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의 불편함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비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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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날 저녁의 불편함

글쓴이: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옮긴이: 김지현

펴낸 곳: 비채


 

2020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한 마리커 뤼카스 레이네펠트. 역대 최연소 수상 작가라 큰 화제를 모았다. 상을 받을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덟. 그 큰 영예를 안겨준 작품 《그날 저녁의 불편함》은 애정하는 김영사의 비채 출판사에서 출간될 예정이어서 더 관심이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모습으로 국내에 출간된 번역서를 손에 쥐어 들었을 때, 조심스레 책을 쓰다듬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소설 도입부에서부터 주인공 야스가 담담하게 그려낸 슬픔이 가슴속 깊이 파고들어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1부에서 멈춘 독서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펴든 첫 장. 이번에야말로 이 서글픈 이야기를 제대로 마주하겠다고 다짐하며 쉼 없이 책장을 넘겼다. 호흡이 끊어지면, 언제 다시 이 책을 마주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렇게 의도적으로 열심히 빠져든 야스 가족의 인생 한 자락은 곱씹을수록 아련한 슬픔이 베어 나왔다.

 

 

 

가족을 상실한 깊은 슬픔, 무관심 속에 방치된 남은 아이들

 

 

네덜란드의 한 농촌 마을에 사는 10살 소녀 야스. 부모님, 큰오빠 맛히스, 둘째 오빠 오버, 여동생 하나, 이렇게 여섯 식구인 야스의 가족은 특별히 화목하진 않아도 평범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겨울날, 스케이트를 타러 갔던 첫째 맛히스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오며 이 가정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가족을 잃은 슬픔. 야스는 큰오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부모님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고 엄마는 음식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잃은 슬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버텨내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된 아이들은 지독한 혼란을 겪으며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낸다. 오빠를 잃고 상실이란 두려움을 처음 접한 야스는 오빠가 죽던 날 입고 있던 빨간 코트를 한여름이 되어도 벗지 못한다. 큰일마저 제대로 보지 못해 뱃속이 터질 지경. 의식하지 못하지만 뿌연 안개처럼 지독하게 깔린 상실의 슬픔, 사춘기에 접어들어 시작된 은밀한 성적 욕구와 장난, 차가운 물 속에서 싸늘하게 죽어간 큰오빠를 향한 그리움과 풀리지 않는 가슴속 응어리. 사정없이 몰아치는 그 매서운 바람에 영문도 모른 채, 하염없이 웅크리는 야스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엄마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외에는 사방이 조용하다.

한때는 아빠가 카펫을 털듯

엄마의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엄마가 하루 동안 들이마신

모든 잿빛, 일상의 먼지,

켜켜이 앉은 슬픔을 털어내려는 듯.

베스트셀러소설 《그날 저녁의 불편함》 p322 중에서...

 

 

 

가보지도 못한 먼 나라에 사는 한 소녀의 이야기일 뿐인데, 타인의 시선으로 관망하듯 지켜볼 순 없었다. 슬픔이 희미해지는 만큼, 한 뼘씩 자라는 야스는 자신이 겪은 이 상실의 기간을 훗날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큰오빠는 사라졌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가는 일상. 엉엉 울어서 풀린다면 좋으련만, 야스의 가족이 숨죽여 흘리는 눈물은 안타까움만 더한다. 상실과 애도의 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도 모른 채, 홀로 방치된 아이들. 담담하게 전하는 그 일상이 지독하게 서글프고 괴로웠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니라. 켜켜이 밀려드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책을 덮은 후에도 한동안 그 감정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누군가는 무심히 지나쳐 버리겠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슬픈 소설. 추운 겨울이 올 때마다, 이 작품은 여지없이 찾아와 내게 손을 내밀 거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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