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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티와 거친 파도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25
바버러 쿠니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내가 갖고 있는 바버러 쿠니의 책들, 에밀리는 이웃의 도도공주가 빌려가 인증샷에선 빠졌다. 나는, 바버러 쿠니의 화려한 그림보다는 은은하게 살려낸 자연 그림이 좋다.
바버러 쿠니는 <해티와 거친 파도>에 '어머니 메이 보서트 쿠니를 그리며, 그리고 그 자손들을 위하여'라고 썼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어머니는 아이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 했고, '어머니에게 배운 미술교육은 붓을 씻는 방법뿐이었다'고 할만큼 자유롭고 열린 미술교육을 했다고 한다.
바버러 쿠니는 200권이 넘는 책에 그림을 그렸고, <제프리 초서의 챈티클리어와 여우>와 <달구지를 끌고>로 그림책의 노벨상이라는 칼데곳상을 두번이나 받았다. 바버러 쿠니는 1917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쌍둥이 남매로 태어나 2000년 여든 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을 발표했다고...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해티의 아빠는, 웅장한 붉은 벽돌집과 멋진 별장을 가진 성공한 목재상이다. 유복한 환경의 해티 이야기는 바바러 쿠니의 자전적 이야기로 감지된다.
보통 사람들의 로망인 근사한 별장을 여러개 가진 전형적인 부자의 삶에 부러움과 질투라는 부작용이 동반될 수도 있다.^^
가족의 행복한 모습. 피피는 엄마처럼 예쁜 신부가 된다 하고, 볼리는 아빠랑 목공소에서 일해 돈을 많이 벌겠다고 하지만... 해티는 화가가 되겠단다. 피피와 볼리는 여자는 페인트 칠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 놀리지만, 해티는 페인트 칠장이가 아니라 달과 바람과 바다의 거친 파도를 그리는 화가를 꿈꾼다.
아이들은 개구쟁이라서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못견디고 떠나게 하지만, 요리사나 가정부와 같이 주방에서 카드놀이도 즐긴다. 해티는 그 와중에도 한쪽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심지어 감기에 걸려 꼼짝할 수 없을 때도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리는 게 행복한 아이다.
이민자 가정인 친척들도 풍족한 모습이다. 쉬는 날이면 삼촌, 숙모, 사촌들은 부시위크 거리의 해티네 집에 모인다. 어른들은 독일말과 독일 음식을 즐기지만 아이들은 하품나게 지루한 분위기일 듯...^^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엄마의 보물인 화가 외할아버지 그림인 '클레오파트라의 거룻배'라는 작품을 감상하며 칭찬을 하지만 할아버지의 배는 물에 뜨지 않을거 같다. 해티가 그린 거룻배가 물 위에 뜨겠지...^^
엄마의 또 하나 보물은 아빠가 선물한 장미나무 피아노. 엄마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피아노로 자장가를 치고,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피아노 치는 법을 가르쳤다. 해티는 손가락이 짧아 어렵겠다고 하지만, '즐거운 농부' 쯤은 휘파람으로 불 줄 안다며 가볍게 무시하는 사랑스런 해티.^^
여름에는 바닷가 별장에서 친척들과 뱃놀이도 즐긴다. 해티는 뱃머리에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바다를 보는 게 좋았다. 아~~ 뱃전에서 바다를 볼 줄 아는 소녀라니!
나도 배를 타면 뱃전에서 온몸으로 바닷 바람을 받는 게 좋았다. 막힌 가슴까지 뻥~ 뚫리는 그 느낌~~ 그래서 답답할 땐 바다에 가야 좋다.
해티는 집에 돌아오면 자기 방으로 올라가 그림을 그렸고... 금세 방은 그림들로 뒤덮였다.
혼자 바닷가를 거닐고 휘파람을 불며 머릿속으로 온갖 꿈을 꾸는 소녀, 거친 파도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해티!
롱아일랜드 별장에 간 해티는 숲 속에서 비밀얘기도 나눈다. 리틀 마우스는 선생님이 되고, 해티는 화가가 될 거라는 꿈을 속삭이고...
피피는 결혼하고 볼리는 사업가가 되었다. 해티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여인을 보며 비로소 깨닫는다. 자기도 열정을 다해 그림을 그릴 때가 왔다는 것을....
거친 파도는 해티에게 말한다. "너는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게 될 거야. 아주 아름다운 그림을...'
다음 날, 해티는 엄마 아빠한테 말했다.
"화가가 되려고 해요."
"외할아버지처럼 되고 싶구나."
"네, 하지만 저는 저만의 그림을 그릴 거예요."
이 그림책에서 해티의 삶에 '거친파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티는, 아니 바버러 쿠니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기만의 그림을 그린 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