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철학이 너무 어렵다. 재미도 없다. 그래서 읽을 책을 살 때도 철학에 관련된 책은 항상 뒤로 밀린다. 내가 철학을 싫어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자면(그 모든게 나의 역량부족이지만), 고등학교때 들은 철학 수업이 너무 지루해서, 그때 질려버렸고, 심지어 그 선생님을 미워했다. 대학 1학년때 교양으로 들은 철학수업도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잘생긴 얼굴에 검정색 한복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강의를 하시던 강사분은(도올 선생은 아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땅찮아 하셨다. 어릴 때부터 받은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들에게 휘몰아치는 질문들은, 우리를 더 주눅들게 하고 심지어 피폐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떻게 철학을 좋아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철학은 죽기 전에 꼭 알아야 할 숙제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 도전해 보고 싶은 오기일 수도 있겠다.
철학 조금 모른다고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은 없겠지만 무슨 강박인지는 몰라도 꼭 알고 싶고, 그 세계를 느끼고 싶다.
그래서 2021년엔 일단 철학에 대한 가벼운 책들을 읽어 보기로 했다.
'소르본 철학 수업' 은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신청해 빌린 책이다. '희망 도서' 는 책에 대한 나의 안목이 들어있는 것이다. 내가 신청한 책이 도서관에 계속 소장되고, 다른 사람들도 읽는 것이기 때문에 신청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낸 세금이 그 책에 들어있기에 내 돈으로 산 책은 던져두고라도(사실 처박아놓고) 웬만하면 희망도서는 꼭 다 읽고 반납하려 한다.
'바칼로레아' 라는 단어만 들어도 존경스러운 프랑스, 그것도 소르본에서 작가가 철학을 전공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고 모든 것이 철학적일 것 같은데, 이 책은 그 좋은 재료로 너무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 낸 듯하다. 내가 철학 이론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경험에 철학적인 것을 입힐 때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인용도 틀렸다. 새 책을 처음으로 받아 읽을 수 있는 희망 도서에 대한 사랑으로 이 책을 다 읽었지만 사실 별로 좋지는 않았다.
좋은 재료만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아는 어떤 지인의 냉장고는 언제나 거의 비어 있다. 그러나 그녀는 요술처럼 나에게 뚝딱 아주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다. 좋은 재료를 가진 사람은 그것으로 언제나 좋은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착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맛있는 음식은 수년간의 경험과 연마와 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음식을 해주시면서 "뜨끈하게 먹고 속이 일어나도록 해라"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책을 낸다는 것도 그런게 아닐까?
'정성스럽게 연마해서 독자들의 속을 일으키게 하는 것' 말이다.
책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고, 난 그저 나만의 느낌을 적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