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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은행나무/정유정> 내 심장을 쏴라
한국문학에 대한 편견이 있어왔다. 너무 정적이고 지루할 것이란 확신.
이에 더해 한국작가에 대한 선입견 또한 존재했다. 고리타분할거란 느낌.
가만 생각해보면 박민규작가의 <카스테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신선하게 읽었음에도 그 선입견은 쉬이 가시지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28> 이란 책을 통해 정유정작가를 알게 되었다.
읽지도 않고 구매했던 상태 그대로 책장에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지만 묘한 끌림이 있었다.
여러 사람의 추천으로 읽게 된 정유정작가의 첫 책은 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내 심장을 쏴라>이다.
어쩌다 읽게 된 정유정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에는 정신병동에서 끊임없이 탈출하려고 발버둥치는, 그리고 그런 그를 도우려는 두 남자주인공 승민과 수명이 등장한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이야기에는 재미와 감동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주변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더 컸다.
병원 관계자들과 환자들의 대립구조와 권력관계도 꽤나 흥미를 끈다.
특히 환자들의 상태에 따라 활동의 제한을 두는 장면들은 현실사회의 일부를 비유한 장면같이 느껴졌다.
<내 심자을 쏴라>는 편안하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이를 계기로 나의 한국문학과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어느 정도 해소되길 바라며, 다른 작품들도 기웃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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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1 저 양반 머릿속에 염소가 한 마리 살잖아. 밤마다 그놈이 기어나 와 하루 일을 뜯어먹는 통에 다음 날 아침이면 기억이 듬성듬성 비는 거야. 가끔 책을 읽다가 글의 표현이나 발상이 좋아 한 번 더 눈이간다.
p.167 목젖이 묵직해져 왔다. 서글픈 것을 본 탓이리라. 그가 책장과 함께 붙인 것, 다리미로 눌러 없앤 것. 그건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였던 한 남자의 희망과 절망이었다. 첫째. 울음을 참다보면 목젖이 묵직해진다. 참 와닿는 표현이다. 둘째. 사회복지사의 꿈이 있는 알코올 중독자이자 노숙자인 한 남자의 가엾음이 떨림으로 전해져와서 나의 목젖도 묵직해지는 것만 같았다.
p.206 창살 하나였다. 창틀에 박힌 쇠막대기 하나였다. 그 차갑고 천박한 물건이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움켜지고 있었다. 박탈당한 자유로부터 생명까지. 창살 하나로 외부와 단절된 승민과 수명 정신병동이란 특수한 환경에 비추어 현재를 살아가는 청년들을 극적인 비유를 통해 그려낸다.
p.240 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승민이 수명에게 숲에서 건네는 질문 온 몸으로 세상을 살아내고자 발버둥치는 승민과 달리 정신병동에 자신을 가두는 수명, 승민의 질문은 수명뿐 아니라 내 마음에도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p.286 난 순간과 인생을 맞바꾸려는 게 아냐. 내 시간 속에 나로 존재하는 것 그게 나한테는 삶이야. 나는 살고 싶어.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살려고 애쓰고 있어. 그뿐이야 잃어가는 시력 속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고자하는 욕망을 숨길 수 없는 승민. 안압이 높아지면 치명적임에도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탈출을 계획한다. 그런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수명에게 답하는 승민의 이야기에 안타까움과 어떤 의문이 동시에 스며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고 싶을까?
p.325 어쩌면 진실은 내가 겁냈던 것만큼 거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내 그림자에 놀라 끝없이 달아났던 것인지도 모르고. 어쨋든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거라고. 모든 도망치는 행위에는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실(이유)이 있다. 다만 그것을 모른체하거나 피하는 것으로 자기방어를 하는 것 뿐이다. 무서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마주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것만으로 괜찮다며 위안을 삼는 것이 옳은 것인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럼에도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단 것을 때때로 느끼고는 한다.
- 본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