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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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에 대한 교훈이면서 미래에 대한 계시가 될 것이다” (526쪽)에서  문학이 역사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문학은 나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사는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상대의 생각에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의견의 차이를 넘어 화합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남자는여자의, 현대에 산다면 과거의, 카톨릭이라면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 책을 잡는 동안은 가능하다.   


이 책은 이슬람이 들어오고, 파키스탄과 갈라진 인도 역사와, 델리, 케랄라, 구자라트 등 인도 도시를 탐방하고 키슈미르 분쟁속에서 지정학적 면을 탐방할 수 있게 해주는 네비게이트 역할을 한다. 


2009년에 델리에서 시작해 뭄바이, 고아까지 40일간의 인도 여행을 하면서 마날리의 추위와 고아의 더위, 사크교, 이슬람교, 힌두교, 카톨릭 교 등 문화의 다양성이 공존하지만 지성인들과 밑바닥 인생, 부자외 가난한 차들의 격차와 그 속에서 신뢰와 의심이 서로 바뀌는 경험을 하고 왔다. 이것이 인도의 매력같다.  

인도에서는 종교와 카스트 제도는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는 그것을 반영한다. 소설은 현실을 비추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장면속에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스쳐갔던 작은것들을 돌아보게 해준다. 

그들의 문제는 불명료함이 아니었다. 정말로. 그건 현대 지정학의 언어 바깥에 존재하는 끔찍한 명료함에 가까웠다. 분쟁의 각 진영에 속한 모든 주역들은, 특히 우리는, 이 단층선을 무자비하게 이용했다. 이 단층선은 완벽한 전쟁-결코 승리하거나 패할 수 없는 전쟁, 끝이 없는 전쟁-에 제격이었다.

간디의 암살로 촉발된 시크교도 학살, 구자라트에서 일어난 이슬람교도 학살 등 힌두 민족주의는 불만 붙이면 타오를듯하다. 가난에 지친 대중들에게 힌두 민족주의는 뭉치게 하면서 타자를 베재한다. 차별하기 위해서 차이를 발견하도,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동질성을 확인한다.   


틸로는 거친 바다 위의 종이배 같았다. 그녀는 철저히 혼자였다. 우리 나라의 빈민들조차, 비록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을지언정, 가족은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그녀의 배는 가라앉히 전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와 안줌같은 히즈라는 두 가지의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시작과 결말에서 맞물린다. 


그녀가 아는 유일한 언어인 우르두어에서는 모든 것이, 생명을 지닌 것들만이 아니라 모든 것-양탄자, 옷 , 책, 펜, 악기까지-이 성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남성 아니면 여성이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아기 만 빼고, 물론 그녀는 자신의 아기 같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히즈라. 사실 그런 단어가 두 개 있었다. 히즈라와 킨나르. 하지만 단어 구 개로 언어를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틸라가 길에서 주운 아이를 안줌의 집으로 데려가면서 각자의 이야기가 연결되면서 큰 강을 이룬다.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 벽이 되면서 아기인 미스제빈 2세를 보호하는듯 하다. 자족은 주어지기도 하지만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아기를 통해서 연대하면서 각자의 삶을 확장하고 통합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본다.

이 소설이 뛰어난 점은 안줌이 이슬람 가족의 히즈라에서 출발해서, 카슈미르, 하층 카스트 등 그 사회의 내 공동체 안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연결하면서  소수자나 약자가 또다른 소수자나 약자를 괴롭히면서 존재를 확인하는 것과는 대중들의 모습과는 다른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껴안는다.  

위로받지 못한 자들의 성인인 지복의 성자 사르마드는 존재를 규정할 수 없는 자들, 신자들 속의 신성 모독자들, 신성모독자들 속의 신자의 위안이고, 이 책의 주제 같다.   


우리는 카슈미르 이야기도 조금 나눴지만 추상적인 대화만 오갔다. 
“결국 자네들이 옳을지도 몰라.” 내가 부엌에서 그에게 말했다.
“자네들이 옳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이길 수는 없을 거야.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하는데. 그가 근사한 로간 조시 냄새가 올라오는 냄비를 저으며 미소 딘 얼굴로 대꾸했다. “결국 우리가 틀린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르지만, 우린 벌써 이겼어.”

이슬람 가족에서 태어난 안줌이 가출해서 히즈라 공동체에서 생활하고, 정세성을 확인하고, 사암이나 틸라 같은 상처받은 이들이 함께 어울리면서 인도의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로 중심을 비추면서 연대와 희망을 보여준다.  


“폭동도 우리 내부에 있어. 전쟁도 우리 내부에 있고. 인도 파키스탄 전쟁도 우리 내부에 있어. 그리고 그것을은 절대로 해결이 안 돼. 해결됄 수가 없으니까.”   

이 말은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 인도를 보고 있지만 책을 덮은 후에는 우리 역사를 보고, 사회를 볼 생각하게 됐다.  


나는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쓸거리가 많은 세련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카슈미르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여기서 일어나는 일은 세련되지 못하다. 훌륭한 문학이 되기엔 너무 유혈이 낭자하다. 
문제1: 그것은 왜 세련되지 못한가? 
문제2: 훌륭한 문학에 허용되는 피의 양은 얼마인가?

눈앞의 진실리 복잡해도 거짓괄과 증오를 외면하면 폭력으로 모든 것을 잃는다. 르럴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양의 피를 먹고 자란 훌륭한 문학은 현실에서 그만큼의 가치를 지니는가. 그렇다라는 답을 이 책은 아프지만 따뜻하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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