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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서 온 신사
안드레 애치먼 지음, 홍한별 옮김 / 비채 / 2026년 7월
평점 :
황당하기도, 우습기도 하지만 ‘질문’이란 카테고리 속에서 우리가 자주 인용하고 떠올리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당신은 전생을 믿으십니까?’이다. ‘평행이론’이란 그럴싸한 이름을 가진 전생의 존재와 생의 반복 현상에는 그것을 믿기도, 믿지 않기도 힘든 뭔가 찝찝함이 있다. 그렇다고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와 우리들을 단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복제하여 전달하기 위한 생물학적 도구’라고 단정하기도 억울하다.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나는 꿈속에서 집으로 오는 도중에 똑같은 장소로 길을 잘못 든다. 그곳은 내가 전혀 모르는 곳이기에 길을 잘 몰라 계속 헤매고 다닌다. 잠에서 깨기 전까지 나는 집을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한다. 이제는 아예 그 꿈이 몸속에 체득되어 꿈을 꾸면서도 내가 꿈속에 들어와 있는 사실을 인식하기까지 한다. 이런 혼란과 기시감이 들때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뭔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와 연결된 모든 것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 소설에서 60대 초반의 남자, 라울은 이런 현상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지속적인 존재인 또 다른 자아(p.48)’가 있어서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다른 자아가 있고 그것은 다양하게 여러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생이나 과거의 인연뿐만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거나 만나지 않은 자아들 역시 수없이 나를 찾아오고 끌어당긴다고 한다. 그런 그림자 자아들을 접촉하고 연결시키는 것이 삶과 사랑의 정의라는 것이다.
안드레 애치먼의 『페루에서 온 신사』는 주술, 전생, 과거, 환생을 믿어야만 온전히 읽힐 수 있는 소설이다. 여기에 개연성이나 논리를 들이밀면 곤란하다. 위험하지만 작가가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어떤 사람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그것에 대한 슬픔이 얼마나 크고 아픈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 것 같다. 특히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한 번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간절함이 있을 것이다. 설사 그것이 이해되지 못한 방식일지라도 믿어보며 접촉하고 싶은 소망이 생기지 않을까.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아이네이아스는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를 떠나 고대도시 쿠마에 도착한다. 거기에 하데스로 가는 입구인 아베르누스가 있고 애도의 땅 ‘루겐테스 캄피’가 있다. 여기는 비극적 사랑을 했던 영혼이 머무는 곳이고 아이네이아스도 디도를 만난다. 라울은 루겐테스 캄피를 인용하며 마고를 통해 자신의 비극적 사랑을 다시 만나 완성하려 한다. 혼란스럽지만 마고 역시 기시감으로 자신의 전생을 믿게 되어 라울의 부탁을 들어준다. 라울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페루에서 온 신사』는 앉은 자리에서 바로 완독할 정도로 잘 읽힌다. 다만 소설을 읽는 내내 다른 소설과 드라마에서 수없이 많이 본 클리셰 천국이어서 당황할 정도였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이렇게나 자주 같은 소재가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사람에게 사랑이 중요해서인가 보다. 또한 언제나 죽음을 앞둔 인간에게 미련과 불화가 없는 평화를 주기 위한 선물일 수도 있겠다. 여운이 많이 남는다.
[나중에 자기 방으로 돌아갔을 때 라울의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뻤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만나고 난 지금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 이 순간을 그토록 오래 기다렸는데, 그 순간이 왔다가 이제 지나갔다. 왔다가 갔다. 라울은 혼잣말로 되뇌었다. 왔다가 갔다- 라울은 잠시 후 양치질을 하면서 혼잣말로 속삭이고, 왔다가 갔다-잠들기 전에 잠시 책을 읽으면서 중얼거리고, 왔다가 갔다-마침내 침대 옆 등을 끄고 자려 할 때 생각했다. 육십 년 전에 왔고, 곧 사라질 자기 삶을 생각했다. 안 될 게 뭔가, 라울은 생각했다. 그런 거지.
-p.141]
우연히 이 소설을 읽을 때 넷플릭스로 ’이번 생도 잘 부탁해‘ 드라마를 정주행 했다. 둘 다 내용을 잘 모른 상태로 선택했는데 소재가 너무 비슷해 신기했다.
평행이론은 정말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