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 Twin Peaks, 1990
감독 - 데이비드 린치
출연 - 카일 맥라클란, 마이클 온키언, 셰릴린 펜, 다나 애쉬브룩, 라라 플린 보일,
레이 와이즈, 조앤 첸, 헤더 그레이엄
꿈과 환상 속에 나오는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쿠퍼’요원은 드디어 ‘로라 팔머’를 죽인 범인을 알게 된다. 거기에 그는 범인의 내부에 있는 ‘밥’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악의 결정체라 할 수 있으며,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파고들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존재였다. 로라를 죽인 범인은 결국 죄를 뉘우치지만, 밥은 그의 마음에서 뛰쳐나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간다. 그 때문에 잠시나마 평화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던 ‘트윈픽스’ 마을은 또 다른 사건에 휘말리는데…….
여덟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졌던 1시즌이 ‘누가 로라 팔머를 죽였을까?’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면, 20여 편이 넘는 에피소드를 가진 2시즌은 두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전반부에서는 1시즌과 마찬가지로 ‘로라 팔머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였고, 후반부에서는 ‘밥은 어디에 있는가?’를 다루고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마을 트윈픽스이기에,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었고 동시에 약함도 존재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 속마음은 다른 사람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이 얽히고 설기면서 만들어내는 사건들은 복잡하고 그 뿌리가 깊었으며 막장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 밥이 누구의 마음에 들어가 있는지 알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후반부에 드러나는 한 사람의 비밀을 보면서, ‘이건 쫌…….’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문득 그 상황을 보면서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 설정 하나가 떠올랐는데, 외모나 재력을 가지고 몸을 함부로 굴리는 남자들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모양이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존재로 등장하는 것은 ‘밥’이다. 범죄자의 영혼이 사람들에게 옮겨 다닌다는 설정의 영화 ‘영혼의 목걸이 Shocker, 1989’처럼, 여기서도 밥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 때문에 전반부에서 해결된 것처럼 보이는 살인이 계속해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악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틈만 보여도 점점 커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마치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같은 뉘앙스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그 사람 마음속에 들어간 악이 나쁘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밥이 들어갈 수 있는 기회와 동기는 충분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범인의 마음이 약하거나 더 여지가 많았기에 밥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걸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하긴 드라마에서도 그런 비슷한 말이 나온다. 밥이 노린 것은 로라였지만, 그녀는 강했기에 그에게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살해당하고 말았다. 제일 어렸고, 약해보였으며,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갔고, 믿었던 어른들의 노리개가 되었던, 누구보다 사람들을 증오하고 미워할 것 같았던 그녀가 제일 강했다. 으음, 그러면 설마 범죄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으라는 말인가…….
‘제임스’는 2시즌에서도 징징이 캐릭터가 여전했고, 그런 그를 계속해서 보듬어주는 ‘다나’가 보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그딴 놈에게……. 그리고 첫사랑은 역시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평생을 그리워한 사랑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무산되는 걸 보면서, ‘인생사 뭐 별 거 있나’라는 해탈의 경지도 아주 잠시 느낄 수 있었다.
전반부를 훌륭하게 이끌어간 로라를 죽인 범인의 연기는 그야말로 감탄 그 자체였다. 그가 너무 강렬했기에, 후반부에 등장하는 악당의 카리스마는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일까? 후반부는 집중도 잘 되지 않았고, 흥미도도 떨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결말은 마음이 아팠다. 결국 악이 승리한다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