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나막신 우리문고 1
권정생 지음 / 우리교육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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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밥은 뭘까?"
미쯔꼬가 신고 있던 나막신을 훌쩍 공중 높이 차 던졌다. 나막신은 빙글빙글 공중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털썩 땅바닥에 떨어졌다. 밑바닥이 젖혀져 있다.
"어머나!"
미쯔꼬는 눈쌀을 찌푸렸다.,
"엎어졌구나, 죽이야."
쿠니오가 미쯔고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 말하고 자기도 신발을 던졌다. 반듯하게 바로 꽁들 앉았다.
"와, 우린 밥이야."
아이들은 저마다 신발 점치기를 했다. 발바닥이 위로 적혀지면 죽, 바로 놓이면 밥이라고 한다.
"야! 우리는 떡이야, 떡!"
용이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를 지른다. 나막신이 모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저기만큼 길바닥에 모서리로 간들간들 서 있는 용이의 나막신을 바라보았다. 용이는 자랑스러운 듯 앙감질로 가까이 가서 꼬득이 선 나막신을 발가락에 꿰었다.  

"어머나!"
분이의 까만 무명 끄나풀의 나막신이 하나꼬네 사철나무 울타리 사이의 단풍나무 가지에 걸려 버렸기 때문이다.
'저러면 뭘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분이는 어쩌면 아주 맛나는 과자 같은 것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식이를 업은 채 조금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나막신을 내리려고 발돋움을 했다. 손이 잘 닿지 않는다. 좀 더 발끝을 세웠ㄱ다. 조금 더, 조금 더.......  간신히 나막신 끈을 붙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등에 업힌 금식이가 몸을 뒤로 젖히는 바람에 분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아쿠쿠!"
분이는 뒷일은 잘 모른다. 금식이의 뒤통수에 피가 흐르고, 헝겊으로 머리를 친친 동여매 다음, 호남댁은 분이를 온몸이 부서져라 두들겨 대었다. 저녁밥도 굶은 채, 분이는 준이네 부엌 모퉁이에서 훌쩍거리며 앉아 있었다. 지붕과 지붕 사이에 간신히 보이는 하늘에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다. 분이는 배가 고팠다.
'아까 신발 점친 게 맞았어. 나뭇가지에 걸리면 굶는다고. 내일 준이한테 가르쳐 줘야지.' (60~62쪽)

이 책에 나오는 나막신은 우리 조상들이 신던 나막신이 아니고 일본의 게다(요즘의 쪼리같은)를 말한다. 어째서 '슬픈 나막신'일까 궁금했는데, 위 장면을 읽으며 이해되었다. 일본 도쿄 시부야 혼마찌에 사는 가난한 조선인과 일본 아이들은 태평양 전쟁으로 배급표를 받아 살기에 늘상 배가 고프다. 작은 배도 채우지 못하는 생활이지만, 아이들은 어울려 놀며 서로 돕고 나눌 줄 아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권정생 선생님의 성장기 체험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답고 슬픈 동화다. 

권정생의 분신이 아닐까 싶은 준이, 걸핏하면 우는 용이, 동생을 돌보는 분이는 조선아이다. 하나꼬와 에이꼬, 미쯔꼬, 키누요는 일본 아이다. 하지만 모두들 가난한 아이들이다. 잔잔한 일상을 그리며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 투명하게 녹아 있다. 날이 새면 어울려 노는 아이들에겐 국적이 따로 없고 조선인 일본인 장벽없이 지낸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아이들은 어른이나 형들처럼 국적을 가르며 조선인이라 놀림을 받는다. 겉으로 확 드러내지 않아도 어린 마음에 빼앗긴 나라 조선에 대한 그리움과 독립을 꿈꾸는 희망도 그려진다.  

가난하지만 바르고 반듯하게 자라도록 신경을 쓰는 준이 엄마 청송댁, 사는 게 버거워 걸핏하면 분이를 매질하는 호남댁, 하나꼬를 양딸로 데려온 마에다씨 부부, 준이 형 걸이가 자기의 아들 히로시와 같이 전쟁터로 가는 걸 보고 태도가 달라진 가즈오네 엄마. 다닥다닥 붙은 집에 이웃하고 사는 조선인 일본인 가정은 시대가 가져온 저마다의 슬픔과 애환을 갖고 산다. 전쟁 막바지에 공습에 대비한 방공훈련이 강화되면서 보여지는 그네들은, 일본인 조선인을 떠나 함께 목숨을 보존해야 할 이웃이고 형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권정생 선생님은 작가의 말에서, 30년 전에 썼던 초판을 본 이인자 선생님(이오덕 선생님 사모님)이 보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에 괜찮게 쓴 거구나 생각했는데, 우리교육에서 새로 책을 내면서 다시 읽어보니 요렇게 밖에 못 썼나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말씀하신다. 너무 예쁘게만 쓰려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하시는데, 읽어보면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한 마디 말이나 한 줄 문장에 아이들의 모습이 살아난다. 가식하지 않는 아이들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슬픈 나막신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유년기가 투영된 슬픈 나막신은을 읽고 나면, 선생님이 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지 그 마음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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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6-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찡하네요. 지금도 둘러보면 슬픈 일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요.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리뷰가 난 좋아요.

순오기 2011-06-01 16:20   좋아요 0 | URL
전쟁은 정말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지요.ㅜㅜ
 
하느님의 눈물 산하어린이 9
권정생 / 산하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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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눈물에 실린 열일곱 편의 짧은 동화는 토끼, 다람쥐, 까마귀 굴뚝새, 부엉이, 잠자리, 두꺼비 등 동물을 의인화하여 작고 작은 것들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권정생 선생님의 감성적인 문체와 따뜻한 시선은 읽는 마음까지 촉촉히 젖게 한다. 짧은 이야기 속에 수많은 메시지를 담아 낸 선생님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 마음에 작은 물결이 일어난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시간이 흘러도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다. 2005년인가 초등학교 학부모독서회 토론도서였는데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여운으로 남은 이미지에 새로운 느낌을 더한다.

아기 토끼는 배가 고픈데도 남의 목숨을 해치는 것 같아 풀을 뜯어 먹지 못한다. 아기 토끼는 하느님처럼 보리수 나무 이슬하고 바람 한 줌, 그리고 아침 햇빛 조금만 마시고 살게 해달라고 빌지만, 하느님은 아직은 안된다고 하신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아기 토끼처럼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면 그렇게 해 준다고...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남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오기는 할까? 사람들은 서로 사랑하기는 커녕 기를 써가며 남을 해치기 때문에 하느님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어제 내린 빗물이 달님 아줌마의 오줌이냐고 따지는 아기소나무는 제일 착한 건 싫고 보통으로 착하게 해달라는 사랑스런 모습에 코끝이 찡했다. 울타리 너머에는 무서운 도깨비가 있다며 절대 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에 깜박 속은 아기 다람쥐들은, 울타리 너머에도 자기들과 똑같은 다람쥐들이 산다는 걸 알고 철조망을 걷어내고 평화로운 다람쥐 동산을 만든다. 남의 것으로 치장하고 위장하는 것보다 본래의 자기 모습이 진짜 아름답다는 걸 깨달은 까마귀 나라와, 거지들아 도둑놈아 서로 욕하던 굴뚝새들이 위기에서 도와줌으로 화해하는 모습은 보기 좋다. 
 

짧은 이야기 속에 남의 목숨을 해치거나 남의 것을 빼앗고 미워하는 마음을 버리자는 것, 하늘과 땅과 공중에 있는 모든 생명들을 소중히 알고 서로 도우며 살라는 것,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기도 하다. 분단과 외세의 극복, 독재에 대한 저항, 생명 존중 등 무거운 주제지만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짧은 이야기 속에 잘 담아냈다. 권정생 선생님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하느님의 눈물에 실린 17편은 각각 몇 편씩 나누어 다른 제목의 동화집으로도 출간됐다. 
즉, <아기 소나무>에 7편 <학교 놀이>에 3편, <아기늑대 세 남매>에 3편,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에 실린 4편의 원전은 모두 <하느님의 눈물>이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눈물>을 본 독자라면 다른 제목인 <아기 소나무, 학교 놀이, 아기늑대 세 남매,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도 이미 읽었다는 걸 잊지 마시라. 나는 그 작품들이 권정생 선생님의 새 작품인줄 알고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같은 내용도 눈높이가 다른 독자를 위해 몇 편씩 떼어 묶고 새로운 삽화라 또 다른 맛은 있지만, 한편으론 독자를 속이는 게 아닌가 살짝 맘이 상하기도 했다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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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남매맘 2011-06-01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느님의 눈물에 실린 이야기들을 이렇게 몇 편씩 갈라 묶어 놓은 거였군요. 일단 두께가 얇아져서인지 저학년 어린이들도 읽을 용기가 생기나 봅니다. 하느님의 눈물은 좀 두껍잖아요.

순오기 2011-06-01 21:17   좋아요 0 | URL
저학년 아이들이 읽기에 부담없을 분량으로 나누어 묶은 의도는 좋아요~~~~
단 <하느님의 눈물>에 수록된 것을 나누어 묶었다는 안내를 작가의 말이나 편집후기에라도 남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밥데기 죽데기 - 보급판
권정생 / 바오로딸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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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권정생 선생님이 작정하고 재밌게 쓴 작품이다. 상황이나 대사 하나 하나에 웃음이 터져나오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나 주제는 가볍게 웃을 일이 아니다. 

솔뫼골 늑대 할머니는 사냥꾼에게 남편 늑대와 자식을 잃고 50년이나 혼자 살면서 원수 갚을 날만 기다려왔다. 드디어 때가 돼서 길쭉하고 둥그런 달걀 두개를 사다 사람을 만들고 밥데기와 죽데기라 이름 붙였다. 밥데기와 죽데기를 만든 과정이 재밌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달걀을 삶아 똥통에 한 달을 담갔다가 맑은 시냇물에 한 달을 넣었고, 다시 등꽃나무 밑 땅 속에 묻어 한 달을 둔다. 그 후 티 하나 없이 깨끗이 닦아 질경이 씨앗으로 짠 기름을 담은 접시에 얹어 놓고 열흘을 지낸 후 늑대할머니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성을 들여 기름에 불을 붙이고 빌고 빌어 나온 아이들이다.  

똥통에 담가 둔 것은 가장 밑바닥에서 엉망진창으로 견뎌봐야 세상을 바로 알게 되고, 똥통 같이 더럽고 흉측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맑은 물에 담가 둔 것은 아무리 원수를 갚아야 할 달걀귀신이지만, 물처럼 깨끗하고 정직해서 인간처럼 비겁하거나 더러워지지 말라는 것이다. 즉 원수를 갚아도 정당하게 갚고 깨끗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향기로운 꽃나무 밑에 묻어 둔 것은, 꽃처럼 아름다운 귀신이 되어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되면 세상이 망하니까, 아름다운 꽃으로 꿀을 만들어 벌과 나비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원수를 갚아도 아름답게 갚으라는 뜻이다.

늑대할머니는 원수를 갚기 위해 밥데기 죽데기를 훈련시키고 원수를 찾아 서울로 입성했지만, 황새 아저씨를 만나 이마가 벗겨진 사람은 이미 죽었고 사마귀 할아버지는 골골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말을 듣는다. 사마귀 할아버지는 일본 경찰에 끌려가 마구잡이로 온갖 동물을 잡아 죽을 죄를 졌다는 고백을 한다. 사마귀 할아버지는 늑대할머니의 정체를 알고 사죄하며 죽기 전에 용서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할 수없이 사마귀 할아버지를 용서해주고 삼층 병실 끄트머리 할머니를 돌보겠다는 약조까지 하게 된다. 그 할머니는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고생를 했고 돌봐줄 가족 하나도 없다. 또 사마귀 할아버지 이웃에 사는 할머니의 딸 인숙이는 히로시마에 터졌던 원자폭탄의 불빛을 본 후 놀라서 어둠 속 벽장에서만 사는데 당시의 나이였던 다섯 살 그대로 50년을 벽장에 숨어 살아야만 했다.  

늑대할머니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일제강점기의 폐해와 6.25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알고 원수를 갚는 대신 착한 마음을 먹는다. 똥통에 넣어 만들었던 밥데기와 죽데기와 아들이 된 황새 아저와 늑대할머니의 똥을 모아서 향기로운 금가루를 만든다. 네 사람은 하늘 높이 날아 올라 향기로운 금가루를 밤하늘에 뿌리고...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집집마다 냉장고 속의 달걀이 병아리로 깨어나 서울은 병아리떼로 가득찼고, 분단선의 철조망과 무기가 모두 녹아내렸다. 심지어 군인들의 철모까지 녹아내리고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버렸다. 드디어 북한과 남한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권정생 선생님이 꿈꾸던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동화속에서라도 통일을 이루고 싶었던 그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다. 어떤 이들은 분단 세대가 모두 죽은 다음에야 통일이 이루어질 거라고 한다. 이제 분단 60년이 넘었으니 나이 든 분단 세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을 뜰 날이 멀지 않았다. 전쟁의 상처와 이산의 아픔도 세월과 망각의 강에 흘려보내고 남은 후세들이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되는데....... 정권을 잡은 자들은 통일을 꿈꾸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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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배추 세 포기 간했다가 건져놨으니 양념해서 속을 넣어야 하는데, 아침에 알라딘에서 새로 나온 책을 살펴보다가 진실이 엄마의 편지를 발견했다. 

진실, 진영에게 엄마가 띄우는 첫번째 편지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정옥숙 | 이이림 (지은이) | 웅진윙스 | 2011-06-01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의 한 장면이었다. 왜, 진실이 엄마는 공지영 부모처럼 딸의 방문 앞에서 불침번을 서지 않았는가... 안타까웠다.   
 
 

"네 에미 원망하면 안 된다. 네 에미처럼 노력했던 사람은 없어. 할머니도 그만큼 노력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너를 떠나보내고 난 후, 네 에미가 몹쓸 일을 겪을 때마다 외할아버지하고 나하고 밤새 번갈아 네 에미 방 앞을 지켰다." (즐거운 나의집 37쪽)



사람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면 스스로 생의 끈을 놓아버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끔찍하고 두려워서, 죽음을 택했을 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쁘게 살아온 진실이, 어떻게 두 아이 엄마로 그렇게 모진 맘을 먹었는지... 그 엄마는 또 어떻게 살라고 그런 짓을 했는지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2010년 3월 29일 아들 최진영까지, 자식 둘을 가슴에 묻은 그 엄마는, 남겨진 외손주 둘을 거두며 어찌 사는지 안부가 궁금했다. 

5월 27일 금요일밤 MBC 휴먼다큐에서 '진실이 엄마'를 방송했다는 걸 알고, 700원을 결제하고 다운받아 보느라 눈물콧물 범벅이 됐다. 자식을 앞서 보낸 엄마가 어찌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살겠는가? 진실이 엄마도 그 딸을 혼자 보낼 수 없어 따라 가야겠단 생각만 했다고 한다. 아들이 죽었을 때도,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길래 이런 천벌을 받는가~~ 세상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나다닐수가 없었다고 한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spdocu/love/love_2011/1795650_39900.html  

 “내가 이거를 어떻게 사나? 이렇게 달랑 세 식구가 어떻게 살아 나왔는데... 정말 사랑하는 이 딸과 아들을 보내고 내가 어떻게 살겠나. 따라가야지. 그냥 따라가야 된다는 그 생각만 가슴 속에 가득했어요.”  - 어머니 정옥숙씨 인터뷰 中 

 
본인의 팔자를 딸에게 대물림 해 준 것은 아닌지, 왜 힘들어하는 아들을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 했는지, 불우했던 유년 시절이 자식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후회와 자책으로 어머니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라고... 왜 사냐고 묻는다면, 남겨진 어린 손주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야 하기에 꿋꿋이 살고 있다고...
 
   

  진실의 자녀들 양육문제도 세상 사람들은 왈가왈부 말이 많았기에,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에 수록된 <대법한 밥상>이 생각났다. 비행기 사고로 졸지에 아들, 며느리를 잃은 바깥사돈과 딸과 사위를 잃은 안사돈이 손주들 때문에 한 지붕 아래 사는 이상한 형국에 사람들의 입방아는 무서웠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말을 만들어내길 좋아한다.   

그 끔찍한 참척을 겪고도 눈이 초롱초롱해서 밥을 아귀아귀 먹은 것도 거액의 보상금 때문일 거라고 했고, 그 후에도 외가 진가의 두 늙은이가 아이들 손목을 양쪽에서 부여잡고 한시도 놓지 않은 것도 그 아이들에게 지급될 돈에 대한 후견인의 권한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이미 자리매김한 뒤였다.(214쪽) 

눈치가 빤한 어린것들이 즈이들 처지가 얼마나 달라졌다는 걸 왜 모르겠어. 그때부터 세 살짜리는 내 손을 한시반시 안 놓고, 찰싹 붙어 있으려고 그러지, 그뿐인 줄 알아. 다른 한 손으로는 즈이 오래비 손을 꽉 쥐고 안 놓지. 사내놈은 사내놈대로 누이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는 즈이 친할아버지 손은 꽉 부여잡고 놓아주질 하지. 쇠사슬도 그런 쇠사슬이 없더라고. 그게 아이들 나름의 생존전략이었을 거야. 두 아이들에게 묶인 우리 두 늙은이는 꼼작 못하고 그런 모습으로 장례식 치르고 그 후에도 같이 이동해 처음엔 우리 집으로 왔지. 그때까지 그 애들을 내가 데리고 있었으니까.(220쪽)   

 

다행히 진실의 자녀들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진실의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이야 편치 않지만 손주들을 위해 작년 여름부터 아이들을 보러 오는 애들 아빠를 받아주고 있었다. 이제는 당신 사위가 아니지만, 엄마를 볼 수 없는 아이들에게 버젓이 살아 있는 아빠를 못 보게 하는 건 '한'을 심어줄 수 있다며... 


할머니는 저를 힘들게 키우시니까 할머니한테 저를 길러주셔서 고맙다고... 제가 할머니를 지켜주고 편히 쉬게 해 주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외손주들은 할머니가 100살까지 살면 좋겠다고...  

’진실이 엄마’ 휴먼 다큐를 보면서 어린 남매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걱정이 됐다. 저렇게 아이들 얼굴을 온 세상에 드러내도 괜찮을까?  엄마처럼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저 아이들을 할퀴고 상처내는 사람들은 없어야 할 텐데... 외손주를 돌보는 진실의 어머니에게도 더 이상 아픔을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세 아이를 키우며 별별 일을 다 겪으면서,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에게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하지 않고 맘껏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나중에 땅을 치고 통곡하거나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사랑한다, 미안하다’ 말하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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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5-3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차마 못 보겠더라구요.
그냥 기사만 읽고 아이들 얼굴, 할머니 얼굴 보는데도 눈물이 핑 돌고
자신도 엄마처럼 배우가 되겠다는 고 최진실 씨의 아들 소망을 보면서 그냥 눈물이 뚝뚝 떨어져서
다큐나 책은 읽을 엄두도 안 나요. 이제 사춘기인데 고히 잘 컸으면. ㅠ

순오기 2011-05-31 02:17   좋아요 0 | URL
타고난 '끼'는 속일 수 없는가 봐요~
엄마처럼 배우가 되겠다는 아이들을 보니 한편으론 오히려 마음이 놓이던데요.

마노아 2011-05-3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송할 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읽느라 보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신경 쓰여서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여겼는데 여기서 먼저 내용을 보게 되네요. 아이들이 엄마 끼를 그대로 받았다고, 연예인 되고 싶어한다는 기사를 보고서 아찔했어요. 본인들 꿈이니까 뭐라할 수 없지만 혹여 상처를 받을까 걱정이 되어서요.

순오기 2011-05-31 02:19   좋아요 0 | URL
엄마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성장기에 갈등을 겪겠지만, 그래도 아픔과 상처가 아닌 극복의 대상으로 볼 때 엄마와 같은 배우를 꿈꾼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blanca 2011-05-30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다큐 정말 많이 울며 봤어요....아이들이 길 건너 학교가는 건널목에서 아이들 다칠까 눈을 못 떼는 그 할미의 모습도 할머니 아프다고 아홉 살 먹은 아이가 사과 갈아 먹여 주는 모습도 마지막 장면 소풍가서 셋이 함께 걸어가는 그 뒷모습도 정말 너무 너무 아프더라구요. 아, 맞아요.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그 가족을 정말 진심으로 응원해주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너무 과한 관심 말구요.

순오기 2011-05-31 02:22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야무지게 자라는 거 같아요, 특히 딸은 야무진 제 엄마를 많이 닮은 듯하죠.
남겨진 손주들 때문에 외할머니가 살아 야 할 명분이 생겼고,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말에 공감했어요.

소나무집 2011-05-3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음보다 더 무서운 건 없을 것 같은데...
저도 다시보기로 봐야겠어요.

순오기 2011-05-31 13:05   좋아요 0 | URL
죽음을 택하는 이들은 죽음보다 삶이 더 무섭기 때문이리라 짐작만...

2011-05-31 2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1-05-31 22:10   좋아요 0 | URL
그 심정을 어찌 필설로 다 하겠어요.ㅜㅜ

희망찬샘 2011-06-05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방송이 있었군요. 이 글만으로도 찡한데요. 학교 도서 신청하러 순오기님 서재를 훑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서재~로 말이지요.

순오기 2011-06-06 00:13   좋아요 0 | URL
진실이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면 저절로 가슴이 아파요.ㅜㅜ

요즘은 부지런떨지 못해서 새로운 리뷰가 많지 않지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고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 인생도처유상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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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8 유홍준 교수와 함께 한 부여답사 최고였어요. 책을 읽고 갔더니 훤히 보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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