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금희' 가 쓴 산문들은 조용하다. 직접적이지 않고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세상과 삶을 깊숙히 들여다보게 한다.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완성해가는 과정들에 많은 생각들과 느낌들이 교차하는 것 같다. 작가의 가족과 어린 시절의 얘기들, 책과 영화, 작가로서의 삶, 그리고 세상을 향한 열린 마음을 담담하면서도 살짝 아프게 드러내 놓았다.
아픈 기억을 버리거나 덮지 않고 꼭 쥔 채 어른이 되고 마흔이 된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손에서 놓았다면 나는 결국 지금보다 스스로를 더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삶의 그늘과 그 밖을 구분할 힘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다.
-서문에서
아픈 것들을 손에 꼭 쥐고 그것들을 글로 써주는 사람이 소설가가 아닌가 한다. 드러내지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것, 쉽게 이해할 순 없지만 그 사람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어떤 진실 같은것을 소설가들은 서술해준다. 치열하고 힘들게 새겨진 글자들은 나에게 편견없이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힘을 준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누군가의 '나쁨' 에 대한 지겨운 고백을 듣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울어야 할 일과 절대 울고 싶지 않은 일, 되돌려주고 싶은 모욕과 부끄러움, 한순간 광포한 것으로 변해버리는 환멸과 후회들이 차창 밖처럼 연속된다. 나는 누구나 아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고 믿고 나 역시 마찬가지이지만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떤 소설은 어느 나쁘지 않은 오후에 누군가의 문상을 가듯 읽어 주었으면. 우리는 언젠가 이 세계에서 지워져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이들이 되겠지만 아직 우리는 내가 나빴습니까, 하고 더 물어야 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므로 문상을 가는 우리의 얼굴이란 다 젖었다가도 마르고 어두워졌다가도 다시 밝아질 수 있을 것이다.-p152
저렇게 절절한 소설가의 바램을 들으며, 누군가의 글을 읽으면 먼저 경외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남에게 내보이는 글은 그 치부를 드러내며 발가벗는 것이다. 어떤 작가는 자신의 곁을 떠나간 글들은 더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쓴 글은 영원히 자신의 것이다.
알라딘의 북플에서 1년 전 쓴 나의 글들이 올라온다. 공개적인 매체에 글을 쓴 지 벌써 1년이 됐나보다. 그동안 책을 읽고, 특히 소설을 좋아해 많이 읽으며 '나쁨'에 대해 지겹도록 알았고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책이 나에게 많은 행동의 변화를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며 내가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좋은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책을 읽느라 가족과 사람들에게 소홀해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을 읽으며 가난에 대해 몸서리치지만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상대적이겠지만 나의 가난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다' 는 건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쁘지 않게 살아가야하는 것인데 한번씩 책이 나를 좀먹게 하고 있다.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도 더 착하고 베풀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책을 읽는 것에 좀 더 책임을 가지고, 글을 쓴 분들을 존중하며 그들의 글을 허투루 읽지 않기 위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힘들게 힘들게 조금씩 채우고 있고 더디지만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
나의 지인중에-나보다 한참 나이가 어리다- 뜨개질을 잘 하는 분이 있다. 그녀는 힘들게 뜨개질을 해서 만든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해준다. 내가 지금 들고 다니는 숄더백과 사용하고 있는 카드 지갑과 파우치는 그녀가 나에게 만들어준 것이다. 귀한 것을 받기만 해서 송구스런 나에게 그녀는 자기가 그것을 좋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본다.
'사랑 밖의 모든 말들' 에는 '흥성스러운' 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활기차게 떠들며 계속 흥겹고 번성한 분위기라는 뜻인데 내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생소한 단어였다. 그러한 단어를 익히며 갑자기 알라딘 서재가 떠올랐다. 흥성스럽게 책들을 읽고 글들을 써내며 활기차게 떠드는 곳이 알라딘 서재가 아닐까 한다. 손재주가 없어 뜨개질을 할 수 없는 내가 위로받을 수 있고, 더 많이 읽어라고 흥성스럽게 자극하는 곳이 이곳이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예단하지 않고 내가 여기까지 해주겠다 미리 선 긋지 않는 선의. 그러한 선의가 필요한 순간 자연스럽게 배어 나올 수 있는 것. 그것은 얼마나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가. 이러니 매순간 배워나갈 수 밖에 없다.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는 것에 다행스러워 하면서. 그런 마음들을 기꺼이 배우겠다 다짐해보면서.-p79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배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