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에는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이 있다.

그중 동양철학은 공맹사상이나 주자학, 노장사상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또 하나의 동양철학이 있으니 바로 ‘사주’다. 흔히 점보는 곳에 철학관이란 간판이 붙어 있듯이 철학도 아닌 것이 철학인 척 하는 이상한 놈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무장한 주체를 전면에 내세운 서양 근대 철학적 관점에서 이 이상한 동양철학이란 놈은 참 헷갈리게 하는 존재다. 전에는 나 역시 이놈을 철학으로 인정하지 못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사주는 점복술에 불과한 잡술이었던 것이다.

 

고미숙은 보통 ‘철학’에 감히 끼지도 못하는 이상한 ‘철학’을 진짜 ‘철학’에 포함시킨다.

인간과 자연, 이성과 육체 등 이분법으로 나눠진 서양문명은 인간을 자연과 분리시켰고 자연을 인간을 위한 대상으로만 파악하도록 하여 결국 자연을 물질로서 인간이 이용하고 폐기시키는 소모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동양은 철학적 중심에 자연을 배치하고 그 자연의 법칙을 찾고자 노력하고 그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데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도(道)’라 일컬으며 자연과 더불어 공생하는 존재로 보았다,  ‘구도(求道)’의 길이란 결국 인간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며 자연의 법칙에 순행하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에 다다르는 길인 것이다.


자본주의의 후원 하에 이룩한 과학문명은 우주 끝까지 꿰뚫어볼 것처럼 내달렸고, 각종 첨단 기술은 초단위로 세상을 분절했으며 기후를 예측하고, 인간의 몸을 낱낱이 분해했으나 자연과 동떨어진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임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자연의 지배자로 등극시키는 우를 범하며 잘난체한 결과 정작 자신의 운명을 주관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말았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우주의 질서로부터 소외된 인간의 미래는 오히려 불투명해졌고 이성과 과학의 극단에 위치한 미신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하기에 저자는 차라리 사주명리학을 제대로 배워 응용하잔다. 사주를 배워 내 운명을 알아보고 사는데 응용해보잔다. 나라는 존재가 어떤 성질로 구성되었는지 알고 장점은 잘 살리고 단점은 커버하면서 잘 살아보잔다.


소위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철학과 종교가 상극이듯이 철학과 명리학도 같은 바구니에 담을 수 없는 것으로 알았는데 저자는 이것을 독자가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잘 포장한다. 농경사회가 주류였던 동양에서 철학은 인간의 독보가 아닌 자연과의 동행인 것이다.

나 역시 동양철학의 핵심인 음양오행에 관심이 있어 관련 서적을 몇 권 읽다가 자연스럽게 명리학까지 나아가게 되었고 이런 저런 책들을 봤는데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내용은 어렵고 두루뭉실한데다 난삽하기 그지 없어 초보자가 독학으로 접하기에는 난관이 많았다. 또 저자의 수준을 알 수 없어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어려운 이론을 장기간 공부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었다.  내가 사주쟁이가 될 것도 아닌데 이런 전문적인 지식을 과연 끝까지 공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도 없었고, 차라리 그 노력이면 확실한 다른 분야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중간에 포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든 이 책은 그 모든 갈등을 한숨에 날려버렸다. 내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논리정연하게 핵심만 콕콕 찍어 설명해주니 심적 갈등과 시간에 대한 부담도 없고 부피까지 적당하니 얼마나 좋은가?

남을 위한 사주가 아닌 나를 위한 사주. 내가 태어난 날 하늘이 내 몸에 아로 새겨준 바코드의 비밀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며 씨줄과 날줄로 얽혀있는 내 운명의 8개 패를 쥐고 고민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쓰리고를 외칠 지 나가리가 될 지는 오롯이 내 몫이다.

 

이성만이 철학의 전부는 아니다. 관찰과 실증적인 탐구만이 자연을 여는 열쇠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5,000년 동양철학의 지혜, 그 옛날 선조들이 온 몸으로 터득하며 쌓은 우주의 법칙과 질서을 한 권의 책으로 부담없이 풀어보자.

잊지 말자. 내 운명의, 내 인생의, 나 자신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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