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원자화될 운명을 달고 산다.
그렇게 파편화되고 고립된 원자는 전체주의적인 물결에 쉽게 포섭되어
독자성을 상실하고 전체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전체에 휩쓸리지 않을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원자화된 개인은 자발적으로 타자와의 연결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데 잘못된 연결은 전체주의에 오히려 더 쉽게 다가갈 위험이 있다.
내가 독립적으로 판단하여 올바른 연결,
즉 긍정적인 사회적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선
결국 각 개인의 성숙한 판단이 필수적이다.
대중을 선동하는 반민주적인 세력이 던지는 함정을 새로운 연결로
오인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말이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양립하기 참 힘든 구조다.
진정한 자유인을 가정할 경우에만 올바른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구현하기 힘든 제도다.
반대로 전체주의는 너무나 쉽게 병든 민주주의를 노린다.
확률적으로 자기 스스로 주체가 될 수 없는 개인이 훨씬 더 많기에
세상은 민주주의 보다 전체주의가 횡행할 가능성이 훨씬 농후하다.
전체주의의 장점은 타자를 쉽게 배제하고 억압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타자와의 비교를 통해 알게된
차이를 인정하고 연대하는 포옹의 자유인이 아닌
차별을 조장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개인이야말로
전체주의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인 것이다.
전체주의는 단순히 과거의 정치체제가 아니다.
자유주의나 민주주의가 한치의 틈만 보여도
이빨을 드러내는 무서운 이리떼와 같다.
건강한 자유주의자가 성찰과 연대를 통한 민주주의를 옹호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우리 주변에 모습을 드러내는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다.
결국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두 개의 얼굴을 한 야누스다.
앞뒤로 새겨진 한 장의 패를 어느 쪽으로 던질지는 순전히 우리의 몫인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를 내뱉은 순간 우리는 합리적 이성으로서의 주체를 포기하고
언제라도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는 미래의 전제주의 독재자에게
우리의 주체로서의 권리를 기꺼이 양도할 만반의 준비를 마쳤음을 천명하는,
개인적으로 생각 없는 말이자 정치적으로는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합리적
주체로서 독립 포기 선언과 다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