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이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결혼과 죽음】이 있다. 거기엔 각자 나름의 사연들과 이유가 있고 그 결과들도 다 다를 것이다.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작가인 '에밀 졸라'는 그 다양한 결혼과 죽음을 계층별(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그리고 농부)로 분류하고, 거기에 세태를 반영해 놓았다. 과학과 산업의 발달로 돈의 가치가 점점 중요해지는 시기의 결혼과 죽음을 작가는 사실적이면서도 간략하게 말해주고 있다.

소설이지만 실제로는 각 계층에서 샘플링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난다.

 

〈결혼이란 얼마나 야릇한 제도인가. 인류를 두 진영으로 나누어 한쪽엔 남자. 다른 한쪽엔 여자를 배치해서 각 진영을 무장시키고는 이제 그들을 합류시키며 "평화롭게 살아보라니!" 〉

〈여기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자료를 특정화시켜 더 복잡하게 만들지는 않겠다. 대신 몇가지 예를 보여주련다.〉

-p14~15 ,서문에서

 

서문에서 밝힌 작가의 말대로 여기에서의 결혼은 각 계층별로 철저히 일반화된다. 귀족과 부르주아는 한치의 양보가 없는 서로간의 거래로 계약서를 교환하고 결혼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결과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대로이다. 그들은 얼마되지 않아 결혼이라는 허울만 유지할 뿐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제일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하는 연인은 서민인 스물 다섯살의 발랑탕과 열 여섯살의 클레망스이다. 돈이 없어 성당에서 결혼식도 못 올리지만 그들은 행복했다. 하지만 서른 살이 된 클레망스는 그동안 아이 세 명을 기르느라 금발 머리는 누렇게 변했고 얼굴도 많이 상했다. 아이들은 울어대고 부부싸움이 나고 남편을 찾으러 술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그래도 그들은 사랑한다?????????

 

이 소란하고도 구차한 생활 속에서 어떤 땐 데울 불도 먹을 빵도 없지만, 낡고 뜯어진 커튼 아래 놓인 침대에서는 밤이면 사랑의 애무가 날갰짓이라도 하듯 파닥거렸다. - p61

 

모든 것이 많이 변했지만 19세기 프랑스, 결혼의  세태를 반영한 그들의 일반화에 지금 우리를 넣어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삼포세대를 넘어 완포세대라는 말까지 생기는 요즘, 결혼은 자유의지에 의한 거부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인 여건으로 인한 삭제이기도 하다. 최소한의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가지를 포기하고 제외시키는 삶은 젊은 세대의 것만은 아니다. 이미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도 결혼의 위기는 만만치 않다. 

 

19세기 프랑스의 결혼식에서는 계급의 차이를 불문하고 시청에서의 예식 후에 꼭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이 행해진다.

그들의 그 행위와 정서가 참 좋다.

 

죽음 역시 계층별로 일반화되지만 결혼보다는 다양하다.

 

각자 속으로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생활하면서도 겉으로는 좋은 관계의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드 베르트백작은 품위있는 죽음울 원한다.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아내의 간병도 원하지 않는다.

 

백작은 성가시게 고통을 끌면서 요란스럽게 만들지 않고 조용히 혼자 떠나려는 쓰디쓴 이기심을 오히려 음미했다....

그의 마지막 바람은 아무도 귀찮게 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고 떠났다고 세상이 말해줄 남자로

깔끔하게 삶을 마감하는 것이었다.- p68

 

귀족의 죽음답게 성당에서의 장례식은 웅장하고, 성당 밖을 나서는 사람들의 행렬은 길다.

 

상류 부르주아에 속한 게라르 부인은 망나니같은 세 아들들을 믿을 수 없어 죽기 직전까지 돈 걱정을 하며 

장롱 열쇠를 움켜쥐고 있다.

 

어머니가 사망하면 다시 부자가 된다는 것을 그들도 아는 만큼 아무 일도 안 할 이유는 충분했다.-p80

게라르 부인은 그런 식으로 스스로 고민거리를 사서 만들었고 의구심 때문에 속이 타들어갔다. -p81

죽어가면서도 그녀가 정작 견디기 힘든 것은 집안의 소비를 관리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p82

자식들이 자신의 재산을 갈취한다는 끔찍한 생각을 품고 숨을 거두었다.-p86

돈을 뺏기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구두쇠 기질의 망자 성향이 그들에게서 깨어난 것이다. 돈이 죽음을 오염시키고 나면

죽음에서 뿜어나오는 것은 분노뿐이다. 그래서 관을 앞에 두고도 서로 싸워댔다.-p90

 

항상 기침을 달고 사는 병약한 아델은 남편 루소와 함께 문방구를 운영한다.

아프지만 가겠세를 내며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쉬지를 못한다.

 

장사라는 게 그렇다.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이 그 안에 파묻혀 죽어간다.-p92

그에게 아델은 아내일 뿐만 아니라 일을 할 줄 아는, 그것도 영리하게 할 줄 아는 동업자이기도 했다. 그녀를 잃으면 애정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장사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힘을 내야 했다. 슬픔에 잠겨 가게문을 걸어 잠글 수는 없는 일이니까. 눈물 그득한 눈으로 아델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갖은 노력을 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렇게 일상은 또 계속되었다.-p93

루소 씨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우는 그를 아델이 되레 위로하며 여러 가지 조언까지 보탰다. 혼자 되어 외로우면 결혼도 하라고. 대신 젊은 여자 말고 좀 나이 든 여자를 선택하라고. 젊은 여자가 홀아비와 결혼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니까.-p98

루소 씨는 무겁디무거운 슬픔에 눌려 목이 메어왔다.

머리가 멍하고 사지까지 얼얼한 상태에서 더 열이 빠지 이유는 주중에 가게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p103

 

일도 없고 빵도 없고 집을 데울 불도 없는 가난한 모리소 가족의 열 살 난 아들 샤를로는 아프다. 돈이 없어 아이에게 치료를 해줄 수가 없다. 빈민 구제소에 등록하러 구청에 가봤지만 신청자가 너무 많아 기다려야 한다는 소식만 듣는다. 그렇게 속수무책인 상황에서 샤를로는 죽고 그때 빈민 구제소에서 구호품을 가져온다. 아이 옆에서 굶는다고 아이가 되살아날 것도 아니라며 이웃이 권하는 음식을 모리소부부는 게걸스럽게 먹는다. 그들은 샤를로를 허연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넓고 황량한 땅에 묻는다.

 

빈민 구제소는 항상 기차가 떠나버려야 도착한다면서 모리소는 허탈하게웃었다.- p111

지글거리는 프라이팬이 흐뭇할 지경이었다. 그 옆으로 어둠 속에서 백지장 같은 아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엄마의 두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고이더니 커다란 눈물방울이 빵 위로 뚝뚝 떨어졌다. -p112

비참함과 초상으로 덮인 들판,

파리 외곽의 추위와 배고픔으로 가득 찬 시체들 때문에 힘겹게 땀 흘리고 질질 끌리며 황량해진 들판.-p114

 

농부인 장 루이 라꾸르의 죽음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아주 힘들게 곡괭이질을 열심히 해야만 끼니를 이을 수 있는 형편이다.

농사일은 다 때가 있기 때문에 자식들을 추수하러 보내고 그는 혼자서 덤덤히 죽음을 맞이한다.

 

일하러 나가는 수밖에. 거기 남아 있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지금 더 돌봐야 하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라 밭이었다.

만일 아버지가 숨을 거둔다면 그건 결국 아버지와 하느님의 일 아니겠는가. 대신 추수를 망치면 가족 모두가 힘들어진다.

그는 피로로 쓰러지고 나서 한구석에 죽도록 방치해둔 늙은 말과 비슷했다. 장 루이는 육십 년 동안 일해왔다.

그러니 이제 떠나도 된다. 삐걱대는 나무나 마찬자기인데 자르는 것을 망설일 필요가 있겠는가?-P139

젊은이들은 앞서간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지 않은 채 서서히 늙어가고 각자의 차례를 기다린다.

햇볕을 잔뜩 받는 평화로운 죽음, 시골의 고요함 속에 자리하는 영원한 숙면이다.-p127

 

죽음은 그 무엇이라도 슬프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지만 자신이 살아 온 삶과 철저히 연결되어 있고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다. 영화 '봄날은 간다' 의 테마곡인 'one fine spring day' 의 음률처럼 인생의 화려한  한 부분이 지나가면 누구나 그저 쓸쓸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인생이, 그리고 죽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의 죽음 역시 우리와 비슷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우리보다 자연적이고 조용하다. 그 이유가 어쩌면 의학의 발달일 수도 있겠다. 지금 우리는 몸의 어딘가가 아프면 그때부터 병원을 계속 다녀야하며,  

평균 수명의 연장으로 치매에 걸리고 요양원으로 가야한다.  우리의 죽음은 번잡하고 점점 품위를 잃어가고 있다.

 

에밀 졸라의 '결혼, 죽음' 은 책의 크기가 작고 분량도 전체 153 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책에 실린 9개의 단편들은 1875년 러시아 잡지 '유럽의 메신저'에 실린 것이다. 마지막 편인 '어떤 사랑'은 1866년에 발표되었고, 그 후 '테레즈 라캥'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로 출간된다. 이 짧은 소설은 잘 읽힌다. 그러나 휘리릭 읽으면 그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삶의 중요한 두 개의 축일 수도 있는 '결혼과 죽음'이 지나치게 일반화된 것일 수도 있지만,

한번씩 이런 대표성으로 나타내어진 것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0-12-26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결혼과 죽음, 그 두 가지에 대해 말하는 것만으로도 삶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시대도 계층도 다르지만 인용하신 글 속의 삶에 가슴이 먹먹합니다. 9개 단편에 153페이지라니 의외로 얇군요.

페넬로페 2020-12-26 21:35   좋아요 3 | URL
마지막 짧은 단편까지
총 10개가 실려있는데
버릴 문장이 없을 정도로 작가가
압축적으로 잘 썼더라구요~~
저도 이 책 읽으며 먹먹했어요^^

scott 2020-12-26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기침을 달고 사는 병약한 아델은 남편 루소와 함께 문방구를 운영한다. 아프지만 가겠세를 내며 이익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그녀는 쉬지를 못한다. 장사라는 게 그렇다. 자신을 돌볼 시간도 없이 그 안에 파묻혀 죽어간다.] 이구절 참 슬퍼요 ㅜ.ㅜ

2020-12-27 0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20-12-27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결혼과 죽음을 계층별로 분류했다니 흥미가 확 생기네요~ 에밀졸라는 사회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었나봐요~ 읽고 싶은 책장에 넣었습니다. 제 뉴스피드에 페넬로페님의 후기가 추천으로 떠서 서재 구경 왔는데 매번 엄청난 독서량과 정성스런 페이퍼에 감동 받고 계속 받아보고자 친구신청도 살포시 누르고 갑니다~

페넬로페 2020-12-27 11:5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붕붕툐툐님!
이름이 너무 귀여워요~~
결혼과 죽음은 분량이 아주 적은데도
사회의 모습을 세밀하게 잘 표현한 소설인것 같아요~~
아마 작가의 힘이 아닌가해요^^
붕붕툐툐님~~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냥 열심히 쓰려구만 하고 있어요
독서량은 이곳에서는 전
하수에 속하구요**

2020-12-27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27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