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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인터넷 소설가 ㅣ 푸른도서관 36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4월
이금이 작가의 따님 누리양이 그린 표지가 눈에 확 뜨인다. 한석봉 엄마는 떡을 썰고 아들은 글을 썼지만, 이금이 작가는 글을 쓰고 딸은 엄마 작품에 그림을 그리는 멋진 조합이다. 우인소 외에도 전작 벼랑과 첫사랑의 표지도 그렸다. 작가의 밤티마을 블로그에 표지가 멋지다고 댓글을 남겼더니, 이런 그림을 아르누보풍이라고 한다고 해서 네이버 검색으로 답을 얻었다.^^
아르누보란 불어로 '새로운 예술'이란 뜻으로 19세기 말 영국에서 모태가 된 미술 운동이다. 아르누보 작가들은 모든 역사적인 양식을 부정하고 자연에서 유래된 아름다운 곡선을 모티브로 삼아 새로운 표현을 했다. 아르누보는 자연을 소재로 한 양식으로 건물이나 디자인을 보면, 나무 덩쿨이나 말린 가지들, 화려한 꽃들의 모양 등 갖가지 자연을 소재로 한 형태가 특징이다. 자연적인 소재에서 시작된 아르누보는 화려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장식적이고 그 형태 또한 곡선이 많이 사용되어 귀족풍의 디자인을 연상시킨다.
지난 2월 1일부터 푸른책들 카페에서 <우리반 인터넷 소설가>를 연재했는데, 22회가 연재되는 동안 독자의 댓글에 일일히 답글을 남겨 서로 소통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3월 초 출간과 더불어 작가의 인지도만큼이나 매스컴에 올라오는 <우인소>서평을 접할 수 있었다. 경향신문에 나온 기사와 함께 한 책표지는 더욱 돋보인다. 알라딘 작가 검색엔 아주 수십년 된 작가 사진이 올라 있는데, 이 사진은 가장 최근의 작가 모습이다. 작가는 <우인소>를 통해 외모지상주의나 집단따돌림 같은 소재가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문제인 <진실>의 가치를 다뤄보고 싶었단다.
이 작품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반 인터넷 소설가의 작품이 바로 소설 속 소설인 액자소설이다. 지난 4월 7일, 중학교 독서회의 토론도서였는데 함께 했던 인문독서부장 선생님이 '액자소설'이 뭐냐고 물으셨다. "선생님, 학교 다닐 때 공부 안하셨군요.^^ 김동인의 배따라기에 액자소설이 등장하는데 들어 보신 적 없으신가요?"
나는 김동인의 배따라기 배울 때 선생님이 알려주셨던 '액자소설'이란 말을 기억한다. 그 후 김동리 소설에서 본 기억도 나는데 현대소설엔 많이 쓰이는 형식이다.
속지에도 아르누보풍의 테두리가 있는데, 편집에도 상당히 공들였음이 느껴진다. 이 책은 챕터 제목이 독특하다. 작품 속 등장인물이 여고생이라 챕터도 학번으로 등장한다. 10336, 10325, 10324, 10310...
첫 챕터 <봄이가 사라졌다>는 봄이가 결석한 지 나흘째다,로 시작된다. 봄이의 무단결석을 불러 온 배경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 있는 걸 모르는 담임은, 부모의 해외출장에 혼자 남은 아이의 객기 정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학교는 방황하는 1인이 아니라 학교의 이름을 빛내거나 적어도 더럽히지 않을 아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임을 강조했다.(8쪽)"
토론에 참석한 교장선생님께 학교가 영재들을 위해서만 신경 쓴다며 뒤떨어진 아이를 배려해 달라는 회원의 요청이 있었고, 교장샘은 학교 방침과 교육계획에 대해 길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내가 이 귀절을 읽어줬더니, 슬프게도 다들 공감했다.
가볍게 읽히지만 읽은 후의 느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주인공 봄이의 무단결석을 둘러싼 반 친구들의 침묵은 무엇이고, 인터넷 소설을 쓴 친구는 누구인지... 흥미와 긴장감에 손발이 오글거리는 로맨스까지, 십대들이 좋아할 요소들이 넘친다.
루벤스의 여인처럼 뚱뚱한 봄이의 로맨스를 심심풀이 땅콩으로 생각했던 여고생들은, 잘생긴 대딩 남친이 있다는 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하마처럼 뚱뚱하고, 코끼리처럼 무겁고, 곰처럼 미련해 보이는 너 같은 애한데 잘생긴 대딩 남친이 있다니 그게 말이 돼?'(44쪽)소리치고 싶고, 원래는 자신의 애인이었던 남자를 봄이에게 뺏긴 기분이었다.(36쪽)
자신의 이야기에 열광하던 아이들 속에 자신이 있다고 믿었던 봄이. 자신을 밀어냈던 아이들 속으로 돌아올 수 없는 선택을 한 봄이 뿐 아니라 반 아이들은 또 어떤 상처를 갖게 될지 마음이 짠해지는 건, 내가 중고딩 자녀를 키우는 엄마라서 느끼는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72쪽 다인이 엄마처럼 드라마에 빠져, 딸에게 엄청난 사건이 있었는데 눈치도 못채는 엄마가 되지는 말자고 다짐할 엄마들도 많을 듯...
진실이 거짓에 어떻게 잠식당하고 왜곡되는지 그 이유를 요즘 청소년 세태에서 찾아 같이 고민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의도를, 청소년 독자들도 읽어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