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나막신 우리문고 1
권정생 지음 / 우리교육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 저녁밥은 뭘까?"
미쯔꼬가 신고 있던 나막신을 훌쩍 공중 높이 차 던졌다. 나막신은 빙글빙글 공중에서 재주를 부리다가 털썩 땅바닥에 떨어졌다. 밑바닥이 젖혀져 있다.
"어머나!"
미쯔꼬는 눈쌀을 찌푸렸다.,
"엎어졌구나, 죽이야."
쿠니오가 미쯔고를 보고 재미있다는 듯 말하고 자기도 신발을 던졌다. 반듯하게 바로 꽁들 앉았다.
"와, 우린 밥이야."
아이들은 저마다 신발 점치기를 했다. 발바닥이 위로 적혀지면 죽, 바로 놓이면 밥이라고 한다.
"야! 우리는 떡이야, 떡!"
용이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를 지른다. 나막신이 모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신기하다는 듯 저기만큼 길바닥에 모서리로 간들간들 서 있는 용이의 나막신을 바라보았다. 용이는 자랑스러운 듯 앙감질로 가까이 가서 꼬득이 선 나막신을 발가락에 꿰었다.  

"어머나!"
분이의 까만 무명 끄나풀의 나막신이 하나꼬네 사철나무 울타리 사이의 단풍나무 가지에 걸려 버렸기 때문이다.
'저러면 뭘까?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 떡도 아니고......"
분이는 어쩌면 아주 맛나는 과자 같은 것이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금식이를 업은 채 조금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나막신을 내리려고 발돋움을 했다. 손이 잘 닿지 않는다. 좀 더 발끝을 세웠ㄱ다. 조금 더, 조금 더.......  간신히 나막신 끈을 붙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등에 업힌 금식이가 몸을 뒤로 젖히는 바람에 분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뒤로 나자빠졌다.
"아쿠쿠!"
분이는 뒷일은 잘 모른다. 금식이의 뒤통수에 피가 흐르고, 헝겊으로 머리를 친친 동여매 다음, 호남댁은 분이를 온몸이 부서져라 두들겨 대었다. 저녁밥도 굶은 채, 분이는 준이네 부엌 모퉁이에서 훌쩍거리며 앉아 있었다. 지붕과 지붕 사이에 간신히 보이는 하늘에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다. 분이는 배가 고팠다.
'아까 신발 점친 게 맞았어. 나뭇가지에 걸리면 굶는다고. 내일 준이한테 가르쳐 줘야지.' (60~62쪽)

이 책에 나오는 나막신은 우리 조상들이 신던 나막신이 아니고 일본의 게다(요즘의 쪼리같은)를 말한다. 어째서 '슬픈 나막신'일까 궁금했는데, 위 장면을 읽으며 이해되었다. 일본 도쿄 시부야 혼마찌에 사는 가난한 조선인과 일본 아이들은 태평양 전쟁으로 배급표를 받아 살기에 늘상 배가 고프다. 작은 배도 채우지 못하는 생활이지만, 아이들은 어울려 놀며 서로 돕고 나눌 줄 아는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권정생 선생님의 성장기 체험을 바탕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아름답고 슬픈 동화다. 

권정생의 분신이 아닐까 싶은 준이, 걸핏하면 우는 용이, 동생을 돌보는 분이는 조선아이다. 하나꼬와 에이꼬, 미쯔꼬, 키누요는 일본 아이다. 하지만 모두들 가난한 아이들이다. 잔잔한 일상을 그리며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이 투명하게 녹아 있다. 날이 새면 어울려 노는 아이들에겐 국적이 따로 없고 조선인 일본인 장벽없이 지낸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아이들은 어른이나 형들처럼 국적을 가르며 조선인이라 놀림을 받는다. 겉으로 확 드러내지 않아도 어린 마음에 빼앗긴 나라 조선에 대한 그리움과 독립을 꿈꾸는 희망도 그려진다.  

가난하지만 바르고 반듯하게 자라도록 신경을 쓰는 준이 엄마 청송댁, 사는 게 버거워 걸핏하면 분이를 매질하는 호남댁, 하나꼬를 양딸로 데려온 마에다씨 부부, 준이 형 걸이가 자기의 아들 히로시와 같이 전쟁터로 가는 걸 보고 태도가 달라진 가즈오네 엄마. 다닥다닥 붙은 집에 이웃하고 사는 조선인 일본인 가정은 시대가 가져온 저마다의 슬픔과 애환을 갖고 산다. 전쟁 막바지에 공습에 대비한 방공훈련이 강화되면서 보여지는 그네들은, 일본인 조선인을 떠나 함께 목숨을 보존해야 할 이웃이고 형제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권정생 선생님은 작가의 말에서, 30년 전에 썼던 초판을 본 이인자 선생님(이오덕 선생님 사모님)이 보시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기에 괜찮게 쓴 거구나 생각했는데, 우리교육에서 새로 책을 내면서 다시 읽어보니 요렇게 밖에 못 썼나 얼굴이 달아올랐다고 말씀하신다. 너무 예쁘게만 쓰려다 보니 주인공 아이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나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하시는데, 읽어보면 아이들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한 한 마디 말이나 한 줄 문장에 아이들의 모습이 살아난다. 가식하지 않는 아이들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 슬픈 나막신이다. 권정생 선생님의 유년기가 투영된 슬픈 나막신은을 읽고 나면, 선생님이 왜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지 그 마음이 감지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1-06-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찡하네요. 지금도 둘러보면 슬픈 일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요.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리뷰가 난 좋아요.

순오기 2011-06-01 16:20   좋아요 0 | URL
전쟁은 정말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이지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