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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 페일리 : 진화론도 진화한다 지식인마을 1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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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교 다닐 때 배운 진화론을 상식으로 생각한다. 기독교인들도 말로는 창조론을 믿는다고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일 뿐. 과학으로서 진화론을 무시하지 못한다. 서양식 교육으로 근대화를 시작한 우리가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진화론이 저쪽 동네에서는 아직도 아닌 것 같다. 관념과 믿음이 아닌 생활과 문화로 정착이 돼버린 신의 존재가 너무 크기에 서양인들은 아직도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에서는 아직도 진화론과 창조론이 각축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곤 한단다. 심지어 보수기독교도인 ‘조시 부시’ 전 미국 대통령까지 창조론을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다른 의견으로 보고 진화론과 동등하게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는 무식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도 심정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밀한 기계처럼 한 치의 실수나 오차 없이 돌아가는 이 정교한 세상이 저절로 완성됐다는 말이 오히려 더 엉성하게 들릴 만큼, 자연이 보여 주는 광경은 신비롭다. 광대무변한 우주의 한 쪽 끝자락에서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 간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부딪치지 않고 조화롭게 사는 것을 보면, 오히려 딱딱하고 복잡하며 허점이 많은 과학이론보다는 창조주 절대자의 섭리를 더 받아들이고 싶으며, 그게 맞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돌덩이 하나가 길가에 떨어져 있다면 우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약 시계가 떨어져 있다면 그것도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진화론이 나오기 전 다윈이 좋아했던 ‘페일리’라는 신학자의 말이다. 당시 가장 정밀한 인공물이었던 시계를 자연에 빗대고 창조주를 시계공에 비유하며 창조론으로서 ‘지적설계론’을 말한 것이다. 이 오묘한 자연이 어떻게 저절로 생겼냐는 물음이다.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며, 무작위가 아닌 의도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근대 이전의 우리 문헌에서 인간창조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 보지 못한 것 같다. ‘어떻게 태어났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를 중시하는 것이 동양의 세계관이었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생명의 기원에 대한 자연과학식의 연구에 몰두하지 않았던 우리는 그래서 서양문명의 지식중 하나로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인다.

 

19C 중반이니 진화론이 태어난 지 150여년이다. 산업혁명이 18C 중반부터 시작되었으니 사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비추어보면 생명의 진화에 대한 연구는 한참 늦은 편이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진화론이 정확하게 어떤 이론인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초기원시세포에서 점차적으로 고등생물로 발달했다는 것만 막연히 알 뿐, 세부적인 것에는 대부분 관심이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학교 다닐 때 암기과목으로 인식될 만 큼 외울 것이 많았던 생물은 그 어려운 용어만큼이나 재미가 없는 과목이었다. 생명에 대한 과학이 생각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관심을 가진 건 고등학교 생물을 배운 기억이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될 만큼의 긴 시간이 지난 뒤다.

 

진화론의 최대 의의는 다른 근대 학문과 마찬가지로 신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이 지구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 받은 인간이 단지 수많은 생물보다 조금 더 진화한 존재라는 사실은 과거에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우주의 유일무이한 영적존재에서 원숭이와 사촌이며 심지어 초파리 같은 미물과도 유전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동물의 한 종류로의 추락은 얼마나 모욕적인가?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이 세상에 나온 과정부터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현대의 생물학자들이 서로 티격태격하는 이유까지를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냥 진화론에 대해 편안한 마음으로 쭉 한 번 읽어 보고 권장하는 추가도서를 필요에 따라 읽어 보면 좋을 듯하다.

 

아무래도 가끔씩 튀어 나오는 전문용어는 낯설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평생 과학을 피해 다닌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래도 입안의 보리밥알처럼 헛돌기 일쑤다. 그렇지만 우리를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변화과정을 알아야 하는 것은 족보를 보며 조상의 권세를 세는 것보다 더 근원적이며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진짜 조상의 뿌리를 찾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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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지성체의 방문과 인류종말의 문제에 관하여 - 대답 없는 우주에 대답을 던지는 두 지성 간의 대화
최준식.지영해 지음 / 김영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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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내가 이 책을 산 이유

아마 내가 모르는 사람이 이 책을 썼다면 절대 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믿고 산 이유는 순전히 지은이의 교수라는 신분 때문이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종교에 관한 책을 다수 출간한 종교학 권위자로 그 중 몇 권을 읽은 적이 있기에 신뢰할 수 있었고, 지영해 옥스퍼드대 교수는 잘 모르지만 영국 최고 대학의 교수라기에 믿을 수 있었다.

 

멀쩡한 대학 교수 두 명이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애들과 철이 덜 든 어른들이나 관심을 가질 법한 UFO라는 황당하고도 무계한 주제로 의기투합하여 책을 냈다? 흥미가 확 당기지 않은가? 도대체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기에 사이비과학으로 치부되며 학계에서는 금기시하는 이런 허접한 주제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을까? 젊잖은 교수 신분에 이 무슨 망동이냐? 라는 따가운 시선을 감수하고 말이다.

 

2. UFO는 존재하는가?

믿음에는 세 가지가 있다. 보고서야 믿는 것, 보지 않고도 믿는 것, 보고도 믿지 않는 것.

봤으니 믿는 것은 당연하다.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은 신과 같이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것들이다. 문제는 보고도 믿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UFO가 존재함에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 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어떠한 결정적인 증거도 내놓지 못한다. UFO우주선의 실체를 보여줄 수도 없고 외계인을 우리 눈앞에 데리고 올 수도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대신 그들은 지금껏 세상에 나타났던 수많은 UFO사진과 영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90%는 자연 현상 같은 물리적 현상이나 인위적 조작으로 설명되지만 나머지 10%는 분명 우리 눈앞에 잠깐 동안 실재했던 분명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하여 실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터넷에 UFO를 검색해보면 금방 알 일이다.

 

두 번째로 그들이 내놓는 증거는 수천 명의 UFO피랍자의 증언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UFO에 납치되어 생체실험을 당했다는 것이다. 지영해 교수는 오랜 시간동안 그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정신이상자도, 사회부적응자도, 사이비종교 신봉자도 아니고 굳이 거짓말로 관심을 받을 이유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에는 서로 짜지 않고는 같을 수 없는 일관성이 있고, 직접 겪지 않고서는 묘사할 수 없는 생생함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 똑 같은 일을 똑 같이 겪은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냥 개인적인 정신이상이나 거짓으로 몰아붙이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다는 것도 분명 이상한 일이라는 것이다. 실재하지만 설명할 수 없다면 안 믿는 것이 맞는 것인가?

 

UFO를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정부의 정치, 사회적 장악력의 예외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보여주었던 외계인의 기술력은 우리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다. 지구의 물리법칙을 비웃 듯이날아다니는 UFO의 비행기록을 보면 분명 외계인의 문명 수준은 우리보다 한참 우월하다. 정부가 자기보다 우월한 존재를 인정한 다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야기할 것이니 당연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이 최선책인 것이다.

 

또한 이 세계의 절대자로 군림해온 인간이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의 가능성을 인정할 경우 오직 절대자 창조주만을 우위에 둔 인류의 권력과 교만이 붕괴되는 것이니 어찌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인간은 우주에 대한 관심도 아주 멀리 전파로만 조우할 수 있거나 하등한 유기체생물에만 관심을 갖는 안전한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계인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도 같은 맥락이다. ‘인디펜던스데이화성침공같은 영화를 보면 우리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가진 적대적인 외계인을 아주 황당한 방법으로 싱겁게 이겨 버리지 않은가? 거기에는 외계인의 우월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지구인의 가소로운 자존감이 엿보인다.

 

3. 저자의 주장

UFO와 외계인의 정체

UFO 기원설은 세 가지다. 먼 우주에서 왔다. 지구의 땅속이나 해저에 살고 있다. 우리와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UFO를 우리 은하계와 안드로메다 저 편 먼 우주에서 날아온 외계생명체로 생각하지만 두 분은 세 번째를 지지한다. 최교수는 외계인을 우리가 사는 차원과 영계의 중간 쯤에 존재하는 물질과 반물질로 이루어진 생명체로 주장한다. 지구의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그네들의 행동을 보면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UFO가 나타나는 이유와 지구인을 납치하는 이유

먼저 두 교수는 외계인의 지구정복설을 일축한다. 그들의 우월한 문명과 과학기술 수준이라면 그렇게 비밀리에 뭔가를 꾸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다. 영화와 달리 그네들이 맘만 먹는 다면 지구 정복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또한 그렇게 할 거였으면 옛날 지구인들이 미개한 시절에 했지 굳이 지구인의 과학기술이 발달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보다 진화에 앞선 존재라면 사랑과 평화의 존재다. 폭력적인 성향의 유전자가 공멸하지 않고 진화의 끝까지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인 것이다.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침 흘리며 달려드는 외계인의 설정은 지극히 탐욕적인 지구인의 수준을 투사한 결과일 뿐.

 

외계인이 나타나는 이유는 지구가 현재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란다. 외계인의 거주지는 우리와 차원을 달리하는 곳이긴 하지만 광역생태권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에 현재 지구가 처한 위기상황을 무시할 수 없어 나타난 다는 것이다. 지구위기의 원인은 환경파괴. 이대로 두면 지구의 종말은 필연적이기에 뭔가 조치를 취하기 위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조치 방법 중 하나가 지구인 납치다.

 

그들은 지구인을 납치하여 생체실험을 하는데 목적은 외계인과 지구인의 혼혈종을 만들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혼혈종을 만드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천의 증언자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정자와 난자를 채취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혼혈종으로 하여금 지구의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지, 현 인류를 대체할 신인류를 만들고자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사고범위를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들이기에 자기들 나름대로 뭔가 해결책을 찾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만 추측할 뿐이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인가?  UFO에 대항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우리가 할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두 학자의 결론이다.

우리의 기술수준으로 그들의 의사에 반해 UFO를 잡을 수도 만날 수도 없으니 말이다. 그들의 행태로 보건데 앞으로도 우리 앞에 공식적으로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란다.

그렇다면 그네들이 우리 앞에 나타나 경고를 하고자 하는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가?

 

산업혁명 이후 막대한 화석연료를 사용한 결과 지구의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지구온난화를 야기했고 이 상태를 방치할 경우 인류의 멸절은 시간문제다. 현재 인류는 이 치명적인 결과에 대해 어떤 효과적인 대응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배출의 주범이었던 미국, 영국, 호주 등 강대국들은 기후변화대응에 소극적이고 이제 막 잘살아보자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 인도 등 후발 주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하늘은 무너지고 있는데 자기 집안에서 가족들이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있는 꼴이다.

 

저자들은 지구 종말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경제적 요인으로 과생산, 과소비를 지향하지 않으면 몰락하는 시장자본주의

둘째, 정치적 요인으로 정부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 하지 않으면 선거를 통해 정부를 바꾸어 버리는 민주주의 체제.

셋째, 국제관계적인 요인으로 국가이익을 우선시하고 국가 간 경쟁 체제 속에서 범국제적 기후협약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민족주의 체제.,

 

두 분의 의견도 그렇지만 내 생각 역시 이 세 가지 체제가 하루 이틀에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현 체제가 정립되는데 수백 년이 걸렸는데 바뀌는 데도 당연히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지구의 환경이 그 때까지 기다려 줄지다. 인류가 스스로의 오류를 인정하고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 채 인류의 생존을 위해 공동협력을 할 날이 과연 올까?

 

그러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외계인들은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고 자기들 나름대로 뭔가 대응책을 꾸리고 있다는 것이 결론인 것이다. 물론, 그들의 대응책이 우리 인류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우리 보다 우월한 초월적인 존재의 생각을 어찌 가늠하겠는가?

 

4. 마무리

시작은 다소 황당했지만 결말은 아주 비극적인 인류종말로 끝나 버린 UFO와 외계인 이야기.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걸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중간 하다. 내가 믿는다고 없는 존재가 있는 것이 되고 내가 무시한다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화 인테스텔라미지와의 조우처럼 우리보다 우월한 외계종족으로부터 지구와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는 없을까?

 

이런 거창하고도 장대무변의 우주이야기보다 당장 오늘 저녁 뭘 먹을까? 내일 어디로 놀러 갈까? 퇴직 후에는 뭘 하고 살까?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우리.

이 광대한 우주의 스펙트럼과 신비한 외계생명체와의 조우에 비하면 먼지 하나만큼의 무게도 안 되는 이 하잘 것 없는 일상사에 찌들어 살고 있는 우리가 과연 인류의 종말이니 우주의 신비니 하는 말이 가당키나 할까?

 

만약 신이든 외계인이든 지구종말을 앞에 두고 절망하고 있는 우리 앞에 나타나 "너희가 지금까지 지은 죄를 사하고 구원받을 이유를 단 한가지라도 대면 구해주겠다" 하고 말한다면 과연 인류는 무엇을 자신있게 내놓을 수 있을까?

 

밤늦도록 책을 본 후 새카만 하늘을 문득 쳐다본다. 공해에 찌든 도시의 밤하늘엔 꺼질 듯 희미한 별 빛 몇 개가 반짝거린다. 어릴 적 어느 날 저녁에 황금빛 UFO가 내 앞에 나타나고 외계인이 내리는 장면을 상상한 적이 있었다. 내게도 그런 특별한 일이 일어나길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가? 아주 특별한 일이.

 

그래....아무일 없을 거야. 다 이야기야. 그냥 재미로만 보면 돼.

내일이면 또 납치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오늘 일은 깨끗이 잊어버릴거야. 내가 책임질 일도 아니잖아. UFO를 본 적도 외계인에 대한 관심도 없고, 이산화탄소도 많이 배출하지 않았어. 인류종말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잊어버리는 것 뿐이야.

그저 한여름밤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어린애 장난 같은 주제와 황당한 내용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는 두 교수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긴다. 그러나 마냥 웃을 수 만은 없도록 만드는 어두운 결론. 그래서 누군가에게 권하기도 애매한 책. 읽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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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4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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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현대는 폭력의 시대라 할만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같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 구석구석 벌어지는 사건들이 생생한 화면과 함께 실시간으로 코앞까지 전해진다.

자기 사는 마을을 벗어난 외부와의 소통이 일정한 시간을 담보했던 과거의 농업사회에서는 농사지으며 이웃 간 내 것 네 것 없이 가족처럼 사이좋게 살았던 것 같아 더욱 현대의 폭력성이 부각된다.

 

하지만 핑커의 대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오히려 과거에 폭력이 만연했고 문명의 발달로 폭력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신뢰할만하다고 주장하는 통계를 가득 제시하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폭력의 발생 빈도를 그래프로 보여 준다.

 

고대에서는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부족할 땐 남의 것을 뺐기 위해, 그리고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했다. 해결할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제3자가 없기에 개인, 종족과 상관없이 각자 자력구제가 원칙인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내세운 문제 해결은 당연히 폭력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적을 절멸시켜야 후환이 없기에 어린아이까지 학살하는, 지금 보기에 잔인하다고 할 만한 일이 많았다.

 

자력구제 원칙의 역사는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이 성립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지만 17~8세기 소위 이성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라져갔다 .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을 바꾼 건 환경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이다.

 

환경의 변화는 리바이어던(근대국가)과 상업의 발달이다. 국가는 세금을 내는 국민이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국민은 국가의 자산이다. 공식적인 명분은 국민의 보호지만 국부(國富)의 바탕인 세금을 낼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고 다치면 곤란한 일이다.

법과 제도를 통한 중앙집권화는 재판소의 판결의 통일성과 지방봉건세력의 자의적 법집행을 막았다.

상업의 발달은 상호 신뢰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상대방이 화나게 했다 해서 머리통을 으깨버리는 과거의 예절과 관습으로는 도저히 거래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먼저 상호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성립된 신용(信用)이야말로 상업의 발달이 만들어 낸 최고의 평화도구였다.

 

인도주의혁명에 따른 개인의 의식 변화 역시 환경과 맞물려 일취월장 성장해 갔다.

과학혁명은 우리가 싸우고 사는 세상이 끝없는 우주의 한쪽에 위치한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창조주가 창조한 피조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갔으며, 식민지 개척을 위한 항로개척과 탐험의 결과는 유럽과 다른 대륙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전혀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유럽은 기회요 원주민은 재앙이었던)조우였다.

 

사람들은 마을과 친족이라는 오감으로만 접근할 수 있었던 비좁은 세상과 교회라는 유일한 정보 제공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편협한 정보를 넘어서고자 했으며, 이에는 쓰기와 읽기 능력의 성장, 출판물의 기록적인 증가가 큰 몫을 차지했다.

 

간간히 거행되고 일어났던 합법적, 비합법적 잔인한 폭력만이 유일한 구경이나 관심거리가 되기에는 돌아가는 새로운 세계가 너무 흥미로웠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와 똑 같은 사람을 학대하는 일에 서서히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며, 이는 이성에 눈을 뜬 시대의 커다란 선물이자 문명의 결과였던 것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앞세워 권력과 돈에 눈이 어두웠던 세속 교회가 저질렀던 끔찍한 마녀사냥의 희생자 역시 급격히 줄어들어갔으며, 18세기가 저물어가면서 막을 내린다. 중앙집권의 확립과 더불어 교회권력은 세속에서 성()스러운 교회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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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 라캉 - 무의식의 초대 지식인마을 34
김석 지음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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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와 그 계승자를 자처하는 라캉의 기본과 핵심사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쓴 입문서. 편하게 읽고 이해하며 인간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긴 여행을 시작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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