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순간이 있지 않은가?

자유로운 생각의 끄나풀들이

논리도 뭉치지도 못하고 감상으로 펼쳐지지도 못한 채

제멋대로 날아다니며 흩날리다가 잠깐 사이에 깨끗이 사라지고 마는,

바로 즉시 글로 잡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면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는...


나같이 재미로 책을 보는 사람이라면 추천하지 않고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다면 추천하고 싶고

과학과 철학에 다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면 강추


그렇지만 대단한 책이다. 우주와 지구와 인간의 시작과 끝을

논한다. 이해는 안되지만 뭔가 희미한 깨달음?

과학을 하는 부처라면 이렇게 사람들에게 불법을 설파했을까?

과학적 연기론을 보는 듯.....

10분의 1도 이해가 안되니 너무 슬프다. 문과의 슬픔.



(이하는 그냥 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느낌만 잡은 글이니 볼 것 없을 듯)


나를 포함한 세계를 굳이 나누자면

나와 세계이며

성찰을 향하는 내면의 방향과 외부로 나아가는 세계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내면의 성찰이며

그 외에 존재하는 것은 나의 물리적 실체를 포함하고 있는 온 우주다.

그러므로 나와 세계는 결국 정신과 물질로서 나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신은 존재하는가? 에 대한 답을 과학적으로 실증할 필요는 없다.

신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성찰의 결과물이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존재의 유무를 물질로써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말로 과학적인 것은 물질을 분석하는 것이고

물질로 이루어진 우리의 뇌 자체는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뇌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추상적인 사유는 그 대상이 될 수 없다.

 

즉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알기 위해 우리가 하는 노력은 과학이지만

장엄한 우주의 서사에 경탄하며 찬미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건 우리 마음이다.

 

이미 탄생한 우주가 운영되는 원리는 물리법칙이라 하고

이 우주가 만들어진 이유와 진행 과정은 무작위의 우연이라고 하자.

 

우연히 만들어진 우주가 몇 가지 법칙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진다면

우주의 역사를 하루로 볼 때 빛이 원자 한 개를 지나가는 찰나의 시간에

존재했던 생각하는 생명체의 의미를 무엇에다 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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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방해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그중 단연 독보적인 이유는 시간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읽으려는 의지가 굳건한 사람들에겐 궁색한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먹고 살기도 바쁘고 책이 아니어도 볼 것도 많은 세상에서

굳이 독서를 할 이유도 시간도 충분치 않음은 나름 이해할 만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공감하겠지만

처음 독서의 맛을 알게 된 때에 난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책을 한 줄이라도 더 읽기 위해 시간을 긁어모았다고 해야겠다.

퇴근해서 저녁 먹고 잠깐 보거나 주말에 몰아쳐서 보는 것으론 내 독서욕을 채울 수 없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보고 싶은 책은 끝 없이 줄 서 있고.

그래서 생각한 게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퇴근 시, 화장실에서, 점심시간, 근무 중 휴식 시간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딱히 뭔가를 하지 않고 지나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만이 아니었다. 책이 있어야 읽을 수 있는데

책을 휴대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집 밖을 나설 땐 늘 책을 챙겨야 했고, 차에 놔두기도 하고 

가끔 잃어버리기도 했다.

 

책 한 권 들고 다니는 것도 부담스러운 판에

여러 권의 책을 챙기려는 욕심에 조그만 가방을 들고 다니기까지 했지만

평소 뭔가를 가지고 다니는 걸 너무 싫어한지라 오래 가지 못했다.


또 직장에서 책을 보고 있는 건 여러 사람의 눈에 띄고 

또 너무 눈치 보이는 일이었다.

소심한 성격이기에 남들 시선 속에서 별스럽게 책을 보는 게

부끄러웠고 부담스럽기도 했으며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그날 볼 책을 휴대폰으로 한 페이지씩 

촬영해서 보는 것이었다.

저녁에 불을 환하게 켜고 책장을 한 장씩 넘기며 사진을 찍는 일은 

쉽지 않았다시간도 걸리고 귀찮기도 하고.


결국 이것도 오래 가지 못했다.

그렇게 나의 언제 어디서나 내맘대로독서법은 기억속으로 사라졌는데

최근 전자책의 비약적인 보급으로 이제야 제대로 구현이 되었다.

 

물론 전자책이 세상에 등장한 지는 꽤 되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대부분 전자책은 전자도서관의 대여용이었고

보급용 샘플 수준인데다 그나마 종류도 한정되어 있어 

읽을만한 게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자책 대여 플랫폼을 이용하면

일정 수수료만 내고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여 저장 후 아무 때나 읽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전자책 시대가 도래했다

전자책이 상용화의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또한 과거의 전자책은 컴퓨터 모니터나 전용 뷰어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어느 곳 어는 시간이라도 자유롭게 볼 수 있으니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한 난 도서관에 계속 있는 것이다.

드디어 독서 천국이 지상에 왕림했다. 할렐루야다.

 

그렇게 전자책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언제부터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스마트폰이 일상의 동반자가 된 영향도 클 것이다.

 

두툼한 두께의 종이책을 들고 꺼칠한 종이의 질감을 손가락으로 느끼며

얇은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남은 두께를 가늠하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사람의 적응력이라는게 참으로 놀랍다. 익숙해지니까 편하다.


전자책은 바로 다운을 받아서 볼 수 있기에 원하는 책을 

택배로 기다릴 필요도 없다.

택배를 기다리던 소소한 즐거움은 사라졌지만

기다리지 않고 바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더 크다.


물론 전자책의 단점도 많다.

아직도 종이책에 비해 그 종류가 부족하고

주로 최근에 출간된 책에 특화되어 있기에 스테디셀러가 아니라면

오래전에 나온 책은 찾기 힘들다.

꼭 보고 싶은 책이라면 결국 종이책을 살 수밖에 없다.

 

전자책의 또 다른 단점은 읽다가 책에 메모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자책에도 메모기능이 있긴 하지만

사용하기 불편하고 영구적이지도 않아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스마트폰의 메모 기능을 이용하여 보완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또한 전자책은 뒤적거리는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종이책은 뒤쪽을 보다가 생각이 나지 않아 앞장을 다시 뒤적거리기도 하고

중간의 필요한 부분들을 발췌하여 훑어보기도 하는데


전자책은 구조상 그러기 힘들다. 한 단어를 검색할 때는 유효하지만

한 단락이나 장을 감으로 찾을 땐 그냥 젬병이다.

리뷰를 쓸 때 특히 답답한 부분이다.

아무래도 이게 전자책의 가장 큰 단점이지 싶다.

 

마지막으로 전자책은 보관이 어렵다.

종이책은 영구적으로 소유할 수 있고 언제라도 다시 볼 수 있지만

대여 전자책은 보고 나면 끝이고 구입한 전자책도 

왠지 내 책이란 느낌이 덜하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은

나머지 모든 단점을 덮고도 남는다.

그래서 난 현재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더 읽고 있다.

종이책은 전자책으로 발간되지 않는 것에 한한다.

 

독서에 수단과 방법을 따질 필요는 없다.

언제나 어디서나 읽는다는 게 본질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전자책이 고맙다.

책장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며 먼지에 덮여가고 있는

종이책에 다소 미안한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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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국면이 치열하다.

언론에서는 이 전쟁의 원인을 두고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 정상화로 인한

정치적 고립이나 이스라엘의 지속적이고 노골적인 가자지구 봉쇄로

불만이 폭발했다는 등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갈등엔 분명히 그 원인이 되는 시작이 있다.

근본적으로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끝없이 어어지는 이 지난한 갈등의 시작은 누가 한 것인가?

 

당연히 영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국가들과 이스라엘이다.

영국은 오스만제국에게서 빼앗아 통치하고 있던 팔레스타인지역에

이스라엘의 건국을 용인하며 자리를 깔아 주었고

 

이스라엘은 이천 년 전의 과거를 현대로 회귀시켜 팔레스타인인들이

보기엔 황당한 이유로 남의 땅에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당사자며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유엔을 내세워 이스라엘을 지지한 동조자들이다.

 

팔레스타인과 인접한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은 이슬람연합을 형성하여

이스라엘과 4번에 걸친 중동전쟁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당초 3%에 불과했던 유대인 거주지를 모든 전쟁이 끝난 후 80%가 넘게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단합했고 준비가 되었고 유능했고 하나님의 가호가 따랐지만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었고 자국의 이해에 몰두했고 무능했고 

알라신도 도와주지 않았다.

 

힘의 논리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았다.

선민사상의 유대민족은 세계대전의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수많은 유대인 박해를 견디며

젖과 꿀이 흐른다고 한 가나안에, 자신들의 옛 고향에,

기어이 보따리를 풀며 이천년간의 디아스포라를 끝냈다.

그러나 그들의 정착은 다른 이들에겐 유랑의 시작이었다.

 

다시는 과거의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유대인의 강박엔

그들만의 명분과 원칙만 있었을 뿐 자신들로 인해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게 된 힘없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말의 배려도 없었다.

 

선민의식도 돈도 강력한 의지도 아무것도 없는 그저 그런 팔레스타인들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마을에서 쫓겨나 스마트 장벽으로 둘러싸인

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감옥에서 살거나 아니면 난민으로 떠돌아야 했다.

 

총칼로 시작한 역사는 결코 평화로 타협으로 끝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점철된 그들 간의 분쟁은

4차 중동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되도록 이어지고 있다.

 

하마스의 잔인한 민간인 살해나 납치도 당연히 비난받을 일이다.

약자에게 정정당당한 싸움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변명이 모든 걸 덮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원인을 제공하고

평화로운 해결엔 전혀 관심이 없는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의 변명은

그저 강자의 논리일 뿐이다.

 

그네들의 하나님이란 어떤 존재인지,

왜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하나님과 무엇이 다른지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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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자신들이 이천 년 전에 존재했던 삼국시대 대가야의 

후손이라고 자처하면서

그때 그들의 선조가 살았던 땅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유엔을 대표로 세계의 여론이 그 옛날 그들이 살았던 땅이니 살게 해주라고

우리에게 압력을 가한다면,

 

세계와 강대국들의 압력과 함께 허락도 안 했는데 

어느 날 이삿짐을 잔뜩 싣고

자기들 마음대로 경상도 한쪽 끄트머리에 떡하니 마을을 꾸민다면,

 

어쩔 수 없이 보고만 있었는데 슬금슬금 땅을 넓혀가더니

나중엔 아예 대놓고 여기저기 마을을 만든다면,

 

뭐라 했더니 대뜸 달려들어 우리를 힘으로 쥐어패더니 다 쫓아내고

나중에는 반대로 우리를 한쪽 구석으로 몰아넣고 담을 치고 

그 안에서만 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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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나이가 없듯이 공부에도 나이가 없다.

 

나이가 등장할 때란 물리적 시간의 길고 짧음을 따질 때다.

공부는 이루어야 할 목표나 도착점이 아니라

긴 시간의 여정이고 과정이다.

 

과정엔 정거장만 있을 뿐 종착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정으로서의 공부는 길목마다 중간역만 있을 뿐이요

도착점이 없으니 시작도 없다.

그러니 시작과 끝을 재는 나이가 무슨 소용이랴

 

내 공부는 뚜렷한 목적도 없고 도착할 목적지도 없다.

그냥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려니 한다. 그저 그뿐이다.

일찍 시작했다면 벌써 저만치 갔겠지만 늦게 시작했으니

아직 여기쯤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각자 자기만의 봇짐 하나씩 지고 가는 인생의 여정이니

중간중간 정거장에 쉬면서 쥐고 있던 거 하나씩 풀어 버리고

그렇게 갈 만큼 가다가 힘 닫는 만큼 걷다가

더이상 갈 수 없으면 주저앉는 곳 그곳이 내 공부의 끝이자 최종목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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