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배추 세 포기 간했다가 건져놨으니 양념해서 속을 넣어야 하는데, 아침에 알라딘에서 새로 나온 책을 살펴보다가 진실이 엄마의 편지를 발견했다.
진실, 진영에게 엄마가 띄우는 첫번째 편지
엄마가,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정옥숙 | 이이림 (지은이) | 웅진윙스 | 2011-06-01
2008년 10월 2일 최진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의 한 장면이었다. 왜, 진실이 엄마는 공지영 부모처럼 딸의 방문 앞에서 불침번을 서지 않았는가... 안타까웠다.
"네 에미 원망하면 안 된다. 네 에미처럼 노력했던 사람은 없어. 할머니도 그만큼 노력하면서 살지는 않았다...... 너를 떠나보내고 난 후, 네 에미가 몹쓸 일을 겪을 때마다 외할아버지하고 나하고 밤새 번갈아 네 에미 방 앞을 지켰다." (즐거운 나의집 37쪽)
사람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면 스스로 생의 끈을 놓아버리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끔찍하고 두려워서, 죽음을 택했을 거라는 짐작만 할 뿐이다. 그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쁘게 살아온 진실이, 어떻게 두 아이 엄마로 그렇게 모진 맘을 먹었는지... 그 엄마는 또 어떻게 살라고 그런 짓을 했는지 용서할 수 없었다. 게다가 2010년 3월 29일 아들 최진영까지, 자식 둘을 가슴에 묻은 그 엄마는, 남겨진 외손주 둘을 거두며 어찌 사는지 안부가 궁금했다.
5월 27일 금요일밤 MBC 휴먼다큐에서 '진실이 엄마'를 방송했다는 걸 알고, 700원을 결제하고 다운받아 보느라 눈물콧물 범벅이 됐다. 자식을 앞서 보낸 엄마가 어찌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살겠는가? 진실이 엄마도 그 딸을 혼자 보낼 수 없어 따라 가야겠단 생각만 했다고 한다. 아들이 죽었을 때도, 내가 무슨 죄를 많이 지었길래 이런 천벌을 받는가~~ 세상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나다닐수가 없었다고 한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spdocu/love/love_2011/1795650_39900.html
“내가 이거를 어떻게 사나? 이렇게 달랑 세 식구가 어떻게 살아 나왔는데... 정말 사랑하는 이 딸과 아들을 보내고 내가 어떻게 살겠나. 따라가야지. 그냥 따라가야 된다는 그 생각만 가슴 속에 가득했어요.” - 어머니 정옥숙씨 인터뷰 中
본인의 팔자를 딸에게 대물림 해 준 것은 아닌지, 왜 힘들어하는 아들을 한 번도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 했는지, 불우했던 유년 시절이 자식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은 아닌지, 후회와 자책으로 어머니는 하루하루가 지옥이라고... 왜 사냐고 묻는다면, 남겨진 어린 손주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야 하기에 꿋꿋이 살고 있다고...
진실의 자녀들 양육문제도 세상 사람들은 왈가왈부 말이 많았기에,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에 수록된 <대법한 밥상>이 생각났다. 비행기 사고로 졸지에 아들, 며느리를 잃은 바깥사돈과 딸과 사위를 잃은 안사돈이 손주들 때문에 한 지붕 아래 사는 이상한 형국에 사람들의 입방아는 무서웠다. 사람들은 진실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말을 만들어내길 좋아한다.
그 끔찍한 참척을 겪고도 눈이 초롱초롱해서 밥을 아귀아귀 먹은 것도 거액의 보상금 때문일 거라고 했고, 그 후에도 외가 진가의 두 늙은이가 아이들 손목을 양쪽에서 부여잡고 한시도 놓지 않은 것도 그 아이들에게 지급될 돈에 대한 후견인의 권한을 절대로 놓치지 않으려는 행동으로 이미 자리매김한 뒤였다.(214쪽)
눈치가 빤한 어린것들이 즈이들 처지가 얼마나 달라졌다는 걸 왜 모르겠어. 그때부터 세 살짜리는 내 손을 한시반시 안 놓고, 찰싹 붙어 있으려고 그러지, 그뿐인 줄 알아. 다른 한 손으로는 즈이 오래비 손을 꽉 쥐고 안 놓지. 사내놈은 사내놈대로 누이에게 잡히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는 즈이 친할아버지 손은 꽉 부여잡고 놓아주질 하지. 쇠사슬도 그런 쇠사슬이 없더라고. 그게 아이들 나름의 생존전략이었을 거야. 두 아이들에게 묶인 우리 두 늙은이는 꼼작 못하고 그런 모습으로 장례식 치르고 그 후에도 같이 이동해 처음엔 우리 집으로 왔지. 그때까지 그 애들을 내가 데리고 있었으니까.(220쪽)
다행히 진실의 자녀들은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씩씩하게 자라고 있다. 진실의 어머니는 자신의 마음이야 편치 않지만 손주들을 위해 작년 여름부터 아이들을 보러 오는 애들 아빠를 받아주고 있었다. 이제는 당신 사위가 아니지만, 엄마를 볼 수 없는 아이들에게 버젓이 살아 있는 아빠를 못 보게 하는 건 '한'을 심어줄 수 있다며...
할머니는 저를 힘들게 키우시니까 할머니한테 저를 길러주셔서 고맙다고... 제가 할머니를 지켜주고 편히 쉬게 해 주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외손주들은 할머니가 100살까지 살면 좋겠다고...
’진실이 엄마’ 휴먼 다큐를 보면서 어린 남매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걱정이 됐다. 저렇게 아이들 얼굴을 온 세상에 드러내도 괜찮을까? 엄마처럼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저 아이들을 할퀴고 상처내는 사람들은 없어야 할 텐데... 외손주를 돌보는 진실의 어머니에게도 더 이상 아픔을 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도 세 아이를 키우며 별별 일을 다 겪으면서, 자식 키우는 사람은 남에게 함부로 말하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하지 않고 맘껏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된다. 나중에 땅을 치고 통곡하거나 후회하지 않도록 우리 모두 ’사랑한다, 미안하다’ 말하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