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비가 내리던 날의 책 고르기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데,
그 비가 무섭고 두려울 줄은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비 한 방울이라도 안 맞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지난 목욜 아침 노인복지관으로 한문공부를 하러 갔는데
할머니들이 오는 길에, 지렁이들의 떼죽음을 보았다며 놀라워 하셨다.
비가 오면 지렁이들은 좋아하는데, 왜 그들이 길 위로 올라와 몽땅 죽어 있었을까?
혹시 인체에 무해하다는 미세한 방사능 비를 맞고 죽은 게 아니냐는 의견이 분분했다.
하찮게 여기는 벌레나 미생물조차도,
자연과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라는 걸 경험으로 아는 노인들은
"우린 오래 살았으니 괜찮지만, 우리 애기들은 앞으로 어쩌란 말이냐?"
는 탄식을 토해냈다. 일본의 원전사고 이후,
노인들은 일본 이야기만 나오면 골수에 사무친 듯 핏대를 올리며 일본을 질타한다.
일본을 돕자고 모금운동을 하고 시청자에게 부담 주는 ARS 자막조차도 거부하는 그분들의 말씀에
나도 조용히, 침묵으로 동조한다.
마노아님의 페이퍼에 빠진 책 세 권이 생각 나 연결한다.
이 책들을 읽으며 핵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았고,
오랫동안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다시 읽기도 무서운 책이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핵재앙을 잘 보여주기에
일독을 권한다.
<핵 폭발 뒤 최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보물창고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를 쓴 구드룬 파우제방은 제목만 봐도 공포감이 몰려오는 핵 폭발 뒤의 세상을 섬뜩하게 그려냈다. 이 책을 보면 요즘 일본에서 벌어지는 방사능 유출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일이고, 그들만의 재앙이 아니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핵폭탄이 터지면 정말 이럴 것 같다는 현실감이 무섭게 느껴지는 책이다.
2006년 8월 이 책을 처음 접한 우리 아이들의 느낌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이 삼행시 형태로 쓴 감상 후기에도 잘 묻어난다.
핵- 핵폭탄이 터질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폭- 폭발의 여파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염되고 병에 휩싸였다.
발- 발사를 누가 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다.
모두들 그저 살려고 발버둥을 칠 뿐이다.
뒤-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다.
최- 최악의 상황에 지금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주위의 모르는 사람이 죽고, 이웃의 친구도 죽고,
가족도 죽고, 나도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이다.
후- 후회를 해 봤자 소용없고 용서를 빌어도 부질없는 짓이다.
의-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은 늘어만 가고
아- 아이들은 기형과 돌연변이로 태어났다.
이- 이런 비참한 상황을 누가 만들었을까? 우리
들- 들의 부모님 세대다!
언제쯤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잘 살아갈지 기대를 하지만,
이런 기대를 비웃듯 책은 끝까지 현실적이었다.
무섭다!
이런 이야기가 책 속의 상상으로만 끝날 것 같지 않아서.....
<바람이 불 때에> 레이먼드 브릭스 / 시공주니어
책은 크지만 칸은 작고 그림은 촘촘한 만화책으로 초등 고학년 이상 볼만한 책이다.
세계 대전이 일어나 영국에 핵폭탄이 투하되는 상황을 가정하여 작가의 부모가 모델인 순박한 영국 노동자 계급의 노부부를 주인공으로 핵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있다.
세계전쟁을 지켜보고 견뎌온 노부부는 이번에도 조용히 견디면 전쟁이 끝날 줄 알았지만
, 핵전쟁의 바람은 조용히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바람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으면 순박한 노부부의 최후가, 결코 우리의 모습이 되는 일은 없기를 저절로 기도하게 된다.
<마사코의 질문> 손연자 / 푸른책들
일제강점기에 억압받던 우리민족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 동화집이다.
평범한 백성들의 피해, 일제에 의해 투옥된 이후 생체 실험을 당했던 윤동주 시인, 관동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들, 일본 군인들의 위안부로 끌려간 조선의 여자들, 개인과 민족이 당했던 역사적 피해를 작가는 쉽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할 줄 모르는 뻔뻔한 일본인들에게 ’마사코의 질문’은 결코 그들의 잘못은 없었는지 물으며 끝난다. 일본인들이 철저하게 반성하고 용서를 구했다면, 핵폭탄의 위험을 처절하게 경험한 그들이 지금의 사태를 불러오진 않았을지도...
조용히 내리는 봄비조차 두려운 요즘,
공동운명체라는 말이 이렇게 절절히 체감되기도 처음이다.
웬수같은 이웃~~~~
아직도 원전사고를 수습하지 못하는 저들은 모두 함께 재앙을 당하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