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기업은 단순히 사익(社益)뿐만 아니라 공익(公益)에도 기여해야 할 신탁(信託) 책임이 있다. 기업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을 비롯한 대중 이익에도 부합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미국은 건국 후 한 세기 이상에 걸쳐 기업이 이러한 기준을 준수하도록 법률로 규제했다. 각 주(州)는 기업이 공익에 도움 된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허가증을 내주지 않았다. 또한, 신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기업은 폐업 처분을 받았다.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시장을 독점하는 등 공정하지 않은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1890년대 이후 기업에 대한 태도와 관련 법률이 급속하게 변화했다.
















‘1890년 록펠러가 소유한 스탠더드 석유회사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 분산 투자를 하며, 이른바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변모했다. 이러한 투자 방식으로 록펠러는 독점 금지법을 회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스탠더드 석유회사는 다른 주에 공장을 소유하거나 다른 주 기업 주식을 소유할 수 없었다. 록펠러는 아홉 명으로 구성된 신탁위원회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에 따라 스탠더드 석유회사는 주식을 발행하는 대신 ‘트러스트’라는 신탁증서를 발행하는 회사가 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록펠러는 독점 금지법을 위반하지 않고도 모든 산업을 석권할 수 있었다. 이 방식은 곧 다른 기업에도 전파되어 1890년대 초 기업 5,000개가 트러스트 300개를 구성하게 되었다. 가령, 모건의 철도 트러스트만 해도 거의 4만 마일에 이르는 철도를 소유했다. 이러한 트러스트와 거대 기업의 독점은 결과적으로 인위적 가격 상승과 경쟁 방지, 형편없는 임금 하락을 초래했다. 독점 기업은 노동자들 희생을 바탕으로 부당 이득과 정부 보조금을 통해 발전했다. 



이 같은 당시 분위기에 더해 1886년 미국 대법원은 해방 노예 권리를 보장하고자 만든 수정헌법 14조를 기업을 보호하는 취지로 해석하여 기업을 '법인(法人)'으로 규정하고, 기업도 개인과 같은 권리를 가지지만, 개인에게 요구되는 의무는 기업에 쏙 빠진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기업에 대한 태도를 급격하게 변화시키게 되었다. 예컨대, 미국 대법원이 국가 총 제당(製糖) 용량의 98퍼센트를 소유한 회사를 통상 독점이 아닌 제조 독점이라고 판단하고 반트러스트법(독점금지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리고, ‘통상을 방해한’ 파업 노동자들을 구속시켰다.‘ ’대법원의 급진적 판결 이후, 기업들은 다른 기업을 매수하고 매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잘못된 내용으로 광고를 할 수 있는 언론 자유도 높아졌다. 또한, 기업들은 더 이상 공익을 고려할 의무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법인 기업은 자연인 시민과 같은 법적 권리가 있기에 대부분의 보통 시민은 시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법률이나 정치 영역에서도 이들 거대한 기업과 대적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여컨대 대기업이 당신을 고소하면 당신은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겠지만, 대기업은 국내, 아니 세계 최고 법률사무소를 고용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법인과 자연인은 애초 서로 게임조차 되지 않는다. ‘현재 세계에서 상위 500개 기업 매출액은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 가치의 거의 절반에 해당한다. 경제 수치로 보면, 세계 대표 기업들은 세계 대부분 국가보다 더 크다. 예컨대, 엑슨모빌이나 월마트, 로열더치쉘 등의 매출은 터키나 폴란드, 노르웨이, 사우디아라비아, 아일랜드, 핀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 포르투갈 등의 GDP보다 더 크다.’ ‘법인 기업 같은 추상적인 실체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의 배타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게다가 법인 기업은 악성 부채에 제한적인 책임 같은 특수한 법적 특권까지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기업이 살아 있는 모든 인격체와 같은 온갖 권리를 향유할 수 있지만,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강제되는 갖가지 책임에서 면제된다는 사실에 당연히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법인은 부와 규모에 기반하여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일반 시민처럼 대접받고자 모든 권리를 달라고 주장한다. 국가 경제를 능가하는 규모로 영업을 펼치는 법인과 개별 자연인 사이 차이가 무엇인지조차 애매해지고 말았다. 법인에 대한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과 혼동이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법인과 인간 삶 사이 어떤 것에 더 우선순위를 두느냐이다. 법인은 공익을 위해 운영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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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3-03-29 2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법인은 자연인보다 시장경제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 위치한 듯 합니다. 최악의 경우 일단 해산하고, 새로운 곳에서 재설립하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는 소수 자연인의 경제적 껍데기인 법인에 대한 규제는 정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3-03-30 11:31   좋아요 1 | URL
넵, 겨울호랑이 님 말씀처럼 ‘무소불위‘의 법인은 결국 정치적, 제도적으로 통제가이뤄져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 방안을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미국은 오히려 정치가 법인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ㅠㅠ
˝2010년 미국 대법원은 법인이 개인처럼 정치 캠페인에 무제한으로 돈을 기부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더욱이 개인은 선거운동에 얼마나 기부했는지 밝혀야 하지만, 법인은 공개할 필요가 없다.˝
법인에 돈을 받은 정치인이 법인 이익에 역행하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