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륵 선생이 독일어로 쓴, 1910년대 식민지 조선에서의 아름다운 유년기 추억을 담은 책이다. 어머니 몰래 술을 나누다 들킨 아버지와 두 잔 술에 취한 아들이 나눈 대화가 사랑스러워, 우리 삼남매에게 제안을 하나 했었다. 고2 아들녀석이 두어 시간씩 하는 컴퓨터 게임을 끊으면, 까투리에서 생맥주를 사겠다고...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한다고 했으니, 열두어 살에 아버지와 술을 나눈 미륵과 비교하면, 중3, 고2, 대딩이니까 술 한 잔 사줘도 될 나이다. ^^
제안한 그날로 게임을 끊은 아들 덕분에 지난 토요일(1.24) 가족끼리 조촐한 단합대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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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조금 마셨다고 애한테 해로운 건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외로우니 친구가 있어야 해요."
"오늘 한 번만 봐 주는 거예요!"
"아, 시인에게 술은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어머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 그렇지? 아니, 아버지께는 존댓말을 써야지요. 그렇지요, 아버지?"
"그러게 말이다." (7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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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아이들이 자라서 생전 처음 이런 술자리를 갖는다는 게 놀랍고도 기분 좋았다.
일단 시원한 생맥주를 받아 들고 호기있게 '부라보!'를 외쳤다.
저녁도 안 먹은 이른 시간에 가서 상당히 오래 있었는데, 저녁식사를 겸한 안주로 계산이 빵빵하게 나왔다. 하지만 먹는데 몰두하느라 사진 찍는 걸 깜박해서 두 개는 아예 못 찍었고, 하나는 다 먹은 끝판에 찍었다.
까투리 꼬치 종합세트와 우동사리를 리필할 수 있는 종합해물우동탕, 우동사리를 세번이나 추가했더니 나중엔 배부르다고 술은 많이 못 먹었다. 많이 못 먹었다는 기준은 각자 다르니 판단은 유보한다.^^
고딩 아들을 비롯한 삼남매의 새해 다짐을 강요하기도 했지만, 엄마 아빠 처음 만난 이야기도 했다. 첫날 영화' 브로드캐스트 뉴스'를 보면서 영화 취향이 같아서 일단 점수를 후하게 주었고, 스물 아홉에 만난 신랑감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뚱뚱해 보이지 않았다는 말에 박장대소했다. 당시 나는 키 153에 몸무게 45킬로의 지극히 아담한 사이즈였고, 남편은 키 174에 몸무게가 84킬로(실제는 86이었다고 후에 고백했지만)나 됐는데 안 뚱뚱해 보였다니 콩깍지가 씌어도 단단히 씌었던 것. 그런데 두 번째는 먼저 가서 기다리는데, 커피숍 출입문이 꽉 차서 들어 온 뚱뚱한 총각이 곧장 내게로 와서 그때서야 깨달았다는~ ㅜㅠ
꼬치세트 9,000원, 종합해물탕 12,000원+우동사리 3,000원, 북어포구이 8,000원, 닭튀김 10,000원,
생맥주 2,500원 x 13= 32,500원 사이다 콜라 서비스, 달걀찜, 멸치, 땅콩, 짱구 무한 리필 서비스
카드로 긁었더니 74,000원이나 되었다. 다섯 식구가 생맥주 13잔 먹었으면 많은가?^^ 나한테는 한의사가 타고난 술체질이라 했고, 남편과 애들은 대대로 술 좋아하는 집안 내림이라 술이 센가 보다.
돌아오는 길에 아빠를 꼬셔 아이스바를 스무 개나 사들고 와 먹었더니 술이 확 깨었다. 남편은 숟가락으로 떠먹는 아이스크림을 사자고 했지만 말렸다. 우린 입이 많아서 질보다 양이고, 갯수로 승부해야 하는데 다음날까지 내가 제일 많이 먹었다.^^
잠시 기분내느라 너무 과용해서 앞으론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ㅜㅜ 하긴 평상시에도 김치 3종세트에 생김만 구워 주는 식단이긴 하다.
우리 애들이 알라딘에 형성된 순오기의 이미지는 진실을 왜곡한다며 저희 셋이 뭉쳐 아이디 '삼남매'로 블로그를 개설한대나 뭐래나~ 각자의 카테고리에 엄마의 실체를 공개하겠다고 겁을 준다.ㅋㅋㅋ 사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때론 큰소리도 나고 가끔은 맞짱도 불사하는 상황도 연출하지만, 이젠 알아서 꼬리 내리거나, 이쯤에서 그만 하자는 신호를 알아 챈다.
짜식들~ 연말엔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저녁도 사줬구만, 엄마를 고발한다니 도로 토해 내라 할까 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끔은 갖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쁜피' 리뷰에도 썼지만, 가족이란 '차마 남에게 내보일 수 없는 식탁을 공유'하는 관계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볼 책이나 영화는 어떤 게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