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데기 죽데기 - 보급판
권정생 / 바오로딸 / 1999년 8월
평점 :
품절


권정생 선생님이 작정하고 재밌게 쓴 작품이다. 상황이나 대사 하나 하나에 웃음이 터져나오지만 전체적인 이야기나 주제는 가볍게 웃을 일이 아니다. 

솔뫼골 늑대 할머니는 사냥꾼에게 남편 늑대와 자식을 잃고 50년이나 혼자 살면서 원수 갚을 날만 기다려왔다. 드디어 때가 돼서 길쭉하고 둥그런 달걀 두개를 사다 사람을 만들고 밥데기와 죽데기라 이름 붙였다. 밥데기와 죽데기를 만든 과정이 재밌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달걀을 삶아 똥통에 한 달을 담갔다가 맑은 시냇물에 한 달을 넣었고, 다시 등꽃나무 밑 땅 속에 묻어 한 달을 둔다. 그 후 티 하나 없이 깨끗이 닦아 질경이 씨앗으로 짠 기름을 담은 접시에 얹어 놓고 열흘을 지낸 후 늑대할머니는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성을 들여 기름에 불을 붙이고 빌고 빌어 나온 아이들이다.  

똥통에 담가 둔 것은 가장 밑바닥에서 엉망진창으로 견뎌봐야 세상을 바로 알게 되고, 똥통 같이 더럽고 흉측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맑은 물에 담가 둔 것은 아무리 원수를 갚아야 할 달걀귀신이지만, 물처럼 깨끗하고 정직해서 인간처럼 비겁하거나 더러워지지 말라는 것이다. 즉 원수를 갚아도 정당하게 갚고 깨끗하게 행동하라는 뜻이다. 향기로운 꽃나무 밑에 묻어 둔 것은, 꽃처럼 아름다운 귀신이 되어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게 되면 세상이 망하니까, 아름다운 꽃으로 꿀을 만들어 벌과 나비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처럼 원수를 갚아도 아름답게 갚으라는 뜻이다.

늑대할머니는 원수를 갚기 위해 밥데기 죽데기를 훈련시키고 원수를 찾아 서울로 입성했지만, 황새 아저씨를 만나 이마가 벗겨진 사람은 이미 죽었고 사마귀 할아버지는 골골 죽을 날만 기다린다는 말을 듣는다. 사마귀 할아버지는 일본 경찰에 끌려가 마구잡이로 온갖 동물을 잡아 죽을 죄를 졌다는 고백을 한다. 사마귀 할아버지는 늑대할머니의 정체를 알고 사죄하며 죽기 전에 용서를 받고 싶다고 말한다. 할 수없이 사마귀 할아버지를 용서해주고 삼층 병실 끄트머리 할머니를 돌보겠다는 약조까지 하게 된다. 그 할머니는 일본군에 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고생를 했고 돌봐줄 가족 하나도 없다. 또 사마귀 할아버지 이웃에 사는 할머니의 딸 인숙이는 히로시마에 터졌던 원자폭탄의 불빛을 본 후 놀라서 어둠 속 벽장에서만 사는데 당시의 나이였던 다섯 살 그대로 50년을 벽장에 숨어 살아야만 했다.  

늑대할머니는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일제강점기의 폐해와 6.25 전쟁으로 인한 아픔을 알고 원수를 갚는 대신 착한 마음을 먹는다. 똥통에 넣어 만들었던 밥데기와 죽데기와 아들이 된 황새 아저와 늑대할머니의 똥을 모아서 향기로운 금가루를 만든다. 네 사람은 하늘 높이 날아 올라 향기로운 금가루를 밤하늘에 뿌리고...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집집마다 냉장고 속의 달걀이 병아리로 깨어나 서울은 병아리떼로 가득찼고, 분단선의 철조망과 무기가 모두 녹아내렸다. 심지어 군인들의 철모까지 녹아내리고 사람들의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버렸다. 드디어 북한과 남한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권정생 선생님이 꿈꾸던 한반도의 평화통일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동화속에서라도 통일을 이루고 싶었던 그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다. 어떤 이들은 분단 세대가 모두 죽은 다음에야 통일이 이루어질 거라고 한다. 이제 분단 60년이 넘었으니 나이 든 분단 세대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을 뜰 날이 멀지 않았다. 전쟁의 상처와 이산의 아픔도 세월과 망각의 강에 흘려보내고 남은 후세들이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되는데....... 정권을 잡은 자들은 통일을 꿈꾸기나 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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