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굴레에서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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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소재의 소설을 읽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독자는 사건의 흐름에 따른 인물의 선택을 지켜본다. 그것은 바로 또는 끝에서야 겨우 이해 될 수도, 아님 전혀 이해와 용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독자가 인물을 지켜보는 방법도 다양하다. 각 사건에 나를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보거나, 냉정한 관찰자로 계속 바깥에 머무는 경우다.

 

노희경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마지막 에피소드는 모자관계인 옥동(김혜자 분)과 동석(이병헌 분)의 화해 과정을 담고 있다. 결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던 동석은 말기 암 환자로 곧 죽을 옥동과 여행하며 “도대체 그때 왜 그랬냐?”고 묻는다. 남편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동석의 친구 아버지 첩살이로 들어가는 옥동을 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옥동은 그때 미쳤었다며, 자신은 개 같은 년이니 장례도 치러주지 말라고 동석에게 대답한다. 글도 못 깨친, 어릴 때부터 박복하고 가난했던 옥동은 그저 동석에게 먹고 자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만 제공되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짧은 옥동의 말과 수몰되어 찾아갈 고향도 없는, 제주에 살면서 여태 한라산에도 못 가본 옥동을 동석과 나는 한 번에 이해하고 말았다. 아들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자신의 처지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먹고 사는 일만 생각해야 했던 옥동의 선택은 그렇게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다고 작가는 우리를 설득시키고 있다. 시청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준다.

 

서머싯 몸은 자신의 분신인 필립을 독자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희경 작가와는 달리 지나치게 세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글과 영상의 차이를 차치하고도 읽는 내내 지루한 부분이 많았다. 각 인물의 생김새나 성격에 대한 묘사도 장황했다. 조실부모와 신체적 불구라는, 인간의 조건 중 가장 최악의 것을 둘 다 갖춘 필립은 우리가 예상할 수 있듯 어린 시절부터 힘든 과정을 지나온다. 부모가 아닌 큰아버지와 큰 어머니 아래에서 컸고, 학교에서도 온갖 수모와 놀림을 당한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보통 사람과는 다른 콤플렉스와 어느 정도의 성격적 결함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이해하고 그를 동정하지만 매 순간 필립이 내린 선택과 결정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필립은 어떤 사건을 겪은 후, 매번 일기, 또는 긴 독백같이 자신을 되돌아본다. 변덕스러울 정도로 감정의 변화가 빠른 필립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복기한다. 그가 느낀 감정들과 후회, 회한이 쏟아진다. 서툴고 설익은 선택과 행동은 그만큼의 후회를 가져오지만, 필립은 그런 과정을 겪으며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만들어간다. 견고한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그 흐름에서 내가 겪어온 많은 혼란과 패배도 볼 수 있었다. 특별한 것 같은 필립에게서 인간적이며 보편적인 정서도 발견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허술하며, 후회되는 행동을 수없이 반복한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그렇게 성장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으며 자신과 사회에 대해 형이상학적 고찰을 한다. 철학을 탐구하며 이성을 확립시키지만 결정적일 때 본능과 감정이 앞서며 앞의 것들을 무용지물로 만들 때가 많다. 필립은 특히 밀드레드와 얽히면 열정과 감정의 격정으로 인해 이성을 잃어버린다. “사색 끝에 확립한 적절한 작은 준칙”이 여지없이 허물어져 버린다. 밀드레드와 관련된 부분이 나올 때마다 답답했다. 밀드레드가 필립의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사라졌을 때는 숨이 멎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밀드레드에 대한 인간적인 정을 멈추지 않는 필립을 보며 누구나 자신에게 주어진 굴레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알 수 있었다. 인간에게는 각자의 굴레가 존재하며, 그것에서 벗어나기는 정말 어렵다.

 

매번 인생 전체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느냐의 고민을 한 필립은 크론쇼가 그에게 준 페르시아 양탄자에 들어있는 의미를 깨닫고, 자유를 느끼며 굴레를 내려놓는다. 인생에는 별다른 뜻이 없으며,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페르시아 양탄자의 무늬를 직조하면 된다는 것이다. “직조공이 양탄자의 정교한 무늬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에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사람도 그렇게 산다(p,366).“ 주식 투자로 가진 돈을 모두 잃고 가난에 허덕이는 어려운 시기에 필립은 이러한 에피파니(Epiphany)를 느낀다.

 

만약 젊었을 때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이런 필립의 깨달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내려놓음과 회색적 삶의 경계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대한 회피나 나약함, 자기 합리화를 용납하지 못했기도 했다. 나이 들어 뒤늦게 이 책을 읽은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야 약간 ‘강물처럼 흘러가는 삶’이 무엇인지, 나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성자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필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전부 다는 아니지만.....

 

『인간의 굴레에서』의 철학은 현실주의적 관점과 자연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p.518). 서머싯 몸에게서 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 즉 플로베르, 졸라, 모파상의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사건과 인물, 작가의 부연 설명이 촘촘하게 들어있다. 서머싯 몸의 생각이 담긴 철학과 예술, 삶에 대한 좋은 문장도 많다. 교양소설이라 끝이 약간 싱겁고 클리셰가 많아 아쉽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힘들이지 않고 알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우리가 가진 굴레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모퉁이 저편에 경찰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되,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르라. -1권, p.429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선택을 넘어서는 곳에 있다고 믿어야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도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삶도 나름의 무늬를 짜고 있다.-2권, p.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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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6-10-22 04: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간의 굴레는 그렇게 많이 좋지는 않던데요. 작가하고 뭔가 안 맞나 봅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요 뭐. ㅎㅎㅎ

페넬로페 2026-10-22 08:05   좋아요 1 | URL
뒤로 갈수록 괜찮아졌는데
인생 뭐 있어? 그냥 각자 나름 살아가면 되지 뭐~~이런 메시지로 받아들였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6-10-22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머싯몸 대표작인데 전 안 읽었나봅니다. 내용이 생소하네요 🥲 너무 세세해서 지루하군요..ㅎㅎㅎ

페넬로페 2026-10-22 12:44   좋아요 1 | URL
저도 뒤늦게 읽게 되었어요.
전형적 성장 소설이예요.
제인 에어나 수레바퀴 아래에서와 약간 비슷해요.
근데 여기에 등장하는 밀드레드라는 여자는 정말 그 어디에도 잘 볼 수 없는 캐릭터예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