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수억 년에 걸쳐 이룬 지적능력을 초월하고 자각능력까지 가진 슈퍼컴 ‘트랜센던스’의 완성을 목전에 둔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은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멸망이라 주장하는 반(反) 과학단체 ‘RIFT’의 공격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연인 ‘에블린’(레베카 홀)은 윌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 시켜 그를 살리는데 성공하지만, 또 다른 힘을 얻은 그는 온라인에 접속해 자신의 영역을 전 세계로 넓혀가기 시작하는데,,
영화 ‘트랜센던스’ 줄거리다. 첨단과학기술의 발달을 경이로운 인류의 진화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우려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 역시 많다.
이 영화는 그 한 복판에 위치하고 있다. 인류의 지능을 집약한 컴퓨터가 하나님의 선물이 될지 사탄의 재앙이 될 지는 오롯이 인간의 몫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독립적으로 설 수 있다는 ‘바벨탑의 오만’을 불러 일으켰고 그 결과 엄청난 자연의 보복을 불러 일으켰다. 질병의 공포로부터 수명연장의 꿈으로, 기아의 공포로부터 음식물쓰레기의 천국까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인간적인 삶의 결과는 초기 과학기술의 발전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데에 반론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오늘날 인간은 인간을 넘어선 인간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끝은 결국 창조, 생명의 창조, 인간의 창조에 이르는 것이다. 파괴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러나 창조하는 것은 아직도 신의 영역이다. 태양계를 벗어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아직도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아주 작은 미생물조차도 창조할 수는 없다. 전 인류의 모든 지성을 모으려는 인공지능의 탄생은 그래서 더욱 과학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에 업로드된 윌(정확하게 윌의 정신이겠다. 육체는 사라졌으니)이 전 세계 네트워크을 장악하고 하려는 것이 인류가 저질러 놓은 수많은 오류의 원상회복이었던가? 그러나 그의 계획이 실현될수록 인간들은 불안해한다. 논리회로와 알고리즘만 존재하는 그의 생각(?)이 인간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악개념, 비논리성, 모순덩어리의 사고방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사라진 자기 육체까지 창조해낸 윌은 사랑하는 에블린이 원하지 않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오프(OFF)하고 만다. 사랑이라는 지극히 비논리적인 이유로.
기계가 되어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려다 그 길을 포기하고 다시 인간으로 복귀하고 만 윌.
자신이 추구한 자연으로의 복귀 역시 인간들이 했던 방식과 흡사했다는 것을, 스스로는 지극히 이성적이라 하지만 과정을 생략한 결과만의 독단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에 윌은 포기한 것이다.
인간은 거꾸로 기계로 인해 인간성을 되찾는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원래대로 복구하고자 노력한 기계가 인간적인가?
아니면 그런 기계의 노력을 막고자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기계를 파괴하고자 한 인간들이 더 인간적인가?
모두 알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결코 기계가 될 수 없고, 기계적으로 살 수도 없다는 것을.
그러면서 왜 기계적인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가?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의 길이지만 기계가 결코 대신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분명한 듯하다.
지금 전 인류의 미래를 담보로 수많은 엘리트 과학자들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에 과연 인간에 대한 성찰이 들어있을까? 기술에 대한, 자연에 대한, 인간에 대한 철학이 들어있기는 할까? 아니 고려 대상이라도 되고 있는 것일까? 장담할 수 없다면 이 영화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