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마이크 둘리 지음, 권경희 옮김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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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주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글쓴이: 마이크 둘리 / 옮긴이: 권경희

펴낸 곳: 김영사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딸과의 첫 만남은 여전히 생생하다. 콩알만큼 작지만 우렁찼던 심장 소리, 핏덩이로 태어나 힘겹게 뜬 눈으로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던 그 모습, 처음 엄마라도 불렀던 순간, 겁먹은 표정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어린이집에 갔던 날, 처음 친구를 사귀고 함께한 생일 파티. 딸이 인생에서 맞이하는 소중한 순간에 늘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쉰둘에 첫 아이를 만난 작가의 마음은 어땠을까? 반백 살이 넘어 만난 소중한 생명은 작가에게 우주이자 존재의 이유였을 거다. 오늘 에세이 추천의 주인공은, 인생의 출발선에 선 딸을 위해 애정을 듬뿍 담아 띄우는 500여 편의 짧은 편지 《우주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기업가를 거쳐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마이크 둘리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상가지만, 딸 바보도 이런 딸 바보가 없다.

 

 

 

저자의 사랑과 인생의 지혜를 가득 담아 딸에게 보내는 편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심지어 행간에서도 딸을 향한 진한 사랑이 느껴진다. 이 책은 저자가 딸을 위해, 삶의 아름다움과 우리의 힘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떠올릴 우리 모두를 위해 쓴 글이다. 믿고 원하는 대로 다 이루게 될 삶이지만, 혹시 닥칠 인생의 역경을 염려하며 진심을 담아 전하는 당부. 모든 두려움의 핵심은 '우리의 존재, 이곳에 있는 이유, 삶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라고 한다. 아버지는 딸에게 자신 있게 말한다. '생각은 네가 바꿀 수 있는 단 한 가지, 그 외 모든 것은 아주 오래전에 다 정해졌다.' 세상의 주인공으로 살아갈 딸에게 또 이렇게 말한다. '매일 태양이 떠오른 건 바로 너 때문'이라고. 어린 딸은 아버지의 이런 맹목적인 믿음에 의아할지도 모르지만, 머지않아 깨닫게 될 거다. 아버지의 그 믿음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응원이자 힘이라는 걸. 부모의 사랑은 한없이 깊고 더없이 위대하다.

 

 

 

 


 

 

 

 

세상이 너에게 너는 실패자다,

너는 시시한 사람이 될 거라고 말하더라도,

그것은 아무 근거도 없는 지껄임일 뿐.

네가 그런 세상의 통념을 깨며 나아갈 때

삶은 도전과 모험이 된다.

아버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우주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p39 중에서...

 

 

 

자식은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부모의 사랑

 

 

 

이 책을 읽으며, 그간 다양한 작품에서 봐왔던 부모의 사랑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엄마의 사랑으로 볼드모트의 마수에서 살아남았던 해리 포터. 드라마 '지옥'에서 영재와 소현은 갓 태어난 자식을 죽이려 달려드는 심판자들 앞에서 자식을 꽉 끌어안은 채 재가 되어 버린다. 이라크에 파병되어 포탄이 날리는 작전지에서 틈틈이 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일기에 적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어 저널 포 조던'의 찰스. 이 모든 위대한 사랑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와 다음 세대가 있는 게 아닐까? 살아서는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부모님의 큰 사랑과 함께 거칠고 두려운 세상에 용기 있게 맞설 든든한 응원과 탄탄한 자존감을 선사하는 감동적인 책 《우주를 여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안내서》. 문득 나도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며 느낀 따스한 애정 덕분에 책 리뷰를 쓰는 이 순간에도 행복한 미소가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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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박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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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꼬리

글쓴이: 박수용

펴낸 곳: 김영사


 

인간과 동물 사이에 우정이 존재할 수 있을까?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이나 사육사 손에 길들여진 동물원의 동물이라면 가능할 듯 싶기도 하다. 한데 그 대상이 시베리아 숲 호랑이라면... 과연 인간과 호랑이 사이에 존중과 우정이란 감정이 생길 수 있을까? 자연의 내면을 기록해 온 자연 다큐멘터리스트이자 자연문학가인 박수용 작가는 누구도 쉽사리 답하지 못할 그 질문의 명쾌한 해답을 이 책 《꼬리》를 통해 증명한다. 오랜 세월 연해주와 만주에서 야생 시베리아호랑이를 관찰해 온 그는 세월이 흐르며 야생호랑이를 더 깊이 이해하고 녀석들의 애환을 알게 됐다. 자연과 생명이 주는 경이로움에 매료된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그만두고 2011년 시베리아호랑이 보호협회를 설립했다. 이 책엔 저자가 오랜 시간 지켜본 시베리아호랑이 '꼬리'의 찬란한 일생이 담겨 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 자연문학'이 이토록 재밌고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니, 눈을 뜬 심 봉사의 심정이 이랬을까? 꼬리와 함께한 모든 순간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긴장감 넘치고 흥미진진하며, 때론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시렸다.

 

 

 

 


 

 

 

시베리아 호랑이의 왕대, 꼬리

 

 

 

시호테알린산맥의 험준한 바위산 지역인 용의 등뼈에는 호랑이를 섬기는 우데게인의 신앙이 전해져 온다. 하늘의 신, 엔두리는 하늘과 땅의 기운을 연결하고자 호랑이들의 왕인 '왕대'를 세상에 내려보낸다. 왕대는 숲의 소통자로서 대대로 용의 등뼈에서 태어난다. 광활한 산맥을 떠돌며 숲을 다스리다 용의 등뼈 어딘가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승의 삶을 마치면 날개를 단 용의 정령이 되어 엔두리 곁으로 날아간다고 한다. 이런 성스럽고 귀환 존재인 왕대가 바로 '꼬리'였다. 한때 숲을 호령하며 무서울 것 하나 없던 꼬리였지만, 야속한 세월 앞에 늙고 쇠약해져 왕좌를 내어줄 날이 머지않았다. 젊은 수호랑이의 위협적인 도발에 첨예하게 촉각을 곤두세우는 한편, 꼬리는 굶주림과 이성적 판단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번번이 사냥에 실패하고 추운 겨울이 되어 여러 날 배를 곯자 민가로 내려와 가축을 공격하기도 한다. 저자와 보호협회 동료들은 꼬리의 민가 습격을 막으려고 고군분투한다. 호랑이 출몰 제보에 사례하고 피해 가축에 대해 보상해주지만, 밀렵으로 잡아 암시장에 거래하면 주민의 1년 수입에 맞먹는 큰돈을 벌 수 있는 터라 호랑이 보호가 쉽지 않다.

 

 

 

 


 

 

 

죽음은 이미 삶 안에 존재하여 묵은 삶이 흘러가야 새로운 삶이 온다고들 한다.

삶이 죽음의 시작이라면 허무는 존재를 안아주는 슬픔이다.

슬픔이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막막한 연민이라면 연민은 시간이 흘린 낙엽이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꼬리》 p123 중에서...

 

 

 

가슴 깊이 남은 생명의 위대함과 찬란한 우정

 

 

 

왕대 자리를 위협하는 젊은 수호랑이 하쟈인과의 격렬한 싸움과 씁쓸하게 돌아선 꼬리의 생존을 위한 힘겨운 사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꼬리를 도와주고 싶다. 철저하게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관찰자로 지켜보다가도, 어느새 꼬리를 마주 보며 응시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두렵지만,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가슴이 복받혀 금세 눈물이 맺힌다. 꼬리 역시 그런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꼬리를 끊임없이 추적하고 관찰하는 저자에게서 집념을 넘어선 강한 애정을 느꼈다. 찰나의 순간 내가 저자인지, 꼬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몰입하여 시베리아의 아름다운 설원을 누비기도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마지막 반전에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식인 호랑이로 몰려 사살 당할 위기에 처한 꼬리와 그런 꼬리를 구하려는 저자의 눈물겨운 노력. 한순간도 꼬리를 의심하지 않은 저자와 나 자신을 칭찬하며 꼬리의 마지막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한 호랑이의 삶과 생명을 다룬 글이 어떻게 이토록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을까? 탁월한 문장을 통해 지켜본 웅장하고 찬란했던 꼬리의 삶은 오래도록 잊지 못할 거다. 정말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각 페이지 하단에 새겨진 모습처럼 꼬리가 하늘 높은 곳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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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 낯선 세계를 건너는 초보자 응원 에세이
강이슬 지음 / 김영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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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지은이: 강이슬

펴낸 곳: 김영사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처음'을 맞이할까? 희대의 전염병과 끝을 알 수 없는 사투를 벌이는 요즘, 그저 무료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눈물 나게 그립다. 인생은 나이에 따라 체감 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차곡차곡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은 반비례로 빠르게 흘러가는데, 한 뇌과학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새로운 자극이 줄어들면 인생은 무료해지고 덩달아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고. 결국 물리적인 시간은 변함없이 그대로 흘러가는데, 우리가 체감하는 세월만 가속도를 붙여 날아가는 셈. 그렇다면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 그 세월의 발목을 붙잡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 우리의 인생에 얼마나 많은 '처음'이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자.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처음'을 살짝 훔쳐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 순간 추천하고 싶은 에세이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방송작가인 강이슬 작가의 좌충우돌 초보인간 생존기를 기대하시라!

 

 

 

운전면허 따기가 이토록 어려울 줄이야!

 

 

 

이 책은 어찌 보면 강이슬 작가의 운전면허 취득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운전면허 시험 이야기. 어째 얘기가 좀 길다 싶다가도, 땀 뻘뻘 흘리며 기능과 도로주행 시험에 응시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아 슬그머니 과거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20대 초반, 내 여름방학을 통째로 바쳐 따냈던 운전면허증. 안타깝게도 그 면허는 2번의 갱신을 거쳐 장롱 속에 고이 보관 중이다. 강이슬 작가는 운전, 수영, 비건, 환경친화적인 삶의 처음을 글로 담아냈다. 장롱면허에 맥주병인 나는 격한 친밀감에 휩싸여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더불어 그간 궁금했던 비건으로서의 삶 역시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까칠하고 뒤끝 있지만 더없이 솔직하고 내숭 없는 작가의 거친 입담에 깔깔거리며 낯선 세계에 첫발을 들여 고군분투하는 그녀의 모든 과정을 기합까지 넣어가며 응원하다 보니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다.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야기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떤 기분이랄까?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궁금함이랄지 후회보다는

'나랑은 맞지 않는 일이구나' 깨닫고 포기하는 쪽이

훨씬 명쾌하다는 걸 알았다.

《미래를 구하러 온 초보인간》 p106 중에서...

 

 

 

인생의 모든 '처음'을 응원하는 책!

 

 

예능 방송작가 특유의 재치와 말솜씨가 돋보이는 에세이였다. 이런 솔직한 에세이를 읽다 보면, 이 글을 읽은 작가의 지인과 가족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작가는 그 궁금증을 여지없이 해소해 준다. 첫 책 《안 느끼한 산문집》에서 비밀스러운 성적 취향과 담배를 피운다는 내용을 솔직하게 싣고 부모님의 반응을 걱정했다는 그녀. 어머니와 아버지의 반응이 천차만별이라 (간이 콩알만 해졌을 작가님을 생각하면 죄송하지만) 흥미진진했다. 그래도 역시 끝까지 내 편은 가족밖에 없는 법. 글 곳곳에서 진하게 느껴지는 부모님의 사랑에 엄마아빠 품을 그리는 어린아이처럼 코끝이 시끈하기도. 이 책은 나이가 얼마나 들었든 늘 찾아올 인생의 '처음'에 응원과 힘을 불어넣어 주는 동지다. 아직도 수많은 '처음'이 남았다고 생각하니, 짜릿하지 않은가? 무료하고 심심한 일상이라며 한숨만 내쉬지 말고, 또 다른 처음을 찾아 돌진해 보자! 그럼, 인생이 분명 좀 더 재밌고 알차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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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신고은 지음 / 샘터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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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지은이: 신고은

펴낸 곳: 샘터


 

얼마 전, 헤어진 연예인 커플의 카톡 메시지가 공개되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통제했던 그 상황 때문에 화두가 된 단어 '가스라이팅'. 내 경우엔 이 단어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이란 책에서 처음 접했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였던 이모를 잃고 유일하게 남은 상속녀 폴라. 그런 폴라에게 다정하게 접근한 그레고리가 폴라를 나약하고 미친 사람으로 몰아가며 자신에게만 매달리게 하는 내용의 영화 <가스등>. 거기서 유래된 '가스라이팅'이란 단어는 아직 제대로 연구된 적 없는 분야지만, 마치 유행어처럼 퍼져 여러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과연 우리가 가스라이팅이란 행위에 관해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나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고 서서히 무너지게 하는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그 실체가 이 책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에 담겨 있다.

 

 

 

가스라이팅의 실체와 특징

 

 

가스라이팅이란 상황이나 심리를 조작해 상대방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다. 보통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지배라고 이야기하지만, 생전 만나보지 못한 타인에 의해서도 공공연히 발생하고 있다. 우리 영혼을 갉아먹는 가스라이팅은 한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하려다 더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단절시킨다. 가스라이팅의 핵심은 피해자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또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돌린다는 점. 가족 간의 가스라이팅은 그 어떤 관계에서의 가스라이팅보다 치명적이다. 받아주는 사람이 존재하니 벌어지는 상황이기에 상대가 미끼를 던지거나 판을 깔아도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악의 없는 가스라이팅은 있어도 피해 없는 가스라이팅은 없다.

 

 

 

 

 


 

 

 

 

가스라이티는 대부분

관계 자체에 대해서 고민합니다.

'이 관계가 올바른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단는 것 자체가

이미 틀린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방중합니다.

심리학책 추천 《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p213 중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한 경험과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처법

 

 

나 역시 굉장히 친했던 사람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욕하며 내 주변의 관계를 하나둘 끊어갔다. 자기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며 어떻게든 미안한 마음이 들게 유도했다. 함께 지내는 동안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관계를 완전히 정리하고 나서야 그게 가스라이팅이었단 걸 알게 됐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고 버겁다면 가스라이팅을 의심해 봐야 한다. 이 책을 쓴 신고은 작가는 가스라이터에게 순순히 자신을 내어주지 말라고 힘주어 말한다. 자신을 온전히 지키는 법은 스스로를 믿는 것뿐. 피해 사실이 부끄럽다고, 혹은 가해자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절대 홀로 남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자책하고 욕구 불만에 빠지면 만만한 사냥감이 되니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을 사랑하자. 그리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청해라.

 

 

 

지금도 우리 주변엔 정신과 영혼을 갉아먹는 가스라이팅의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2, 30대 여성들은 이 책을 꼭 읽어보고 관계에 대해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책,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 등장했던 가스라이팅 상황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니, 메마른 땅이 단비를 흡수하듯 가스라이팅이란 개념이 쏙쏙 이해된다. 작가는 어쩌면 사람의 심리를 이렇게 잘 꿰뚫어 보는 걸까? 지난 날을 떠올리며 이것도 가스라이팅이었구나 싶어 '아차'하는 순간도 많았고, 혹시라도 은연중에 내가 가스라이팅은 한 건 아닌지 돌아보며 앞으로는 절대 당하지도 가하지도 않도록 조심하자고 다짐했던 시간. 범죄 심리학을 좋아하는 내게 당연히 취향 저격인 책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치밀하고 촘촘한 심리분석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가 알려준 참고 작품을 보며 가스라이팅의 실체를 제대로 복습해보는 것도 좋겠다. 가슴 깊이 와닿았던 의미 있는 심리책! 자신을 지키는 방패로 쓸 수 있게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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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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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날 저녁의 불편함

글쓴이: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옮긴이: 김지현

펴낸 곳: 비채


 

2020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역대 최연소 수상 작가라 큰 화제를 모았다. 상을 받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덟. 그 큰 영예를 안겨준 작품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애정하는 김영사의 비채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어서 더 관심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모습으로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를 손에 쥐어 들었을 때, 조심스레 책을 쓰다듬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소설 도입부에서부터 주인공 야스가 담담하게 그려낸 슬픔이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1부에서 멈춘 독서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펴든 첫 장. 이번에야말로 이 서글픈 이야기를 제대로 마주하겠다고 다짐하며 쉼 없이 책장을 넘겼다. 호흡이 끊어지면, 언제 다시 이 책을 마주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열심히 빠져든 야스 가족의 인생 한 자락은 곱씹을수록 아련한 슬픔이 베어 나왔다.

 

 

 

가족을 상실한 깊은 슬픔, 무관심 속에 방치된 남은 아이들

 

 

네덜란드의 한 농촌 마을에 사는 10살 소녀 야스. 부모님, 큰오빠 맛히스, 둘째 오빠 오버, 여동생 하나, 이렇게 여섯 식구인 야스의 가족은 특별히 화목하진 않아도 평범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날, 스케이트를 타러 갔던 첫째 맛히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며 이 가정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을 잃은 슬픔. 야스는 큰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모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엄마는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들은 지독한 혼란을 겪으며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낸다. 오빠를 잃고 상실이란 두려움을 처음 접한 야스는 오빠가 죽던 날 입고 있던 빨간 코트를 한여름이 되어도 벗지 못한다. 큰일마저 제대로 보지 못해 뱃속이 터질 지경. 의식하지 못하지만 뿌연 안개처럼 지독하게 깔린 상실의 슬픔, 사춘기에 접어들어 시작된 은밀한 성적 욕구와 장난, 차가운 물 속에서 싸늘하게 죽어간 큰오빠를 향한 그리움과 풀리지 않는 가슴속 응어리. 사정없이 몰아치는 그 매서운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하염없이 웅크리는 야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외에는 사방이 조용하다.

한때는 아빠가 카펫을 털듯

엄마의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엄마가 하루 동안 들이마신

모든 잿빛, 일상의 먼지,

켜켜이 앉은 슬픔을 털어내려는 듯.

베스트셀러소설 《그날 저녁의 불편함》 p322 중에서...

 

 

 

가보지도 못한 먼 나라에 사는 한 소녀의 이야기일 뿐인데, 타인의 시선으로 관망하듯 지켜볼 순 없었다. 슬픔이 희미해지는 만큼, 한 뼘씩 자라는 야스는 자신이 겪은 이 상실의 기간을 훗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큰오빠는 사라졌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일상. 엉엉 울어서 풀린다면 좋으련만, 야스의 가족이 숨죽여 흘리는 눈물은 안타까움만 더한다. 상실과 애도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도 모른 채, 홀로 방치된 아이들. 담담하게 전하는 그 일상이 지독하게 서글프고 괴로웠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니라. 켜켜이 밀려드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책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쳐 버리겠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픈 소설.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이 작품은 여지없이 찾아와 내게 손을 내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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