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책 속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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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값이 좀 비싸 망설이다가, 딸에게 추천하는 책이 많이 나온다기에 내 딸의 스무살 생일선물로 샀다. 작가 엄마가 읽은 책을 딸에게 소개하며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편지로, 한 주에 하나씩 2년간 쓴 것을 모은 책이다. 책으로 소통하는 모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바로 책 속의 책을 만나는 것으로, 여기 소개된 책들이 만족스럽다. '공지영 책속의 책'이란 페이퍼로 정리하니 30권이 넘었다. 내 청춘에 열광했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이방인, 자기앞의 생, 남해금산'이나, 특히 200원 균일가였던 삼중당 문고로 세계문학을 섭렵한 것이 나와 같아 짜릿한 공감대가 형성됐다. 아마도 공지영은 나랑 같은 나이거나 한두살 아래쯤(?) 일거라 짐작해본다.
4월 20일 생일인 딸에게 선물로 내밀었더니, 엄마가 먼저 읽고 달랜다. 엄마가 줄친 책을 읽는게 습관이 돼서 밑줄이 있어야 편하게 읽히고 명쾌하게 정리된다기에, 초록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열심히 읽었다.^^
이 책은 내가 딸에게 했던 말이랑 똑같은 부분이 많아 읽어주면서 깔깔거렸다. 위녕 또래가 있는 모녀라면 충분히 겪었을 상황과 대화들이다. 공지영은 일주일에 한번씩 딸에게 편지를 썼는데, 작가엄마와 나처럼 평범한 아줌마의 차이점을 통감한 독서였다. 나는 그저 말로만 끝냈고, 작가는 일기처럼 흔적을 남겼다는 차이. 난, 언제까지 남의 글을 빌려 딸에게 하고픈 말을 전해야 하나? 살짝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교차되었다. 하지만, 공지영도 편지의 절반을 읽은 책에서 공감하거나 감동받은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할애했기에 위로가 되었다. 그녀의 소설에서 빛나던 문장이나 감탄할 묘사가 여기선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작가도 일상적인 글에선 빛나는 문장이나 묘사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지는 않는구나! 내심 안도한 내 심보는 또 뭘까?ㅎㅎㅎ
생각보다 이 책에 열광하거나 쓰나미처럼 감동이 밀려오진 않았다. 삶의 철학이라는 게 특별한 사람만 얻는 게 아니라, 그저 열심히 살다보면 이만큼은 터득하는 것이려니 생각한다. 여기에 담긴 것들이 그런 삶에서 얻어지는 깨달음이라, 나도 이만큼 치열하게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으니 편하게 끄덕일 수 있었다. 안일하고 무사태평하게 살지 않은 엄마라면, 사랑하는 딸에게 이 정도의 교훈이나 잠언은 들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몰랐던 책이나 안 읽은 책을 소개받는 즐거움은 컸다. 엄마가 읽은 책을 딸에게 소개하고 추천한 것처럼, 나도 내 딸에게 말로만 좋다 할게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야겠단 생각도 들었다.
'남의 옘병이 내 고뿔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누구나 자신이 겪는 아픔이나 상처가 죽을만큼 힘들다. 그런 삶의 무게와 버거움을 풀어내며, 다시 살아낼 힘을 얻는다. 자기 삶이 투영되지 않은 글이 독자에게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인간적인 진솔함이 배어 함께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으니까, 세대가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사랑받는 작품이 되리라. 내가 끼적이는 리뷰나 페이퍼에도 내 부끄러운 치부나 아픔을 풀어내며 힘을 얻는다. 공지영도 딸에게 쓰는 편지를 통해 작가가 아닌 십대 딸을 둔 엄마의 진솔함을 담았기에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매번 수영장에 가는 걸 미루거나 핑계대는 모습은 마치 내 얘기 같아 찔리면서도 웃었다.^^
공지영이 소개한 책 중에 박경리선생의 'Q씨에게'는 가장 읽고 싶은 책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인 그분이 여든 둘의 나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이대로 가신다면 너무 안타까워 빠른 쾌유를 간절히 빈다. 황석영의 '몰개월의 세월', 마치다 준의 '얀 이야기', 타샤 튜터의 책들......여기 소개한 책중에 읽고 싶은 책이 많아 지름신이 거세게 강림할 것 같다. 내 딸은 이 책을 읽고 어떤 책이 보고 싶을지 기대하며, 읽고 싶다는 책은 무조건 사 줄 것이다. 작가가 딸에게 권할만큼 좋은 책을 독자가 읽는다면 이 책이 주는 보너스를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주간의 가정학습을 끝내고 오늘 밤 기숙사로 돌아갈 스무살의 내 딸, 앞으로 사랑을 경험할 딸에게 열심히 밑줄 그은 책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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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 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 없이 다 주어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178~1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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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밑줄 친 책을 읽으며 엄마와 같거나 혹은 다른 감상일지라도, 모녀가 같은 책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기대하며 내 딸에게 말하련다.
"민주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엄마는 너를 응원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를 끝까지 사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