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송의 달인 호모 큐라스 낭송Q 시리즈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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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는 시각, 미각, 후각, 촉각과 더불어 오감(五感)중 하나다. 그러나 단순히 정보전달 통로 중 하나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것이 많다.  둥둥 울리는 북소리를 듣노라면 가슴이 뛴다. 비트 있는 음악에 청소년들은 열광한다.

소리는 우리의 몸을 관통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작용을 한다.  고래(古來)로부터 인간은 이것을 알고 응용해왔다. 많은 서사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 왔고 기록으로 정착된 뒤에도 낭독을 공부의 주요 수단으로 이용했다. 물론, 인쇄술이 부족했던 과거에 기록을 대대로 전달할 유일한 방법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구술(口述)이 차지했던 비중에는 단순히 수단을 넘어선 것이 있었다.

 

시각적 자극은 눈에 한정되지만 소리는 청각기관과 공명하며 온 몸의 장기와 뼛속까지 스며든다. 소리의 특별함은 종교적인 수행방법에서도 엿보인다. 힌두교의 ‘옴(Om)’이라는 진언과 불교의 염불, 기독교의 찬송이나 주기도문, 하다못해 샤머니즘적인 주문까지 소리를 단순히 정보전달수단이 아닌 영적인 매체로 인식했다는 증거는 많다.

 

그래서 낭송을 하자. 눈으로만 보는 표피적인 이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온 몸으로 듣고 ‘체득(體得)’하여 영혼 깊숙이 받아들이는 소리공부를 하자. 기계적인 입력과 암기로 얻을 수 없는 성찰로 충만한 삶에 접속하고 싶다면 낭송을 하자.

 

읽어 보자. 눈으로 말고 입으로 읽어 보자. 옛날 서당에서 학동들이 참새 새끼처럼 한 줄로 앉아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천자문을 외우듯이, 선비들이 동지 섣달 긴긴 밤 추위를 이기며 달빛을 등불 삼아 노래하듯 읽었던 그 구절들을 똑같이 읽어 보자

 

머리로 이해가 안 된다면 입으로 읽을 일이다. 몸으로 이해하여 내 몸에 새겨진 지혜는 삶의 실천으로 이어질 것이다.

읽자. 몸으로 읽자. 아이들과 함께 날마다 한 장씩 읽어 보자. 혹 아는가? 삶이 변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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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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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보는 이유의 대부분은 길흉화복(吉凶禍福)일 것이다.

언제 돈을 벌고, 결혼을 하고, 취직이 될 것인지, 사업이 잘 될 것인지 등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운명론적 예측 말이다.

이미 정해진 운명이라면 좋은 것은 미리 알고 나쁜 것은 모르는 게 최선일 것이며 여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 운명론이라면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냥 돈 주고 간단히 보면 된다. 그들은 좋은 운명은 부풀려 희망적으로 말할 것이고 나쁜 운명은 위로하며 적당히 둘러댈 것이니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그런 우리의 편견들을 이 책의 저자들은 뒤집는다. 사주공부의 진정한 목적은 운명에 대한 무기력한 순응이 아니고 적극적인 돌파요 개척이라는 것이다.

하늘이 내게 쥐어준 패를 들고 더한 것은 내놓고, 덜한 것은 가져와 평균을 맞추는 것이니 남보다 좋은 팔자도 없고 남보다 나쁜 팔자도 없다. 다 내 할 노릇이라는 것이다

결국, 사주공부란 미완성으로 태어난 나를 탐구하며 하나 하나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며 모든 건 내 탓이라는 무서운 운명론인 것이다.


이 책은 4명의 공저자들이 서로 자신의 사주를 살아온 인생과 함께 풀어보면서 나누는 사주의 인문학적 탐구요, 인생론이자 고백록인 셈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주가 얼마나 정확하게 들어맞나 그렇지 않나가 아니다. 어차피 과거를 이야기하니 억지로 꿰맞춘다 한 들 어찌하겠는가? 다만 그렇게 나의 과거를 반추하고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미래의 내가 만들어지는 것이니 그걸로 사주의 역할은 족한 것이다.

 

참고로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의 2탄 격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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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글쓰기 연습법, 베껴쓰기
송숙희 지음 / 대림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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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왕도는 없다.  그러나 노력 여하에 따라 전보다 잘쓸 수는 있다.

이것이 글쓰기 비법에 대한 기본적인 답변이다. 다만 그 방법론에 있어서 좀 더 효율적인 방식을 논하자는 것이다.

많이 쓰면 된다. 무조건 앉아서 죽어라 쓰다 보면 잘 쓸 수 있다. 그러나 동기와 결심의 정도에 따라 결과에 대한 편차가 극명하다.

저자는 효과가 입증된 제도적인 글쓰기 훈련으로 단련된 신문사 논설위원의 정제된 글을 꾸준히 따라 쓰는 것을 권한다.

내용 자체는 특별한 것이 없다.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이런 저런 책을 사 본 사람들이라면 여러 번 접했던 내용들이다.

정해진 범위내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정연하게 제시할 수 있는 훈련이 기본적으로 갖춰진다면 그 이상의 것도 가능할 것이다.

다독이 좋은 글쓰기의 필요조건임에는 분명하지만 한자 한자 한줄 한줄 따라 쓰다보면 토씨 하나, 쉼표 하나, 맞춤법 하나하나가 다 눈에 들어오는 정독의 효과가 발생하고 좋은 글쓰기의 충분조건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결국, 베껴쓰기는 극도의 정독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눈으로 흘겨 있는 속독이 아닌 손으로 읽는 정독을 해야 온전히 내것이 되고 내것이 되어야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탄생한다.  

이 얼마난 간단한 방법인가?  뚜렷한 방법이 없다면 그냥 믿고 따라 해볼 일이다. 수많은 문필가들이 그 효과를 보장한 방법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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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서  시(讀書詩)

☞독서한탄(讀書恨歎)

가난한 자, 책으로 인하여 부유해지고 (貧者因書富)

   ☞ 없는 살림에 책은 사치고

 부유한 자, 책으로 인하여 귀해지며 (富者因書貴)

   ☞ 부자가 뭐가 아쉬워 책을 읽으며

어리석은 자, 책을 얻어 현명해지고 (愚者得書賢)

   ☞ 그래서 열심히 읽었더니 모르는 것만 늘어가고

현명한 자, 책으로 인하여 이로워지니 (賢者因書利)

   ☞ 아무리 읽어도 돈은 안나오니

책 읽어 영화 누리는 것 보았지 (只見讀書榮)

   ☞ 책 읽어 영화는 택도 없었지

책 읽어 실패하는 건 보지 못했네 (不見讀書墜)

   ☞ 책 읽어도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네

    - 중국 송나라의 정치가이자 문학가인 왕안석(王安石)

     ☞ 한국 지방 어느 소동네의 별볼일 없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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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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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이 있다.

그중 동양철학은 공맹사상이나 주자학, 노장사상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또 하나의 동양철학이 있으니 바로 ‘사주’다. 흔히 점보는 곳에 철학관이란 간판이 붙어 있듯이 철학도 아닌 것이 철학인 척 하는 이상한 놈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한 주체를 전면에 내세운 서양 근대 철학적 관점에서 이 이상한 동양철학이란 놈은 참 헷갈리게 하는 존재다. 전에는 나 역시 이놈을 철학으로 인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사주는 점복술에 불과한 잡술이었던 것이다.

 

고미숙은 보통 ‘철학’에 감히 끼지도 못하는 이상한 ‘철학’을 진짜 ‘철학’에 포함시킨다.

인간과 자연, 이성과 육체 등 이분법으로 나눠진 서양문명은 인간을 자연과 분리시켰고 자연을 인간을 위한 대상으로만 파악하도록 하여 결국 자연을 물질로서 인간이 이용하고 폐기시키는 소모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동양은 철학적 중심에 자연을 배치하고 그 자연의 법칙을 찾고자 노력하고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데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도(道)’라 일컬으며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는 존재로 보았다,  ‘구도(求道)’의 길이란 결국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며 자연의 법칙에 순행하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다다르는 길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후원 하에 이룩한 과학문명은 우주 끝까지 꿰뚫어볼 것처럼 내달렸고, 각종 첨단 기술은 초단위로 세상을 분절했으며 기후를 예측하고, 인간의 몸을 낱낱이 분해했으나 자연과 동떨어진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임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자연의 지배자로 등극시키는 우를 범하며 잘난체한 결과 정작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말았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주의 질서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미래는 오히려 불투명해졌고 이성과 과학의 극단에 위치한 미신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차라리 사주명리학을 제대로 배워 응용하잔다. 사주를 배워 내 운명을 알아보고 사는데 응용해보잔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성질로 구성되었는지 알고 장점은 잘 살리고 단점은 커버하면서 잘 살아보잔다.


소위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철학과 종교가 상극이듯이 철학과 명리학도 같은 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저자는 이것을 독자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잘 포장한다. 농경사회가 주류였던 동양에서 철학은 인간의 독보가 아닌 자연과의 동행인 것이다.

나 역시 동양철학의 핵심인 음양오행에 관심이 있어 관련 서적을 몇 권 읽다가 자연스럽게 명리학까지 나아가게 되었고 이런 저런 책들을 봤는데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용은 어렵고 두루뭉실한데다 난삽하기 그지 없어 초보자가 독학으로 접하기에는 난관이 많았다. 또 저자의 수준을 알 수 없어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어려운 이론을 장기간 공부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내가 사주쟁이가 될 것도 아닌데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과연 끝까지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도 없었고, 차라리 그 노력이면 확실한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에 포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든 이 책은 그 모든 갈등을 한숨에 날려버렸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논리정연하게 핵심만 콕콕 찍어 설명해주니 심적 갈등과 시간에 대한 부담도 없고 부피까지 적당하니 얼마나 좋은가?

남을 위한 사주가 아닌 나를 위한 사주. 내가 태어난 날 하늘이 내 몸에 아로 새겨준 바코드의 비밀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며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내 운명의 8개 패를 쥐고 고민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쓰리고를 외칠 지 나가리가 될 지는 오롯이 내 몫이다.

 

이성만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다. 관찰과 실증적인 탐구만이 자연을 여는 열쇠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5,000년 동양철학의 지혜, 그 옛날 선조들이 온 몸으로 터득하며 쌓은 우주의 법칙과 질서을 한 권의 책으로 부담없이 풀어보자.

잊지 말자. 내 운명의, 내 인생의, 나 자신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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