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캘린더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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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alendar of Crime, 1951

  작가 - 엘러리 퀸







  엘러리 퀸은 소설 집필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작가이다. 추리 소설의 부흥을 위해 잡지도 만들고, 상도 제정하고, 다른 뛰어난 작품을 소개하는 책을 내기도 했다. 추리물에 대한 열정과 재능이 가득했던 그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라디오 드라마에까지 손을 뻗었다. 티비 드라마가 아니라 좀 아쉽지만, 1930년대 후반에서 40년대 초반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생각해보면 그러려니 하고 수긍이 간다. 그 드라마 대본을 소설 형식으로 고쳐 써서 출판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범죄 캘린더’라는 제목답게, 열 두 편의 단편은 1월, 2월 3월 이런 식으로 매 달 하나씩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책은 1월부터 차례대로 실려 있지만, 라디오 드라마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이야기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어떤 것은 연쇄 살인이 나오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머리를 써야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 다른 것은 엘러리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음모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열한 번째 이야기인 『비밀을 폭로하는 병의 모험』을 읽으면서 문득 어디선가 본 트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보았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아!’하고 떠올랐다. 바로 영국 드라마 ‘셜록 Sherlock, 2010’ 1시즌에서 비슷한 트릭이 나왔었다. 사람들이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맹점을 잘 파악한 방법이라며 작가진을 칭찬했는데, 이미 오래 전에 엘러리 퀸이 비슷한 시도를 했었다. 역시 엘러리! 이래야 내 작가지!



  이 책의 특이점은 엘러리에게 비서를 붙여줬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출판 쪽에만 매니저를 두고, 탐정일은 그가 알아서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니키 포터’라는, 인맥 네트워크 훌륭하고 열의에 넘치며 한편으로는 겁도 좀 많아 보이는 사람이 파트너로 붙었다. 드라마를 위해 특별히 집어넣은 캐릭터라고 한다. 이 책의 몇몇 에피소드, 예를 들면 『추락한 천사의 모험』과『죽은 고양이의 모험』 같은 경우는 니키의 지인이 관련된 사건들이었다. 음, 탐정일을 돕는 비서라더니, 사건을 맡아오는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그 외에도 퀸 경감과 벨리 형사와 같은 익숙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감초 역할을 하고 있다. 『약손가락의 모험』에서는 퀸 경감의 행동력과 추리력이 엘러리를 앞설 정도였다.



  전반적으로 이야기들의 분위기는 그다지 침울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았다. 어떤 부분에서는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세 개의 R의 모험』에서는 피해자로 추측되는 대학 교수의 방에서 엘러리 퀸의 여러 책들이 발견된다. 이성적이고 기계적인 일상을 살던 교수가 유일하게 비이성적으로 대하던, 돈 주고 구입하는 유일한 탐정 소설이 퀸의 책이었다는 대목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어떤 작가는 자기 소설에서 자신을 까던데, 퀸은 그러지 않았다. 이런 당당함이라니! 역시 내 작가!



  음,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요리에 비유하자면 상큼한 첫 맛으로 입맛을 돋우고 뒷맛은 깔끔하고 동시에 포만감도 드는 샐러드 뷔페에 온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샐러드는 상큼 달달한 딸기 소스를 뿌리고, 어떤 것은 참깨를 뿌린 오리엔탈 소스, 또 어떤 건 아주 신 키위나 레몬 소스에 버무린 것처럼, 각각의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맛을 주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질리지 않고, 배가 부르지만 더 먹고 싶은 그런 느낌이다. 왜 일 년은 열두 달밖에 없는 거지? 아니 그보다 왜 엘러리는 한 달에 두세 개의 사건밖에 다루지 않은 거지?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런 아쉬움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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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스토리콜렉터 32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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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Die Lebenden und die Toten, 2015

  작가 - 넬레 노이하우스









  ‘타우누스’시리즈 일곱 번째 책이다. 물론 전에도 얘기했지만, 순서대로 읽고 있지 않다. 도서관에 책이 있으면 빌려오고 있어서, 나에게는 다섯 번째 책이다.



  가장 최근에 읽었던 ‘사랑받지 못한 여자 Eine unbeliebte Frau, 2009’가 이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었는데, 그때와 비교해보면 6년 사이에 많이 달라졌다. 우선 반장인 ‘보덴슈타인’은 이혼을 했고, 피아의 전남편인 ‘헤닝’은 피아의 베프와 결혼을 했다. ‘피아’는 ‘크리스토프’와 여전히 연애 중이었는데, 후반에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그 외에도 자세히 누가누군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팀원들도 변동이 있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책을 순서대로 정리해봐야겠다. 하아, 이래서 시리즈는 순서대로 읽어야 하는데 말이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연이은 총격사건이 일어난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 예를 들면 개를 데리고 산책을 즐기던 노부인, 손녀와 요리 준비를 하던 노부인, 고급 주택가에서 살던 청년 그리고 쇼핑센터에서 일하던 직원이 피해자들이었다. 처음에는 무작위 묻지마 범죄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상한 편지가 배달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거기에는 그들은 배우자나 부모의 잘못 때문에 살해당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키르스텐 슈타틀러‘라는 중년 여성이 산책 중 쓰러진다. 그런데 그녀의 도움 요청을 받고도 외면한 사람,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그녀를 병원으로 이송하다가 사고를 낸 구급요원 그리고 뇌사상태에 빠진 그녀의 장기를 이식하기 위해 수술을 강요한 병원 관계자들이 바로 이번 총격 사건 피해자의 가족이었던 것이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사건을 수사하다가,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는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이 작가 작품은 처음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뒤로 가면서 점점 스케일이 커지고 사회 고위층의 비리로 얼룩진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번 이야기 역시 그렇다. 처음에는 가족의 일원을 죽게 만든 사람들에 대한 복수극인가 싶었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의학계, 특히 장기 기증에 얽힌 비리를 얘기하고 있었다.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 장기 기증 순서를 조작하는 건 기본이고, 심지어 신선한 장기를 얻기 위해 뇌사 환자의 차트를 조작하고, 수술을 위해 그 가족들에게 협박에 가까운 동의서를 요구한다. 때로는 동의서라고 알려주지도 않고 무조건 사인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들의 눈에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뽑아낼 것이 풍부한 자원을 가진 금광이었다. 아, 오해는 하지 말길. 이 책에서 그랬다는 말이다. 진짜 병원에서 그런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인물이 두 명 추가된다. FBI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을 배웠다고 잘난척하는 프로파일러 ‘네프’와 범의심리학자인 ‘킴’이다. 그녀는 피아의 여동생이기도 한데, 차분하고 열정적으로 사건 수사를 돕는다. 그리고 나중에 팀원 중의 한 명과……아, 이건 스포일러니까 패스. 그와 반대로 네프는 여성 혐오뿐만 아니라, 다른 형사들을 무시하는 말을 많이 했다. 그래서 조롱 섞인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대놓고 까이기도 한다. 거기다 조사를 대충하는 바람에 보덴슈타인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또한 노벨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멩겔레’를 능가하는 의사까지 등장해서, 사건을 점점 더 복잡하게 만든다. 멩겔레는 2차 대전 때 수용소의 사람들을 가지고 생체실험을 했던 독일의 의사이다. 문득 작가가 그를 연상시키는 그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유는 뭘까 생각해봤다. 미친 의사가 범죄 소설에 어울리기 때문에? 내 생각으로는 어쩌면 잊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2차 대전 때 멩겔레와 그 일당이 저질렀던 일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런 짓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일이라는 걸 명확히 하기 위해서 집어넣은 게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하아, 이 새끼 나쁜 놈이네. 이런 악마 같은 짓을 하는 놈은 잡아 죽여야지!’라고 생각하도록 말이다.



  어떻게 보면 책이 전반적으로 진지하고 침울할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중간 중간에 분위기 전환을 위한 유머러스한 대사들도 더러 들어있었다. 예를 들면 보덴슈타인이 버거킹에 와서 오늘의 추천 메뉴가 뭐냐고 묻는 장면이라든지, 햄버거를 먹으면서 내뱉는 ‘사진이랑 다르잖아!’라는 대사,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네프의 말에 네 고추가 여자 손을 타봤으면 네가 이 정도는 아닐 텐데라고 태연스럽게 대꾸하는 킴의 대사 등등.



  읽기 전에는 이 작가가 얼마나 무거운 소재로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까싶어 불안하지만, 막상 읽으면 깔끔한 권선징악적인 결말에 기분이 상쾌해지는 시리즈다. 내일 도서관에 아직 읽지 못한 다른 책이 들어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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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여자 스토리콜렉터 10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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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ine unbeliebte Frau, 2009

  작가 - 넬레 노이하우스







  타우누스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다. 이 시리즈는 주위에서 보이는 대로 빌려 읽다보니, 순서대로 접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미 몇 권을 읽고 나서야 첫 이야기를 손에 쥐게 되었다.



  결혼한 지 16년 만에 남편과 이혼 후 다시 형사로 복직한 ‘피아’. 타우누스 강력반에 발령받자마자 전망대에서 추락사한 것으로 보이는 ‘이자벨’이라는 젊은 여성의 사건을 담당하게 된다. 그런데 현장을 조사하던 중, 피아와 강력반 반장인 ‘보덴슈타인’은 그녀가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녀에 대해 수사하면 할수록 의문은 점점 더 커지고, 급기야 대형 승마클럽과 제약회사, 다수의 정재계 인사들이 그녀와 관련이 있었음이 밝혀진다. 그리고 그녀의 집에서 발견된 의문의 비디오테이프에서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자살한 부장검사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데…….



  이 작가는 처음에는 평범한 살인사건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가면 엄청 스케일이 커지는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것도 특히 사회 지도층 내지는 집권층이라 불리는 집단에서 벌이는 일들이 많았다. 요즘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예전에는 독일에도 귀족 계급이 존재했었다. 그들은 전쟁 이후, 보유하던 성과 땅을 기반으로 재산을 축적하고 기업을 운영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숨겨왔거나 현재도 저지르는 비리들이 작가가 쓰는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부실 사업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리수를 둔 사업가라든지 운송업을 하면서 뒤로는 밀매를 하는 사업가가 등장하여, 앞에서는 선량한 척하지만 뒤로는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이 얼마나 악독한지,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의외로 착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실 모든 기업가가 다 나쁜 것은 아닌데 작가는 무조건 그들을 악당으로 설정한다고 반박하고 싶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대기업 오너 중에서 법정에 불려가지 않은 경우가……. 으음……. 있던가?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모든 기업가가 다 재판을 받고 수감된 기록이 있다면, 그건 그것대로 국가적 비극이잖아?



  이야기는 막판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엄밀히 따지면 반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봐야 이자벨을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확실해진다. 그 정도로 그녀를 죽이고 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제목이 ‘사랑받지 못한 여자’이다. 이자벨은 사랑받는다고 믿고 싶었겠지만, 그들에게 그녀는 단지 유희의 대상에 불과했다. 어쩌면 그녀도 그들을 그런 대상으로 여겼으니, 그리 억울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상대를 진심으로 봐주지 않으면서 상대는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길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니까.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자벨의 죽음이 전혀 안타깝지 않았다. 피해자인데! 대개 살인 피해자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자벨은 전혀 아니었다. 으음, 그녀는 독자에게서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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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닷컴
소네 케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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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殺し屋.com (2013

  자가 - 소네 케이스케







  인터넷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동시에 개인 정보의 유출을 쉽게 만들었다. 이 두 조건은 범죄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나만 있어도 범죄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조건인데, 두 개가 다 갖춰줘 있으니 금상첨화일 것이다. 아, 물론 범죄자들에게만 좋지, 일반 사람들에게는 하나도 좋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그런 인터넷이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고 사이버 범죄를 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아는 사람만 알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인터넷 사이트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책에는 ‘암살자 닷컴’이라고 하여, 게시판에 의뢰가 들어오면 암살자들이 입찰을 해서 낙찰을 받는 형식인 사이트가 등장한다. 서로 낙찰을 받기 위해 가격 경쟁을 한다는 말은, 그만큼 암살자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서 활동하는 암살자들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프로페셔널로 여러 가지 총기류를 다루고 몰래 건물에 숨어들어가 잠복을 하는 그런 유형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예를 들면 복지사로 활동하는 가정주부나 무능력하다 평가받는 경찰 등이다. 그나마 킬러 같은 인물은 세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칼’이다.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유명한 소설 ‘자칼의 날 The Day Of The Jackal, 1973’에 나오는 킬러의 이름을 딴 모양이다.



  암살자 얘기라고 해서, 평범한 이웃인 사람들이 냉철하게 사람을 죽이는 내용을 상상하고 읽는다면 오산이다. 책은 그런 것보다는 그들이 왜 그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작가는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은근슬쩍 보여주고 있었다.



  형사가 주인공인 『사부리 고로의 결단』에서는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높이 치솟는 등록금과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로 인간성이 매몰되는 학생들, 그리고 자신의 승진을 위해 다른 직원들을 괴롭히는 직장 내의 위계질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또한 『훼방꾼』에서는 경제 위기로 인한 대규모 실직 사태와 이에 따른 생활고를 다루고 있다.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한다는 주인공의 변명과 자기합리화를 보여주는데, 자칫 잘못하면 그녀의 주장에 동조할 뻔 했다. 위험했다. 하여간 작가는 그녀를 통해 인간은 자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자칼의 타협』에서는 정의를 빙자한 무분별한 신상 털기를 비난한다.



  위에서 적은 걸 보면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들이라 생각할 수 있는데, 막상 읽어보면 또 그렇지 않다. 문장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고, 어떻게 보면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피식하고 웃음이 나오는 재미있는 문장도 간간히 섞여 책장이 쉽게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속도감 있게 읽다가 『에필로그』를 보면, ‘헐?’하는 놀라게 된다. 그 앞선 이야기인『어린 의뢰인』을 보면서 이름이 익숙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렇게 연결이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시를 다 발라냈다고 안심하고 생선구이를 마구 흡입하다가 예상치 못한 큰 가시 하나를 씹은 느낌이었다. 막판에 이런 충격을 준비하다니, 이 작가 어쩐지 마음에 든다. 기회가 되면 이 사람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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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세계 사건부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정명섭 지음 / 시공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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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조선총독부 토막살인

  작가 - 정명섭

 

 




 

 

  작가의 이름을 어디선가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조선이 명탐정들’과 ‘좀비 제너레이션’의 저자였다. 그 외에도 많은 책을 썼는데, 거의 역사와 미스터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작가는 역사 미스터리에 강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1926년 9월 조선총독부의 완공을 며칠 앞두고, 조선인 건축기사가 살해당한다. 그의 시체는 참혹하게도 여섯 등분으로 나뉘어 거의 공사가 마무리되어가는 조선총독부 건물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그 모양이 흡사 큰 대(大)자를 연상시켰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한제국’의 ‘대’자가 아니냐는 의견이 대두되고, 이 사건을 쉬쉬하기에 급급해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의열단의 테러와 엮어 관리직에 있는 조선인을 몰아내는 등 탄압을 심화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를 알아차린 ‘최남선’은, 한때는 촉망받는 기자였지만 지금은 통속잡지사에서 일하고 있는 ‘류경호’를 불러 사건을 비밀리에 조사할 것을 부탁한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던 류경호였지만, 일본에서 증거를 조작해 다른 조선인 건축사를 잡아가자 마음을 바꾼다. 그는 비밀리에 사건을 조사하는데…….

 

 

  현대사는 공부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제대로 공부하지 않았다. 이걸 변명이라고 하기에 부끄럽지만, 그래도 미리 이 사실을 알리고 이야기를 시작해야겠다.

 

 

  최남선이라는 이름을 보고 설마 ‘그 최남선’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계속해서 읽어가니 그 최남선이 맞았다. 국어책과 역사책에 나오는, 신문화를 소개하는데 앞장섰고 그 자신 역시 뛰어난 문인이었으며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독립운동가로 고초를 겪었던, 하지만 나중에는 친일파로 변절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는 이미 그가 변절자로 낙인이 찍힌 뒤라고 나온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변해야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작가가 그에 대한 나름의 배경 설정을 만들어 놓았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호랑이를 잡으려고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가 잡아먹힌 경우? 아니면 검은 것을 가까이해서 결국 자신도 검어진 경우? 책을 읽으면서 느낀 최남선에 대한 생각은 그러했다. 나름 조선을 발전시키기겠다는 일념으로 일본과 손을 잡았지만, 그는 조선에서도 일본에서도 믿음을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그렇게 보면 주인공인 류경호 역시 비슷한 입장이었다. 일본에 유학까지 갔던 뛰어난 인물이지만 고향에서는 본처의 자식들에게 쫓겨나다시피 한 첩의 자식이었고, 도시에서는 시골에서 온 촌뜨기에 불과했다. 또한 일본 유학 시절, ‘2.8독립선언’을 하는 장소에 혼자만 없었고 체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본의 밀정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 역시 어느 한 쪽에 속해있지 못한, 어딘지 모르게 어정쩡한 위치에 있는 존재였다.

 

 

  책의 뒤표지에 보면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이 경성 땅에 친일파와 독립 운동가만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처음 이 말을 읽었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일까 생각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제야 이해가 갔다.

 

 

  주인공은 독립운동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일파도 아니었다. 그냥 이 땅에서 평범하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건 주변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비록 몇몇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약삭빠른 사람이 나오긴 하지만, 그 외의 인물들은 옳지 않은 일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은 사건 해결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비록 일본인이지만, 그들은 권력자 앞에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작가는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눈과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사건의 추리보다, 주변 상황에 더 눈이 가고 화가 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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