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각자의 취향이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가 나에게 음악과 미술, 산과 바다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다와 음악을 좋아한다고 바로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선뜻 대답하기가 힘들다. 기회 있을 때마다 미술관에 자주 가서 그림을 보다보니 그림이 좋아졌다. 요즘은 푸른 나무가 무성한 숲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과 마주하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소거되어 버린다. 그림이 주는 느낌과 압도적 아우라에 생각이 멈춰지고 오직 그림만을 보게 된다. 그러다 그림과 현재 나의 상황이 연결된다. 결국 나는 내가 개입된 해석을 하고 만다. 그림을 감상하는 방법이 다양하고 그것에 정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이 그림을 잘 보고 있는지에 대해 항상 믿음이 가지 않는다.
-p.69, 폴 세잔, <생트빅투아르 산>, 필라델피아 미술관
[세잔의 <생트빅투아르 산>은 때때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 중 하나로 기술된다. 캔버스의 평면을 급진적으로 강조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에 속하기 때문이다. 엑상프로방스 지역, 그의 화실이 있던 레 로브 언덕에서 보고 그린 산 이미지에서, 세잔은 관목들을 환기시키기 위해 구획을 나눠 색칠하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그것들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의 추상적 패턴을 형성하는 최초의 그리고 중요한 색채의 흔적들이었다.
-p.68]
‘알랭 드 보통’의 세잔의 그림에 대한 기술적 해석이다. 세잔의 그림에 대한 이런 해석을 알지 못하면 나는 그저 생트빅투아르산의 모습만을 생각하며 감상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해석을 무조건 좋아하고 받아들이는 편은 아니다. 그림마다 작가의 의도나 작품이 주는 영향 등 수없이 많은 해석과 에피소드, 중요성이 있지만, 내가 그것을 다 알고 그림을 보지는 않는다. 작품에 대한 해석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 해석으로 그림은 틀에 갇혀 버린다. 미술관에 가서 도슨트의 설명이나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면 분명 도움은 되지만 그때부터 내 시각은 설명되어진 문장으로만 그림을 보게 된다.
난도질하듯 시를 분석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이다. 어떤 그림이 역삼각형 구조이고, 어느 사조에 속하며 이러저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단정적으로 말해지는 것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그림에 대한 감상이 힘들고 나의 독자적 해석 역시 위험하기 때문에(물론 많이 알지 못하기도 하다.) 미술에 관한 책을 들여다봐야만 한다.
-p.73, 크리스 오필리, <성모마리아>, 신구 미술 박물관(개인소장)
[크리스 오필리는 무엇이 예술을 예술답게 하는가에 대한 인습적 생각에 반대해왔다.…오필리는 성모마리아의 가슴을 전통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말린 코끼리 똥에 니스를 칠해 표현하는 방법으로, 배설물 그리고 그것이 상징하는 모든 것이 무가치하다는 우리의 선입견에 도전장을 내민다.
-p.70]
크리스 오필리의 그림 <성모마리아>가 1997년 런던에서 첫선을 보이고, 뉴욕의 브룩클린 박물관에 전시되자 관람객은 분노했고 세계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이 그림에 충격을 받았다면 문제는 오필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품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완고함에 있다고(p.70)’ 말한다. 그림은 우리에게 이런 충격을 줌으로써 어떤 가치를 지닌다. 이런 그림은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하고서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다. 그림에 대한 해석은 필요악일 수밖에 없다.
『영혼의 미술관』은 지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그림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서술한 책이다. 예술에 대한 일곱 가지 기능-보통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에서도 이런 분석을 한다. 이 작가의 특징인 것 같다. 그만큼 아는 것이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약간의 허세와 잘난 척도 있다.-과 예술의 핵심, 여러 가지 예술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뒷부분에는 예술에 대한 실질적 이용방법도 있어 유익하다. 그림에 대한 책인데도 글이 상당히 많다. 글 하나하나에 깊이가 있어 알랭 드 보통 작가에 대한 경외감이 든다. 특히 ‘예술에 대한 일곱 가지 기능’을 읽다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치유되는 느낌도 든다. 이 책은 예술을 통한 자기계발서다. 멋지고 풍부한.…
이 책은 한 번에 읽고 말 책이 아니다. 생각날 때마다 꺼내 그림도 보고 보통의 글도 읽으며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물론『영혼의 미술관』엔 작가 개인의 의견이나 느낌이 들어 있기에 모두 다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와 그의 의견이 다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예술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울하거나 힘들 때, 나에게 힘이 되어 줄 책인 것 같다. 내가 몰랐던 그림도 많고 그 그림들에서 받는 기운에 마음이 푸근해진다. 작가들(보통과 화가)은 그냥 천재들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다.
보통은 ‘예술의 일곱 가지 기능’을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이해, 성장, 감상으로 분류했다. 나는 이것들 중 ‘자기이해’ 부분이 좋았다. 그림을 통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내가 나를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P.46, 사이 툼블리, <파노라마>,
수없이 많은 스크래치가 있는 내 마음 같다.
-P.14, 클로드 모네, <수련 연못>, 내셔널갤러리
어떤 그림은 예쁘고 아름답기만 하다. 그 속에 가난과 불평등, 고통이 들어 있지 않은 것도 많다. 그렇지만 예술에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즐거워하고 유쾌해진다는 점, 인생과 세계를 지나치게 낙천적인 눈으로 본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터무니없이 희망적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대부분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는 거의 항상 장밋빛의 감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기는커녕 과도한 우울로 고생한다. 우리는 세계의 문제와 부당함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단지 그 앞에서 작아지고 약해지고, 초라해질 뿐이다.
-p.13]
보급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양장본보다 가볍고 휴대하기 좋지만, 그림과 많은 내용의 글을 이 작은 책에 그냥 쑤셔 박은 것 같다. 나처럼 노안이 심한 사람 입장에서는 짜증도 난다. 집에서 영화를 보면 영화관의 큰 스크린에서 보는 감동이 그대로 느껴지지 않듯, 이 책에 수록된 그림도 너무 작아 그림이 평범해 보인다. 미술 도록은 비싸더라도 양장본이 훨씬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