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1일째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하기로 했다.

그동안 하는 둥 마는 둥 재미로 했는데 이젠 본격적으로 해야겠다.

그래서 앞으로 영어 공부에 대한 일기를 쓰기로 한다.

스스로 나를 다잡고 의욕을 고취하기 위함이다.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으니 계획을 세워야겠다.

일단 스몰스텝이다. 가볍게 시작하기로 한다.

대단한 계획의 끝은 항상 작심삼일이지 않았던가?

평생 겪은 일을 새삼스럽게 반복할 이유는 없다.

 

영어회화를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듯이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건 학생 때나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아주 시간이 많을 때 말이다.

이젠 그럴 시간도 없고 그럴 머리나 정신력도 안된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에 하기로 한다.

다행히 난 승용차로 다니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출근 30, 퇴근 30분 동안 차 안에서 하기로 한다.

하루 한 시간이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동안 어차피 차 안에서 멍때리거나

음악을 들으며 소일하지 않았던가?

 

내 영어공부의 방법은 굳이 시간을 따로 내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부담이 없고 부담이 없어야 오래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날아가는 시간을 붙잡자. 시작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1차 목표는 300시간이다.

1차 목표를 달성하고 다음 목표를 수립하자.

목표를 낮게 설정하자.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현실을 직시한다.

 

영어공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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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원자화될 운명을 달고 산다.

그렇게 파편화되고 고립된 원자는 전체주의적인 물결에 쉽게 포섭되어

독자성을 상실하고 전체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에 휩쓸리지 않을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원자화된 개인은 자발적으로 타자와의 연결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된 연결은 전체주의에 오히려 더 쉽게 다가갈 위험이 있다.

 

내가 독립적으로 판단하여 올바른 연결,

즉 긍정적인 사회적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선

결국 각 개인의 성숙한 판단이 필수적이다.

대중을 선동하는 반민주적인 세력이 던지는 함정을 새로운 연결로

오인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말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하기 참 힘든 구조다.

진정한 자유인을 가정할 경우에만 올바른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구현하기 힘든 제도다.

 

반대로 전체주의는 너무나 쉽게 병든 민주주의를 노린다.

확률적으로 자기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없는 개인이 훨씬 더 많기에

세상은 민주주의 보다 전체주의가 횡행할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

 

전체주의의 장점은 타자를 쉽게 배제하고 억압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알게된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하는 포옹의 자유인이 아닌

차별을 조장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개인이야말로

전체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인 것이다.

 

전체주의는 단순히 과거의 정치체제가 아니다.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한치의 틈만 보여도 

이빨을 드러내는 무서운 이리떼와 같다.


건강한 자유주의자가 성찰과 연대를 통한 민주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우리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다.

결국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두 개의 얼굴을 한 야누스다.

앞뒤로 새겨진 한 장의 패를 어느 쪽으로 던질지는 순전히 우리의 몫인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를 내뱉은 순간 우리는 합리적 이성으로서의 주체를 포기하고

언제라도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미래의 전제주의 독재자에게

우리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기꺼이 양도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음을 천명하는,

개인적으로 생각 없는 말이자 정치적으로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합리적

주체로서 독립 포기 선언과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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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의 철학적 핵심은 개인주의다.

개인주의는 개인이 모든 것을 짊어지는 것이다.

개인은 다른 개인과 구별되고 자연과도 분리된다.

 

개인은 다른 누군가나 무엇에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경험과 양심에 따라 선악을 구별해야 한다. 개인은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 즉 자유의지로 가치판단을 해야 한다.

자유주의에서 개인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집합의 일원이며 기계의 부속품이다. 개인은 사회나 정부라는 전체의 목적에 부응하지만 언제라도 분리될 수 있는 원자와 같은 것이다.

 

자유주의의 반대는 전제주의고

민주주의의 반대는 권위주의다.

고로 민주주의도 전제주의가 될 수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간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민주주의의 핵심은 인민의 주권이다.

극단적인 인민의 주권은 전제주의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어리석은 인민이 자신들의 주권을 독재자에게 자유롭게 위임한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전제주의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예는 지난 시절 목격한 바 있다.

 

자유주의는 완벽한 이성으로 무장한 개인의 완전한 독립을 전제로 하지만

이는 이상일 뿐 완전한 개인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의 이성이란 이론적으로만 그럴듯할 뿐

현실에서는 수많은 변수에 갈대처럼 휘어지며 이리저리 흩날리곤 한다.

 

자유주의는 천부인권이니 평등이니 하는 그럴듯한 껍데기를 벗기고 나면 결국 부르주아계급의 사유재산보호를 가장 근본적인 목적으로 생각하며 그 목적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하나처럼 생각한다.

사실 둘은 서로의 목적이 일치할 때만 같이 가는 동반자적 관계다.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를 내세우려 하지만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도구로 이용하려 한다.

 

자유주의는 현실적으로 세상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민주주의라는 배다른 형제를 인정했지만 언제라도 전제주의라는 나쁜 길로 빠질 가능성이 농후한 동생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자유주의가 원하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가 자유를 보전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현대정치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약점을 이용하는 정치가 아니라

그걸 모른 채 무관심하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방관하고 있는

자유주의자들이 아닐까?

 

그러더라도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단순히 민주주의라 하면 안된다.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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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19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네요. 고맙게 읽었어요.

책을베고자는남자 2023-12-20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말씀을....미진한 글을 읽어주신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음에도

나는 지금도 내 운명을 바꾸고 싶다.

아직도 성공을 꿈꾼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한다.

최선을 다한 하루를 보내고 나와 신께 감사하며 축복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다.

치열한 삶을 마치고 그동안 잘 살아왔음을 나와 신께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찾는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한 자리에서 다른 위치로 움직이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몸만 그러는 게 아니라 마음 또한 그렇다.

사물만 중력의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니다.

마음도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마음은 늘 한자리에 있고 싶어 한다.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은 균형에서 불균형으로 안정에서 불안정으로 이동하는 것이니

그 중력의 저항을 이기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

설사 조금 이동했다 해도 스프링처럼 금방 원래대로 돌아가려는 강한 습성이 있다.

 

그래서 작게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스프링을 갑자기 잡아당긴 후 놓으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가지만

천천히 오랫동안 잡아당기고 있으면 늘어져서 나중엔 원래 수준만큼 돌아가지 않는다

 

운명을 바꿀때도 똑같은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아주 천천히 조금씩 길게다.

 

그래서 거창한 계획은 무용지물이다.

원대한 계획은 작심삼일이다.

 

계획은 작게 간단하게 잘게 세워야 한다.

움직이고 싶지 않은, 불안정을 못견디는 우리의 마음을 십분 고려하여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야 한다.

 

그래서 스몰스텝(Small Step)이다.

우리말로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다.

 

문제는 지속성이다.

지속하기 위해서는 즐겁거나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담이 없어야 한다.

너무 쉬워서 누워서 떡 먹기 수준이어야 한다.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위인이 아니라면 우리의 의지는 박약한 게 지극히 정상이다.

의지를 믿거나 기대지 말라.

의지에 부담을 준 순간 우리의 계획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1, 딱 한 번이다.

중요한 건 강도나 밀도가 아니다.

날마다 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내가 날마다 했는지 세고 확인하는 것 뿐이다.

너무 쉽고 간단해서 간혹 해야 한다는 걸 잊어 버리기 때문이다.

 

힘들어서 게을러서 못하는 게 아니고

깜박한 것이다.

 

날마다 세수, 샤워, 양치질을 힘들어서 못한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는 걸 잊어버렸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할 것은 세수나 양치질처럼 규칙적으로 부담없이 날마다

하는 것이다. 다만, 새로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무조건 5분 이내, 한 번으로 시작한다.

가령 푸시업을 시작한다면 오늘 한 개로 시작한다.

그렇게 잊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두 개 할 때도 있고 기운이 넘친 날은 열 개도 할 것이다.

욕심이 생기면 삼십 개까지 늘어날 것이다.

 

이때 조심해야 한다. 아직 완전히 습관이 되지 않았는데 의욕적으로 한답시고 개수를 늘리다가 어느 날 목표에 미달하면 실망하게 된다. 실망하기 시작하면 한 두 번 빼 먹고 또 게을러서 빼 먹고 그러다가 몇 일 지나고 몇 주 지나다 보면 그냥 없던 것이 되어버린다.

 

하다가 잘 안되면 개수를 다시 줄이면 된다. 다시 한 개만 하면 된다. 그런 나를 자책하거나 몰아 붙이면 안된다. 어제 100개를 했어도 오늘 안 된다면 그냥 한 개로 돌아가면 된다.

어쨌든 안 한 것은 아니다. 빼 먹은 것도 아니다. 단지 개수만 줄어 든 것이다.

 

중요한 건 목표를 개수에 두지 않는 데에 있다. 오늘도 한 것에 두어야 한다.

날마다 했다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날마다 한다는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개수 같은 목표에 의미를 두기 시작한 순간 실패는 예정되어 있다.

 

무한정 개수를 늘릴 수는 없으니까.

나는 오늘도 단 한 개라도 했다면 스스로 약속을 지킨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명심할 것은 했냐 안 했냐지 성과가 아니다.

하나를 이렇게 성공하면 다른 하고 싶은 것으로 확장하면 된다.

 

이렇게 나는 턱걸이와 푸시업을 거의 매일 한다. 단 개수는 들쑥 날쑥한다.

날마다 컨디션이 다른데 어제 했다고 오늘도 똑같이 할 수 있으란 법은 없다.

그게 무슨 운동이냐고 그렇게 해서 무슨 근육이 되겠냐고 말한다면

그게 내가 세운 목표다. 난 누가 뭐라든 날마다 하고 있다. 나하고 한 약속을 지키고 있다내 운명을 개척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싶다.

 

그렇게 2년동안 하고 있다.

영어회화도 하고 있다. 출퇴근 할 때 스마트폰으로 몇 문장씩만 하고 있다.

그뿐이다. 그냥 날마다 일과처럼 한다. 하루에 몇 문장씩, 하루에 몇 분씩 이렇게 정하진 않는다

그냥 출퇴근 차량안에서만 한다. 출근 후 차에서 내리면 잊어 버렸다가 다시 퇴근하면 차에서 연습한다. 그렇게 날마다 한다. 그거면 된 것이다. 그 다음은 나중에 생각한다.


하루에 몇 문장, 다음달엔 중급영어 이렇게 생각 안한다. 그냥 날마다 하다가 그 과정이 끝난단면 그 때 또 무슨 책을 할지 결정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날마다 차에 탈 때마다 잊어 버리지 않고 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부담이 없다 보니 꾸준히 하고 있다. 유일하게 힘든 건 스마트폰에서 웹을 찾아 누른다는 것이다. 뭐 이 정도도 귀찮아서 못하겠다면 살아 뭐하겠는가?

 

또 퇴근하면 소파에 앉아 기타연습을 한다.

처음 기타를 할 땐 계획 세우고 열심히 연습하고 스트레스받다가 잊어버렸다가 또 시작했다가를 여러번 반복했다

지금은 그냥 딱 5분만 한다. 기분이 동할 땐 더 한다. 30분도 하고 1시간도 한다. 문제는 하기 싫을 때다. 오늘은 피곤해서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5분이다. 그것도 싫으면 그냥 들고 줄이라도 한 번 튕기고 만다. 그래도 한 것이다. 난 오늘도 약속을 지킨 것이다. 잘될 때 하고 싶을 때 가 중심이 아니다. 하기 싫을 때, 잘 안될때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기도만 하지 말고

스스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자.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지 말자.

자신을 시험에, 의지에 빠트려서 힘들게 하지 말자.

그렇지 않아도 힘든 나를 굳이 더 힘들게 하지 말자.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겠냐고 누가 물어본다면

십 년 전에 아니 언제부터인가는 상관없이 꾸준하게 하고 있는 것이 몇가지나 되는지 반문하고 싶다. 십 년전에 난 영어회화를 잘 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영어회화를 하고 있는가?


그때에도 책을 바꾸고 방법을 찾는 등 그럴싸한 계획을 수도 없이 세웠지만 지금 실력은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

하루에 5분씩 지금까지 10년을 했다면 총 18,250분 시간으로 304시간 공부를 했을 것이다.

적다고? 그 뒤로 한 것이 없는데?

 

돈만 복리의 마법이 있는 게 아니다. 마음도 복리의 마법이 존재한다.

내가 십 년을 한결같이 했다면 아무리 게으른 뇌도 협조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억은 강도와 빈도라 했다. 강력한 사건과 반복적인 일에 뇌는 주목한다.

강력한 기억은 강한 의지가 필요하지만 빈도는 그저 그만한 의지만 있으면 된다.

 

이제 자기계발서를 소설 마냥 밤새워 읽고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며 마치 새로운 인간이 된 것처럼 주먹을 불끈 쥐며 다짐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날 부스스한 얼굴로 거울을 마주 하며 어제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고 마는 삶은 그만 두자.

 

세상은 인생은 그렇게 쉽지 않다. 성공은 위인은 그렇게 쉽게 될 수 있는게 아니다.

 

푸시업 한 개만 하자. 단 날마다

영어공부 5분만 하자. 단 출퇴근 시간에

기타를 연습하자. 5분만

식사량을 줄이자. 단 한 숟갈만

책을 읽자. 단 한 페이지만

글을 쓰자. 단 한 줄만

 

나머지는 시간의 마법에, 내 마음에, 내 나머지 삶의 흐름에 맡기자.

난 그저 한 번만, 5분만 하면 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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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와 시간의 관계

 

에너지를 많이 쓸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것이다.

우주의 모든 에너지 총량은 정해져 있다. 유한하기 때문이다.

유한한 에너지를 빨리 소비할수록 남아 있는 에너지의 양도 

그만큼 빨리 줄어든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할수록 엔트로피 총량은 늘어갈 것이고

엔트로피 총량이 증가할수록 열 죽음(우주의 종말)에 도달하는 시간은 

빨라질 것이다.

 

달리 말하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소비되어 쓸모없는 에너지로 바뀐다면

이 세상은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즉 우리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할수록 그만큼 남아 있는 에너지 사용 가능량은 줄어들 것이니 

결과적으로 에너지를 쓰면 쓸수록 시간은 빨리 가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주변 환경으로부터 마이너스 엔트로피를 지속적으로 

흡수하며 살아간다.

즉 생명체가 살기 위해서는 엔트로피 법칙을 거슬러야 한다.

생명체가 세포를 재생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활동은 소비가 아닌 

생산의 과정이다.

생명활동의 지속은 엔트로피 법칙과 거꾸로 쓸모 없음에서 쓸모 있음으로의 과정이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주에서 극히 희귀한 경우다. 만약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 지구에만 

존재한다면 엔트로피의 법칙을 잠깐이나마 피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생명체의 성장에 따른 부분적인 소량의 엔트로피 감소는 

우주에서의 보다 큰 엔트로피의 증가를 수반하기에 결과적으로 에너지 총량은 같다.

 

모든 생명체는 주변 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창조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에 잠깐 질서를 유지하고 있을 뿐 곧 무질서의 세계로 넘어가고 만다.

생명의 신비라는 질서의 대가는 곧 막대한 피해를 유발한다.

 

인류의 문명은 거대한 외부비용을 필요로 한다.

우주를 기준으로 본다면 그야말로 새발의 피지만 지구를 기준으로

지구가 보유한 자원을 다 써버린다면 즉 지구의 엔트로피 총량을 0에서 100으로 만든다면

우리는 더 이상 지구에서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술은 주변 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창조하는 대가로 

일시적인 질서의 섬을 만들고 있기에 기술이 주는 이익이 

그 피해(외부비용)보다 항상 크다는 것은 거짓이다.

엔트로피 과정은 역행하지 않기에 결코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정해져 있는 에너지를 추가로 만들어 낼 수는 없기에 남아 있는 에너지를 

아껴 쓰는 것만이 인류의 종말을 늦추는 방법일 것이다.

 

결국 엔트로피의 법칙이란 한 마디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역시 우주에 무한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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