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열세 살 정도 된 한 여학생에게 실기 주법에 관한 설명을 적었던 칠판을 지우라고 지시했다. 그 학생은 약간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다시 침착해졌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저는 선생님 요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일은 선생님 직무에 속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월급을 받는 데에는 이 일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만약 꼭 내가 도와주길 원하신다면 제게 예의를 차려서 부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르웨이 사회에서는 동료 선생을 존중하듯 학생들에게도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또한 일곱 살짜리 어린이 인격은 여든 살 된 노인 인격과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차이점이라고는 아이에게는 더 많은 도움과 교육이 필요할 뿐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나는 노르웨이에 살게 된 한국인 이민자들에게서 이해하기 어려운 불평을 들었다. ‘여기 선생들은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관심도 없고, 오히려 싫어한다니까요.’ ‘맞아요, 너 혼자 잘났냐? 왜 혼자 튀나? 뭐, 이런 분위기인 것 같아요.’ ‘다들 잘 살고 배가 부르니까, 엘리트 교육은 필요 없다 이건가요?’ ‘오히려 공부 못하는 애들은 엄청 챙겨주고 시간도 투자하고 관심을 준다니까요.’ ‘너네 잘난 애들은 좀 가만히 있어, 이기적으로 그러지 말고. 우린 모자라는 애들, 도움이 필요한 애들이 우선순위야! 이러니 내 참 기가 막혀서.’
노르웨이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다른 사람들도 배려해야 하니 한 사람이 질문을 너무 많이 하면 안 돼요. 수업 중에 한 번씩만 해주면 고맙겠어요. 그게 서로에 대한 예의죠.’
교육 당국의 배려는 학습 능력이 저조하거나 15세부터 나오기 시작하는 각 과목 성적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현저히 저조한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하지만 그 학생들이 단지 공부를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하는 일이나 강한 면, 또는 취약한 면을 가지고 태어난다. 좋은 시스템은, 이처럼 개인들의 약한 면을 탓하지 않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보고 좀 더 잘 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이라 본다. 지난 13년 간 노르웨이 교육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들 교육 중점은 학습에 있어서의 ‘낙오자가 없도록’ 도와주는 데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노르웨이는 사실 숙제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님들도 대부분 그렇게 생각한다. 숙제는 교육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학생들에게 복종심을 심어 넣기 때문이다. 2011년 9월에 일명 ‘숙제철폐운동’이 벌어진 것은 그런 흐름 중 하나다. 적색당 청년조직의 수장인 이베르 어스텐볼은 숙제철폐를 위한 학생들의 시위를 조직하는가 하면, 전국적인 학생들의 동맹휴업, 즉 맹휴까지도 조직했다. 맹휴 참여는 한 시간 동안의 수업참여 거부와 숙제철폐를 위한 서명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참가 의사를 밝힌 학생들은 700개 학교에서 4만 명이었다. 노르웨이 학생들은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일종의 ‘정치의식’이 높다.
노르웨이 대학생들은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학자금 대출은 공부 기간에 따라 많게는 2억 원까지 되기에, 나중에 직업을 가지게 되어 대출금을 같아야 하는 부담이 가볍지 않다. 그래서 노르웨이에서는 공부를 하려는 사람은 동기와 의지가 확고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기에 우리나라만큼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공부는 학위를 따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느 분야를 말 그대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만이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일이 여기서는 웃음거리가 될 수 있고, 여기서 상식적으로 생각되는 일이 한국에서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일도 많다.”<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덴마크,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관습법과 같은 '얀테의 법칙(Law of Jante)'이 있다. 그중 일부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말라',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났다고 착각 말라',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라', '누가 혹시라도 네게 관심 둔다고 생각 말라',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 말라' 등이다.”<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