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조심스러웠거든요." 엔필드 씨가 답변했다. "묻고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그랬다면 아주 최후의 심판 꼴이 나고 말았을 겁니다. 하나를 물어보게 되면, 그건 돌을 굴리는 것과똑같아요. 당사자야 산꼭대기에 가만히 앉아 있지만, 돌은 구르면서 다른 돌을 굴립니다. 조금 지나면 생각지도 않던 죄 없는 사람이 자기 집 뒤뜰에서 머리에 돌을 맞아 쓰러지고, 그 가족들은 이름을 바꾸고 살아야 됩니다. 안되지요. 이건 제 생활신조인데, 금전문제로 여겨질수록 물어보지 않으려 하죠."
"아주 훌륭한 생활신조이기도 하지." 변호사가 말했다. - P18

"설명하기 쉽지 않아요. 외모가 어쩐지 이상해요. 사람을 불쾌하게 만드는, 뭔가 아주 혐오스러운 데가 있어요. 사람을 그렇게 싫어해보긴 처음인데, 그런데 통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그는 어딘지모르지만 분명 장애가 있을 겁니다. 어디 콕 집어 말은 못하겠지만기형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더군요. 아주 남다른 외모였는데, 보통사람과 다른 점이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 못하겠어요, 변호사님. 도저히 못하겠어요. 설명을 못하겠어요. 그것도 기억 안 나서가 아닙니다. 정말이지, 지금이라도 그 사람 모습은 떠올릴 수 있어요."
- P19

‘이제 나머지에 대해서도 매듭을 지읍시다." 그가 말했다. "지혜를 원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지키기를 원하십니까? 제가 이 잔을손에 들고 다른 논의 없이 당신 집에서 나가도록 하겠습니까? 아니면 탐욕스러운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당신을 맡기겠습니까? 결정하신 대로 해드릴 터이니 생각한 다음 말씀하십시오. 선생 결정에 따라 선생은 예전 그대로, 그러니까 더 부유하지도 지혜롭지도않은 상태로 계속 살겠지요. 죽음의 고통에 처한 한 인간을 도와준일이 영혼을 부자로 만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반대로 선생이 원하기만 하면 여기 바로 이 방에서 지금 이 순간 지식의 새로운 영역, 그리고 명성과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불신자 사탄까지 놀라게 할 경이로운 일에 눈앞이 아찔해질 겁니다."
- P93

인간의 본성이란하나로 합쳐져 있지만 원래는 선과 악 두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는것이며, 그때의 내 경우는 두 영역을 나누는 내면의 고랑이 보통사람보다 더 깊었는데, 그것은 내 결점들 중의 어떤 특정한 타락 때문이었다기보다 오히려 내가 품었던 열망의 까다로운 요구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나는 삶의 냉엄한 법률을 깊이 그리고습관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법률은 종교의 근원이면서 가장 흔한 고통의 원인이기도 하다. 나는 매우 심각한 이중행위자였지만 결코 위선자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면의 두 측면 모두몹시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제력을 팽개치고 수치스러운일에 탐닉할 때의 내가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닌 것은 대낮에 지식의 확장이나 비탄과 고통의 구제에 땀 흘리는 내가 온전한 나 자신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때마침 나의 학문적 탐구는 전적으로 신비하고 초월적인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또한 이 연구가 두 분신 사이의 영원한 갈등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해결 가능성을 크게 보여주었다. 이리하여 나는 매일매일 지성의 두 측면, 즉도덕적 측면과 지적 측면에서 점차 진리에 가까이 나아갔는데, 그러나 그 진리의 일부분을 발견한 결과 나는 무참한 파멸에 직면하고 말았다. 그 진리는 인간은 진실로 하나가 아니라 진실로 둘이라는 사실이다. - P97

나는 도덕적 측면과 나 자신의 인성 안에서 철저하면서도 시원적인 인간의 이중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즉 내 의식의영역에서 두 본성이 투쟁하고 있으며, 만일 내가 그 둘 중 어느 하니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내가 근본적으로 그 둘 모두이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심지어 나의 과학적 발견들이 엄청난 기적의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주기 전부터, 나는 선악을 분리시킨다는 생각을 달콤한 백일몽 속에서 상상하길 즐겼다. 만일 각각을 분리해서 별개의 육신 속에 집어넣을수 있다면 인생은 견딜 수 없는 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나 스스로에게 말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부정직한 본성은자신의 쌍둥이 형제인 강직한 본성의 열망과 가책에서 벗어나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올바른 본성은 선량한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더이상 이 사악한 외적 존재의 손아귀에 잡혀치욕과 참회를 해야 할 필요 없이, 자신의 상승궤도를 따라 착실하고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으리라, 화해 불가능한 둘이 하나의 다발로 묶인 것, 즉 고통스러운 의식의 자궁 속에서 양극단에 위치한 쌍둥이가 끊임없이 투쟁하는 것이야말로 인류에게 가해진 저주였다. - P98

우리 모두가 삶의 무거운 짐과 운명을 영원히 어깨에 지고 있으며, 벗어던지려고 하면 그것은 더욱 기괴하고 섬뜩한 무게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따름이라는 사실을 나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 P99

이 역시 나 자신이 아닌가,
그것은 자연스렵고 인간적인 존재로 보였다. 내 눈에는 거울에 비친 이 영상이 정신적으로 더 활기차고, 
지금까지 내가 내 것이라고
습관적으로 부른 불완전하고 분열된 생김새에 비해 더욱 완전하고통일된 모습으로 보였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의심의 여지 없이 내가 옳았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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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2-03 23: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곧 지킬 뮤지컬 다시 시작 되는데!(오미크론 확산으로 어찌 될지 모르지만 ㅜ.ㅜ)

원작은 뮤지컬과 사뭇 다르면서
현대인들의 모습까지 발견하게 되는 놀라움이!ㅎㅎ
sns시대에 지킬과 하이드는 영원 불멸 ^ㅅ^

페넬로페 2022-02-04 00:05   좋아요 2 | URL
몇년 전 조승우의 뮤지컬 관람했는데 이번엔 홍광호 주연의 뮤지컬로 예매해 놓았어요. 그래서 미리 읽는데 소설 초반은 별 재미를 못 느끼겠어요 ㅎㅎ
아마 이 소설은 의미를 찾아야 제대로 읽는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2-02-04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조금 달라서 작가가 다르지 않는지 확인해보고 왔어요. 이 책은 창비에서 출간된 책이네요.
페넬로페님, 오늘은 입춘인데 날씨가 춥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페넬로페 2022-02-04 20:29   좋아요 1 | URL
작가는 똑같고 열린책들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와 내용도 같아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네요.
서니데이님, 감기 조심 하세요^^

새파랑 2022-02-04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지킬박사가 지킬박사 이겠죠? 창비 표지는 너무 맘에 들어요 ^^

페넬로페 2022-02-04 20:28   좋아요 0 | URL
네~~
본래 이 책의 원제목이 Strange Case of Dr. Jekyll and Hyde 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