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 인간은 폭력성과 어떻게 싸워 왔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4
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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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현대는 폭력의 시대라 할만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같은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 구석구석 벌어지는 사건들이 생생한 화면과 함께 실시간으로 코앞까지 전해진다.

자기 사는 마을을 벗어난 외부와의 소통이 일정한 시간을 담보했던 과거의 농업사회에서는 농사지으며 이웃 간 내 것 네 것 없이 가족처럼 사이좋게 살았던 것 같아 더욱 현대의 폭력성이 부각된다.

 

하지만 핑커의 대답은 천만의 말씀이다. 그는 오히려 과거에 폭력이 만연했고 문명의 발달로 폭력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신뢰할만하다고 주장하는 통계를 가득 제시하며 고대부터 현대까지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폭력의 발생 빈도를 그래프로 보여 준다.

 

고대에서는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부족할 땐 남의 것을 뺐기 위해, 그리고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행사했다. 해결할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제3자가 없기에 개인, 종족과 상관없이 각자 자력구제가 원칙인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내세운 문제 해결은 당연히 폭력을 부르는 경우가 많았으며, 적을 절멸시켜야 후환이 없기에 어린아이까지 학살하는, 지금 보기에 잔인하다고 할 만한 일이 많았다.

 

자력구제 원칙의 역사는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이 성립된 이후에도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지만 17~8세기 소위 이성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사라져갔다 .

그 전에 살던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을 바꾼 건 환경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이다.

 

환경의 변화는 리바이어던(근대국가)과 상업의 발달이다. 국가는 세금을 내는 국민이 있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국민은 국가의 자산이다. 공식적인 명분은 국민의 보호지만 국부(國富)의 바탕인 세금을 낼 백성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고 다치면 곤란한 일이다.

법과 제도를 통한 중앙집권화는 재판소의 판결의 통일성과 지방봉건세력의 자의적 법집행을 막았다.

상업의 발달은 상호 신뢰의 예측 가능성이 중요한데 상대방이 화나게 했다 해서 머리통을 으깨버리는 과거의 예절과 관습으로는 도저히 거래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먼저 상호 이해와 공감이 필수적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성립된 신용(信用)이야말로 상업의 발달이 만들어 낸 최고의 평화도구였다.

 

인도주의혁명에 따른 개인의 의식 변화 역시 환경과 맞물려 일취월장 성장해 갔다.

과학혁명은 우리가 싸우고 사는 세상이 끝없는 우주의 한쪽에 위치한 작은 행성에 불과하며, 창조주가 창조한 피조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아 갔으며, 식민지 개척을 위한 항로개척과 탐험의 결과는 유럽과 다른 대륙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전혀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유럽은 기회요 원주민은 재앙이었던)조우였다.

 

사람들은 마을과 친족이라는 오감으로만 접근할 수 있었던 비좁은 세상과 교회라는 유일한 정보 제공자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편협한 정보를 넘어서고자 했으며, 이에는 쓰기와 읽기 능력의 성장, 출판물의 기록적인 증가가 큰 몫을 차지했다.

 

간간히 거행되고 일어났던 합법적, 비합법적 잔인한 폭력만이 유일한 구경이나 관심거리가 되기에는 돌아가는 새로운 세계가 너무 흥미로웠다. 이제 사람들은 자기와 똑 같은 사람을 학대하는 일에 서서히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며, 이는 이성에 눈을 뜬 시대의 커다란 선물이자 문명의 결과였던 것이다.

 

신에 대한 믿음을 앞세워 권력과 돈에 눈이 어두웠던 세속 교회가 저질렀던 끔찍한 마녀사냥의 희생자 역시 급격히 줄어들어갔으며, 18세기가 저물어가면서 막을 내린다. 중앙집권의 확립과 더불어 교회권력은 세속에서 성()스러운 교회로 돌아갈 준비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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