 못하고 인상만 쓰고 보는 거야' 란다. 좀 있다가는 '아니야, 쟤가 말을 안들어서 텔레비전을 못보게 아빠가 갖다 버려서 화가 난거야' 라고 말을 바꾼다. 텔레비전을 갖다 버린 거는 너네 집이지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표지대로, 이 책의 주인공은 이사를 가는 게 너무 싫었다. 그래서 무조건 아빠나 이사를 도와주는 아저씨의 말에 반대로 대답하거나 부정을 한다. 하지만 엄마가 이사갈 집의 사진을 보여주자 태도가 바뀐다. 새 집이 너무 마음에 든 것이다. 그녀는 빨리 새 집으로 가자고 조른다.


   



  책에서는 물건을 세는 것을 익힌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을 잘 익혔나 내용 파악 문제도 푼다. 조카는 하나도 안 어려운지, 낄낄대면서 책장을 넘겼다. 다 읽고는 '얘 아빠한테 혼났을 거 같아.'란다. 왜냐고 물었더니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버릇없이 대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그림에 있는 여자아이 머리에 혹을 그린다. 이래야 맞는 거라고. 책에 낙서하면 안된다고 했지만, 조카 마음에는 든 모양이다.




  이번 책은 공부하는데 별로 어렵지도 않고, 그림이나 본문이 조금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집에 찾아온 손님에게 적절한 인사법을 알아본다든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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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니 토드 (2disc)
팀 버튼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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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Sweeney Todd : The Demon Barber of Fleet Street, 2007

  감독 - 팀 버튼

  주연 -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알란 릭맨, 사챠 바론 코헨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역사서나 동화가 그러하듯이, 가진 것은 없지만 착한 남자 곁에는 눈이 돌아갈 만큼 아름다운 부인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을에는 꼭 돈 많고 권력 있는 여자를 밝히는 놈이 하나 있다. 그 놈은 착한 남자의 부인을 차지하려고 별의별 짓을 다한다. 남자에게 하기 어려운 일을 시키거나, 감옥에 처넣는다. 동화에서는 그러면 착한 마법사가 나타나거나 그 부인이 마법을 부릴 줄 알아서, 나쁜 놈을 죽이고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 걸로 끝을 맺는다. 동화는 그러했다. 역사는 조금 다르지만.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엔딩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과연 행복할까?’하는 의문을 주면서 끝이 난다. 기존의 동화에 살인마 이발사 괴담 그리고 암굴왕의 스토리를 약간씩 베낀 것 같은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해피엔딩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드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어쩌면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주제는 사랑이다. 그래서 다양한 사랑이 나온다. 보답 받지 못한 사랑, 집착에 가까운 사랑, 그리고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불길 같은 사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조니 뎁의 복수극이나 그 딸의 사랑이 아니었다. 바로 헬레나 본햄 카터의 보답 받지 못한 사랑이다.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거라는 말도 있지만, 글쎄 그건 여기서 다룰 건 아니니까 패스.


  그녀는 이발사를 사랑했다. 언제부턴지 모르지만 텅 비어있던 그의 집을 관리하고, 그가 돌아와 복수를 할 때 아낌없이 도와주었다. 심지어 그가 죽인 사람들의 사체를 처리한 것도 그녀였다! 언젠가 그가 복수를 끝내면 자신을 봐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뭐였을까?


  물론 그녀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숨기긴 했다. 그래서 그런 대접을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나름 생각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하지만 진한 다크서클이 드리워진 그녀의 창백하다 못해 기괴한 얼굴을 보자니,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사랑하는 그를 위해서 독한 마음을 먹고 도와줬건만…….


  근데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솜씨가 좋아도 그런 무시무시한 마스크를 자랑하는 주인이 있는 이발소나 식당은 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게도 좀 음산한 인테리어에 전반적으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니 말이다. 옛날에는 저런 스타일이 인기였나? 요즘은 음, 테마 가게라고 광고를 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안 갈 것 같다.


  영화의 결론은 ‘딴 여자를 마음에 둔 남자는 건드리지 말자. 아무리 잘해줘도 고마운 줄 모른다.’ 정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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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 건축 만인의 도시 - 예술의전당과 밀라노 디자인 시티의 설계자 김석철의 공간 철학
김석철 지음 / 시공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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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예술의 전당과 밀라노 디자인 시티의 설계자 김석철의 공간 철학

  저자 - 김석철



  처음 책을 받아들었을 때는 얼마 전에 읽은 ‘마음을 품은 집’ 같을 것이라 예상을 했었다. 건축물과 그 제작에 얽힌 이야기나 역사적 의의 같은 건물에 대한 내용이 펼쳐져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1장을 읽는 순간, ‘어? 내 예상과 다른데?’라는 느낌을 받았다. 1장의 제목이 ‘천 년 도시, 천 년 건축’으로 크노소스 궁전, 예루살렘, 이스탄불, 경주 등등의 도시와 건축물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뭐랄까, 건축물에 대한 얘기보다는 역사적 배경과 저자의 짧은 단상이 내용의 다였다. 역사적 배경이야 검색하면 다 나오는 것이고, 저자의 생각이라고 해봤자 언제 어떻게 갔다 왔다는 것이 더 많았다. 그래서 실망이었다. 어, 이건 그냥 저자의 일기인가? 이런 느낌도 받았다.


  2장과 3장은 저자가 참여했던 건축물들에 대한 얘기였다. 건물을 어떻게 설계할 기회를 가졌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완성을 시켰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 와중에 저자가 겪었던 좌절이나 불가능하게 보였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는지에 대해서도 약간 언급하고 있다.


  그냥 건물만 대충 뚝딱 지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긴 그냥 뚝딱뚝딱 층을 높게 쌓는, 인구가 과밀한 대도시에서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집어넣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짓는, 거기가 거기 같은 느낌을 주는 일반 주택과 비교하면 안 될 것이다.


  4장은 저자의 어린 시절과 건축에 대한 신념, 그가 생각하는 한국 건축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한 그가 뽑은 이상한 건축물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런데 음,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포도를 못 따먹은 여우가 ‘저 포도는 맛이 없는 걸 거야.’라고 중얼거렸다는 우화가 떠올랐다. 저자가 공모전에서 뽑히지 못했다고,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에 비난을 퍼붓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서울시청이 진짜 웃기게 생겼고, 불안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설계한 사람도 나름 뭔가 의미를 부여해서 만든 게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냐고 비난해도 좋지만, 누군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가지고 만든 것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좋은 게 다 좋은 거라는 주의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와 같은 직종에 있는 다른 사람의 결과물을 평가할 때는 좀 더 신중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사진이라도 첨부해놓아야 왜 저자가 그런 평을 내리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건물들 사진은 많았으면서……. 저작권 문제때문인가?


  전반적으로 책은 쉽게 읽혔다. 사진도 많았고, 종이 질도 좋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구절도 몇 개 있었다.


  이미 천 년 전에 도시의 대부분을 이룬 나라의 건축가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나라의 건축가는 생각하고 말하고 일하는 것이 달라야지, 그들 뒤를 따를 일이 아니다. (중략) 깨달음은 어느 날 오는 것이다, 자기 일에 열심이어야 한다. -p.66


  세계화를 말하면서 세계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세계를 향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흘러가는 세계의 흐름에 몸을 던진다는 말인 모양이다. 시류에 휩쓸린다는 식의 세계화여서는 여행사 안내원 수준인 것이다. -p.147


  하지만 이건 너무 이상적인 게 아닌가 하는 문장도 있었다. 329쪽에 나오는 자연과 도시의 연계성에 대해서 강조하는 부분인데, 솔직히 그게 좋다는 걸 누가 모르는가? 자연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아토피도 적고, 건강에도 좋다는 걸 다 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되니까 그렇게 못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람처럼 사는 일이라니,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럼 뭐라는 거지? 이런 투덜거림이 삐져나왔다. 그리고 난 도시의 아파트가 좋다고! 난 어쩔 수 없는 투덜이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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