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중국이 개인정보에 대한 규제가 심하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빅데이터량도 풍부해

지금 세계적인 AI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데 어제 뉴스에 중국의 AI 챗봇들이

윤동주 시인을 중국인이라 하고

 

대만을 중국의 영토라고 답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황당하면서 어이가 없었다.

 

최첨단의 기술 자체가 진실이나 공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었기에

딱 드는 생각,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이다.

 

편향된 정보를 습득한 AI가 왜곡된 결과값을 내놓는 걸 보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없는 지능이란 제아무리 높아도 결국

 

인간의 의도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는 걸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AI가 지구 전체의 정보를 습득하지 않은 이상

그 왜곡을 스스로 수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곡된 정보를 받은 AI가 엉뚱한 결과를 내놓고

그 결과를 신봉한 누군가는 또 다른 위험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AI에 대한 여러 담론에서 예견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막상 언론에서 접하니 위협이나 불안에 앞서 실소가 절로 나온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중국은 이미 초강대국인데

AI까지 저 모양으로 해놓고 좋아서 떠들어 대는 걸 보면 참 안타깝다.

 

그들은 만지는 순간 모든 것을 똥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이너스의 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왜 우리 윤동주 시인을 갖고 그러는가 말이다. 기분 나쁘게.

 

그들의 AI처럼 편향되고 왜곡되었다 해도 할 말 없지만

세상을 다 가진 부자가 구멍가게까지 뺏으려 드는 것 같아

그들이 참 얄밉고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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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우리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 그딴 거 없다. 그냥. 우연히.

 

어떤 이유는 없다. 인간만이 특별히 태어났을 것이라는 건

진화의 산물로 고도화된 지능의 부작용이자 여유로 인한 착각이다.

밥 먹고 섹스하고도 뇌의 용량이 남다 보니

쓸데없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주제다.

 

왜 우주가 생겨났는가와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아직까지 우주의 탄생에 대한 별다른 이유를 못 찾은 것처럼

인간 또한 마찬가지다.

이 거대한 우주도 이유가 없다는데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을까?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처럼

우리 역시 진화의 과정에서 살아남았을 뿐

우리만 특별하게 존재의 의미는 없다.

 

진화의 과정에서 지능이 특출나게 발달했기에

그 의미를 찾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것이 다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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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사는가?

생물학적으로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산다.

 

그런데 유전자의 입장에서 번식이라는 절대 목적을 완수한 인간이

더 생존 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계속 존재한다는 건 자연의 자원을 계속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번식의 목표를 달성한 인간이 계속 존재하는 건 자연의 낭비가 아닌가?

 

그래서 번식을 마친 인간은 엄격하게 말한다면

죽기 위해 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자살을 할 수는 없으니 자연적으로 죽어야 되는데

인간이 눈치 없이 수명을 끊임없이 연장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에

자연의 입장에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까?

 

결국 현대인의 수명 연장의 의미는

유전자가 지시한 생존과 번식을 성공리에 완수한 뒤에도

인간이 생존하고 있을 어떤 이유가 아직 남아 있음을 찾아야 하고,

자연에 어필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야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인간은 생존을 위해서도, 번식을 위해서도,

또 다른 그럴듯한 이유도 아닌

죽기 위해 산다로 결론을 내리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

 

계속 생명을 연장하는 이유를 찾기 보다

일단 오래 살고 보자는 우리의 욕심을

자연은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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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반듯한 사람에게 더 도덕을 요구하는 걸까?

우리는 평소 모범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더 실망한다.

 

반대로 과거에 행실이 불량했던 전적이 있는 사람에겐

오히려 그러려니 하고 관대하게 넘어간다.

 

사실 도덕적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억울할 일이다.

똑같은 잘못인데 질책을 더 받는다.

과거에 착하게 살았으면 전적을 따져

오히려 경감시켜줘야 합리적인데 현실은 정반대다.

 

착한 놈은 계속 더 착하게 살아야 하고

나쁜 놈은 계속 나쁘게 살아도 된다는 건

착하게 산 사람의 입장에서는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

 

만약 방송인 유재석이 사소한 잘못이라도 한다면

그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가 그동안 쌓아왔던 수많은 선행과 모범은

그 상황에서 오히려 독배가 될 것이다.

애초에 나빴던 사람보다 괘씸죄가 더해질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는 모범적으로 산 것이

그냥 평범하게 산 것보다 오히려 더 손해를 보게 되는 이상한 일이 된다.

 

이렇듯 우리는 도덕 기준의 잣대를 불공평하게 적용한다.

왜 사람들은 도덕적인 사람에게 그렇게 엄격한 것인가?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도덕적인 것에 대한

기대와 동경이 내재되어 있는 것인가?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하지만 못하였기에

나와 달리 도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나의 또 다른 모범적인 자아로서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목표로서 투사하고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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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오랜만에 친척 어르신들을 만나면 자주 들었던 말이 있다.

몰라보게 컸구나

그땐, 난 그대로인데 왜 어른들은 그런 말을 할까? 의아해 하곤 했다.

 

나 역시 어른이 된 뒤로 오랜만에 아는 사람들의 아이들을 만나면

부쩍 커버린 그네들을 보며 똑같이 말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한참 세월이 흐른 뒤 어릴 적 친구를 만나면 이런 말을 한다.

! 너 많이 늙었구나.”

 

변화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날마다 조금씩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변해

스스로나 날마다 보는 사람들은 그 변화의 차이를 잘 모른다.

하지만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그 변화의 폭을 금방 안다.

 

변화가 없다고 늘 똑같다고 불평하지 말고

묵묵히 노력하면 어는 순간 그 노력의 결실이 보인다.

오늘 눈곱만큼의 변화가 있었기에 그 변화가 쌓이고 또 쌓여

어느 날 눈에 확 뜨이는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작은 변화에 실망하지 말고

변하고자 하는 오늘 하루의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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