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0년만에 10일간의 긴 휴가를 가지게 되었다.
예상하지 못한 휴가라서 얼떨떨한데
그 기간동안 공교롭게도
친정 엄마를 우리집에 모시게 되었다.
갑자기 생긴 휴가라 여행에 대한 계획도 세워놓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뭘 할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10년만에 얻은 긴 휴가인데 엄마가
오시기로 해서 좀 짜증이 난것도 사실이다.
엄마가 오시는 것도 나의 결정이 아니다.

엄마는 올해 89세가 되시며 초기치매를 앓고 계신다.
단기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셔서
물었던 것을 계속 되묻는다.
오늘이 며칠인가부터 시작해서 약을 복용했는지도 잘 몰라서 약을 먹지 않기도, 두 번씩 먹기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신이 치매환자라는 사실을 극구 부인하며 자신을 치매환자 취급하지 말라며 역정을
내신다.
당신이 환자임을 인정하지 않기에 집에 요양보호사가
오는 것도 거부하고 데이케어센터에 가지도 않으려고
하신다.

그런 엄마는 지방에서 결혼하지 않은 나의 언니와 함께
사신다. 나머지 형제 3명은 서울에 거주한다.
언니는 교사라 벙학이 있고 그 기간동안 주로
긴 해외여행을 떠난다. 그 시기에 엄마는 서울에 오셔서
자식 3명의 집을 돌고 도신다.

나의 엄마는 아내와 엄마로서 훌륭하신 분이다.
평생 병약하셨던 아버지를 잘 보필하셨고 우리 4남매를
잘 키우셨고 끊임없이 우리집을 방문하는
친척들에게도 항상 따뜻한 밥상을 대접하셨다.
그렇게 사신 엄마는 자신속에 아내와 엄마만 키우셨다.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뭘할지 몰랐고 지혜롭게 앞날을
설계하지 못하셨다. 새로운 것들과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해서 자신을 방치시킨 면도 많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은 더 힘들어질것이고 그것이
자식들에게 온전히 전가될 것이다.
그 시대의 여성이기에, 그렇게 평생을 살아왔기에
어쩔수가 없었겠지만 그래도 좀 일찍 자신을 돌보고자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한 결과엔 엄마의 단물을 아무 꺼리낌없이 빼먹었던
우리들이 있었고 그 단물이 빠지자 서로 눈치를 보고
핑계를 대기에 급급한 또 우리들이 있다.

어릴 적 부터 엄마는 나에게 뭐라도 더 많이 먹이려고
하셨다. 그럴적마다 난 싫어, 그만 먹을거야, 조금만 줘,
랴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집에 와 계시는 엄마께 음식이나 과일을
드릴때 엄마는 왜이리 많이 줘, 안 먹을거야, 너가 먹어라,
라고 말씀하시며 날 속상하게 하신다.
자꾸 집에 가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렇게 엄마는 내게 갚으시고 날 식겁시키신다.
내가 그 오랜 기간동안 그 말을 할 때 엄마는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이 돌고 도는 인생에 말조심, 행동조심하고
착하게 살아야하는 이유를 엄마는 나에게
깨우쳐주신다.

그나저나 이번 클래식 독서모임의 필독서가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인데
언제 다 읽을지 막막하다.
로마의 신들과 사람들은 계속 변신한다.
윱피테르의 바람기로 인한 유노의 질투를 막기 위해서
변신 시키기도 하고
나쁜 말을 내뱉어도 그렇다.
그렇게 변신해서 세상에 뭘 주고 삶이 어떻게 달라질런지
잘 모르겠지만 세상은 남자와 여자, 신이 있고
변신하며 돌고 돌아간다.
그 변신속에 나와 나의 엄마는 어디쯤 있을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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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1-07 2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님 모처럼의 휴가인데 어머님과 함께 계시는군요. 어머님 이야기를 들으니 저희 할머니도 연세가 많으셔서 낯설지 않네요.
비오는 밤입니다. 편안한 하루 되세요.^^

페넬로페 2020-01-07 22:13   좋아요 2 | URL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가 운치가 있네요~~
서니데이님!
편안한 밤 되세요^^

페크pek0501 2020-01-12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넬로페 님, 힘내세요!!!
언젠가는 웃으며 옛 이야기를 할 때가 올 것을 믿습니다.

페넬로페 2020-01-12 15:47   좋아요 1 | URL
네, 그렇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힘내며 살겠습니다^^
페크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