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도서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카트 멘쉬크 그림 / 문학사상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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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은 이유는 평범한 사건들에 생각지도 못한 해석을 붙인다거나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해석하기 어려운 기이한 배경과 사건들로 이야기를 꾸민다는 것이다.

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좋아하지만 비틀어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훨씬 좋아한다.


한편 한 번씩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만의 세계에 갇힌 듯한 느낌을 받는데 이 책이 딱 그랬다.

팬심에 사보게 되는 그의 저서는 대부분 기대에 부흥하였지만, 이번 책은 도통 내 머리는 해석 불가능.

이럴 땐 내가 능력이 안되서 해석이 안된다는 생각이 들게 되버려서 이래저래 괴롭다.


멋진 일러스트에 사건이 흥미롭고 빠르게 전개되어 흠뻑 빠져서 읽게 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잠시 멍해지는 그런 책이었다.


총 76페이지로 단편소설이며 독자에게 수많은 상상과 해석을 요구한다. 

사건이 왜 이렇게 전개되고 이것과 저것의 차이는 뭔지, 내용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 어떤 친절함도 찾아볼 수 없는 책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힘들었던 것 같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느낀점을 나눠줬으면 하는 바람. 




p.44
`그러니까 양 사나이 씨의 세계에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 나는 말했다. "그런 다양한 세계가 모두 이곳에 뒤섞여 있다. 너의 세계, 나의 세계, 양 사나이씨의 세계. 서로 겹쳐진 부분도 있고 서로 겹쳐지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런 얘기지?"
소녀는 작게 두 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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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는 흥미로웠다. 존재철학을 공부했던 때가 떠올랐는데 기억나는 것이 전혀없어 뭔가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그 기억속에서 존재에 대한 친근함이 떠올라서.

p.53
무엇이 어찌 됐건 누군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죽을 위기에 놓이는데도 죽이려는 자가 기뻐하는 것을 보며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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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전형적인 피해자의 심리인데,
이토록 수동적인 주인공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걸까.

p.56
소녀에게 키스를 받은 뒤, 내 머리는 크게 흐트러져서 거의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의 불안은 딱히 불안도 아닐 정도의 불안으로 바뀌어 있었다.
딱히 불안도 아닌 불안이라는 것은 결국 그다지 대단한 불안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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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막바지의 내용. 그냥 별 뜻없이 마음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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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오다시마 유시 지음, 송태욱 옮김 / 푸른숲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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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처음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가장 만족스러웠던것은 축약한 글처럼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점이었다.
무엇보다도 기차안에서, 버스에서, 걸어다니면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읽을 정도로 쉽고 재미있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셰익스피어 완역본을 읽고 싶어졌다.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는 것이 좀 부담스러운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다가 셰익스피어에 대한 호기심이 솟아오른다. 




매일 들고다니다가 비에 홀딱 젖은 나의 책

물건을 애지중지 다루는편은 아니지만 책은 쭈글해지면 너무 속상하다.

좋은 구절이나 단어가 있으면 꼭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데 

그런 부분이 정말 많아서 '이걸 다 언제 정리하나'하는 걱정도 함께하였다.

오다시마 유시가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그대로 인용했기에 좋은 구절이 많지 않았나싶다.



총 9가지의 작품이 등장한다.

대부분 제목만 알고 있었기에 서평단에 선정된 것이 새삼 더 감사해졌다.

셰익스피어 사후 약 400년, 왜 그의 작품이 여전히 회자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400년전에도 이런 생각을 했구나', '사람은 다 똑같구나'를 느끼며 꽤 많은 공감을 했다.

고전은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을 담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p.10
셰익스피어는 천만 개의 마음을 가진 셰익스피어"라고 일컬어지듯이 온갖 사람의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셰익스피어 극 세계에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만이 아니라 조연에서 무명의 단역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습니다.

#1.로미오와 줄리엣
"이 입술은 당신 입술로 죄가 씻기었소"
"그럼 저는 당신 입술에서 죄를 받은 건가요?"
`제 입술에서 죄를요? 오오, 부드러운 힐책. 그럼 그 죄를 돌려주시오."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키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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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은 대사가 전부 시처럼 느껴진다. 단어들이 춤을춘다.

#2.한여름 밤의 꿈
광인, 연인, 그리고 시인은 모두 상상력으로 뭉친 자들이라고 해도 좋소.

#3.줄리어스 시저
천 년 후까지도 우리의 이 장렬한 장면은 되풀이되어 연출될 것이오. 아직 생기지도 않은 나라들에서, 아직 알려지지도 않은 언어로.

#4.햄릿
생판 모르는 저세상의 고생에 뛰어드느니 익숙한 이 세상의 근심을 견디려 하는 거다.
이처럼 번민하는 마음이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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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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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한국작가가 늘어가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이 책을 읽은 후 황정은작가는 나만의 한국작가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우선 그녀의 책은 매우 빠르고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툭툭 던지는 인물들의 대화나 생각에는 묵직한 것들이 담겨있다.


<백의 그림자>에는 현실세계와 다른 그림자가 등장한다.

그림자가 주인의 몸과 분리되는 현상을 삽입하여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한다.

자신의 몸과 그림자가 분리되는 사람들은 현실앞에서 본래의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그림자가 몸을 잠식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에 말에 의하면 그림자라는 환상적 상관물을 통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많은 불행에 무뎌진 사람들에게 불행의 단독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재개발로 인해 밀려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제 식상하기 짝이 없는 평범한 불행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황정은작가는 이러한 식상한 배경 속에서 두 남녀를 통해 낯설음을 선사한다.

특히 단어들이 가진 기존의 익숙함을 탈피하여 새롭게 전환하는데 아래의 글(이 책 속의 소중한 글)이 그렇다. 

매번 느끼는 사실이지만 언어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이 소설을 연애소설이라 규정하기에는 어렵지만 무재와 은교의 로맨스도 퍽이나 신선했다.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두 남녀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고추장 없는 비빔밥처럼 담백하고 심심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잔잔함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신간을 낸다면 난 아무래도 당장 알라딘에 접속해야 할 것만 같다.





p.38
가마가 말이죠, 라고 무재 씨가 말했다.
전부 다르게 생겼대요. 언젠가 책에서 봤는데 사람마다 다르게 생겼대요
그렇대요?
그런데도 그걸 전부 가마, 라고 부르니까, 편리하기는 해도, 가마의 처지로 보자면 상당한 폭력인 거죠
가마의 처지요?

p.39
은교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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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다. 이런 대화. 하나도 설레지 않은 설레는 대화.

p.95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오무사의 경우엔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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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리고 싶다. 나또한.

p.104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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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전구가게 `오무사`
아주 작은 그 가게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었이었을지 오랜 시간 생각해보았다.
오래되어서 귀한 것을 오래되었다고 버렸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혹은 그러한 가치도 몰랐던 어느 순간을.

p.115
언제고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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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쉽게 슬럼, 재개발, 철거민을 대했던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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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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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처음으로 읽었던 페미니즘 서적은 <이갈리아의 딸들>이었다.

그 후에도 3번은 더 읽었던 것 같다. 참으로 충격적인 판타지 소설이었다. 

혹시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거나 사회적(Gender) 성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꼭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읽혀보고 토론해보고 싶은 책이다.

무튼 그 당시 읽었던 <이갈리아의 딸들>로 인하여 나는 페미니즘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었다.

만약 그 당시 이 책이 있었다면 나는 조금 더 페미니즘에 쉽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싶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는 페미니즘 인문서적으로 아주 훌륭한 책이기 떄문이다.


책은 왜 남자들은 여자를 가르치려드는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시작된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란 예외사항을 꼭 붙여가며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게 진행된다.


전세계적으로 젠더로 설명되어져야 할 문제의 패턴이 등장한다. 바로 폭력이다.

여성에 대한 폭행, 희롱, 강간은 너무도 만연해있으나 이를 제대로 대처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폭력이란 단어에 함의된 내용이다.

권위주의적,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폭력은 시작되며 대체로 이는 여성에게 가해진다.

또한 여성들은 강간범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람들과 법 등으로 2차, 3차 피해자가 된다.


어쨋든 남자들이 자꾸 나를 가르치려드는 것과 여성들이 폭력을 당하는 것이 무슨상관이겠냐 한다면

두 속성을 생각하면 된다. 이 두 개별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은 사실 여성에 대한 권위를 낮춰보는 것이다.

내 말을 들어야하는 사람. 내가 가르쳐줘야 하는 사람 등등등 무수히 많은 무의식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여성의 입을 다물게 하고 세상에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같다.


그리하여 페미니즘은 남성보다 여성이 우월함을 말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며

단지 여성들이 밤거리를 마음껏 쏘다닐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분명히하고자 하는 것은 이는 비단 여성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p. 19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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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역사속에서 여성의 권익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이는 여전히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p37
이 나라와 이 지구에서는 여성에 대한 강간과 폭력이 엄청나게 많이 발생하지만, 그 사건들이 시민권 문제나 인권 문제로, 혹은 위기로, 혹은 하나의 패턴으로 다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폭력에는 인종도 계급도 종교도 국적도 없다. 그러나 젠더는 있다.

p.41
폭력의 유행병은 늘 젠더가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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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의 `정신적 문제`나 `중독성 물질`로 인한 판단불능 등... 생각만해도 울컥

p.56
강간이 욕정의 범죄라는 말은 그만하라. 이런 강간은 계산된 기회주의적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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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짧은 치마, 조신하지 못한 태도...
그래서 80%이상 강간 가해자가 면식범인가요? 되묻고 싶다.

p.223
토론토의 어느 경찰관이 대학에서 안전교육을 하던 중 여학생들에게 잡년(slut)처럼 옷을 입지 말라고 한 사건에 의해 슬럿워크(slut walk) 운동이 시작되었다. 경찰관의 잡년 발언은 대학이 남학생들에게 강간하지 말라고 이르기보다는 여학생들에게 안전한 곳에 갇혀 있으라고-이것도 하지말고 저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집중하는 태도의 일부였다. 이것이 바로 강간문화의 일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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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늘 여성은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하는가.
당연했던것에 의문을 품는 것에서 세상은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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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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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한국문학에 대한 편견이 있어왔다. 너무 정적이고 지루할 것이란 확신.

이에 더해 한국작가에 대한 선입견 또한 존재했다. 고리타분할거란 느낌.

가만 생각해보면 박민규작가의 <카스테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신선하게 읽었음에도 그 선입견은 쉬이 가시지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28> 이란 책을 통해 정유정작가를 알게 되었다. 

읽지도 않고 구매했던 상태 그대로 책장에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지만 묘한 끌림이 있었다. 

여러 사람의 추천으로 읽게 된 정유정작가의 첫 책은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이다.


어쩌다 읽게 된 정유정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에는 정신병동에서 끊임없이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는, 그리고 그런 그를 도우려는 두 남자주인공 승민과 수명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

병원 관계자들과 환자들의 대립구조와 권력관계도 꽤나 흥미를 끈다. 

특히 환자들의 상태에 따라 활동의 제한을 두는 장면들은 현실사회의 일부를 비유한 장면같이 느껴졌다.

  

<내 심자을 쏴라>는 편안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를 계기로 나의 한국문학과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어느 정도 해소되길 바라며, 다른 작품들도 기웃해봐야겠다.


p.121 

저 양반 머릿속에 염소가 한 마리 살잖아. 밤마다 그놈이 기어나 와 하루 일을 뜯어먹는 통에 다음 날 아침이면 기억이 듬성듬성 비는 거야.

가끔 책을 읽다가 글의 표현이나 발상이 좋아 한 번 더 눈이간다.


p.167

목젖이 묵직해져 왔다. 서글픈 것을 본 탓이리라. 그가 책장과 함께 붙인 것, 다리미로 눌러 없앤 것. 그건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였던 한 남자의 희망과 절망이었다.

첫째. 울음을 참다보면 목젖이 묵직해진다. 참 와닿는 표현이다.

둘째. 사회복지사의 꿈이 있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인 한 남자의 가엾음이 떨림으로 전해져와서 나의 목젖도 묵직해지는 것만 같았다.


p.206

창살 하나였다.  

창틀에 박힌 쇠막대기 하나였다.

그 차갑고 천박한 물건이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움켜지고 있었다. 

박탈당한 자유로부터 생명까지.

창살 하나로 외부와 단절된 승민과 수명 

정신병동이란 특수한 환경에 비추어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극적인 비유를 통해 그려낸다.


p.240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승민이 수명에게 숲에서 건네는 질문

온 몸으로 세상을 살아내고자 발버둥치는 승민과 달리 정신병동에 자신을 가두는 수명, 승민의 질문은 수명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p.286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잃어가는 시력 속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자하는 욕망을 숨길 수 없는 승민.

안압이 높아지면 치명적임에도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한다.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수명에게 답하는 승민의 이야기에 안타까움과 어떤 의문이 동시에 스며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을까?


p.325

어쩌면 진실은 내가 겁냈던 것만큼 거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 그림자에 놀라 끝없이 달아났던 것인지도 모르고.

어쨋든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라고.

모든 도망치는 행위에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실(이유)이 있다.

다만 그것을 모른체하거나 피하는 것으로 자기방어를 하는 것 뿐이다.

무서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마주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며 위안을 삼는 것이 옳은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럼에도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단 것을 때때로 느끼고는 한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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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걸 2016-04-25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정유정작가의28을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한편의 휴머니즘이 진한 블럭버스터
영화를 보는거 같습니다
그거에 비하면 이 소설은 좀 심힘하단 느낌마져듭니다

달토끼 2016-04-25 16:10   좋아요 0 | URL
그렇지 않아도 보려고 하고 있어요^^
내 심장을쏴라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는데
28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